《트럼프 (TRUMP: The Art of the Deal)》(1988, 김영사) 를 읽다.

Donald Trump 지음
이재호 옮김


「오후 3시반 -- 텍사스로부터 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 자신이 하고 있는 거래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그는 대단히 매력적인 친구로 멋진 생김새에 멋진 옷차림 등 우리를 매우 편하게 하는 위대한 텍사스 촌사람 중의 하나다. 그는 나를 도니(Donny)라고 부른다. 나는 도니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그는 별로 기분 나쁘지 않게 부른다.

2년 전에 그는 다른 거래로 나에게 전화를 했다. 당시 그는 돈 많은 사람을 몇 명 모아서 조그만 석유회사를 인수받도록 주선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도니! 5천만 달러만 투자할 생각이 없어? 틀림없는 사업이거든. 한 달 안에 두 배, 세 배로 만들어 줄 께…"

그는 그 거래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했다. 매우 멋진 거래처럼 들렸다. 나는 해볼 작정을 했다. 관련 서류들도 작성이 됐다. 그러나 어느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나는 무언가 잘못돼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 친구에 다시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이봐 잘 들어보라구! 개운치 않은 게 하나 있는데 말야, 지금 석유는 땅속에 있지 않나. 따라서 내가 볼 수 없잖아. 더우기 창조저인 일도 아니고 아뫃든 그만 두기로 했어."

그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오케이 도니. 그것은 자네가 결정할 일이야. 그러나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

물론 결과는 뻔했다. 수개월 후 석유는 한방울도 나오지 않았고, 그의 그룹들이 인수했던 석유회사는 파산하고 말았다. 그들은 투자한 돈을 몽땅 날리고 말이다.

이 경험으로 나는 몇 가지를 배웠다. 첫번째 서류상으로 아무리 좋게 보이더라도 우선은 자신의 판단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두번째는 알고 있는 것을 활용하는 편이 돈을 벌기가 쉽지, 모르는 분야는 어렵다는 것이다. 세번째는 때에 따라서는 투자하지 않는 게 최선의 투자일 수 있다는 것이다.」 (p.39)



「오후 2시 45분 -- 크게 성공해서 잘 알려진 화가 친구가 전화를 했다. 나를 자신의 전시회 개장식에 초대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이 친구가 무척 재미있다. 내가 만난 다른 예술가들과는 달리 그는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몇 달 전에 그는 나를 자신의 화실로 초대한 적이 있었다. 우리가 잡담을 나누며 서 있을 때 그는 갑자기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점심 먹기 전에 말야, 내가 눈 깜짝할 사이에 그만 2만 5천 달러를 버는 것을 볼래?"

"그래."

나는 대답을 했으나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옆에 있는 페인트통을 들더니 마루 바닥에 깔려 있는 캔버스 위에다 퍼부었다. 그리고 또 다른 페인트통을 들더니 다시 캔버스 위에다 대고 부었다. 네 번쯤 이렇게 했다. 2분 정도나 됐을까. 이 일이 끝나자 그는 나에게 고개를 돌리고 이렇게 말했다.

"바로 이거야. 이게 바로 2만 5천 달러짜리 작품이야. 나는 2만 5천 달러를 벌었다. 자, 점심 먹으러 가지."

그는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또 매우 진지했다. 그가 말하고 싶은 요점은 이거였다. 많은 그림 수집가들이 이렇게 만든 2분짜리 작품이나 그가 신경을 써서 그린 작품이나 그 차이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단지 그의 이름을 사는 데만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항상 많은 현대미술이 사기라고 느껴왔다. 또 가장 성공한 화가는 예술가이기에 앞서 곧 남보다 뛰어난 세일즈맨이거나 판촉요원이라고 믿어왔다. 나는 가끔 그림 수집가들이 내 친구가 그 날 오후에 그의 화실에서 한 행동을 봤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아마 그런 사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그의 그림값은 매우 치솟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예술의 세계란 우스꽝스러운 것이다.」 (p.45)


「나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그럴듯한 시장 조사는 믿지 않는다. 언제나 스스로 조사를 해서 결론을 낼 뿐이다. 나는 결론을 내기 전에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기를 좋아한다.」 (p.59)


「내가 공격적이 아니더라도 나를 목표로 삼는 사람들은 많다. 당신이 성공하게 되면 직면하는 문제 중의 하나가 시샘과 질투이다. 상대방을 저지함으로써 성취감을 느끼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들을 인생의 실패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들이 만약 진짜 재능을 갖고 있다면 싸우는 대신 무언가 건설적인 일을 할 것이다.」 (p.65)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그 정도 하찮은 거래 때문에 골치를 썩어요?" 내 대답은 이렇다. "만약 1달러를 절약하기 위해 25센트짜리 전화를 못하게 되는 날이 오면 그 날이 내가 사업을 그만두는 날이죠."



나는 내 자신을 자랑하지는 않는다. 인생이란 쉽게 변하기 마련이며, 성공한다고 해서 이 원칙이 바뀌지는 않는다. 무엇이든 아무런 예고없이 변하기 마련이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일단 발생한 현상을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



내가 소개하려고 하는 사업들은 하나로 묶으면 어떤 모습이겠는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별 신통한 대답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일을 성사시키도록 도와준 알맞는 순간들을 포착했을 뿐이니까.」 (p.69)

「더군다나 부친은 일을 집중적으로 하는데다 야망 또한 컸다. 동료들은 직업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했으나 부친은 일을 하되 제대로, 남보다 더 잘하려고 노력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부친은 일을 사랑하셨다. 아주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내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네가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 일을 잘하게 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p.72)


「나는 희미하게 프리츠커 가(家)가 하야트의 지배적인 이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하야트의 친구는 나에게 프리츠커가 그 회사의 실질적인 경영인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나는 왜 지금까지 협상이 그토록 허공을 맴돌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중요한 협상을 하려면 최고위층과 만나야 하는 법이다.

또 한가지 알게된 것은 회사의 경우 최고위층 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단지 고용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고용인은 타인의 거래를 위해서 싸움을 하려 하지는 않는다. 고용인은 자신의 임금인상이나 혹은 크리스마스 보너스를 위해서는 기꺼이 싸움을 한다.」 (p.126)


「수많은 수요를 가지고 있는 우리의 시장전략은 파는데 까다롭게 구는 것이었다. 그것은 역판매기술이다. 우리는 결코 서둘러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들어오면 우리는 그들에게 모델 아파트들을 보여 주고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만일 그들이 관심을 보이면 가장 인기있는 이 아파트를 구입하고 싶어 기다리는 인명부가 있다고 설명한다. 아파트가 더욱 사기 힘드는 것처럼 보이면 보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게 된다.」 (p.172)


「무엇보다 적당한 가격에 구할 수만 있다면 최적지에 카지노호텔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 신념처럼 나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복잡한 거래에 대한 평소 나의 강한 애착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는데 나는 복잡한 거래일수록 보다 흥미를 느낄 뿐 아니라 어려운 거래를 성사시키고 나면 보다 많은 수익이 보장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p.185)


「가장 우수한 업체마저도 하나의 사업을 정해진 기간에 책정된 예산에 맞추어 완료하도록 하는 유일한 방책은 그에게 전적으로 맡겨버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경험에서 알고 있다. 어떤 일이라도 강한 의지력 긜고 자신이 말하는 바를 의식함으로써 해낼 수 있다.」 (p.297)
2004/12/04 05:04 2004/12/04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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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스님의 미국인 여성 제자 성향 선사
벽안제자 수행 돕는 자상한 어머니




성향 선사.

"보살의 서원은 나를 필요로 하는 어디든지 가라고 요청합니다. 지장보살은 지옥이라도 달려가 중생을 구제하라고 서원을 일깨웁니다. 그 서원에 따라 나의 파트너와 딸들과 함께 병원에서 일할 때나 무엇을 하든 나는 그것을 수행으로 여깁니다."

화계사 조실 숭산스님(조계종 원로의원)의 초기 미국인 제자이자 조계종 재미홍법 관음선원(Kwan Um School of Zen, 원장 숭산)의 부원장인 성향 (미국명 Barbara Rhodes) 선사. 미국에서 가장 먼저 공식적인 선사(Zen Master)로 인가(1992년)받은 여성 중의 한 명인 그녀는 선사이자 간호사로서 자리이타행(自利利他行)을 겸한 독특한 선 수행자다.

1972 년부터 관음선원 설립자인 숭산 스님으로부터 참선을 배운 성향 선사는 1977년 지도법사(Dhamma Teacher)로 임명됐다. 1992년 10월부터는 미국 관음선원의 부원장으로 활동하면서 플로리다, 시카고, 콜러라도, 코넥티쿠 등지의 선센터와 선모임의 지도법사도 겸임하고 있다.

Bob rich와 함께한 성향 선사.



1969년부터 로드 아일런드(Rhode Island)의 가정과 병원 등에서 말기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종간호를 펼치고 있는 간호사이기도 한 그녀는 선사로서 보기드문 수행이력을 보이고 있다.
선사이자, 어머니, 간호사로서 1인3역을 하고 있는 그녀는 숭산 스님으로부터 참선과 함께 관음보살의 자비와 지장보살의 원력을 배웠다. 성향 선사는 임종간호를 통해 수도 없이 힘겨운 상황에 처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중생 구제의 원력으로 시련을 극복해 왔다. 그녀의 능숙한 해결을 기다리는 많은 곳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지도하며 그녀는 어떤 상황, 어떤 사람들이 원하더라도 기꺼이 가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가 지옥에서 누군가를 구하려 한다면, 지옥에 가야 한다"는 스승의 말씀을 가슴에 새긴 성향 선사는, 자기 답게 살기 위해서는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해 왔다.

"숭산 선사는 제자들에게 헌신적인 사람이 되라고만 하지 않았죠. 큰스님은 자기 자신을 믿고 강해질 것을 원했고, 우리가 무엇을 하든 책임있는 삶의 주인공이 되기를 원했어요. 선(禪)에서 자신을 믿고 자신이 누군가를 찾는 것은, 무아(無我)를 확인하는 일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리고 진실로 무명(無明)을 깨쳤다면, 해야 할 유일한 일은 남을 돕는 것임이 명백해질 거예요." 성향 선사의 자비실천은 '이 뭣고' 화두를 챙기는 수행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숨쉬고 있는 매순간 '이 뭣고'를 찾는 참선으로 '어디를 가든 주인이 되는 수처작주(隨處作主)를 실현하는 일이다.

"'나는 누구인가?'란 의문은 당신을 매순간 진실로 이끕니다. '이 뭣꼬'란 화두는 모든 것에 만족하는 마음 상태를 갖게 하죠. 지혜가 개발될 수록 지족(知足)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그것은 당신이 어디로 다음 걸음을 떼어야 할 지 알게 합니다. 당신은 다른 곳에 있거나, 다른 사람이거나, 다른 무엇을 해야 한다고 원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순간순간, 당신이 직면하는 그 무엇에서 배워야 해요."

화두 참구가 보살행의 실천과 어떻게 연계될 수 있을까. 깨달음을 구하고 중생을 구제하는 일이 둘이 아님을 부처님께서는 누누이 강조하셨지만, 그 적용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화두 참구가 보살행의 실천과 어떻게 연계될 수 있을까. 성향 선사는 이 난제를 이렇게 헤쳐나갔다. 그녀는 세계적인 불교잡지 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모든 사람들을 돕겠다는 보살의 서원을 세웠다면, 새로운 의문이 떠오를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하지?'라고. 우주는 매우 관대하죠. 조금만 주의를 귀울여 듣는다면, 그 대답은 저절로 나타날 것이고 사명감은 저절로 떠오를 것입니다. 당신이 고른 직업과 사명을 명석하게 자비심을 갖고 처리하세요. 어디로 한 발 내딛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한, 당신은 결코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보살행을 펼치되 언제나 '이 뭣고?'를 질문하며, 수행해야만 합니다."

성향 선사는 임종간호의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의 종말을 지켜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감기직전 스스로에게 "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시간은 다 어디로 가버린거야?"라는 질문도 못한 채 일생을 떠나보내고 만다. 성향 선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의 방향이나 목적도 없이 죽어가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향 선사는 마음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바른 처방을 내리기 위해 여러 가지 방편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성향 선사는 봄날에 돋아나는 새싹처럼 생기 있는 불법(佛法)에 대한 지혜를 숭산 스님으로부터 받아들였고, 이를 다른 이에게 전하려는 열정을 보여 주었다. 스승의 가르침 그대로 어떤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제자들에게 따뜻한 가르침을 편 성향 선사는, 그들이 자기자신을 이해하고 본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강력하게 이끌어주었다.

1972 년 숭산 선사의 제자가 된 후 30여년간 공부하면서, 어느덧 성향 선사는 숭산 스님을 닮아 있었다. 관음선원 원장 숭산 스님을 보좌한 부원장으로서, 세계 32개국 120여 개 홍법원 산하 5만여 벽안 제자들의 수행 정진을 어머니처럼 자상하게 지도해 온 것이다. 성향 선사는 처음 숭산 선사를 친견했을 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숭산 선사님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히피였습니다. 끈 모양의 긴머리에 더덕더덕 누빈 청바지를 입고 쌀과 콩만 먹는 배타적인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성향 선사는 선원에서 몇 주일을 살았는데, 스승의 가르침이 얼마나 깊고 노련하며 유머러스한 지를 알게 되었다.

"스님은 언제나 어떤 질문에도 기꺼이 응답하셨습니다. 가끔 엉뚱한 질문을 하면, 젓가락으로 질문을 한 제자의 머리를 톡 치면서 말했습니다. '너무 생각이 많아! 내려놔, OK?'"

이것이 컵이냐, 아니냐 하는 속임수에 걸리지 않고 컵을 들고 마시면 되는 경지를 일깨워준 숭산 스님의 '문없는 문'의 관문을 통과한 성향 선사는, 그간의 수행을 이렇게 회고한다.
"숭산 선사께서는 대자대비(大慈大悲) 즉, 위대한 사랑과 동정심을 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직 완전하지 못하기에, 보다 완숙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Tricycle과의 인터뷰 중에서)
2004/12/03 17:34 2004/12/03 17:34

모든 이들의 안락을 위하여
다시 보는 숭산 스님 전법 이야기 9



- 30개국 125선원에 ‘전법 주장자’-

1992년 10월 10일.
미국 프로비덴스 컴벌랜드 다이아몬드 언덕에는 화사한 햇살이 불광(佛光)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아침나절부터 13만평의 대지 가운데 우뚝선 평화의 탑 주변에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2년만에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 탑의 준공식을 하는 날이기도 했지만 재미 홍법원 프로비데스 선센타 개원 20주년 기념법회도 있었다. 거기다 숭산행원스님의 제자로는 처음으로 3명의 선사가 태어나는 날이기도 했던 것이다.

행원스님은 미국땅에 포교의 당간을 세운날로부터 2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일본에서 홍콩에서 미국에서 프랑스에서 영국에서 폴란드에서 독일에서 그야말로 종행무진 달려야 했던 전법의 나날들이 쏜살처럼 물처럼 흘러 가 어느새 여기까지 왔구나’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고 있었다. 그동안 스님의 전법 당간지주가 선 나라는 30여 곳이나 됐고 선원은 1백25개소가 문을 열었다. 각국의 제자들의 수를 헤아린다는 것은 다소 어리석은 짓일만큼 의미가 없었다. 그저 누가 물으면 “수만명이 되겠지요”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0시가 되자 평화의 탑 준공식이 바로 시작됐다. 각국의 제자들과 한국의 스님들이 참석했고 캄보디아의 고사난다등 불교지도자들도 대거 동참해 대규모 야외법석을 장엄했다.

다시 웅장스런 법석은 엄숙한 전법의 법석으로 옮겨졌다. 푸른 잔디밭에 마련된 전법식장에는 1천여 사부대중이 정좌하고 앉아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이제 행원스님의 이방인제자 3명의 선사가 탄생하는 순간이 된 것이다. 이들과 함께 삭발제자가 된 사람은 25명이나 되지만 오늘 전법식을 받는 3명의 제자는 선사란 법계를 잇는 의식을 맞고 있는 것이다.

“너는 어떤 찌꺼기냐”
“나는 머리도 있고 발도 있다”
이렇게 시작된 문답에서 행원스님의 간을 도려내고 심장을 들춰낸 3명의 제자는 10년이 넘게 닦아 온 자신들의 마음자리를 스승으로부터 인정받았다.

“가을날 잎이 다 떨어지면 금바람이 불어서 나무의 본체가 드러난다. 내가 처음 세탁소에서 일하는 스승님을 만났을때 금바람이 불었다….”
법을 이어받은 성해보문(性海普門) 법사의 법문을 듣는 1천여 사부대중들은 사뭇 진지했다. 무등수봉법사와 법음성향법사도 전법의 기쁨을 간략히 법어로 피력했다.

다이아몬드 언덕에 가을색이 아름다운 이날 프로비던스 선센타에 모인 대중들은 행원스님의 전법 노정에 더욱 큰 인연들이 깃들어 온세계가 불광으로 장엄되길 기원했다.

한국에서는 이미 85년부터 4년 주기로 세계일화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세계의 불자들이 수덕사 도량을 가득 채우고 세계일화의 법향을 드리우는 이 법회는 만공스님의 세계일화 정신을 실현시키기 위한 자리다.

스님이 가는 곳은 어디든 법석이 마련 됐다. 제자들이 전법의 마당을 넓히는 일에 게으르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는 지구촌의 생명들이 모두 경건한 합장을 하는 한 스님의 법석은 먼지가 쌓일 틈이 없는 것이다.

전법을 받고 기뻐하는 3명의 선사들을 보며 행원스님은 문득 85년도 가을에 중국 북경 시내의 고찰 법원사에서 만났던 전인(傳印)스님 생각이 났다.

그 고색창연한 절에서 행원스님은 전인스님에게 물었었다.

“스님, 이 절에는 많은 부처님들이 계신데 어느 부처님이 진불(眞佛) 입니까.”“부처가 없는 곳도 급히 지나가고(無佛處 急須走過) 부처가 있는 곳에도 머물지 마십시요(有佛處不可停留).”
정작 부처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새로 태어난 제자들도 이미 부처의 있고 없음을 가리지 않고 전법의 현장으로 달려갈 것을 행원스님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늘어나는 제자들. 늘어나는 선원과 신도들. 그것은 행원스님이 또다시 전법의 길로 나서야 하는 이유였다. 아직 스님이 가서 부처님법을 전해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곳은 이 지구상에 너무나 많다. 그 중에서도 반드시 가야할 곳, 반드시 가서 법석을 펴야할 곳이 있다.

그곳은 다름아닌 한반도의 북쪽 땅이다. 붉은 깃발이 펄럭이는 공산국가를 다 가봤으나 오직 한 곳 가지 못한 북녁하늘 아래에 행원스님은 주장자를 높이 세우고 싶은 것이다. 피부색이 다르고 눈빛이 다른 이방인들에게도 부처님의 소식을 전했는데 그리운 고향땅 생각만해도 가슴 아픈 고향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찬란한 가르침을 전하지 못하는 이 현실이 행원스님에게는 무엇보다 큰 고통이다.

바로 그 고통이 있기 때문에 행원스님은 전법의 주장자를 놓을 수 없는 것이다.
2004/12/02 17:33 2004/12/0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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