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마라, 만고광명이 청산유수니라

[한겨레 조연현 기자 2004-11-30 23:30]


“큰스님, 스님이 가시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다 걱정 마라. 만고광명이 청산유수니라.” 30일 오후 5시15분. 선불교의 큰 별 숭산 스님은 화계사의 주지 성광 스님과 국제선원장 현각 스님 등 수십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자의 물음에 이렇듯 한마디만 남기고 열반에 들었다. 제자의 ‘애타는 심정’마저 선사의 심검으로 베어버렸다. 숭산 스님은 ‘왜 선을 수행하는지’에 대해 “자신의 참모습을 아는 일”이라고 분명히 했다.
“모두 놓아 버려라. 그 다음엔 우리의 견해나 조건, 상황을 모두 놓아 버리고 다만 행할 뿐.” 평소 그의 이런 설법은 생사의 경계에서도 일관됐다. ‘오직 할 뿐’이었다.

일제 식민시대에 태어난 스님은 어릴 시절부터 시대를 고민하는 젊은이였다. 17살 때 독립운동에 가담해 일본 헌병대에 체포, 수감돼 감방에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숭산 스님은 1946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했으나 정치 운동이나 학문으로는 사회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고 보고 4대 독자의 몸으로 출가의 길을 선택했다. 47년 10월이었다.

그는 깊은 암자에 들어가 불교 기도문인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며 백일기도를 해 힘을 얻은 뒤 경허-만공 스님으로부터 이어온 법맥을 이어받은 고봉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참선을 시작했다.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동안거(음력 10월 보름부터 정월 보름까지 승려들이 바깥출입을 삼가고 수행에 힘쓰는 일)를 마친 그는 누더기를 걸친 채 소주 한 병과 오징어 한 마리를 들고 고봉 스님을 찾아가 법거량(불가의 스승이 제자의 수행 정도를 문답으로 점검하는 것) 끝에 깨달음의 징표인 법인가를 받았다. 22살의 새파란 나이였다. 60년 세랍 33살에 불교신문사 초대 사장을 지낸 스님은 66년 일본에 홍법원을 세워 외국 포교를 떠나며 인생의 전기를 맞게 된다.

그는 한국 불교에 대해선 전혀 아는 것이 없던 서양에 한국의 선을 알려 69년부터 미국, 캐나다, 브라질, 프랑스에 선원을 지어 선풍을 드날렸다.

“유 애스크, 아 앤서. 디스 이스 러브.”(네가 묻는데, 내가 대답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미국 하버드대학 강연에서 한 학생이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늦은 나이에 영어를 익혀 오직 간결하고 선적이었던 그의 문답은 복잡한 지식에 식상한 서양인들을 매료시켰다.

그는 동양의 선불교에 무지한 서양인들을 위해 일본 선 방식으로 공안(화두)을 하나하나 타파해 나가도록 지도했다.

돈오점수를 인정하지 않는 국내 전통 선가에서는 단계적인 깨달음으로 이끄는 그의 이런 지도 방식 때문에 “일본 선의 아류”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계룡산 국제선원 무상사 조실 대봉 스님,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로 화계사 국제선원장인 현각 스님, <왜 사느냐>의 저자인 미국 캘리포니아 태고사 주지 무량 스님 등 수많은 외국 제자들을 길러냈다.

그래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교재에선 티베트의 정신지도자 달라이라마, 베트남 출신 프랑스 플럼빌리지의 틱낫한 스님, 캄보디아의 종정 마하 고사난다와 함께 세계 4대 생불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는 늘 “세상의 복잡한 문제를 달리 풀려고 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라”고 가르쳤다. 화계사 (02)902-2663.
2004/12/01 17:26 2004/12/01 17:26

[종교]숭산 큰 스님을 추모하며


숭산 큰스님을 처음 뵌 것은 15년 전인 1989년 12월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 미국 하버드대 샌더스 시어터(Sanders Theater·하버드대에서 가장 큰 강의실)에서였다.


강의실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는 강사의 얼굴을 보고 실망했다. 통통하고 키 작은 동양인이 삭발한 머리에 낡은 회색 옷을 걸치고 문법도 잘 맞지 않는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저 사람이 무슨 생불(生佛)이라고 이 난리를 피우는 거야.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강의에 빨려 들었다.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고통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같은 철학적인 질문들에 대해 스님은 내가 그동안 어떤 책에서도, 어떤 교수님으로부터도 접하지 못했던 간단명료하고 생생한 지혜들을 쏟아냈다.


나는 당시 불교에서 진리를 구하고 있었는데 숭산 스님의 강의는 내 운명을 180도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물설고 낯선 땅에서 승려가 되어 한국불교를 포교하고 있으니 말이다.


큰스님은 1, 2년 전부터 편찮으셨다. 입적하시기 며칠 전에도 병원에 입원해 계셨다. 지난달 30일 오후 ‘마지막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는 의사들 말에 부랴부랴 병원에서 화계사로 모셨다. 큰스님의 미국인 첫 제자 대봉 스님(계룡산 국제선원 무상사 조실)과 내가 앰뷸런스에 함께 탔다.


큰스님의 얼굴은 너무 평온했다. 피부는 아기처럼 고와 주변에 빛을 뿌릴 정도였다. 고른 숨을 내쉬는 스님의 이마에 정중하게 키스했다. 내 입술에 닿는 스님의 피부가 마치 이 세상에는 없는 천사의 것 같았다. 맘속 깊이 스승께 보내는 존경과 감사의 마음에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이날 오후 4시 화계사. 주지 스님을 비롯해 가까운 제자들이 함께 모였다. 대광(미국 프로비던스 선원장), 오광(유고슬라비아 스님), 현문(폴란드 스님)과 한국 스님들까지 모두 8명이 무릎 꿇고 둘러앉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큰스님의 편안하고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 몸에 의지하지 말라. 우리 모두 모르는 곳에서 왔다가 모르는 곳으로 간다. 오직 모를 뿐이다.” 스님은 그렇게 말씀하시고 긴 잠을 주무시듯 돌아가셨다.


큰스님은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희생으로 푸른 눈의 우리들을 가르치느라 건강도 챙기시지 못했다.


이제 한국의 정신문화는 숭산 큰스님이라는 용광로에 녹아 미국에서, 세계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위대한 가르침을 한국인들에게 다시 알리는 일만이 큰스님께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불교와 정신에 눈뜨게 해 준, 나의 또 다른 아버지나 다름없는 큰스님의 극락왕생을 빈다.




현각 스님·서울 화계사 국제선원장
2004/12/01 17:25 2004/12/01 17:25

기사입력 : 2004.11.30, 18:53      



일본의 유통회사 다이에이의 경우 6만명이 넘는 종업원중 약 80% 가량이 비정규직 사원이며 그 중 70% 이상이 기혼여성이다. 이는 회사측이 인건비 절감의 이유로 비정규직 사원을 늘린 것이 아니라 결혼이나 출산 등으로 풀타임 근무가 불가능해진 여성사원들이 파트타임 근무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다이에이의 경우 정규직 사원과 비정규직 사원의 임금을 시간급으로 환산하면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일본 정부(후생노동성)의 집계를 보면 2003년도 시점에서 정규직이 65.4%,비정규직이 34.6%를 점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구조조정과 정부의 고용유연화 정책 등의 영향으로 비정규직이 급격히 늘어났지만 일본의 비정규직은 매년 서서히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의 비정규직의 대부분은 파트타임 노동자가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한국과 다른 일본적 특징이다.

비정규직의 증가는 노동수요측(기업측)과 노동공급측(노동자측)의 변화라고 하는 두 가지 경로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노동수요측의 변화에 따른 비정규직 증가는 기업이 인건비 절감의 차원에서 정규직 사원을 줄이고 상대적으로 인건비 부담이 적은 비정규직 사원을 늘리게 되면서 나타나게 된다. 반면 노동공급측의 변화에 따른 비정규직의 증가란 노동자측이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의 고용형태를 선호하게 되면서 나타난다.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급격한 증가는 외환위기 이후 각 기업의 구조조정을 통한 인건비 절감의 수단에 따른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으므로 노동수요측의 변화요인이 강하다.

최근 일본 젊은이들의 노동에 대한 가치관과 의식변화가 크게 바뀌었다. 지금 일본에선 프리터(free arbeiter)의 증가가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프리터란 ‘학생도 주부도 아니면서,파견노동자나 계약사원 등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30세 미만의 젊은 노동자’를 지칭한다. 굳이 우리나라 말로 표현하자면 ‘청년 백수’라고나 할까. 불경기로 인하여 정규직으로의 취업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프리터가 된 젊은이도 존재하지만 그보다는 자발적으로 프리터의 길을 선택하는 젊은이가 더 많다는 것이 문제이다.

일본의 각종 조사결과에 의하면 취업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나 취미생활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젊은 층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들은 자신의 노동시간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취업형태를 선호하기 때문에 프리터(주로 파트타임)가 늘어났다고 한다. 일본의 비정규직 증가는 다이에이의 기혼여성 사원과 프리터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의 고용형태를 선호함으로써 나타나는 요인이 크다. 즉 일본의 비정규직 증가는 노동공급측의 변화요인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임금액이 상승하게 되면 자신의 여가시간을 줄이고 그만큼 노동시간을 늘려 임금소득을 높이고자 한다. 이를 임금증가에 따른 ‘대체효과’라고 한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의 부가 축적되어 소위 선진국으로 진입하게 되면 임금액이 상승함에도 불구하고 노동시간은 줄어들게 된다. 풍요로운 사회가 되면 돈을 쓰기 위한 시간,즉 여가시간에 대한 욕구가 커지기 때문이다. 이를 임금증가에 따른 ‘소득효과’라 한다. 일본의 ‘2000년도 노동백서’에서는 프리터의 증가등 일본의 고용형태의 다양화와 젊은이들의 가치관이나 의식변화의 원인을 경제적 풍요로움에서 찾고 있다.

한국과 같이 불경기로 인한 기업수익률의 저하,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업측의 구조조정과 인건비 절감의 노력에 의하여 비정규직이 증가했다면 앞으로 경기가 호전될 경우 자연스럽게 비정규직이 감소할 것이다. 왜냐하면 호경기로 전환하게 된다면 노동수요측(기업측)은 안정된 노동력의 확보를 위하여,그리고 기업특수적 기능을 양성하기 위하여 정규직 사원을 선호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비정규직 문제는 경기 활성화 정책을 통하여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경기가 호전된다 하더라도 한번 변한 노동자의 가치관은 다시 바꾸기가 힘들다. 더구나 임금증가에 따른 소득효과는 호경기가 되면 더욱 높아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일본의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비정규직은 계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허동한(일본 규슈국제대 교수,현 한양대 초빙교수)

2004/12/01 12:08 2004/12/0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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