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마 상식



경주마의 무산소운동 조교

무산소운동이란

조깅과 같이 가벼운 운동을 할 때는 장시간을 운동해도 그다지 숨차거나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속력을 올리면 심장박동이 점차 빨라지고 숨이 가빠지게 된다. 달리는 속력을 최대로 하여 아주 빠르게 달리면 숨이 목에 차고 심장박동수도 최고점에서 더 이상 빨라지지 않는다. 이 때를 최대심박수 시점이라 하며, 이때는 달리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호흡을 통해 얻어진 산소를 태워 얻은 에너지만으로는 충당하기 어려워 에너지 과부족 현상이 벌어진다. 이럴 경우 산소 공급이 필요없는 무산소해당 과정을 거쳐 에너지를 생산, 부족한 에너지를 충당한다.

이와 같이 폐를 통해 정상적으로 흡입할 수 있는 산소만으로는 에너지를 충족시킬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운동을 무산소운동이라 한다. 무산소해당 과정을 통해서 만들 수 있는 에너지 양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러므로 무산소운동은 장시간 지속할 수 없다. 사람의 경우는 100~200m, 말의 경우는 400~600m를 달리면 무산소운동에너지는 고갈된다.


무산소조교방법

경주마가 4코너를 돌아 결승주로를 달릴 때는 모든 말이 전력질주를 하게 된다. 그 상태가 바로 무산소운동상태다. 발주 직후부터 선두위치를 잡아 결승선에서 전력질주하여 우승하는 말이 있는가 하면, 어떤 말은 앞서서 잘 달리다 결승선에 거의 다와서 갑자기 속력이 급감하여 뒷말들에게 추월을 당하기도 하고, 어느 말은 4코너까지는 맨 후미에 있었는데 직선주로에서 오히려 속력을 올려 선행하는 말들을 제치고 극적으로 우승하는 말도 있다. 이는 결국 경주 종반의 무산소운동 능력에 좌우되는 것이다.

무산소조교는 보통 조교계획의 후기단계, 즉 경주출주 직전에 실시하는 것이다. 여기서 경주출주 직전이라 함은 적어도 출주일보다 2주일 내지 3주일 전을 말한다. 출주 2~3일 전에는 오히려 무산소운동을 자제해야 한다. 무산소운동을 하면 근육 중에 저장되어 있던 에너지원들이 고갈되는데, 이는 적어도 3일 이상이 지나야 다시 재충전되기 때문이다.

무산소조교는 충분한 유산소조교을 통해 심폐기능과 근골격계의 지지구조를 튼튼히 다져 놓은 후에 실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골절 등의 운동기질환이 발생하거나 폐출혈 등 심맥관계에 돌이킬 수 없는 상해를 입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무산소조교시 운동속도는 초반에는 심박수가 분당 170회 정도부터 시작하여 점차 그 강도를 증가시켜 나간다. 이때의 속력은 보통 분속 500~600m 정도 되며 말의 적응 정도를 보아가며 점점 속력을 증가시킨다. 이렇게 고속도 운동을 할 때는 근육이나 골격의 손상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를 최소화하도록 조심해야 한다. 무산소운동의 한 방법으로 언덕조교방법이 있는데, 언덕조교는 뼈와 관절에 급격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도 심맥관계와 호흡기계에 충분한 운동부하를 주는 장점이 있다.

무산소운동은 단시간씩 실시해야 한다. 최고속도로 달릴 때는 20초 이상 지속하는 것은 무리다. 빠르고 강한 근육의 수축력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실제 경주상황과 비슷한 속력으로 조교해야 한다.

무산소 인터벌조교를 실시하면 효과적인데, 이때 조교방법은 짧은 시간의 고속도운동과 가벼운 속보 또는 평보운동을 하는 저속도 운동을 조합하여 시간비율이 1:6 정도 되도록 실시한다.

마체가 조교에 적응함에 따라 운동속도의 증가, 조교빈도의 증가 또는 휴식시간의 감소를 통해 점진적으로 운동부하를 증가시켜 나간다. 그렇게 하여 조교계획의 최종단계에서는 실제 경주에서보다 더 강한 운동량이 부과될 수도 있어야 한다.


무산소조교의 이점

무산소조교를 하면 몸동작과 사지의 움직임이 숙달되어 빠른 속력으로 달리면서도 주행이 안정되어 체력소모가 줄어들므로 효율적인 에너지활용이 가능해진다.

뿐만 아니라 무산소운동근육인 속근이 발달되어 순간적인 추진력이 증가하므로 발주지점과 직선주로에서 유리하다. 또 경주 후에는 근육에 축적되어 있던 피로물질을 신속하게 제거하여 피로가 빠르게 풀린다는 장점이 있다. 무산소조교가 부족한 말들은 한 번 경주에 출전하고 나면 한동안 피로가 풀리지 않아 식욕이 떨어지고 기력이 쇠락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통 1,000~1,400m의 단거리경주는 무산소운동능력에 의해 승패가 좌우된다.
그러나 경주마의 전체적인 운동능력은 유산소운동능력에 더 영향을 많이 받는다. 왜냐하면 유산소운동능력이 좋아야 최후까지 무산소운동에너지를 아꼈다가 결승선에서 폭발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산소조교와 무산소조교는 서로 별개로 취급되는 것이 아니고 항상 동반되어야 한다.


글 김병선 핸디캡 부장
2006/01/03 23:22 2006/01/03 23:22

일본인이 본 한국경마



시바타 유타카의 한국경마사랑

시바타 유타카 약력
현직: 일본중앙경마회 P.R센타 상무이사(1941년 9월 5일생)
약력: 1964년 4월 일본 중앙경마회 입사
1971. 10 ~ `98.3 핸디캡퍼, 재결위원 역임
90년 9월 ~ 11월 우리회 심판실에서 재결자문역으로 초빙


서울경마공원
1990년 한국에 왔을 때 두 가지 점에서 놀랐다. 하나는 출마표에 혈통이 기재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럴 경우 신마경주 때 경마고객은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말들의 능력을 평가해 마권을 구매할 수 있을까? 그 능력판정의 근본이 되는 것이 바로 혈통이다. 혈통을 바탕으로 신마전을 치른 후, 이후 1전 1전을 쌓아 가면서 경주거리에 대한 적성과 능력을 판정하게 되는 것이다. 적성거리에 뛰어난 적응력을 보인 말은 당연히 생산계로 환류되어 그 경주성질을 자손에게 전달토록 하는 것이 바로 경마다. 아울러 대를 이어 경주를 제패하는 경주마 혈통의 우수성에 고객들이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되면 비로소 경마는 도박이 아닌 레저로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한국의 경마종사자들은 ‘경주마거리=경주마능력’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직도 신봉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경마는 ‘혈통의 스포츠’이다. 즉 경주마는 태어날 때부터 단거리마, 중거리마, 장거리마로서 만들어져 태어난 것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어찌 한국에서는 단거리마에서 점차 훈련을 거듭해 장거리마가 되는 것이 ‘성공’이라고 치부되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경마는 단거리왕자, 중거리왕자, 장거리왕자의 혈통을 놓고서 각 분야의 우수마를 선발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단거리마의 스피드와 장거리마의 지칠 줄 모르는 스태미나를 놓고 어중간한 거리를 만들어 경주를 시켜 본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에 빠지게 하는 것은 경마의 사치가 아닌가 싶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양쪽의 중간에 해당하는 경주거리 2,400m가 태어난 것이다. 경주마세계에서의 왕자를 겨루는 대회로 말이다.

이런 점에서 ‘코리안더비’는 하루 빨리 1,400m가 아닌 1,800m 또는 그 이상의 거리에서 치러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렇게 경주거리를 변경하는 것은 향후의 생산목표를 정하는 중요한 사항으로, 생산지의 경주마 능력 등을 고려하여 바꾸어야 한다. 만약 내년에 당장 1,800m로 바꾼다면 지금까지 스프린터나 마일러에 초점을 맞춰 경주마를 생산해 온 생산농가는 보이지 않는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혈통스포츠인 경마에서의 경주거리는 생산계를 지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주거리’가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바로 경주마 생산 등 경마의 기본을 이루는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코리안더비’가 지금은 비록 마일러경주지만 앞으로는 세계에서 통하는 경마가 될 수 있도록 경주거리가 늘어나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또한 경마의 세계화에 관련해 유럽경마로의 진출도 무시할 수 없으므로 잔디주로에서 2,400m를 주파할 수 있는 생산환경이 구축된다면 향후 건설될 경마장의 주로재질을 잔디주로로 해야 할 것이고 경주거리도 2,400m로 늘려야 한다.

경주거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 경마는 유럽에서 귀족의 스포츠로 시작되었고, 매치레이스로 대표되는 장거리 경주 위주였다. 따라서 유럽경마는 어느 쪽인가 하면 장거리경주, 즉 스태미나를 중시하는 경마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의 주요 경주는 잔디주로에서 개최되며, 그 대표 거리인 2,400m로 진행되는 것이 영국더비·오크스, 프랑스더비·개선문상이다.

그럼 미국은 어떤가. 미국은 스피드를 중시하고 있다. 미국의 3관경주를 예로 들어 보자. 미국 3관 경주의 첫 관문인 켄터키더비는 2,000m이다. 2관문인 프리크니스스테이크스는 1,900m이다. 그리고 마지막 벨몬트스테이크스는 2,400m이다. 이들 3관 경주는 모두 잔디주로가 아닌 더트(Dirt)주로에서 펼쳐지는데(경마장에 따라 잔디로 개최되는 경우도 있음), 이는 경주마에게 주는 부담을 고려해 스피드를 요구하려는 의도인 듯싶다. 즉 경주마의 경주거리 부담에 있어 잔디주로에서의 2,400m는 더트주로에서 2,000m 정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더트주로에서 진행되는 미국은 거리를 짧게 하고, 경주마에게 부담이 적은 잔디주로에서 경마를 시행하는 유럽과 일본더비는 2,400m로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한편 한국의 주로는 무기질성분이 많은 모래(Sand)주로로서 유기질로 구성된 미국의 더트주로와는 그 성질이 다르다. 경주마에 주는 부담 또한 달라진다. 그리고 언제나 베스트 컨디션으로 조정되지 못하는 서울경마장의 현실을 고려, 한국경마의 기본거리로서 1,800m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물론 이 경주거리는 과도기적 경주거리로, 향후 세계경마계에 데뷔하기 위해서는 2,400m를 겨냥해야 할 것이다. 샌드주로에서의 2,400m 질주는 경주마에게 많은 부담을 줄 것이기에 잔디주로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덧붙이고 싶다. 한국 서울경마장에서 2007년쯤에 국제대회를 유치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과연 경주거리는 몇 미터로 결정될지 지금부터 자못 궁금해진다.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코리안더비’를 봐서는 1,400m가 유력할 듯 싶다.

그렇다면 과연 어중간한 거리인 1,400m로 대회를 시행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 상황을 보더라도 절대 무리라고 생각된다. 세계 유명 경주는 대개 1,600m(영국 1000기니·2000기니, 브리더스컵 마일), 2,000m(브리더스컵클래식, 두바이월드컵), 2,400m(영국·프랑스·아일랜드·일본의 더비 및 오크스)로 개최된다. 물론 단거리로서 1,000m나 1,200m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서울경마장은 1,600m 경주를 개최할 수가 없다. 여러면에서 1,800m 또는 2,000m로 국제대회경마를 개최하게 되지 않나 싶은데, 경주거리 결정은 어떻든 쉬운 문제는 아니다. 참가 가능한 각국에 먼저 의견을 타진한 후 결정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지금 한국의 생산계는 대부분이 단거리마 위주로 생산을 하고 있다. 현재 보유 중인 씨수말의 혈통을 봤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2007년을 위해서 기획을 한다면, 그 대회에 내보낼 수 있는 경주마의 생산을 당장 올해부터 준비해야 한다. 올해 노던댄서계열을 대신할 수 있는 장거리 혈통의 씨수말을 구입해 내년(2001년)에 교배를할 수 있도록 한다면 생산은 2002년, 육성·조교를 거쳐 경주마로서의 데뷔는 2004년(3세마)에 가능하다. 따라서 지금 시작해도 빠른 게 아니다. 이와 동시에 지금의 단거리 위주에서 점차 경주거리를 늘려가야 한다. 물론 이러한 경주편성체계 개편은 생산·육성·조교가 뒷받침되는 중장기계획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한편 해외에서 보았을 때, 가장 중요한 사항은 안심하고 경주마를 보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느냐는 점이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검증된 수의진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따라서 당장에라도 수의사 양성을 서둘러야만 할 것이다. 쉬운 예로 두바이월드컵 개최 시 가장 관건이 되었던 것은 세계 최고 일류마를 다룰 수 있는 수의시설을 갖췄다는 사실을 미국측에 설득하는 일이었다.

결국 미국측을 설득하는 데 성공, 1회 대회에 ‘시가’가 참가하게 됨으로써 두바이월드컵은 상금뿐 아니라 경주질에서도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대회가 될 수 있었다.


제주도
제주도의 토양은 거의 대부분 산성토양이다. 화산재로 이루어진 홋카이도의 초지도 대부분 산성토양이다. 산성토양 여부는 개민들레가 자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초지를 위한 적정한 Ph는 6.5~7.5이다. 어느 정도 이용가능한 초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Ph 5.0 이상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경주마 사료는 아직도 개량의 여지가 있다. 한국에서도 양질의 사료를 공급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양질의 사료 공급이 좋은 말을 키우는 데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씨수말
어느 혈통이 번성하는 것에는 흐름이 있다. 즉 노던댄서계열이 현재 주류를 이룬다고 한다면 그 순간부터 노던댄서계를 대신할 다른 혈통과의 교배를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경주마의 세계에서 가장 ‘기적의 혈량’이라고 하는 3×4교배, 또는 2×3교배를 넘게 되면 좋은 형질의 유전보다도 안 좋은 형질의 유전이 나타나게 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 목장운영자뿐만 아니라 모든 생산계 종사자는 씨수말을 선정하는 일에서부터 좋은 경주마를 얻는 것에 대한 경쟁이 시작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의 생산계에서 운용되는 씨수말 교배는 경쟁 원리에 입각한 경주마생산이 아님을 깨닫고, 앞으로는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현재 마사회 보유 씨수말의 특징은 혈통면에서 스프린터나 마일러 계통이라는 점과 노던댄서계통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한 마리의 씨수말을 검정하는 데는 최소한 7년이 필요하다.

또한 좋지 않은 혈통이라고 판단되어 그 혈통을 없애려고 한다면 최소한 3대, 평균적으로 5대에 걸친 기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좋지 않은 형질마가 씨수말로 사용되는 일이 없도록 씨수말 구매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현실적인 상황을 놓고 예를 들어보면 바야흐로 노던댄서계열이 아닌 다른 말을 씨수말로 써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마사회 경주마목장뿐아니라 생산농가는 이에 신속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경마는 무조건 경쟁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우승열패’의 법칙 하에서 운영되어야만 한다. 경쟁없는 경마는 더 이상 경마가 아니다.

아울러 경마는 씨수말을 선정하고 고르는 데서부터 경쟁이 시작된다. 하지만 지금 한국 경주마 생산계의 현실은 씨수말 선정에서부터 제비뽑기식으로, 즉 전혀 혈통과는 관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것은 2006년부터는 완전경쟁으로 갈 수 있도록 올해부터 준비 작업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생산농가도 커다란 지장없이 2006년부터의 완전경쟁 체제에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서울경마공원에서도 제주경마공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경쟁체제, 즉 10두가 뛸 경우 8착 내 입상마에게만 출주수당을 주고 나머지 9, 10착마에게는 출주수당도 안주하도록 함으로써 능력이 미달된 마는 도태되는 ‘우승열패’의 경마가 도입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번 방문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숙하려고 노력 중인 한국마사회를 비롯한 경마관련단체를 볼 수 있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2~3배 더 성장하고 있는 한국의 생산계를 둘러볼 수 있어 좋았다.

향후 그 거취가 주목되는 한국경마의 성장모습을 그려보면 왠지 모르게 뿌듯해짐을 느낄 수 있다. 경마관계자들의 더 큰 노력을 바라면서 …
2006/01/03 23:20 2006/01/03 23:20

맨 오워(Man O′ War)
“역사를 다시 쓴 말”

1917년 3월 29일, 켄터키의 렉싱턴에서 약 3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오거스트 벨몬트(August Belmont) 소령 소유의 너서리 목장(Nursery Stud)에서는 쌀쌀하고 습기찬 겨울 안개가 마방 주위로 깔린 가운데 자정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의 어둠 속에서 암말 마후바(Mahubah)가 밤색 수망아지를 출산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너서리 목장의 업무일지 939쪽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입되었다. “1917년 3월 29일-마후바가 페어플레이(Fair Play)와의 사이에서 밤색 수망아지 출산. 이마에 반점, 그 오른쪽에서부터 코 한가운데까지 가느다란 줄무늬 반점. 신장:42, 허리둘레:33.”

귀족 경마 가문인 벨몬트가1) 출신이었던 벨몬트 2세는 당시 뉴욕에 있었는데, 그날 오후 한 통의 전보를 받았다. “마후바가 잘 생긴 밤색 수망아지를 낳았음.”

예순살이 넘은 벨몬트는 보통 때라면 자신이 무척 아끼는 너서리 목장의 일에 전적으로 몰두해 있었겠지만, 당시는 세계대전쟁에 미국이 개입함에 따라 그도 어쩔 수 없이 전쟁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보병으로 복무를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는 소령의 직위로 해외 파견군의 마필을 확보하고 훈련시키는 임무를 맡고 있었던 것이다.

마필 생산자였던 벨몬트는 기회를 즐기며, 틀에 박히지 않은 일을 했다. 그 밤색 망아지가 태어나던 3월 29일에도 벨몬트는 마후바와 페어플레이 사이에서 잘못하면 성미가 고약한 말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 페어플레이는 ‘미치광이’헤이스팅스(Hastings)의 자마이다2) - 한편으로는 괜찮은 경주마를 생산할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벨몬트 소령은 이전까지 자신의 1세마들을 판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1918년 전쟁으로 인해 해외로 나갈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사상 처음으로 씨암말로 쓸 망아지 6마리를 제외한 너서리 목장의 1세마 21마리 모두를 비공개리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들 모두를 한꺼번에 살 사람을 구하지 못해, 결국 소령은 21마리의 1세마 모두를 사라토가(Saratoga) 경매에 내보내기로 했다.

한편 그곳에서부터 수백마일 떨어진 펜실베이니아의 글렌 리들(Glen Riddle)에 위치한 글렌 리들 목장에서는 루이스 퓨스털(Louis Feustel)이 목장주 새뮤얼 리들(Samuel D. Riddle)의 조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퓨스털은 젊은 시절 오거스트 벨몬트의 너서리 목장에서 성장하며 일을 배운 사람이다.3) 그가 사망하기 1년 전인 1969년, 여든다섯살의 퓨스털은 터프 앤드 스포츠 다이제스트(Turf & Sport Digest)에 당시 벨몬트가 내놓은 1세마들을 모두 사기 위해 얼마나 리들을 졸랐는지에 대해 털어 놓았다. 그는 특히 마후바의 망아지를 비롯한 3마리의 말들을 갖고 싶어했다. 하지만 리들은 자신의 이웃이자 말고기에 관해서는 최고 전문가로 알려져 있던 마이크 댈리(Mike Daly)의 충고를 듣고는 그것을 거절하고 만다. 한 달 보름이 지난 1918년 8월 17일 어느 토요일, 사라토가 경매에는 너서리 목장의 1세마들 21마리가 모두 나왔다.

리들은 그 경매에 참가하여 벨몬트가 내놓은 말들 가운데 퓨스털이 점 찍어둔 3마리의 망아지 중에서 두 마리를 사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마후바의 망아지가 경매에 나오자 입찰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가 성화를 부리기 시작했다. “이리 와서 여기 앉으세요, 샘(Sam). 저는 루이(Louie)를 위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이 망아지를 사고 싶어요.”

리들은 결국 그 망아지를 5,000달러에 구입했다.4) 그때의 경매를 살펴보자. 1918년 사라토가 경매에서 팔린 1세마들의 평균 가격은 1,107달러였으며, 여섯 마리의 망아지들만이 5,000달러 이상에 팔렸다. 그리고 1918년의 그 경매에서 1만5,600달러라는 최고가에 팔린 말은 스위치(Switch)라고 불린 수망아지였는데, 나중에 이름을 골든 브룸(Golden Broom)으로 바꾸게 된다.

자신이 특별히 원했던 3마리를 모두 데리고 리들이 펜실베이니아의 목장으로 돌아오자, 퓨스털은 그들을 순치시키는 일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경매에 내보내기 전 벨몬트 여사가 남편의 부재 중에 그 망아지에게 이름을 지어준 것이 있었지만5), 마후바의 그 아들은 훈련을 받던 처음 몇 달 동안은 그저 ‘마후바의 망아지’로만 불렸다. “순치시키기 힘든 말이었습니다. 안장을 얹기도 어려웠죠.” 퓨스털이 얘기했다.

그는 “먼저 뱃대끈을 조금 단단하게 죄고 나서 주위를 걸어보게 했습니다. 그런 후 그것을 다시 한 번 더 조인 다음 또다시 걸어보게 했습니다. 만약 뱃대끈이 제대로 잘 죄어지지 않았다면, 그는 그대로 뛰어올라 마방 밖으로 달아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라고 얘기했다.

퓨스털의 동생도 그 마사에서 일을 하곤 했었는데, 자신의 빨간 머리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자주 ‘레드(Red)’라고 불렸다. 그리고 퓨스털이 이야기하기를 그 마후바의 밤색 아들도 글렌 리들 목장의 모든 사람들이 ‘레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말이 16핸드 이상 자라자, 그는 ‘빅 레드(Big Red)’로 불리게 된다.

1919년 봄, 그 망아지는 핌리코(Pimlico)의 아브르 드 그레이스(Havre de Grace)에서 훈련과 조교를 받는다. 그러나 퓨스털이 그의 육성을 천천히 하였기 때문에, 경주마로서의 데뷔는 그해 중반에 가서야 이뤄지게 된다.

퓨스털은 마후바의 아들이 첫 경주를 치르기 바로 전날 자신이 큰 걱정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그동안 훈련도 훌륭하게 해내고, 계시원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던 그 밤색 망아지가 갑자기 아침 훈련에서 자신의 마방 동료인 디나 케어(Dina Care)에 5마신이나 뒤진 채 들어왔기 때문이다. 훈련 기수는 사람들이 다음날 더 높은 배당을 받을 수 있게 디나 케어가 그를 쉽게 이기도록 내버려 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퓨스털은 확신을 하지 못하고 다음날까지 계속 걱정만 하고 있었다. 그의 걱정은 기우였다.

1919년 6월 6일, 드디어 주로에 등장한 마후바의 아들이 벨몬트 파크 직선 주로를 달리는 미승리마 경주(maiden race)에서 5펄롱을 59초에 주파, 득의양양하며 6마신의 낙승을 거둔 것이다. 그에게 걸린 배당은 3-5였다. 그것이 바로 마후바의 망아지 이름(맨오워)이 출마표에 처음 나타난 때였다. 그 이름은 그 날의 경마팬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큰 의미로 바뀌게 된다. 맨오워는 자신의 경력관리를 위해 이후부터는 큰 대상경주에만 출전을 했다.

사흘 뒤의 킨 메모리얼(Keene Memorial) 스테이크스, 그리고 11일을 쉬고 나서 출전한 유스풀(Youthful) 스테이크스에서 우승의 기록들을 쌓아감에 따라 그에게 요구되는 부담중량 또한 올라갔다. 그로부터 이틀 후 그의 네번째 경주인 허드슨(Hudson) 스테이크스에서 130파운드를 짊어졌는데, 2세마가 부담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중량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보다 부담중량이 21파운드나 적은 바이올렛팁(Violet Tip)을 1과 1/2마신 차이로 누르고 우승을 하였다.

1919년 8월 13일, 그는 자신의 여섯번째 경주인 샌퍼드 메모리얼(Sanford Memorial)에서 유일한 패배를 기록했다.6) 출발이 좋지 않아 10마신이나 손해를 봤고7), 곧 무리를 따라잡았지만, 레일쪽을 파고들다가 다른 말들에게 갇혀버리고 말았다. 그에게 패배를 안겨준 말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업셋(Upset)이라는 말이었는데8), 맨오워는 이후 다른 여섯번의 경주에서 그를 만나 설욕을 한다. 그는 켄터키더비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소유주였던 샘 리들이 켄터키까지 말을 보내는 것을 꺼렸을 뿐만 아니라 이제 겨우 3세마가 된 말이 5월에 10펄롱을 뛰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9) 대신 맨오워는 동부에 머물며 프리크니스(Preakness)에 대비했다. 그해의 켄터키더비에서는 17마리가 출전하였는데, 폴존스(Paul Jones)가 업셋을 머리 차이로 누르고 우승을 하였다. 그리고 열흘 뒤에 열린 프리크니스에서 더비에 출전했던 몇 마리의 말들이 맨오워에게 도전을 했지만, 맨오워는 출발선에서의 머뭇거림에도 불구하고10) 업셋과 와일드에어(Wildair)에 1과 1/2마신 차이로 앞서며 승리하였다.

1920년, 3세마 시절에도 맨오워는 불패의 연승행진을 이어가며, 각종 기록들을 경신해 갔다. 위더스(Withers)에서는 기수인 클래런스 커머(Clarence Kummer)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1마일 미국 기록을 0.4초 앞당기는 1분35초08의 기록을 세웠다. 또 벨몬트스테이크에서는 1과 3/8마일을 2분14초에 달렸는데, 이 기록은 향후 50년간 깨어지지 않았다.11)

열흘 뒤의 스타이비선트(Stuyvesant) 핸디캡에서 맨오워는 자신보다 32파운드나 적은 중량을 짊어진 옐로핸드(Yellowhand)의 도전을 받게 된다. 그에게 걸린 배당은 1-100으로, 만약 100달러를 걸어 맨오워가 이기면 101달러를 돌려받는다는 뜻이다.12) 맨오워는 거침없이 처음부터 5마신을 앞서 나가더니, 결승 주로에 접어들면서 8마신 차이로 격차를 벌이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애퀴덕트(Aqueduct)에서 열린 드와이어(Dwyer) 스테이크스에서 맨오워는 자신의 호적수를 한 마리 발견할 수 있었는데, 다름아닌 휘트니 목장(Whitney Stables) 출신의 존그리어(John P. Grier)13)였다. 그 경주에서 그리어가 맨오워에게 무섭게 도전해 오자, 커머는 처음으로 채찍을 사용하였다.

결국 맨오워는 승리를 향해 내달리며, 새로운 미국 기록인 1분45초20을 수립하게 된다.


글 배기한 제2육성목장 전담반 대리


주1)
원래 뉴욕의 제롬 파크(Jerome Park)였던 벨몬트 파크와 벨몬트스테이크스는 그의 아버지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주2)
두 마리 모두 성격이 고약하고 변덕스러웠지만 엄청난 부담중량을 짊어졌던 말들이었다. 페어플레이의 성격과 조화를 맞추기 위해, 벨몬트는 영국 트리플 크라운을 제패한 록샌드(Rock Sand)의 딸 마후바와 그를 짝지어 주었다. 마후바의 조상들은 점잖았을 뿐만 아니라 총명하기까지 했다. 또한 마후바는 페어플레이와의 사이에서만 새끼를 낳았기 때문에 ‘페어플레이의 아내’라고 불렸다.
주3)
그는 마후바, 페어플레이, 그리고 헤이스팅스를 훈련시킨 사람이다.
주4)
리들은 만약 그 덩치 큰 밤색 망아지가 경주마로서 성공하지 못하면, 장애물경주용 말로 훈련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주5)
그는 전쟁의 와중에 태어났기 때문에 벨몬트 여사로부터‘ 맨 오워’라는 이름을 얻었다.
주6)
경주가 열린 사라토가(Saratoga)는 이 날 ‘ 반전의 경마장’‘ 우승예상마들의 무덤’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주7)
출발 깃발이 떨어졌을 때, 맨오워는 출발선에서 신호를 보지 못한 채 배회하고 있었다.
주8)
당시 업셋의 부담중량은 맨오워보다 15파운드가 적었으며, 반마신 차이였다. 그리고 업셋은 다른 어느 말도 감히 넘보지 못한 이 한 번의 우승으로 경마사에 영원히 기억되게 되었다.
주9)
샘 리들은 나중에 워애드머럴을 출전시킬 때에는 생각을 고쳐 먹게 된다.
주10)
그의 이런 악벽은 그가 물려받은 집안 습관으로 알려져 있다.
주11)
당시 그에게 도전을 한 말은 도나코나(Donnacona)라는 말로 워클라우드(War Cloud :1918),서바톤(1919)에 이어 사상 세번째로 트리플 크라운에 도전했던 말이다. 그리고 맨오워가 세운 기록은 서바톤의 종전 기록을 3초나 앞당긴 것이었다.

주12)
그가 뛰었던 총 21번의 경주 중 3번의 경주에서 북메이커 배당률이 1-100으로 나왔다.
주13)
그리어는 뛰어난 기량에도 불구하고 업셋과 더불어 맨오워의 그늘에 가려 존재가 무색해진 말이다. 그는 드와이어에서 신기록을 세운 맨오워에 불과 1과 1/2마신 뒤졌으며, 당시 자기 또래의 말들 중에서 두번째로 우수한 말이라는 평을 듣고 있었다.
2006/01/03 23:17 2006/01/03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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