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Dancer는 숏다리였다




늦둥이 · 꼬마 그러나 노던댄서(Northern Dancer)
1961년 5월 27일 캐나다의 원드필드 목장에서 태어난 노던댄서(Northern Dancer)는 ‘The Blood-Horse’지에 의해 선정된 20세기 최우수 경주마 100두 중 생일이 가장 늦은 ‘늦둥이’이면서 키가 작아 1세마 경매시장에서 아무에게도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늦둥이·꼬마(runt)였다.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그를 찾은 샤다이목장의 요시다씨도 ‘소처럼 생긴 말’로 표현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80년대에 이르러서는 마체심사 기준이 달라질 뻔했다.

‘좋은 경주마는 어떻게 생겨야 하는가? Northern Dancer와 얼마나 닮은 데가 많은가? 그의 유전 형질이 마체에도 느껴지는 것 같은가?’ 어디 경주마로서 자질뿐인가. 일본의 씨수말 전문지 ‘Futurity’는 1999년도 최우수 경주마 146두 중(북미, 유럽, 호주, 일본, 두바이의 챔피언 및 G1경주 승리마) 45%인 65두가 Northern Dancer의 부계라인이며, 78%인 114두의 혈통표에 그의 이름이 있다고 발표했다. 20세기 마지막 30년 동안 그의 후손들은 9번이나 최고 씨수말의 영예를 누렸으며 지금도 손자 Storm Cat에 의해 그 기록은 계속되고 있다.

야심과 수완, 그리고 행운이 따른 Taylor
생산자 겸 마주 Edward Plunkett Taylor는 서러브레드 생산에 뛰어들면서 미국으로부터 무시당하는 변방 캐나다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탔다. 그는 기업운영에서 벌어들인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실전 경영기법을 도입했다. 넓은 국토에 흩어진 소규모 목장들이 서로 연맹체(circuit)를 형성하도록 후원했으며, 주위의 목장들은 직접 통합하고 국립교배소도 인수하여 윈드필드 목장을 설립했다. 세계적 규모를 자랑하는 Woodbine경마장도 만들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경주마 생산역사 중 최고의 행운이 그에게 다가왔다. 켄터키 오크스를 준비 중이던 Natalma가 칼슘 과다급여로 추측되는 무릎 고장으로 3세 봄에 경주생활에서 은퇴하게 된다. 그리고 적당한 교배상대는 이미 예약이 완료되어 할 수 없이 같은 목장에 있던 Nearctic에게 시집보내졌다. 그래서 늦둥이가 태어났으며, Taylor는 그를 Northern Dancer라 불렀다.

목장에서 태어난 망아지들이 1세가 되면 Taylor는 캐나다의 이름있는 사업가들을 초청해 목장에서 칵테일 파티를 열었다. 그리고 망아지들을 보여 주면서 “이 놈은 얼마면 팔겠소”하고 이른바 ‘Pre-Priced Yearling Sale’이라는 새로운 경매제도를 시행했다. ‘꼬마’도 이때 당시 가격으로는 상당히 높은 2만5,000달러에 선보였으나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서러브레드 역사상 이런 흥밋거리가 도처에 산재한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다.

Secretariat는 동전던지기로 마주가 정해졌고, Seattle Slew와 Sunday Silence도 Northern Dancer와 비슷한 경우이고, 660만달러를 수득한 John Henry는 1976년 1세마 경매에서 단돈 1,100달러에 팔렸다. 국내 우수경주마도 마사회 6개월령 매입검수에 떨어져 선진국의 교훈(?)을 따르는 일이 더러 있다.

Northern Dancer가 탄생하기까지



Northern Dancer의 탄생 과정은 최소한 2대모 Lady Angela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캐나다에서 경마기반을 착실히 다진 Taylor는 다른 한편으로 우수 번식마 확보에도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영국의 뉴마켓 경매에서 최고 씨암말을 구해 오도록 지시한다. 그리고 1952년 세일에서 최고가인 1만500기니(약 2만5,000달러)로 Nearco의 자식이 수태된 Hyperion의 딸 Lady Angela를 손에 넣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 말을 곧바로 데려오지 않았다. 다시 Nearco와 짝지어 주기 위함이었다. 선경지명이었을까? 먼저 태어난 망아지는 실패였다. 두번째가 수태되어 캐나다로 데려왔다. 이듬해 태어난 망아지가 Nearctic이었다. 이 망아지가 나중에 Northern Dancer뿐 아니라 Clever Trick(76), Wild Again(80), Explodent(69)등 걸출한 씨수말을 배출하면서 야심가 Taylor를 업계의 독보적 존재로 부상시켜 준다.

한편 그는 1958년 사라토가 1세마 세일에서 ‘회색괴물’ Native Dancer의 딸 Natalma를 두번째 고가인 3만5,000달러에 구입한다. Natalma는 분명히 우수한 경주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앞서 말한 것처럼 켄터키 오크스를 앞두고 부상으로 은퇴해 Nearctic이 기다리는 윈드필드 목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듬해 첫 자마로 Northern Dancer를 배출하게 된다. Northern Dancer가 2세부터 승승장구하자 Taylor는 같은 배합을 5차례 되풀이했으나 더 이상의 명마는 하늘이 점지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씨수말과의 사이에서 스테이크스 승리마가 3두 더 나왔다. 우수한 씨수말에서 명마가 태어날 확률이 10%, 씨암말은 25% 수준에 이른다는 통계를 다시 한 번 입증한 셈이다.

짧은 경주마 생활
그는 조기 성숙형이었다. 2세부터 이미 캐나다에는 적수가 없었다. 미국으로 무대를 옮겨 Secretariat의 삼관마 시절 기수로 유명한 Ron Turcotte를 태우는 등 승수를 계속 늘려갔다. 그러나 미국은 시골뜨기를 여전히 무시했다. 이 때문에 큰 경주에 나갈 때면 항상 낮은 부담중량을 부여받았다. 켄터키더비 때는 몇번 기승한 적이 있는 Bill Shoemaker로부터도 무시를 당했다. “괜찮기는 한데 너무 숏다리라서…”(Bill Shoemaker는 1999년 겨울 Pincay에 의해 깨진 생애 8,832회의 우승전적이 있는 전설적 기수다) 그러나 Northern Dancer는 더비에서 Secretariat에 이어 역대 2번째 기록인 2분00초로 Shoemaker를 태운 Hill Rise를 물리친다(애석하게도 올해 더비마 Monarchos의 기록에 0.03초 밀려 역대 3위로 내려앉음). 2주 후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를 거머쥔 Northern Dancer는 그러나 삼관마 마지막 관문인 벨몬트의 2,400m 코스에서 거리 적응의 한계로 3위로 밀려나고 만다.

그는 경주마 시절 초기부터 뒷다리 고장으로 고통을 받아왔다. 처음에는 오른쪽 뒷다리 굽이 갈라져 경주와 치료를 반복했다. 이때 유명한 일화가 있다. 굽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아 캐나다로 돌아갈 절박한 순간, 어떤 사람이 굽을 감싸는 압축고무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얼마간 치료하니 새살이 돋기 시작했다. 그것을 그 사람의 이름을 따 ‘Bane Patch’라 부른다고 한다. 다음에는 비절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3세 후반기 망가지고 짧은 뒷다리를 오직 투쟁심 하나로 버텨온 그는 마침내 짧은 2년간의 전적(18전 14승, 수득상금 58만달러)를 남긴 채 은퇴하고 고향으로 개선한다.

폭풍우를 몰고온 그의 망아지들
그는 캐나다에서 교배료 1만달러로 씨수말 생활을 시작하고, Taylor가 메릴랜드의 동부 해변가에 또 다른 윈드필드 목장을 만들면서 부마 Nearctic과 그 곳으로 이주했다. 1967년에 두번째 자마군인 NijinskyⅡ, Vice Regent가 태어나고 연이어 최고의 망아지들이 줄을 이었다. 1970년대에는 240만달러로 신디케이트가 형성되었으며,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20세쯤이 되었을 때는, 유럽에서 4,000만달러(약 510억원)에 팔 수 없겠느냐는 제의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제의는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정중히 거절되었다. 영국 조교사 Vincent O’Brien이 캐나다에서 NijinskyⅡ를 구해 영국 삼관마에 올려 놓자 세계의 관심은 Northern Dancer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Storm Bird와 Sadler’s Wells는 영국에서, Lyphard와 Nureyev는 프랑스에서, Northern Taste는 일본에서, Danzig와 Vice Regent는 미국에서, 바야흐로 전세계를 동시에 지배하는 최고의 혈통이 되었다. 이때 서러브레드에 관련된 모든 자금은 미국의 경매시장으로 모여 들었고, 그의 망아지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듯…. Storm Bird도 이때 홀연히 날아왔다.

큰말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씨수말 활동을 시작한 지 몇 년쯤 지나 ‘The Blood-Horse’지에 씨수말 홍보를 하면서 “체고가 15.1핸드(153.4㎝)가 아닌 15.2핸드이니 1㎝를 올려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으며, 초기 상대 씨암말을 고를 때도 키가 커야 한다는 우선 조건을 내세우기도 했다. 이 사실은 당시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키가 큰 경주마를 선호했음을 확인해 준다. 하기야 훨씬 전 유럽에서는 키가 작은 말은 아예 번식마로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법까지 만들었으니….

그러나 키가 커야 잘 달린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경주마의 스피드나 스테미나는 체고와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 경주마는 긴 다리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튼튼한 심장과 투쟁심으로 달리기 때문이다. 씨수말의 조건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성공한 씨수말의 체고는 대부분 15.2핸드(154.4㎝)와 16핸드(162.6㎝)사이에 분포한다. 그리고 최소한 그들의 절반 이상은 최고의 경주마 출신이다.

필자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큰 경주마, 큰 번식마를 외치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다. 그러나 Northern Dancer뿐만 아니라 Hyperion도 그러했고, 더 옛날 Lexington도 그러했다. 그들은 모두 꼬마였다. 한편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Phar Lap이란 말은 174㎝가 넘는다. 그는 단 한 차례 미국 원정경기에서 그 곳 경마계의 기를 단숨에 꺾어버린 최고 경주마였다. 그러나 그가 잘 달릴 수 있었던 것은 긴 다리보다 지금도 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유별나게 큰 심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체고가 큰 말을 피하는 논리적 근거는 무엇일까?

닮은 것끼리(Type to Type)
마를린 먼로가 ‘당신의 두뇌와 나의 몸매’ 운운하면서 아인슈타인을 유혹했을 때 거절당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배우자끼리는 닮은 구석이 있어야 한다. 이 이론의 지지도는 점점 높아지는 듯하다. 생산배합이론에서 ‘Type to Type’이란 첫째 키와 외형 등이 비슷한 것끼리, 둘째 경주적응거리가 비슷한 것끼리, 셋째 질(수준)도 비슷한 것끼리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둘째와 셋째의 경우는 1,200m의 단거리에 소질이 있는 씨암말과 2,400m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씨수말을 짝지우지 말 것이며, 싸구려 씨암말에 40만달러를 투자해 Storm Cat을 찾는다면 후일 태어난 망아지를 팔 때 크게 손해를 본다는 가르침이다. 그리고 첫째의 경우는 씨암말의 체고는 수말에 비해 작은 편이며 대부분이 16핸드 이하이니 씨수말도 당연히 비슷한 놈이어야 궁합이 맞다는 것이다.

글 / 김종식 푸른목장 대표
2006/01/04 01:08 2006/01/04 01:08

3펄롱타임

2006/01/04 01:01 / Horse Racing
Q 마사회 홈페이지에서 제공하고 있는 경주자료를 보고 내가 뭘 잘못알고 있는 것인지 해서 질문합니다.

우선 4월21일 4경주 ‘호탕한’의 경주 기록을 살펴보면 3F타임이 39.7로 되어 있습니다. 3F타임이 골인지점 전방 600m의 경주주파기록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좀더 아랫부분에 제공되고 있는 펄롱타임과 기록이 일치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펄롱타임을 보죠. 13.8 12.0 12.9 13.5 13.0 13.8 마지막 3구간의 펄롱타임을 합산해보면 40.3이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3F타임에는 39.7 이라고 되어 있는데, 왜 펄롱타임 합산기록과 일치하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A 안녕하십니까? 마사회 홈페이지 담당자입니다.

우선 3펄롱타임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마사회에서 측정하는 3F타임은 두가지로 구분됩니다. 우선 개별경주마의 3F타임입니다. 이것은 3F지점에 센서와 녹화카메라를 작동하여 개체별 경주마의 3F타임을 측정하여 공표하는 것입니다. 이 기록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경주마의 개체별 지구력 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가지는 경주의 전반적 주행상태 흐름 등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결승지점부터 200m 단위로 자동센서(녹화장치가 아님)를 설치하여 구간별 통과타임을 자동으로 측정하여 3F타임을 산정하고 있습니다. 이때의 구간기록 및 3F타임 측정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구간별 선두마의 200m 기록은 발주 직후 선두마가 200m 지점을 통과하는 즉시 센서로 측정되고, 그 기록을 기준으로 다음 200m 구간을 먼저 통과하는 경주마의 기록을 측정하는 방식입니다. 즉 발주 후 첫 200m 지점을 먼저 통과한 말이 다음 200m 구간 주행중 선두를 빼앗기게 되는 경우에 다음 200m 구간의 기록은 처음 200m구간을 통과한 마필의 구간기록이 아니고, 그 시점을 기준으로 다음 200m지점을 먼저 통과한 마필의 기록이 측정되는 것입니다. 귀하께서 지적하신 4월 21일 4경주에서도 경주전개상 1번마 ‘정보통’의 선행이 빨라 각 구간별로 먼저 통과하였으나 4번째로 주행하던 ‘호탕한’이 추입에 성공하여 우승하여 전체적인 3F타임은 '정보통'이 구간을 먼저 통과한 기록을 기준으로 ‘호탕한’이 기록한 결승기록과의 관계에 의해 40.3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호탕한’의 개별적인 3F타임은 39.7입니다.

더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핸디캡전문위원실(담당 : 장병운(02-509-1723))으로 문의하시면 상세히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펄롱타임과 통과타임
1펄롱(Furlong) :1마일(1609.3m)의 1/8, 약 200m의 거리
펄롱타임 : 경주로 각 200m마다의 주파기록
통과타임 : 각 펄롱구간 지점을 통과하는데 소요된 시간의 누적기록
2006/01/04 01:01 2006/01/04 01:01

테시오와 Ribot

1. 테시오와 테일러
국내·외에서 출판된 혈통서적을 접하다 보면 페데리코 테시오(Federico Tesio)란 사람을 빼놓을 수 없는데, 그의 곁에는 항상 에드워드 테일러(Edward. E. Taylor)가 이야기의 단짝이 되고 있다. 왜일까?

물론 두 사람은 서러브레드 생산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기도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들의 생산방법이 너무나 동떨어진 때문이 아닐까 한다. 우선 노던댄서를 생산한 테일러는 양조업에서 성공한 사업가 출신으로 사업에서처럼 풍부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주위의 소규모 목장들을 흡수.통합하여 기후적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최고 의 생산목장·경마장을 만들어 갔다. 반면 Nearco와 Ribot을 생산한 이탈리아의 생산자이자 마 주 겸 조교사 테시오는 그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오로지 말에 대한 전문성 하나만을 재산으로 하여 남들이 쳐다보지도 않는 바겐세일장의 싸구려 씨암말들을 구입하여 몇십년의 노력 끝에 최고 의 경주마를 생산해 갔다.

테일러는 경매시장에서 최고의 가격으로 니어아크틱(Nearctic)의 모마 레이디 안젤라(Lady Ang ela)와 노던댄서의 모마 나탈마(Natalma)를 구입한 반면, 테시오는 자기가 필요로하는 스피드를 보유한 씨암말이라면 마격상 하자가 있거나 인기없는 혈통이더라도 구입·생산의 과정을 반복해 갔다.(그는 말에 관한 경쟁에서 남에게 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으며, 그가 저술한 책에서조차 그만의 특별한 배합기법은을 결코 타인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위에서 언급한 생산기법도 켄터키 게인즈웨이 목장에서 40년간 매니저로 활동한 후 가족들과 테일러메이트 목장을 설립한 조지프 레넌 테일러의 이야기 속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그에게 이러한 생산패턴이 가능했던 이유는 테일러나 대다수의 목장이 상업적 생산자였음에 반해 그는 애초부터 자기가 생산한 망아지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의사가 전혀 없어 남들의 평가나 세간의 인기를 철저히 무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비교되는 결정적인 동기는 영국의 유명한 조교사 빈센트 오브라이언(Vincent O'Brien)이 미국으로 건너간 Ribot의 망아지를 구입하기 위해 북미지역을 돌아보던 중 당시 별 로 인기가 없었던 노던댄서의 자마 1두를 구입한 사건이다. 그 망아지가 바로 1935년 바브람(Babram) 이후 35년 만에 영국의 삼관마로 등극한 니진스키(NijinskyⅡ)이다.

2. Ribot에 투자한 세월 - 30년
유명씨수말이 자기 손에 있으면 보유 씨암말 중 최선의 상대마 선택이 게을러지고, 유럽 구석구 석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씨암말 구입하는 발걸음 또한 무디어진다는 것이 테시오의 지론이었다. 그가 생산한 Ribot의 3대부 Covaliere d'Arpino는 위대한 St.Simon의 3대손으로 부마는 이탈리아 최우수 씨수말을 11년간 연속해서 석권했다.

상대마 Bella Minna는 Ribot 생산을 위한 제일보로 1200기니(테일러가 레이디 안젤라를 1만500 기니(약2만5천달러)에 구입했다니 상대적 비교는 가능하다))에 구입했고, 그로부터 Ribot의 2대부 Bellini가 태어났으며, 상대마 Tofanella는 뉴마켓 1세마 세일에서 140기니로 구입하여 부마 TENERANI를 탄생시켰다. 이 말은 이탈리아더비와 영국의 퀸엘리자베스스테이크스에서 우승하였다. 그리고 Ribot의 모마 로마넬라를 위해 그의 어미 Babara Burrini를 뉴마켓 당세마 세일에서 350기니에 구입했다. 로마넬라 또한 2세 암말 챔피언이 되었다. 이렇게 30년을 허비(?)하고 Ribot이 경주마로 데뷔하기 몇달 전 테시오는 숨을 거둬 경주로를 달리는 Ribot을 보지 못했다. 그는 죽기전 자기가 생산한 최고말은 Nearco도 Ribot도 아닌 Covalier d'Arpino라 했다. 유럽 전문가들이 20세기 유럽 최고 경주마를 선정할 때 Sea-Bird와 Ribot 중 누가 센지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는 짐작이나 했을까?

3. 불패의 명마
Ribot Ribot은 엄밀히 말해 이탈리아 태생이 아니다. 테시오가 씨수말 테네라니를 영국으로 보내면서 수태된 어미말 로마넬라도 딸려 보냈다. 이듬해의 교배 상대로 그를 다시 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듬해 봄 Ribot은 뉴마켓의 국립 교배목장에서 태어났다.

그가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에서 16전 전승의 기록으로 은퇴하기까지 탁월한 경주능력을 대변하는 일화를 하나 소개하려 한다. 1950년대 경마 위세는 유럽이 미국보다 한 수 위였던 것 같다. 미국의 우수한 클래식 경주마들이 프랑스 개선문상을 여러 차례 노크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Ribot이 3세에 이어 4세에도 개선문 경주에 등록했을 때 미국에서 Bold Raler의 기수로 유명한 Eddie Arcaro가 Career Boy라는 말로 도전해 왔다 (페이스 메이커로 그 말의 짝인 Fisherman도 동행) 우리식의 결승주로에서 아카로가 '이길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하는 순간, 어떤 말이 그의 옆을 휙하고 스쳐갔다. 그는 경주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그 말이 어떤 말인지 정말 알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미국말로 당시까지의 최고 성적인 4위에 입상하는데 그쳤다. 이와 같은 탁월한 경주능력과 씨수말로서의 우성 유전력을 알아내기 위해 휴이트(A.Hewitt)와 그 주위의 전문가들이 Ribot의 혈통표와 씨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무리 살펴보아도 모계쪽에는 톱 클래스의 경주마가 없었고 일류혈통도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몇백달러, 기껏해야 몇천달러 짜리 씨암말만 주워모았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들의 이야기 마지막 줄에 이런 글이 보인다.

'그의 제자들은 아무런 결론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다만 현대의 서러브레드 세계에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4. 스태미나와 건장함의 결정체
경주 은퇴 후 Ribot은 이탈리아와 영국에서 4년간 씨수말 생활을 한 후 미국으로 임대되어 왔으나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다음장에서 말하기로 하고, 하여튼 그는 영국에서 Ragusa, 미국에서 Tom Rolfe, Graustark, His Majesty, Arts and Letters 등 걸출한 후세마를 남겼다. 그러나 Ribot은 우수씨수말(LS: Leading Sire)보다 우수씨암말(BMS : Bloodmare Sire, 모계의 부마성적)에서 더 위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의 아들 Tom Rolfe의 딸들은 102두의 스테이크스 우승마를 배출하고, 아들의 아들인 Hoist The Flag의 딸들은 82두, 아들의 아들의 아들 Alleged는 1999년까지 85두의 스테이크스 우승마를 배출하고 있으니, 그 어떤 가계에서 이런 성적을 낼 수 있겠는가? 그런 까닦에 모든 전문가들은 어미말에게 필요한 스태미나와 건장함의 대명사로 Ribot계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5. 고약한 성격 때문에
그가 개선문상을 2연패하고 이탈리아로 돌아왔을 때 전쟁 패망국은 성대하게 은퇴식을 베풀었다. 전 국민이 Ribot을 연호하는 순간, 그는 갑자기 기수를 내동댕이치고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했다. 잔치는 완전히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그후 미국의 더비던목장이 임대계약을 체결했다. 5년 계약기간에 135만달러였다. 당시까지 미국에서 최고가로 거래된 씨수말나슈어(Nashua)의 매매가가 125만2천2백달러였으니 그의 명성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미국에서 첫해 태어난 그의 자식 Tom Rolfe가 1세가 되던 1963년에 영국에서는 이미 최고의 씨수말 위치에 올랐다. 그래서 중동의 오일달러가 미국으로 밀려들어왔고, 빈센트 오브라이언도 그들과 동행했으며, 니진스키도 만들어질 수 있었다.

당시 더비던목장에는 미국 역사상 최고 전문가 올린 젠트리가 매니저로 있었는데 Ribot의 폭력 앞에는 그도 어쩔 수 없었는지 차이고 받히기를 수차례 경험하였다. 방목장에서 Ribot의 시야에는 어떤 씨수말도 보이지 않아야 했다. 아무도 그를 목장 밖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고향으로 되돌아 갈 수 없었다.

필자는 가끔 만일 Ribot의 성격이 조금만 더 점잖았더라면 서러브레드의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를 생각해 본다. 배합이론에 '국제적 원교배'란 방법이 있다. 어느 특정지역에서 근친에 근친을 되풀이하여 무력화되어 버린 혈통에 대한 처방으로 전혀 이질적인 피를 수혈해 주면 활성화가 가능하다는 비유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유럽의 Nasrullah가 싱싱한 미국의 Native Daner를 만나 Bold Ruller가 탄생했듯….

필자의 생각으로도 맞는 듯 하다. St.Simon의 유럽 혈통이 미국에서 신선한 파트너를 만났으니 그의 위력은 배가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유럽과 미국은 가끔 서로 말들을 바꾸어 교배했던 것은 아닐까? 혼혈가수 중에 내가 최고라고 여기는 가창력의 소유자가 있듯이…. 끝.

글 / 김종식 푸른목장 대표
2006/01/04 00:49 2006/01/04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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