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산스님의 미국인 여성 제자 성향 선사
벽안제자 수행 돕는 자상한 어머니




성향 선사.

"보살의 서원은 나를 필요로 하는 어디든지 가라고 요청합니다. 지장보살은 지옥이라도 달려가 중생을 구제하라고 서원을 일깨웁니다. 그 서원에 따라 나의 파트너와 딸들과 함께 병원에서 일할 때나 무엇을 하든 나는 그것을 수행으로 여깁니다."

화계사 조실 숭산스님(조계종 원로의원)의 초기 미국인 제자이자 조계종 재미홍법 관음선원(Kwan Um School of Zen, 원장 숭산)의 부원장인 성향 (미국명 Barbara Rhodes) 선사. 미국에서 가장 먼저 공식적인 선사(Zen Master)로 인가(1992년)받은 여성 중의 한 명인 그녀는 선사이자 간호사로서 자리이타행(自利利他行)을 겸한 독특한 선 수행자다.

1972 년부터 관음선원 설립자인 숭산 스님으로부터 참선을 배운 성향 선사는 1977년 지도법사(Dhamma Teacher)로 임명됐다. 1992년 10월부터는 미국 관음선원의 부원장으로 활동하면서 플로리다, 시카고, 콜러라도, 코넥티쿠 등지의 선센터와 선모임의 지도법사도 겸임하고 있다.

Bob rich와 함께한 성향 선사.



1969년부터 로드 아일런드(Rhode Island)의 가정과 병원 등에서 말기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종간호를 펼치고 있는 간호사이기도 한 그녀는 선사로서 보기드문 수행이력을 보이고 있다.
선사이자, 어머니, 간호사로서 1인3역을 하고 있는 그녀는 숭산 스님으로부터 참선과 함께 관음보살의 자비와 지장보살의 원력을 배웠다. 성향 선사는 임종간호를 통해 수도 없이 힘겨운 상황에 처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중생 구제의 원력으로 시련을 극복해 왔다. 그녀의 능숙한 해결을 기다리는 많은 곳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지도하며 그녀는 어떤 상황, 어떤 사람들이 원하더라도 기꺼이 가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가 지옥에서 누군가를 구하려 한다면, 지옥에 가야 한다"는 스승의 말씀을 가슴에 새긴 성향 선사는, 자기 답게 살기 위해서는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해 왔다.

"숭산 선사는 제자들에게 헌신적인 사람이 되라고만 하지 않았죠. 큰스님은 자기 자신을 믿고 강해질 것을 원했고, 우리가 무엇을 하든 책임있는 삶의 주인공이 되기를 원했어요. 선(禪)에서 자신을 믿고 자신이 누군가를 찾는 것은, 무아(無我)를 확인하는 일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리고 진실로 무명(無明)을 깨쳤다면, 해야 할 유일한 일은 남을 돕는 것임이 명백해질 거예요." 성향 선사의 자비실천은 '이 뭣고' 화두를 챙기는 수행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숨쉬고 있는 매순간 '이 뭣고'를 찾는 참선으로 '어디를 가든 주인이 되는 수처작주(隨處作主)를 실현하는 일이다.

"'나는 누구인가?'란 의문은 당신을 매순간 진실로 이끕니다. '이 뭣꼬'란 화두는 모든 것에 만족하는 마음 상태를 갖게 하죠. 지혜가 개발될 수록 지족(知足)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그것은 당신이 어디로 다음 걸음을 떼어야 할 지 알게 합니다. 당신은 다른 곳에 있거나, 다른 사람이거나, 다른 무엇을 해야 한다고 원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순간순간, 당신이 직면하는 그 무엇에서 배워야 해요."

화두 참구가 보살행의 실천과 어떻게 연계될 수 있을까. 깨달음을 구하고 중생을 구제하는 일이 둘이 아님을 부처님께서는 누누이 강조하셨지만, 그 적용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화두 참구가 보살행의 실천과 어떻게 연계될 수 있을까. 성향 선사는 이 난제를 이렇게 헤쳐나갔다. 그녀는 세계적인 불교잡지 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모든 사람들을 돕겠다는 보살의 서원을 세웠다면, 새로운 의문이 떠오를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하지?'라고. 우주는 매우 관대하죠. 조금만 주의를 귀울여 듣는다면, 그 대답은 저절로 나타날 것이고 사명감은 저절로 떠오를 것입니다. 당신이 고른 직업과 사명을 명석하게 자비심을 갖고 처리하세요. 어디로 한 발 내딛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한, 당신은 결코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보살행을 펼치되 언제나 '이 뭣고?'를 질문하며, 수행해야만 합니다."

성향 선사는 임종간호의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의 종말을 지켜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감기직전 스스로에게 "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시간은 다 어디로 가버린거야?"라는 질문도 못한 채 일생을 떠나보내고 만다. 성향 선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의 방향이나 목적도 없이 죽어가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향 선사는 마음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바른 처방을 내리기 위해 여러 가지 방편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성향 선사는 봄날에 돋아나는 새싹처럼 생기 있는 불법(佛法)에 대한 지혜를 숭산 스님으로부터 받아들였고, 이를 다른 이에게 전하려는 열정을 보여 주었다. 스승의 가르침 그대로 어떤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제자들에게 따뜻한 가르침을 편 성향 선사는, 그들이 자기자신을 이해하고 본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강력하게 이끌어주었다.

1972 년 숭산 선사의 제자가 된 후 30여년간 공부하면서, 어느덧 성향 선사는 숭산 스님을 닮아 있었다. 관음선원 원장 숭산 스님을 보좌한 부원장으로서, 세계 32개국 120여 개 홍법원 산하 5만여 벽안 제자들의 수행 정진을 어머니처럼 자상하게 지도해 온 것이다. 성향 선사는 처음 숭산 선사를 친견했을 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숭산 선사님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히피였습니다. 끈 모양의 긴머리에 더덕더덕 누빈 청바지를 입고 쌀과 콩만 먹는 배타적인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성향 선사는 선원에서 몇 주일을 살았는데, 스승의 가르침이 얼마나 깊고 노련하며 유머러스한 지를 알게 되었다.

"스님은 언제나 어떤 질문에도 기꺼이 응답하셨습니다. 가끔 엉뚱한 질문을 하면, 젓가락으로 질문을 한 제자의 머리를 톡 치면서 말했습니다. '너무 생각이 많아! 내려놔, OK?'"

이것이 컵이냐, 아니냐 하는 속임수에 걸리지 않고 컵을 들고 마시면 되는 경지를 일깨워준 숭산 스님의 '문없는 문'의 관문을 통과한 성향 선사는, 그간의 수행을 이렇게 회고한다.
"숭산 선사께서는 대자대비(大慈大悲) 즉, 위대한 사랑과 동정심을 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직 완전하지 못하기에, 보다 완숙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Tricycle과의 인터뷰 중에서)
2004/12/03 17:34 2004/12/0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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