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1천원 붕괴..기업반응 4가지 유형
[연합뉴스 2006.01.04 18:20:35]


(서울=연합뉴스) 박용주 기자 = 연초부터 원.달러 환율의 심리적 저항선인 1천원선이 붕괴되자 기업들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해 역시 1천원선이 깨진 적이 있는 데다 원.달러 환율 약세를 전망하는 보고서가 미리 많이 나와 있어 무작정 당황하진 않는 분위기다.

통상적으로 원.달러 환율 약세는 수출기업의 채산성 악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1천원선은 수출기업의 마지막 저항선으로 거론돼 왔다.

◇ 호연지기형.."때되면 또 오른다"기업은행 나성우 외환파생팀 과장은 5일 "현재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중소기업 중 일부는 달러를 당장 매도하거나, 선물환 매도계약을 체결하는 등 위험 회피 전략을 구사하기보다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 과장을 비롯한 기업은행 외환파생팀원이 4일 하루동안 받은 전화는 개인당 20~30통 가량.

지난해 3~5월 원.달러 환율이 1천원선 아래로 내려갔을 땐 하루 100통 가까운 전화를 받았다.

원.달러 환율의 급락 원인이나 향후 전망을 묻는 문의가 줄어들었다는 것.

나 과장은 "일부 기업들은 지난해 1천원선이 깨진 상황에서 달러 매도에 나서거나 선물환 매도 계약을 체결했다가 원.달러 환율이 1천60원 가까이 오르자 되레 손해를 보기도 했다"며 "일부 기업들은 급히 행동하기보다 느긋하게 반등 시점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초조불안형.."당장 팔아달라"외환은행 구길모 과장은 "보통 연말에 달러 매도 물량이 쏟아지고 연초가 되면 거래가 뜸해지지만 올해는 연초에도 달러 매도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구 과장은 "특히 지난해 말에도 전자.조선.자동차 등 대기업 뿐 아니라 중소기업들까지 달러에 대한 '팔자' 주문을 내면서 투매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달러 매도 집중 현상은 올해 원.달러 평균 환율이 900원대 후반에 머물 것이란 환율 보고서가 집중적으로 나오면서 시작됐다.

구 과장은 "원.달러 환율의 추가 약세를 예상하는 기업들이 달러를 내놓고 이에 따라 시장이 급락하면서 다시 손절매 물량이 나오는 식의 악순환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여유만만형.."이미 다 팔았다"동작이 빠른 기업들은 이미 지난해 말 달러를 모두 팔아버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다.

우리은행 이정욱 과장은 "수출업체들은 연말에 남아있던 달러를 청산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통상 연초엔 달러 보유량이 그리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올 들어 원.달러 환율이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국내 시장이라기보다 역외매도 물량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기업들은 앞으로 수출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이익이 줄거나 손해를 보더라도 물건을 팔 것인지, 아예 계약 자체를 포기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있다"고 말했다.

◇ 유비무환형.."선물환 매도했다"국민은행 노상칠 과장은 "2004년과 2005년 환율이 급락하는 등 변동성이 증폭되면서 기업들도 원.달러 환율 1천원선 붕괴가 그리 낯설지 않다"며 "최근엔 중소기업들도 상당수 선물환 매도 계약을 체결해 놓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노 과장은 특히 "과거엔 외환에 대한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 대기업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최근엔 중견기업 및 중소기업도 이같은 대책을 일반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 과장은 "시장 급락에 비해 기업들의 반응은 차분한 편"이라고 말했다.

spee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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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4 23:31 2006/01/04 23:31

경마의 역사 속으로
번역·정리 | 장유진 이미지개선팀 대리

1904. 11. 12 : 뉴질랜드 ‘리카턴(Riccarton)’ 경마장에서 벌어진 경주에서 당시 4세마 ‘머신 건(Machine Gun)’이 당시로는 최고의 부담중량으로 여겨졌던 159파운드(약 71.6㎏)를 짊어지고 1,000m를 58초에 주파하는 괴력을 선보이며 우승을 차지했다.
1923. 11. 3 : 샌프란시스코 외곽에 위치한 ‘탠포란(Tanforan)’ 경마장이 연간 25일 동안만 베팅을 허용하는 조건으로 개장되었다.
1927. 11. 4 : ‘핌리코 퓨처리티(the Pimlico Futurity)’ 경주에 출전한 ‘바토(Bateau)’는 3착으로 결승선에 도착했으나 ‘얼 산데(Earl Sande)’ 기수가 1928년 켄터키더비 우승을 차지한 ‘레이 카운트(Reigh Count)’를 레일에 들이받게 한 혐의로 실격되었다. 산데 기수는 이러한 행동으로 인해 기승정지 처분을 받았다.
1938. 11. 1 : 4만여 명의 경마팬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지 울프(George Woolf)’ 기수와 호흡을 맞춘 ‘시비스킷(Seabiscuit)’이 확실히 우세가 점쳐지던 ‘워 어드미럴(War Admira)’을 물리치고 우승마가 상금을 모두 차지하는 매치 경주에서 1만5,000달러의 상금을 거머쥐었다.
1944. 11. 1 :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휴장기에 돌입했던 ‘할리우드 파크(Hollywood Park)’가 재개장하며 3년 만에 경마가 시행되었다.
1946. 11. 6 : 아르헨티나에서 공수된 세 마리의 암말이 ‘뉴악 공항(Newark Airport)’에 도착했다. 비행거리 8,250마일은 당시 경주마가 공수된 최장거리였다.
1946. 11. 26 : 미국적 항공사 AAL이 아일랜드 에이레 샤논 공항에서 6마리의 서러브레드를 싣고 11월 27일 뉴저지주 뉴악공항에 도착했으며, 이 비행은 서러브레드 경주마를 싣고 대서양을 횡단한 처녀비행으로 기록되었다.
1947. 11. 1 : ‘맨 오워’가 켄터키주 렉싱턴에 위치한 ‘파어웨이 목장(Faraway Farm)’에서 숨을 거두었다. ‘맨 오워’는 11월 4일 장례식이 거행될 때까지 3일 동안 안치되었다.
1951. 11. 16 : 1만5,000달러의 상금을 우승자가 독차지하는 형태의 ‘핌리코 스페셜’ 경주가 미국 전역으로 중계되었으며, 이 경주에서는 ‘C. T. 첸리스 브라이언G(C.T. Chenery’s Bryan G)’가 우승을 차지했다.
1957. 11. 9 : ‘휘틀리 사단(Wheatley Stable)’의 ‘볼드 룰러(Bold Ruler)’가 3마리의 경주마가 출전한 ‘트렌턴 핸디캡(Trenton Handicap)’경주에서 ‘에디 아카로(Eddie Arcaro)’ 기수와 호흡을 맞추며 우승을 차지했다. ‘볼드 룰러’는 시종일관 ‘갤런트 맨(Gallant Man)’과 ‘라운드 테이블(Round Table)’을 압도했으며, 이후 ‘볼드 룰러’는 연도 대표마로 선정되었다.
1961. 11. 18 : 에디 아카로 기수가 마지막으로 출전한 핌리코 퓨처리티 경주에서 ‘엔디미온(Endymion)’과 호흡을 맞추며 3착을 차지했다. 이 경주를 끝으로 은퇴한 ‘에디 아카로’는 통산 3,003만9,543달러의 상금을 벌어들이며 당시로는 최다상금 수득기수의 타이틀을 보유했다.
1968. 11. 2 : ‘존 뉴르드(John Nerud)’ 조교사의 ‘닥터 페이저(Dr. Fager)’가 애퀴덕트 경마장에서 시행된 경주거리 1,400m의 ‘보스버그 핸디캡’에서 139파운드(약 62.6㎏)를 짊어지고 6마신 차로 가볍게 우승을 차지했다. ‘닥터 페이저’는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여 같은해 ‘최우수 핸디캡경주마’ ‘단거리 경주 최우수마’ ‘잔디주로 최우수마’로 각각 선정되었다.
1972. 11. 9 : ‘세크리테리엇(Secretariat)’이 2세마 마지막 경주로 시행된 ‘가든 스테이트 스테이크스’ 출전을 준비하며 1,400m를 1분25초8에 주파하는 뛰어난 스피드를 과시했다.
1972. 11. 18 : ‘세크리테리엇’이 ‘가든 스테이트 스테이크스’ 경주에서 3½마신 차로 우승을 차지하며, 17만9,199달러의 상금을 받았다. 이 금액은 당시 ‘세크리테리엇’이 한 경주에서 벌어들인 상금 중 최고 금액으로 기록되었다.
1973. 11. 6 : ‘세크리테리엇’이 ‘클레이본 목장(Claiborne Farm)’에서 씨수말 생활에 앞서 마지막으로 3만3,000여 명의 경마팬이 지켜보는 가운데 애퀴덕트 경마장에서 고별행진을 펼쳤다. 이후 ‘세크리테리엇’은 1973년 11월 11일 클레이본 목장으로 이동하여 씨수말 생활을 시작했다.
1978. 11. 11 : 1977년 삼관경주 우승마 ‘시애틀 슬루(Seattle Slew)’가 자신의 마지막 경주로 애퀴덕트 경마장에서 벌어진 ‘스터비샌트 핸디캡(Stuyvesant Handicap)’ 경주에서 3¼마신 차로 우승을 차지하며 경주마 생활을 마감했다.
1979. 11. 18 : 애퀴덕트 경마장에서 벌어진 제8경주에 출전한 ‘라핏 핀카이’ 기수가 ‘글래디올러스(Gladiolus)’와 호흡을 맞추며 통산 4,000승을 차지했다.
1982. 11. 28 : 5차례의 경주에서 통산 46½마신 차이로 우승을 차지한 ‘랜달루스(Landaluce)’가 바이러스 감염으로 사망했다. ‘랜달루스’는 자신이 데뷔하여 두 차례 승리를 거둔 할리우드파크 주로 내 공원에 안치되었다. ‘웨인 루카스(Wayne Lukas)’ 조교사가 훈련을 담당했던 ‘랜달루스’는 후에 ‘프린세스 루니’를 누르고 1982년 2세 연도대표 암말로 선정되었다.
1984. 11. 10 : 제1회 브리더스컵 경주가 할리우드파크 경마장에서 개최되었다. 브리더스컵 경주의 하이라이트 ‘클래식’경주에서는 ‘와일드 어게인(Wild Again)’ ‘게이트 댄서(Gate Dancer)’ ‘슬루 오 골드(Slew o’Gold)’가 경합을 벌였으며, 이중 ‘슬루 오 골드’는 발굽 부상에도 불구하고 우승 후보마로 인기를 모았다. 결승선을 향한 치열한 경합이 펼쳐지면서 세 마리 말은 서로 충돌했으며 ‘와일드 어게인’이 우승을 차지했다. ‘게이트 댄서’는 2착으로 결승선에 도착했지만 ‘슬루 오 골드’의 주행을 방해하여 3착으로 강착되는 불운을 겪었다.
1985. 11. 2 : 웨인 루카스 조교사가 생애 처음으로 브리더스컵 우승을 차지했다. 웨인 루카스는 브리더스컵 주버나일 필리 경주에 ‘트와일라이트 리지(Twilight Ridge)’를 출전시켜 우승을 차지했으며, 이밖에도 ‘패밀리 스타일(Family Style)’과 ‘아위해빙퍼니엣(Arewehavingfunyet)’을 출전시켜 2착과 8착을 차지했다.
1988. 11. 5 : 처칠다운스 경마장에서 벌어진 ‘브리더스컵 마일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한 ‘미스크(Miesque)’는 2년 연속 브리더스컵 경주에서 우승한 최초의 경주마로 기록되었다.
1988. 11. 5 : ‘줄리 크론(Julie Krone)’ 기수가 여성 기수로서는 처음으로 브리더스컵 경주에 출전했으며, ‘주버나일 필리(the Juvenile Fillies)’ 경주에서 ‘다비 셔플(Darby Shuffle)’과 호흡을 맞추며 2착을 차지했다.
1988. 11. 5 : ‘옥덴 핍스(Ogden Phipps)’의 4세 암말 ‘퍼스널 인사인(Personal Ensign)’이 ‘처칠다운스(Churchill Downs)’경마장에서 벌어진 브리더스컵 디스태프 경주에서 ‘위닝 칼라스’를 코차로 누르며 우승을 차지한 후 통산 13전 13승의 기록으로 경주마 생활을 마감했다. ‘퍼스널 인사인’은 1908년 ‘콜린’ 이후 처음으로 빅 이벤트 경주에서 무패의 성적으로 은퇴하는 경주마로 기록되었다.
1988. 11. 9 : 할리우드 파크에서 펼쳐진 제7경주에서 ‘폰 비드’와 호흡을 맞춰 우승을 차지한 ‘라핏 핀카이’ 기수가 빌 슈메이커 기수에 이어 경마 역사상 두 번째로 7,000승 고지에 올랐다.
1989. 11. 30 : ‘켄트 데조뮤(Kent Desormeaux)’ 기수가 로렐 경마장에서 우승을 차지해 한 시즌에 547승을 올리는 대기록을 수립하며, ‘크리스 매카룬’ 기수가 15년 동안 보유했던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을 경신했다.
1990. 11. 15 : 미국 경마계의 최우수 씨수말로 삼관경주에서 ‘어펌드(Affirmed)’와 맞붙어 세 경주에서 모두 2착에 그쳤던 불운의 ‘알리다(Alydar)’가 칼루멧 목장에서 안락사 처리되었다.
1990, 11. 22 : 처칠다운스에서 벌어진 ‘폴스 시티 핸디캡(Falls City Handicap)’ 경주에서 ‘스크린 프로스펙트(Screen Prospect)’와 호흡을 맞춰 출전한 ‘팻 데이(Pat Day)’ 기수가 통산 5,000승을 차지했다. 팻 데이는 통산 5,000승 고지에 올라선 12번째 기수로 기록되었다.
1991. 11. 2 : ‘댄스 스마트리(Dance Smartly)’가 브리더스컵 디스태프 경주에서 우승하며 통산 308만3,456달러의 상금을 벌어들여 ‘레이디스 시크릿(Lady’s Secret)’이 갖고 있던 기록을 경신하며 서러브레드 암말 경주마로는 최다상금 수득마로 기록되었다.
1991. 11. 2 : 각기 다른 7종류의 브리더스컵 경주를 연결해 베팅하는 ‘브리더스컵 픽 7(The Breeders’ Cup Pick 7)’이 처음 도입되었다. 각각의 브리더스컵 경주에 걸린 베팅금액을 제하고 ‘픽 7’에만 걸린 베팅액이 852만6,985달러에 달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1992. 11. 26 : ‘샌디 호리(Sandy Hawley)’ 기수가 북미 기수로는 9번째로 통산 6,000승 고지에 올라섰다. ‘샌디 호리’ 기수는 그린우드 경마장에서 치러진 제2경주에서 ‘서머 코맨더(Summer Commander)’와 호흡을 맞춰 대기록 달성에 성공했다.
1993. 11. 6 : 브리더스컵 경주가 베팅을 목적으로는 처음으로 영국에 중계되었다.
1993. 11. 6 : ‘루어(Lure)’가 브리더스컵 마일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브리더스컵 시행 이후 4번째로 연속 우승을 차지한 경주마로 기록되었다. 이 당시 브리더스컵을 2연패한 경주마는 ‘미스크’를 비롯하여 ‘바야코아(아르헨티나)’와 ‘몰리 스트리트(아일랜드)’뿐이었다. 이중 ‘몰리 스트리트’는 장애물 경주에서 두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1995. 11. 15 : 애퀴덕트 경마장에서 벌어진 제4경주에서 ‘더스틴스 드리머(Dustin’s Dreamer)’에 기승한 ‘줄리 크론’ 기수가 우승을 차지하며 통산 3,000승 고지에 올라섰다.
1995. 11. 19 : 골든 게이트 필드 경마장에서 ‘로열 부티크’와 호흡을 맞춰 우승을 차지하며 당해연도 400승을 기록한 ‘러셀 베이즈(Russell Baze)’ 기수는 경마 역사상 처음으로 4년 연속 400승을 올린 기수로 기록되었다.
1997. 11. 8 : ‘패이보릿 트릭(Favorite Trick)’이 브리더스컵 주버나일 경주에서 우승하며 2세마 시절을 8전 8승의 기록으로 마무리했다. 이후 1997년 연도 대표마로 선정되었다.
1997.11. 14 : 삼관경주를 두 차례나 석권한 유일한 기수로 1958년 영예의 전당에 헌액된 ‘에디 아카로’ 기수가 마이애미주 자택에서 81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1997.11. 25 : 처칠다운스 경마장과 ‘메릴랜드 자키클럽(Maryland Jockey Club)’은 ‘켄터키 더비(the Kentucky Derby)’와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the Preakness Stakes)’ 마번 추첨의 새로운 방법을 발표했다. 전통적인 추첨방식은 제비뽑기 순서를 정하는 데 사용하고, 출전마의 마주·조교사나 대리인이 자신들이 선호하는 마번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1997. 11. 30 : ‘에드거 프라도(Edgar Prado)’ 기수가 경마 역사상 4번째로 한 시즌 500승을 달성한 기수로 기록되었다.
1998. 11. 4 : ‘마이클 로랜드’ 기수는 ‘티슬다운’ 경마장에서 치러진 경주에서 ‘벨스 글레디에이터’와 호흡을 맞춰 우승하며 북미 역사상 3,000승 고지를 정복한 88번째 기수로 기록되었다.
1998. 11. 7 : 브리더스컵 클래식 경주에 출전한 ‘스킵 어웨이(Skip Away)’가 ‘오섬 어게인 (Awesome Again)’에 이어 6착으로 결승선에 도착하며 통산 수득상금 최고마의 영예를 획득하는 데 실패했다. ‘스킵 어웨이’는 이 경주 후에 은퇴했으며, 이때까지 961만6,360달러의 상금을 벌어들여 999만9,815달러를 벌어들인 ‘시가(Cigar)’에 이어 역대 2위의 자리를 차지했다.
1998. 11. 7 : 애퀴덕트 경마장에서 치러진 경주에서 ‘벨스 어필‘과 호흡을 맞춰 출전한 ‘리처드 미글리오(Richard Migliore)’ 기수가 통산 3,000승을 차지했다.
1998. 11. 9 : 킨랜드 11월 경매에서 씨암말 ‘코베야(Korveya)’가 씨암말로는 세계 최고가인 700만달러에 ‘제이에프 목장(Jayeff B Stable)’에 낙찰되었다. 1985년 ‘미스 오셔나(Miss Oceana)’도 700만달러에 낙찰되었다.
2000. 11. 4 : 처칠다운스 경마장에서 벌어진 브리더스컵 10개 경주에 당시로는 최고 기록인 1억859만8,136달러의 마권이 팔려나갔다.
2000. 11. 8 : 뉴욕 경주협회가 타 지역 경마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컬러 안장대 사용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2001. 11. 2 : 전미 서러브레드 경주협회와 브리더스컵社는 2001년 10월 27일 벨몬트 파크에서 시행된 브리더스컵 서러브레드 세계 챔피언십 경주에서 NTRA자선기금에 약 2,500만달러가 모금되었음을 발표했다. 또 총 500만달러 이상의 성금이 국제 경마계에서 모금되어 영웅 기금에 기탁되었다. 한편 9·11테러와 관련하여 경마계가 기부한 총성금은 1,000만달러를 넘어섰다.
2001. 11. 26 : 1930년대 서러브레드 챔피언 경주마와 이를 둘러싼 사람들이 역경에서 성공하는 과정을 그린 ‘로라 힐렌브랜드(Laura Hillenbrand)’의 베스트셀러 ‘시비스킷(Seabiscuit)’이 영국의 권위 있는 ‘윌리엄 힐 스포츠 도서상(William Hill Sports Book of the Year Award)’을 수상했다.
2006/01/04 02:20 2006/01/04 02:20

조교 효과의 개체차
글 | 김병선 핸디캡 부장

경주마의 조교방법에 어느 정도 원칙이 있다. 하지만 같은 절차와 방법으로 조교를 시켜도 그 결과는 말마다 제각기 다르게 나오기 마련이다. 어떤 조교사는 말들의 승률을 높여 많은 상금을 벌어들이는 반면, 어떤 조교사는 열심히 하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기도 한다. 이러한 차이는 말들의 제각기 다른 여건과 특성을 얼마나 잘 살려 그 말에게 알맞은 사양관리와 조교방법을 적용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말들이 가진 개별적 특성과 상황을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즉, 유전적 잠재능력, 연령, 성별, 환경, 정서, 그리고 동기유발 여부 등으로 구분된다.

유전적 잠재능력
‘경마는 혈통의 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잘 달린 말의 자손이 역시 또 잘 달릴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유전적으로 잘 달릴 수 있는 잠재적 능력이 후대에 전달되는 셈이다. 그 잠재적 능력이란 단지 빠른 스피드로 달릴 수 있는 체격조건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신체적 조건은 기본이고, 다른 말에게 지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와 힘든 훈련을 잘 인내하며 가르치는 것을 수용할 수 있는 정신적인 능력까지도 포함된다.

사람들의 성격이 제각기 다르듯이 말들도 각각 매우 다양한 성격이나 습관을 가지고 있다. 시키는 대로 잘 따라 하는 말도 있지만, 사사건건 거부를 습관처럼 하는 말도 있다. 잘못했을 때 야단을 치면 곧바로 시정하는 말이 있는가 하면, 자존심이 강하여 더욱 빗나가는 말도 있다. 고강도의 훈련을 묵묵히 견뎌내는 말이 있는가 하면, 요령을 부리며 훈련을 회피하는 말도 있다. 그러므로 조교자는 말 각자의 심리를 파악하여 그에 알맞게 따뜻한 격려와 포상, 엄격한 제재와 시기적절한 회유 등을 잘 조합하여 훈련시켜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신체적 조건도 마찬가지이다. 말에 따라 최고의 스피드를 낼 수 있는 여건이 각기 다르다. 어떤 말은 순발력이 있어 초반에 빠르게 달리다가 쉽게 지치는가 하면, 스타트는 느리지만 탄력이 늦게 붙어 장거리에서 스피드가 빨라지는 말도 있다. 말마다 최고의 스피드를 낼 수 있는 자신의 적정한 체중도 다르다. 그러므로 말의 적정 경주거리를 찾아내어 그것에 알맞은 훈련을 시키는 것과 최고의 컨디션을 발현하도록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연령
사람도 나이 들어 공부하려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듯이, 말도 어린 시절에 순치와 조교를 시켜야 그 효과가 빠르게 나타난다. 이는 나이가 어릴수록 호기심이 강하고, 그만큼 사물과 사건에 대한 관심도 많기 때문일 것이다. 또 어린 동물일수록 학습능력을 높이는 데 필요한 어떤 생리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조기에 교육을 시켜야 말의 잠재적인 능력을 최대한 끌어 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태어나자마자 실시하는 각인 순치는 조기교육의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너무 무리하게 힘든 조교를 진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골격의 성장과 강도에 부합되게 조교강도를 증진시켜 나아가야 한다. 무리하다 보면 아직 덜 여문 관절이나 힘줄에 부상을 입힐 수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주로에 갓 데뷔한 2세 신마들에게 이런 부상이 많이 생긴다. 육체적인 부상 말고도 심리적인 손상을 입힐 수가 있다. 무리한 조교는 어린 말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말은 어떤 일로 인해 놀라거나 고통을 받은 경험이 있으면, 다음에는 그 일을 회피하게 된다. 결국 조교에 흥미를 잃어 좋은 성과를 얻어 낼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조기에 순치 조교를 하되 말의 적응도에 따라 점진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한편 나이 먹은 말이라도 나쁜 버릇을 고치거나 새롭게 조교를 시켜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에는 관리하는 환경을 바꾸어주거나 말을 다른 마사 지역으로 이동시킨 후 교육을 시키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성별
일반적으로 경주능력은 암말보다 수말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경주에 출전할 때 싣고 달려야 하는 부담중량도 수말에게 더 무겁게 부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어린 나이, 즉 2∼3세 때에는 암말이 더 잘 달리는 경우가 많다. 암말이 수말보다 빨리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빨리 성장한 만큼 노화시기도 빨라져 5세 이상이 되면 곧바로 하향세로 접어드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수말은 이와 달리 서서히 능력이 신장되며, 6∼7세가 되어도 건재를 과시하는 수말들이 종종 있다.

컨디션 유지와 능력의 기복에도 차이가 있다. 암말은 컨디션과 능력의 변화가 수말에 비해 심한 편이다. 잘 달리던 말이 형편없는 경주 결과를 내기도 한다. 이는 암말의 성호르몬 분비 변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달리 수말은 사춘기만 지나면 비교적 일정한 성호르몬을 유지하기 때문에 그다지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부담중량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암말은 부담중량이 약간만 증가해도 제대로 능력발휘를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만큼 견딜 수 있는 한계의 폭이 좁다는 것이다.

환경
말은 선천적으로 넓고 푸른 초원을 좋아한다. 그러나 현대 경주마들은 대부분 일정 공간에 ‘포획’되어 관리된다. 이렇게 잠재적으로 갈망하는 환경과 현실적으로 처해 있는 답답한 환경의 괴리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말들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런 심정을 조금이라도 알아주는 마주는 경주에 출전한 후 쉬는 기간에는 말을 목장으로 보내 초원에 방목시켜 주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피로가 빨리 풀리고 원기가 재충전되어 다음 경주에 출전해서도 좋은 성적을 올리게 된다. 다리를 다친 말도 마냥 마방에만 넣어두는 것보다 방목장 패독에 풀어놓고 따뜻한 햇볕을 쬐게 하면 훨씬 빨리 회복된다.

마사나 마방의 환경도 관련이 크다. 비좁은 마방보다는 넓은 마방이 말에게 덜 스트레스를 준다. 또 마방이 일렬로 배치된 것보다 가운데 통로를 두고 두 줄로 배치되어 말들이 서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한 구조가 스트레스를 덜 준다. 말들은 서로 어울려 사는 군집성의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열 구조의 마사 배치는 전염병이나 말들의 나쁜 버릇이 다른 말에게 빨리 퍼지는 단점도 있다. 일관된 훈련조건이나 환경도 중요하다. 기승하는 사람이 수시로 바뀌거나 조교 일정이 일관되지 않고 불규칙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가 없다. 스타트, 초반 자리 잡기, 중반 힘의 안배, 막판 전력질주 등 일련의 과정에서 훈련 방법도 일관되어야 한다. 기승자의 지시나 명령의 방식에 변화가 생기면 말은 몹시 혼동되어 제대로 능력발휘를 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말의 영양과 건강상태이다.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말, 특히 단백질 공급이 부족한 말은 학습효과가 저조하다. 이는 아마도 말 근육의 주성분이 단백질이며, 두뇌의 성장발달에도 단백질 성분이 필수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질병 중이거나 상처를 입은 말은 확실히 학습능력이 감퇴된다. 그러므로 어디가 아픈 말을 훈련시키는 것은 말의 능력을 오히려 감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위생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게 안정된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서
말을 잠시 세워두고 보면 그 말이 정서적으로 안정된 말인지 아닌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말은 귀 또는 눈동자의 움직임이 예민하고 몸놀림도 부산하다. 일반적으로 어린 말일수록 정서가 불안하고 나이가 들면 좀 나아진다. 그러나 더러는 어떤 부모의 자마인지, 어떤 환경에서 성장하였는지에 따라 차이가 많다. 유전적인 문제야 어쩔 수 없지만, 성장 과정에서 자주 놀라거나 심한 고통을 경험한 말일수록 정서가 불안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온화한 환경에서 부드러운 관리가 필요하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말은 조교자를 잘 신뢰하지 않으며, 조교자의 교육 내용에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다룰 때는 일단 부드럽게 다뤄 말이 놀라거나 화를 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눈가리개 등 적절한 장구를 착용시켜 말의 관심이 산만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동기유발
말의 학습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 중에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동기유발이다. 한데 사람도 그러하듯 말 역시 징계나 체벌보다는 칭찬과 포상이 동기유발에 효과적이다. 훈련은 말에게도 즐겁기보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런 말에게 사람의 의도대로 계획된 조교량을 완수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억지로 훈련을 시키다 보면 결국 반항을 하고, 기승자를 떨어뜨리고, 자신은 자유의 몸으로 마음껏 뛰어 놀다 마방으로 돌아간다. 그 날의 조교는 실패작이다.

그러므로 말이 거부하기 전에 달래면서 조심스레 조교를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조교 진행 단계별로 잘 적응하고 따라 줄 때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칭찬해 주고 목을 가볍게 토닥여 주면 말은 자신을 칭찬해 주는 표시로 알고 즐거워한다. 이런 칭찬의 표시에 인색한 조교자는 말을 잘 다루지 못한다.

그날의 계획된 훈련을 모두 마치고 마방으로 돌아왔을 때는 시원하게 샤워를 시켜주고 달콤한 각설탕이나 홍당무를 입에 물려준다. 말도 시키는 일을 잘해 냈을 때 칭찬받고 달콤한 대가가 돌아온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평소 이런 동기유발을 잘하는 조교자의 말과 반대로 체벌과 호통을 습관처럼 해대는 조교자의 말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상으로 조교효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몇 가지 요소들을 살펴보았다. 훌륭한 조교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이러한 각각의 요소들을 조교사가 올바로 파악하고, 그에 맞게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모든 말에게 적용될 공통된 조교법은 없다. 최선의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말의 개성과 처해진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며 훈련을 시켜야 한다는 것뿐이다.
2006/01/04 02:10 2006/01/04 02:10

늙지 않는 경주마
John Henry




아무도 쳐다보지 않던 망아지
John Henry를 소개한 글에는 ‘No One wanted’란 수식어가 항상 첫머리에 등장한다.

필자가 지난 10월 켄터키 호스 파크의 챔피언 홀 마지막 공연시간에 맞추어 도착했을 때 처음 등장한 Cigar가 한 차례 거드름을 피우고 퇴장한 후 John Henry가 나왔다.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가 시작됐다. “신사 숙녀 여러분, 아무도 쳐다보지 않던 망아지가 660만달러나 벌어들였습니다. 망아지 시절 괴이한 행동들이 26세가 된 지금도 계속됩니다. 새로운 관리사가 부임해 오면 몇번씩 물어뜯거나 차거나 하면서 호된 신고식을 치르게 합니다. 그리고 그는 피자와 크림과 설탕을 곁들인 커피를 즐겨 마십니다….”

1975년 3월 9일 켄터키 Golden Chance Farm에서 태어난 그는 작고 볼품없었으며, 특히 무릎이 뒤로 휘어져(Back at the knee) 경주마로서는 최악의 마격 상태였다. 게다가 마방에서 조금만 심사가 뒤틀리면 물통이든 밥통이든 닥치는 대로 차고 부수고, 관리인의 접근조차 허용하지 않는 고약한 성질 때문에 제일 먼저 팔아 치울 망아지로 점찍혔다.

혈통표에서도 그의 악조건은 계속된다. 부마 Ole Bob Bowers(1963)는 Princequillo의 2대손으로 500달러의 교배료가 책정되어 있었으나 켄터키의 어떤 씨암말도 그를 상대하려 하지 않았으며(John Henry의 고약한 성격은 부마로부터 한치의 오차도 없이 물려받음), 다만 Golden Chance Farm의 저능력 씨암말의 ‘청소용’, 야구에서의 패전 처리 전담이 그의 역할이었다. John Henry가 태어난 이듬해 그는 900달러에 시골로 팔려갔다.

모마 Once Double(1967)의 부마 Double Jay는 John Henry에게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B.M.S에서 6년간이나 수위를 유지한 위대한 Domin의 후손이었으나 역시 모마의 1대모, 2대모, 3대모를 통틀어 단 한두의 stakes경주 승리마를 배출하지 못했다. 모마 역시 John Henry가 1세가 되던 해 5,000달러에 매각되었으며, 나중에 John Henry가 스타가 되었을 때 몸값이 55만달러로 치솟기도 했으나 변변한 자식 하나 생산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계속되는 바겐세일
1세가 된 John Henry가 키니랜드 1월 세일에 처음 내보내졌을 때 그의 두번째 주인이 된 Jean Gallaway는 부마 Ole Bob Bowers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이 단지 그의 모마의 부마가 Double Jay란 사실에 5,000달러 정도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세일 진행자가 최초 호가 1,000달러에서 1,100달러로 올렸을 때 Gallaway 이외에는 그 누구도 호응하지 않았다. 싱겁게 주인이 바뀌었다. 그때 경매장에 들어선 John Henry의 얼굴은 피투성이였다. 닥치는 대로 벽을 들이받아 ‘나는 이런 놈이오’ 하고 경마계에 자신의 인상을 남긴 것이다.

Gallaway는 구입한 망아지를 목장에 풀어 놓고 며칠간 살펴보았다. 그는 ‘아, 이 망아지는 도저히 경주마가 될 수 없겠구나’ 하고 탄식했다. 안장 한번 제대로 올려 놓을 수 없었다. 그럭저럭 1년이 지난 후 다시 키니랜드 1월 세일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고, John Henry는 2,200달러에 팔렸다. Gallaway는 이윤이 100%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새 주인은 그를 거세하고 기승 순치를 조금씩 해 나갔다. 몇달 후 다시 주인이 바뀌었다. 다른 2세마 한 마리를 끼워서 1,100달러에 겨우 처분되었다. 마방에서 그를 붙잡는데 10분, 조금 떨어진 트랙까지 데려가는 데 45분이 걸렸으니 새 주인이 다시 정해진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이렇게 바겐세일은 계속되었으며 새 주인은 또 다른 주인을 찾아 나섰다.

괴짜 마주 Sam Rubin
Rubin은 뉴욕 빈민가 출신이었다. 그가 John Henry의 마지막 주인이 되었을 때의 나이는 63세. 경주마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마권 구입이 전부였다.

최고의 악벽마와 경마 투기꾼 출신이 만났다는 사실은 어쩌면 재미있는 경주마 이야기 전개와는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사실이 경마팬들에게 호기심을 자아내게 하고 더 큰 영웅으로 자리매김케 했을지도 모른다.

뉴욕 빈민가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던 Rubin은 어느날 경마 베팅으로 4,000달러라는 거금을 벌어 세탁소를 사들여 운영했으며, John Henry를 구입할 당시에는 제법 큰 자전거포 주인 아저씨였다.

베팅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어 모은 돈 2만5,000달러로 경주마를 구입하기로 작정했다. 경마와 관련이 있는 친구를 찾아가 경주마 구입을 부탁했는데, 이것이 John Henry와 인연이 닿은 것이다. 마권밖에 모르는 사람에게 악벽마를 처분하기가 얼마나 쉬웠을까?

어느 친구가 Rubin에게 물었다. “자네 경주마를 구입했다면서, 어떤 말이야?”

Rubin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조교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교사, 내가 구입한 말이 무슨 색깔입니까?” John Henry가 Rubin의 이름으로 첫 경주에 출전했을 때 다시 조교사에게 전화했다. 어느 말에 베팅하면 되겠느냐고. 그리고 그는 단번에 10만달러를 벌었다.

늙지 않는 경주마
John Henry는 어펌드와 알리다와 같은 해 태어났다. 그들이 3세가 되던 해, 어펌드와 알리다가 최고의 경주마로서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던 그 순간 John Henry는 2만5,000달러 클레임 경주에 출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음해 경주생활을 마감했지만, John Henry는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모래(Dirt)에서 잔디주로로 전환한 후 G1경주를 16번이나 이겼다. 이런 불가사의는 9세인 1984년까지 계속되었다.

장수한 경주마로 그는 가끔 60년대의 Kelso와 70년대의 Forego와 비교된다. Kelso는 5년간 연속해서 연도 대표마가 되었지만 8세에 이르러 사양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9세 때 단 1회 출주해 4착에 머물며 은퇴했다. Forego 또한 3년 연속 연도 대표마로 선정되었지만 8세 때 2차례 경주 후 은퇴했다. 그러나 John Henry는 9세 때 9전 6승(마지막 4경주 연속 승리, G1경주 3회 우승)으로 Slewo’Gold를 물리치고 연도 대표마에 등극했다. 이는 최고령 연도 대표마 기록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이 그가 왜 강한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우선 15핸드 정도의 작은 체고였으나 다른 말에 비해 다리의 길이가 1인치 정도 더 길었고, 심장의 크기도 평균치보다 25% 무거웠으며, 걸음걸이의 중심 이동도 효율적이었다. 모마의 부마인 Double Jay로부터 건장함과 파워를 물려받은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기 마음대로 해야 식성이 풀리는 기질을 잘 살려 항상 자신감에 충만했다는 점이 그의 최대 장점이었다.

3세 가을 어떤 야간 경주에서 출발 후 갑자기 정전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잠시 후 불이 켜진 후 주로의 상황은 정말 가관이었다. 기수 3명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2두는 경마장의 허술한 벽을 뚫고 줄행랑쳤으며, 1두는 수로에 처박혔고, 나머지는 마방 쪽으로 허겁지겁 도망치고 있었다. 그러나 John Henry는 기수를 태우고 주로 한가운데에 늠름하게 서 있었다.

Japan Cup과 Breeder’s Cup
John Henry는 멀리 일본까지 원정길에 올랐지만, Breeder’s Cup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사업상 알게 된 일본 친구들에게 John Henry를 자랑하기 위해 주위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7세 때인 1982년 Japan Cup에 무리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Japan Cup경주 15일 전에 1개 경주를 치르고 다음날 바로 비행기에 올랐다. 25시간 동안의 장거리 여행으로 일본에 도착했을 때 그는 피로와 감기몸살로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13착의 치욕은 Rubin이 자초한 결과였다. 한편 Breeder’s Cup은 부마 Ole Bob Bowers가 그의 자식들의 B.C경주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아 출주를 위해서는 40만달러의 출주료를 지불해야 했다. B.C Turf경주 우승상금 중 마주 몫 60만달러와 비교한 결과, 불참은 사업가인 Rubin의 입장에서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다.

마지막 주인 Kentucky Horse Park
John Henry는 1977년부터 1984년까지 8년간 83전 39승으로 659만달러를 수득했다. 부문별 챔피언인 Eclipse상을 7회나 수상했고, 6세와 9세 때 연도 대표마에 선정되었다. 1981년 이후 수득상금은 당시 Spectacular Bid의 세계 최고 수득상금 278만1,608달러를 경신하고 이길 때마다 최고 기록을 수립했다. ‘People’지에 의해 1984년 ‘기인 25인’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10세 때인 1985년 봄 조교 중 오른쪽 앞다리 건 고장으로 은퇴를 선언하고 Horse Park로 향하게 된다.

이듬해 11세 때 재기를 시도하여 왕년의 경주능력을 되찾은 듯했으나 앞다리 구절 고장으로 그 꿈은 아쉽게도 사라져 버렸다. 그 누구도 그의 고령이 재기의 방해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Cigar와 함께 미국의 희망,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는 것이다.


글 / 김종식 푸른목장 대표
2006/01/04 01:54 2006/01/04 01:54

20세기 최고 경주마
Secretariat ②





루신 조교사와 플로리다로
1971년 가을 루신 조교사는 메도 목장을 방문하여 1세가 된 Secretariat와 처음 만난 순간 조교사 은퇴 계획을 취소하고 6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게 된다(메도 목장에서 Secretariat보다 1년 먼저 태어난 Riva Ridge는 켄터키더비와 벨몬트스테이크에서 이겼으나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에서 진흙탕의 주로를 견디지 못해 4착에 머물러 삼관마 달성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Secretariat와 같이 메도 목장과 루신 조교사에게 최고의 명예를 선물하게 된다).

유명 조교사의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그 속에는 항상 그들만의 독특한 방법들이 숨어 있으며, 이는 루신 조교사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뒷부분 경주 설명에서도 다시 소개되겠지만 그는 기수에게 경주 작전을 지시할 때 말이 원하는 대로 달리게 했으며, 경주마의 의지와 상관없이 선행으로 혹은 추입으로 바꾸지 말 것을 고집했다.

2세가 되던 1972년 1월 조교를 위해 Secretariat는 루신과 함께 따뜻한 플로리다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원한 전담 관리사 Eddie Sweat를 만나(명기수 Ron Turcotte는 2번째 경주부터 합류하게 됨) 6개월간의 훈련이 시작되었다. 마침내 6월 어느날 아침 루신은 1,000m 주로에 그를 내세우고 스톱워치를 눌렀다. 57초6. 이제 됐다. 경주마 한 마리가 만들어졌다.

2세에 연도 대표마가 되다
7월 4일 데뷔전인 1,100m 경주에서 4착에 머문 데 대해 경마 전문지 Daily Racing Form은 이렇게 설명한다. “출발 직후 주로 내측으로 달리는 그에게 그 경주에서 꼴찌를 한 악벽마 Quebec이 레일 쪽으로 심하게 밀어붙였다. 간신히 위기를 벗어난 그는 결승 전방 400m까지 단독 꼴찌였으며 결승주로에서 대시를 감행했으나 승리마와 1과¼마신차로 4착에 머물렀다. 사고만 없었다면 승리는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2세마 경주성적 9전 7승, 2착 1회, 4착 1회 중 2착의 경우도 우승을 도난당했다. 10월 14일 챔피언 스테이크(1,600m)에서 발주 악벽으로 다른 말들보다 15마신 뒤떨어진 상태에서 경주가 시작되었다. 결승주로 전방까지 제일 후미에 처진 그는 마지막 코너를 돈 후 포효하기 시작했다. 당시 경마평론가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Secretariat가 톱기어에 들어간 순간, 앞서 가던 다른 말들은 경주 중 간식을 먹기 위해 잠깐 멈추었다”고 풍자돼 있다.

결승선 전방에서 식사 중인 Stop the Music(우리 씨수말 프트스톡턴의 2대부)을 획 하고 스쳐 1착으로 골인했다. 나중에 Stop the Music 마주도 판정이 공정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2세 경주를 마친 후 이클립스상 시상식에서 같은 목장 출신 Riva Ridge를 물리치고 2세 챔피언 겸 연도 대표마로 뽑혔다. 최고 생산목장, 최고 마주상은 물론이고 루신도 최고 조교사에 선정되었다.

씨수말로 팔린 희한한 경우
3세가 되던 1973년 2월 메도 목장은 세금을 내지 못해 비싼 경주마를 모두 처분해야 할 위기에 봉착했다. 이때도 어김없이 Seth Hancock이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그가 3세까지 경주를 계속하는 조건으로 신디케이트를 조직하게 된다. 미국, 영국, 아일랜드, 프랑스, 일본 등 5개국의 생산자들과 며칠간 전화통화한 후 1계좌당 19만달러씩 32계좌 608만달러(여기에다 Seth 자신의 공로지분 4계좌, 루신 조교사에 대한 선물 1계좌를 합쳐 37개 계좌)를 모았다. 이 금액은 1970년 영국 삼관마 Nijinsky 신디케이트 금액 540만달러를 초과한, 당시까지 최대 매매가였다.

2세 경주마가 끝난 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그가 25년 만에 삼관마에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돌발변수의 등장으로 예상이 빗나갈 경우 그 뒤의 사태는 아무도 예견할 수 없었던 만큼 지극히 이례적인 거래였다.

삼관마 경주
위대한 경주마의 탄생 뒤에는 반드시 그의 파트너가 있고, 한쪽이 처참히 몰락하면 다른쪽은 영웅이 된다. 마치 우리나라 신파극 줄거리처럼…. Secretariat의 상대마는 Sham이란 명마다. 삼관마 경주 전 Wood Memorial 경주에서 Secretariat는 3착, Sham은 2착이었다.

켄터키더비 당일, 여느 때처럼 오전에 컨디션을 조절한 후 점심식사를 마치고 약 3시간 동안 네 다리를 쭉 뻗고 오침을 즐겼다(그는 식사 때 머리를 밥통에 넣으면 바닥을 깨끗이 핥기 전까지는 고개를 들지 않았고, 아무리 큰 경주날이라도 만사를 제치고 낮잠을 즐겼다). 경주가 임박해서 주위에서는 Bold Ruler의 망아지이기 때문에 2,000m는 힘들다는 악성 루머가 퍼지고, 특히 가벼운 비출혈이 일어나 주위를 긴장시켰다. 이를 본 Sham의 조교사 산초(인상이 험해 멕시코 악당에 비유한 별명)가 루신에게 5,000달러 내기를 하자고 비위를 건드렸다. Secretariat는 2,000m 거리의 각 2펄롱을 25초2, 24초, 23초8, 23초4, 23초로 주파해 1분59초4의 코스 신기록으로 Sham을 따돌렸다. 경주 직후 루신이 우연히 Sham의 마방을 지나다 산초가 Sham의 코피를 닦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Secretariat는 경주 다음날에도 에너지가 소진되지 않아 기승상태로 주로를 몇 바퀴 돈 후에야 정상 상태로 돌아왔다.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에서도 낙승한 후 삼관마 등극의 마지막 관문에 섰다. 일반인들은 그를 전형적인 추입마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그게 아니다. 늦발주 악벽 때문에 그렇게 보였으며, 조교사는 그를 결코 추입마로 훈련시키지 않았다.

경주 전날 밤 전담관리사 Eddie Sweat는 애마 옆에서 잠깐 졸면서 꿈을 꾸었다. 평소와 다르게 출발부터 독주하기 시작했다. “안돼, 안돼, 멈춰!” 그렇게 고함치다 잠에서 깨어났다.

벨몬트 스테이크(2,400m)에 5두가 출주했고, 상대마는 역시 Sham이었다. 정말 출발부터 Secretariat는 선두에 섰다. Sham도 이를 악물고 뒤를 따랐다. 2두는 처음 800m를 46초2로 달렸다. 관중이 모두 일어섰다.

“저건 자살 행위이다.” 1600m를 통과한 기록은 1분34초2. - Sham은 7마신 처진 2위를 유지했으나 이미 탈진상태였다. 관리사 에디는 발을 동동구르며 소리쳤다. “안돼 멈춰.” 2,000m 통과기록 1분59초. 더비기록보다 빨랐다. 2위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결승선을 통과할 때 2위와 31마신 100m 착차. 종전기록을 2초6 앞당긴 세계 최고 기록(지금도 역시 최고 기록이다).

모든 사람들이 환호하는데, 딱 한 사람만이 가슴을 쓸어내리고 한숨을 토했다. Seth Hancock, 그는 이제 사기꾼을 면했구나 생각했고, 며칠 후 Sham의 부상과 은퇴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었다.

세기의 경주마 2두
Big Red(Secretariat의 애칭)와 Man O’War는 분명히 20세기 경마의 쌍두마차였다. 둘 중 누가 더 위대했느냐고 물을 때 그 대답을 다음과 같을 것이다.

“Man O’War는 신화다. 행크 에런이 홈런 수에서 베이브 루스를 아무리 앞질러도 그의 명성을 추월할 수는 없다. 권투 영웅 잭 램프시를 기억하는 올드맨에게 무하마드 알리는 도저히 비교 대상이 못된다. 또 이 시대 Big Red의 경주를 본 사람에게는 오직 그만이 영웅이고 우상이며 다른 말과 비교하기를 거부한다. 몇 세대를 초월한 영웅의 비교는 불가능하다.” 이는 벨몬트 스테이크에서 최고 기록을 추월당한 Gallant Man의 조교사 Jonny Nerud의 말이다.

아무튼 독자의 흥미를 위해 굳이 비교해 본다면, 닮은 점은 이마에 흰점과 선이 있는 밤색마이며, 둘 다 마체구조가 월등해 생산자들이 그런 망아지를 갖고 싶어하는 표본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둘 다 캐나다에서 은퇴경기를 했다. 다만 Man O’War는 초대 삼관마 Sir Barton과의 Match Race에 초대받은 경우이고, Big Red는 조교사와 기수가 모두 캐나다 출신이어서 마주의 배려에 의한 것으로 추측된다.

다른 점은 Big Red는 성격이 느긋했고(식사 때는 예외) Man O’War는 성격이 불같아 경주출주 준비 때 항상 4명이 그를 인도했으며 발주기에서 야단법석을 떨지 않으면 관중들의 의아해할 정도였다. 그리고 Big Red의 경쟁상대는 2만5,000두였고 Man O’War는 1,680두였다(1917년생). Big Red는 대부분 나이 많은 선배들과 겨루었으나 Man O’War는 Sir Barton과의 경주 한 번뿐이었다.

Man O’War의 대형 동상이 Kentucky Horse Park에서 세계의 경마계에 군림하는 반면 Big Red의 사진은 인간이 사용하는 우표에도 등장했다. Man O’War의 장례식이 라디오로 전국에 생중계되었고, Big Red는 Time과 Newsweck의 표지모델로 활동했다.

클레이본 목장으로 은퇴
Big Red는 2년간 21전 16승, 2착 3회, 3착 1회로 130만달러를 수득하고 2년 연속 연도 대표마로 선정되었다. 아버지 Bold Ruler의 마방을 물려받아 씨수말로 활동하며 Lady’s Secret, Risen Star 등 걸출한 후세마를 남기기도 했으나 그의 명성은 Storm Cat, A.P Indy, Summer Squall, Gone West등 어미의 애비로서 계속 살아 있다. 1989년 그가 사망한 후 Time지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운동선수 10걸에 그를 포함시켰다.

Secretariat는 클레이본 목장에 Nijinsky, Mr. Prospector와 나란히 묻혀 있다고 들었다. 필자는 이번 가을 켄터키 방문 때 그의 무덤 앞에 국화 한 송이라도 헌화하고 올 계획이다.


글 / 김종식 푸른목장 대표
2006/01/04 01:43 2006/01/04 01:43

20세기 최고 경주마
Secretariat




동전 던지기
시크릿테리엇(Secretariat)이 태어나기 전 해인 1969년 가을 벨몬트파크의 뉴욕 경마협회장 Alfred.G.Vanderbilt의 사무실에 몇 사람이 모여 동전던지기 내기를 하고 있었다. 경마계에서 동전던지기 일화라면 우선 Derby경주의 명칭을 정한 내기가 떠오르지만, 이곳의 게임도 어쩌면 경마계의 작은 지각변동을 이루어 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 - 버지니아주 메도목장의 Mrs. Helen ‘Penny’ Tweed(목장 창설주 Chenery의 딸이자 나중의 Secretariat의 생산자 겸 마주), Ogden Phipps(Bold Ruler의 마주), 그리고 당대 최고의 목장 클레이본의 Arthur Boyd ‘Bull’ Hancock Jr(생김새와 목소리가 워낙 거인스러워서 애칭으로 Bull Hancock으로 불림), 마지막으로 사무실 주인 반드빌트(Native Dancer의 생산자 겸 마주) -의 동전던지기는 메도목장이 소유하고 있는 씨암말 2두(Somethingroyal, Hasty Matelda)와 Ogden Phipps 소유의 Bold Ruler 사이에서 태어난 망아지에 대한 ‘Foal Share’(씨수말과 씨암말에 각각 투자하여 태어난 망아지를 나누어 가지는 제도) 계약을 이행하기 위함이었다. 그해 봄 Something royal은 암망아지를, Hasty Matelda는 수망아지를 생산했다. 지금은 Something royal의 경우 Bold Ruler의 자식 수태가 확인되었으나 Hasty Matelda는 불임으로 판정되었다.

Penny와 Phipps가 내기를 해서 이긴 사람이 Something royal의 암망아지만 갖고, 진 사람은 나머지 2두를 갖게 될 상황이었다. 반드빌트가 동전을 던지고 Bull Hancock이 심판관이었다. 연장자인 Phipps가 동전의 뒷면을 선택했고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보고 행콕이 “뒷면이다”고 판정했다. Penny가 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하느님 고맙습니다”하고 기도했다. 내년 봄에 태어날 망아지가 Secretariat였고, 더불어 최고 마주의 지위도 예약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Nasrullah와 Prince quillo의 Nicks
이 닉스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메도목장과 클레이본목장의 관계를 이해해 보기로 하자. 양 목장의 창업주는 절친한 친구 사이였으며, 그 관계는 후세에도 계속 이어졌다. 메도목장의 창업주가 은퇴한 후 그의 자식들 중 큰아들과 큰딸은 이미 금융업계에서 확고한 지위를 가지고 있어서 목장 후계자의 유산을 거절했고, 어린 막내딸 Penny가 목장을 떠안았다. 그리고 행콕의 후세들은 Penny의 혈통공부와 경주마 비즈니스의 가정교사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다.

Penny의 손에는 항상 혈통서적이 들려 있었으며,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Seth Hancock에게 물었다. Lucien Laurin 조교사의 아들 Roger도 가정교사를 자임했다 (Roger는 후일 은퇴 예정인 60세의 아버지 루신 조교사를 설득하여 Secretariat의 조교사로 복귀시킨다).

사진 속 Penny의 모습에서 사람을 끄는 매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여인에게 당대 최고의 고수들이 모여든 것은 Secretariat라는 걸출한 스타를 만들어 내라는 ‘신의 명령’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클레이본목장은 유럽에서 Nasrullah와 Prince quillo를 수입해 위닉스의 기초를 마련했고, Penny는 가정교사들의 가르침을 받아 그 닉스를 완성시켰다. 물론 Secretariat가 태어나기 1년 전에 Riverman, 2년 전에 Mill Reef라는 챔피언이 태어났지만 이 이론이 일반화되기 전이었다.

Bold Ruler와 Something royal
많은 사람들은 Bold Ruler의 단거리 스피드와 Something royal의 지구력 결합을 위닉스의 성공 요인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에는 약간의 오류가 있다. 물론 Prince quillo계통은 분명히 지구력의 화신이다. 그러나 Bold Ruler는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그가 4세 때 챔피언 스프린터이기는 했지만 중거리 소화능력도 충분히 있었다. 혈통표에서 보는 것처럼 나스눌라의 스피드에 모마의 부마인 Discovery의 장거리 능력도 충분히 물려받았다.

Dosage Profile도 26-8-8-11-1(D.1:2.38)이어서 2,000m 거리도 소화할 수 있다. 그의 경주 성적표에도 이 사실이 잘 나타난다. 3세 때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1,900m)를 거머쥐었으며 2,000m경주에 4번 출주하여 3번 우승했고, 1,800m 코스 기록을 2번이나 수립했다. 만일 스피드와 지구력 결합 하나만을 성공의 비결로 지적한다면, 필자가 Northern Dancer의 글에서 소개한 Type To Type이론 중 거리적성이 비슷한 것끼리 짝지우라는 원칙에도 반하는 것이다. 물론 경주마의 혈통이론이라는 것이 지구상의 과학 중 정확성이 가장 떨어지는 분야라는 점도 있긴 하지만…. 그러면 Penny가 선생님들로부터 터득한 성공의 열쇠는 무엇인가?

Bold Ruler는 만성 관절염 환자였다. 자식들 중 다리가 허약한 망아지가 한 둘이 아니였으며 씨수말로서 활동이 왕성한 시기인 17세 때 암으로 사망했다. 한마디로 ‘건장함’의 결여가 그의 약점이었다. Penny는 Prince quillo를 이용해 이 약점을 보완한 것이다(경주마 생산업계에서 건장함의 대명사는 당연히 Prince quillo의 몫이라는 데 이견이 없음)





Secretariat의 탄생
혈통표 중 부마 Bold Ruler는 이미 잘 알려져 있어 생략하고 모계쪽을 살펴보기로 한다. 창업자 Christopher Chenery는 1947년에 모마의 모마인 Imperatricer라는 스테이크스 승리마를 당시 3만달러의 거금을 투자하여 구입한다. 그 말은 생애 4두의 스테이크스 승리마를 생산했으며, 1952년에 태어난 Something royal은 단 1회 출주 후 번식마로 전용된다. 지식이 부족한 생산자들이라면 경주성적으로 봐서 분명히 이 씨암말을 지나칠 것이다. 그러나 모마의 우성 유전력과 Prince quillo의 결합으로 이미 최고의 씨암말로 대접받았으며(1959년에 챔피언 Sir Gaylord 생산 등) 1965년부터 리딩사이어 Bold Ruler에게 시집보내졌다. Ogden Phipps도 이 사실을 알고 ‘Foal Share’를 제의한 것이다.

1970년 3월 30일 0시20분 메도목장 분만 마방에서 Something royal과 Bold Ruler의 3번째 망아지가 태어났다. 그 망아지는 분만 20분 만에 스스로 일어나 걷기 시작했으며, 45분 만에 어미젖을 빨기 시작했다. 크고 강하고 잘생겼다. 목장일기 한 부분에 이런 내용이 있다.

“1970. 7. 28. 세 다리가 희고 잘생긴 수망아지. 뒷다리가 잘 뻗어 있으며 훌륭한 어깨와 완벽한 후구, 누구나 보기만 하면 매료될 것이다.”

20세기 최우수 경주말을 선정할 당시 Man O’War와 Seretariat 사이에 상당한 경합이 있었다.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아 전문위원이 선정한 말을 Man O’War, 경마고객이 선정한 최고는 Secretariat로 나뉘었다.

여기에는 마격의 우수성도 포함되었을지 모른다. 그는 일찌감치 챔피언감으로 지목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Secretariat의 마체 형태를 교본으로 삼거나 “지구상에 존재한 서러브레드 중 가장 완벽에 가까운 마체였다”고 평가한다.

세 다리가 흰 것과 관련하여 생산자들 사이에 옛날 속담이 다시 회자되었다. “흰 다리가 하나면 그냥 크는 대로 버려두고, 둘이면 아내에게 선물하고, 셋이면 아들에게 물려주고, 넷이면 빨리 팔아 버려라. 네 다리와 코에 흰 선이 있으면 머리를 쳐 까마귀 밥이 되게 하고…. 제일 좋은 것은 당연히 Secretariat처럼 세 다리와 코에 흰 줄이 있는 것이다.”

- 다음호에 계속 -


글 / 김종식 푸른목장
2006/01/04 01:33 2006/01/04 01:33

Phar Lap
기상천외한 경주작전





뉴욕 타임스의 부고장(訃告狀)
1932년 4월 6일 뉴욕 타임스 1면에 경주마 한 마리가 산통으로 죽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말 이름도 생소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보도는 극히 이례적이었다.

그 말이 바로 뉴질랜드에서 출생하여 단 한 차례 미국 원정경기 후 의문사한 ‘Phar Lap’이다. 미국에서 20세기 최우수 경주마 100두를 선정한 내용을 살펴보면 켄터키더비마 126두 중 겨우 28두가 뽑혔고, 최고 명문인 Northern Dancer계도 5두에 불과하다. 그리고 미국 이외 지역에서 태어난 말은 Phar Lap을 포함해 5두뿐이다(아일랜드 2두, 프랑스 1두, 아르헨티나 1두). 그러나 나머지 4두는 출생지만 다를 뿐 미국에서 경주를 계속했으며, 오직 Phar Lap만이 한 차례 원정 경기로 22위에 랭크되었다. 미국인들이 그들의 자존심을 접으면서 왜 이 말을 최고 경주마로 선정했으며, 세계 굴지의 신문을 통해 부고장을 돌렸을까?

자이언트의 탄생
Phar Lap은 1926년 10월 28일 뉴질랜드 Seadown Stud에서 태어난 밤색 거세마이다. 그의 혈통표에는 부계쪽에 영국 더비를 거머쥔 Bend Or(3대, 1877년생, Northern Dancer의 8대조), Spearmint(3대, 1903년생)가 들어 있으며, 모계는 St. Simon(5대, 1881년생)의 후손이지만 그 라인은 이미 쇠퇴해 버린 지 오래된 것 같다.

호주 조교사 Herry Telford와 미국인 사업가 David Davis가 공동으로 약 800달러에 구입한 거세마였으나 체고가 17.1핸드(173.7㎝)이고 흉위가 2m가 넘는 거구였다. 그가 이긴 경주에서 측정한 평균 보폭은 732∼824㎝에 달했다(국내의 평균 보폭은 650∼700㎝임).

‘Phar Lap’이란 마명의 근원은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단지 자바의 방언으로 ‘lightning strike’(번개처럼 빠르다)란 뜻으로, 혹은 어미의 아비인 ‘Winkie’에서 유래한 ‘밤하늘의 윙크’로 받아들여지지만 ‘Red Terror’의 별칭으로 자주 불리기도 했다.

호주에서의 경주마 시절
1929년부터 1932년까지(미국 원정경주 포함) 51전 37승으로 30만1,402달러를 수득했으나, 대부분의 명마들처럼 3세 후반기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호주인들의 우상으로 자리매김할 당시부터 무장 경호원과 경찰견의 경호 속에서 지낸 그의 위세는 멜버른컵(Melbourne Cup, 2mile) 경주의 설명만으로 충분할 것 같다.

‘톰소여의 모험’을 지은 마크트웨인은 “지구상에서 말과 관련된 최고의 축제가 바로 이것”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경마전문가들은 지구 남반구의 최고 경주이기는 하지만 가장 잔인한 핸디캡 경주라 일컫기도 한다. 4세 때 Phar Lap이 이 경주에 참가했을 때 워낙 인기가 높아 전체 국민들 중 심사가 뒤틀린 사람은 경마예상지 판매업자뿐이었다. 5세 때 경주에서는 필자가 생각해도 거짓말 같은 사건이 발생한다. 당해 그가 유일하게 3착이하의 착외로 밀린 경주가 바로 이 경주다.

부담중량이 무려 150파운드(68㎏)였는데, 우승한 말의 부담중량은 겨우 98파운드(44㎏)에 머물렀다. 경주마 자원이 워낙 부족했던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이런 일들이 가끔씩 있었다.

세계 최고 상금 수득마 Cigar의 전성기 때도 부담중량은 130파운드에 불과했다. 한쪽은 적당한 부담중량 부여로 전 국민의 영웅을 만들어내고 경마를 대중화시켜 나가는 반면, 다른 쪽은 고객의 흥미 충족에만 급급하여 어린 망아지의 다리가 부러지는 것조차 기꺼이 감수하려는 상황들이 경마제도를 잘 모르는 필자로서는 정말 안타깝기만 하다.

하여튼 Phar Lap은 호주에서 28만 2,200달러를 수득하고 주위에 적수가 보이지 않자 세계 최고 상금 획득을 목표(당시 최고 상금 수득마는 37만6,744달러를 번 미국의 Sun Beau, 93위)로 미국 원정길에 오르게 된다.

기상천외한 경주작전
1만마일의 바닷길을 화물선 바닥에서 3주 동안이나 참아낸 그는 마침내 샌프란시스코 항구에 도착했다. 얼마동안 컨디션을 조절한 후 10만달러의 우승상금이 걸린 Agua Caliente Handicap 경주에 출사표를 던졌다(불행하게도 경주 직전 상금 규모가 절반으로 줄어들어 최고 상금 수득의 꿈은 좌절되었다). 경마장의 모든 환경이 다를 뿐 아니라 발주기 또한 지금 것의 전신인 Maxwell 발주기여서 Phar Lap에게는 처음 보는 쇠덩어리였다.

경마진행자의 적응 훈련 권유를 무시하고 시골길이나 낮은 언덕을 이리저리 피해다니며 이국의 풍경들을 감상하는 것이 그의 훈련 방법이었다. 진행자의 귀찮은 권유가 계속되자 원형마장에서 등 위에 새끼염소 4마리를 태우고 서커스하듯 빙글빙글 돌았다. “워낙 온순하고 영리해서 그런 훈련은 필요없소” 하고 조교사는 한마디 던졌다(그가 죽은 지 70년이 지난 지금 Phar Lap에 대한 재평가는 그의 경주능력보다 오히려 ‘영리함’ 때문에 최고의 경주마 반열에 올려 놓는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음).

경주 당일에도 몇 경주 앞서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공터에서 이리저리 달려보았다. 발주요원이 기겁을 하고 기수에게 “당신 말은 최고 인기마이니 얼른 내려 그를 쉬게 하시오”라고 했으나 Phar Lap은 재빨리 멀리 도망가 버렸다. 경주 며칠 전 조교사 Telford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출발지점에서 시시한 미국말들이 튕겨내는 흙먼지를 Phar Lap의 얼굴에 묻힐 수는 없으니 천천히 출발하여 외곽으로만 달리게 하여 2,000m 거리 중 마지막 800m만 갤럽하겠다고 희한한 경주작전을 공개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했다.

1,800m 트랙 중 중앙 관중석을 지나는 200m 지점에서 앞무리와 정확히 50야드(45m) 떨어져 있음이 측정 결과 드러났다. 그것도 외곽 펜스에 붙어서…. 1,200m를 남겨놓고 후미그룹에 합류한 뒤 800m를 남겨두고 기수는 채찍을 뽑았다. 그리고 여유있게 승리했다. 경주 후 여러 경마장에서 고액의 상금을 걸고 그를 초청하려 하였다. 어떤 사람은 트랙에 실크카펫을 깔아 줄 테니 그 위를 한 번만 달려 달라고 매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일반인의 출입을 막은 채 부어오른 근을 비밀리에 치료하고 있었다.

의문의 죽음
느닷없이 뉴욕 타임스에서 Phar Lap의 죽음이 보도되었다. 부검 결과 사인은 이슬에 젖은 알팔파를 먹어 산통이 발생한 것이며, 소량의 극약 성분도 검출되었다. 독극물 성분은 목장 관리인이 주위 나무에 살충제를 뿌리던 중 일부가 바람에 날려 그의 마방까지 침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다른 곳에서 Phar Lap을 주연으로 출연시키는 영화 제작에 관하여 논의하던 마주도 급히 달려와 주위의 설명을 듣고 부검 결과에 동의했다.

그러나 호주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1999년 브리더스컵 경주를 참관하러 온 호주 경마관계자들도 환담 중 Phar Lap의 이야기가 나오자 정색을 하고 “당신네 미국 사람들이 우리의 영웅을 죽였소” 하고 고함을 쳤다) 믿지 않는다.

호주에서는 Phar Lap의 독살을 소재로 소설이 쓰여지고 그를 추모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도 제작되었다. 그리고 이른바 양심선언이란 것도 수없이 나왔다. 남미계 폭력배들이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으며, 훈련을 마치고 마방으로 돌아가는 그에게 총이 발사되었으며, 심지어 타살이라고 계속 주장하던 당시의 전담관리사도 50년이 지나 신문기자들을 모아 놓고 호주에서 가져간 영양제가 부족할 것 같아 물을 타 먹여 그가 죽었다고 대성통곡하는 등….

반면 미국에서는 Damon Runyon이라는 소설가가 2차대전 당시 연합군 병사들에게 편지를 보내 “Phar Lap은 분명히 세계 최고의 경주마다”며 “미국의 어떤 사람이 감히 그를 죽일 마음을 품었겠느냐”고 화해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Phar Lap은 지금도 살아 있다
그의 부검 후 14파운드에 달하는 심장(경주마 평균 심장은 9파운드임)은 뉴질랜드로 보내져 영구 보관 중이며, 몸체는 박제되어 멜버른 빅토리아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1999년 가을 마주 David의 손자집에서 우연히 Phar Lap의 우승 트로피가 하나 발견되었다. 그 트로피는 소더비 경매에서 예상가격 9만달러를 훨씬 상회하는 27만달러에 팔렸다. 그는 호주인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양심선언이 나오면 신문들은 그것을 대서 특필하고, 그들은 다시 분노하기 시작한다. “Phar Lap의 사인은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라고….


글 / 김종식 푸른목장 대표
2006/01/04 01:25 2006/01/04 01:25

황제의 휴식
16연승의 기록 남긴 명마 Cigar


모마(Solar Slew)와 생후 10일째의 Cigar.


말띠 경주마의 탄생
시가(Cigar)는 4년간 총 33회 출주하여 1착 19회, 2착 4회, 3착 5회의 전적으로 999만9,815달러를 획득한 세계 최고 상금 수득마이다. Northern Dancer의 손자인 Palace Music을 부마로, Seattle Slew의 딸 Solar Slew를 모마로 하여 태어난 그는 흔히 일류마의 전력에서 볼 수 있는, 삼관마 경주 경력도 없을 뿐 아니라 4세 가을 때까지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그렇고 그런 존재였다. 조기완성형을 요구하는 현대 경마세계에서 퇴출을 면한 것은 어쩌면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최고의 경주마로 부상할 때 심심한 호사가들이 Cigar의 사주를 보았다. 1990년생 말띠, 수호신은 전쟁의 여신 마르스(Mars), 부와 품위를 상징하는 다이아몬드가 그의 보석이다. 그러나 북미지역에서 태어난 같은 말띠는 4만4,000두가 넘었으니 진정한 성공의 열쇠는 다른 곳에 있었을 것이다.

마격(Conformation) 연구가 Cecil Seaman의 자료에 의하면 Cigar의 마체구조는 그가 데이터로 보유하고 있는 최고 경주마 4만5,000여두 중 큰 심장뿐 아니라 체장도 평균치 228.6㎝보다 9㎝가 더 길었다. 어깨뼈 또한 평균치보다 4㎝ 정도 길고 잘 경사져 있었으며, 다리뼈도 모든 부분이 평균치 보다 길었고 완벽할 정도로 균형이 잡혀 있었다. 특히 엉덩이뼈에서 시작된 뒷다리는 웅장할 정도라고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보폭이 길며 폭발적인 파워가 용출되었다.

금연가의 Cigar
마주 겸 생산자 Allen E. Paulson은 파일럿 출신의 항공분야 사업가였다.

매년 100두 이상씩 태어나는 망아지의 이름을 지을 때 하늘에서 내려다본 거점지점의 지명을 따 마명을 짓곤 했는데, Cigar는 미국 남부 멕시코만의 마을 이름이다(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우승 트로피를 받을 때 카메라 앞에서 시가를 물고 있기만 했다).

생산자 앨런은 엄청난 부자이다. 1985년 켄터키에 서러브레드 생산공장 Brookside Farm을 세울 당시 소유하고 있던 항공사의 지분을 크라이슬러 회사에 매각한 금액이 6억달러를 훨씬 넘었다. 매년 1,000만~2,000만달러를 망아지나 씨암말 구입에 쏟아부었고, Cigar가 데뷔할 당시 600두 이상의 말을 소유하고 있었다.

규모뿐 아니라 품질 수준도 놀랍다. ‘금으로 도금하고 통로에 실크카펫을 치장한 제트기가 제일 잘 팔린다’는 기업 경영철학을 그대로 도입했다. 그러나 몇백만달러에 구입한 망아지가 단 한푼의 상금도 벌지 못한 경우가 한둘이 아니며, Cigar의 모마 Solar Slew도 당해 2세 암말 최고가인 51만달러에 구입하였으나 겨우 5,000달러 정도 벌여들여 앨런의 눈밖에 나 교배시즌에는 공동 소유 씨수말 Palace Music과 교배된 상태로 켄터키에서 메릴랜드로 쫓겨났다(메릴랜드 Country Life Farm의 씨수말 2두를 공동 소유하여 하위급 씨암말의 씨수말로 활용함). 그래서 Cigar의 고향은 메릴랜드이고 망아지 때도 한쪽 구석의 패독에서 그럭저럭 지냈다.

MP에서 AP로
Cigar가 벌어준 1,000만달러는 투자액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니 사업가 앨런은 경주마 사업에서는 실패한 셈이다. 그러나 그는 명예와 즐거움을 얻었다.

마사의 둥근 천장에는 크리스털 칸델라를 달았고, 목장 안에 테니스장을 만들어 가족·친구들과 휴가를 즐겼다. 한번은 목장 매니저에게 골프장을 만들어 달라고 보채다 거절당하자 곧바로 캘리포니아에서 골프장을 구입해 버렸다. 초기 Cigar의 성적이 신통치 않자 아내 마들렌 파울손(Madeleine Paulson)에게 선물해 버렸다. 그래도 혈통은 최고라고 하면서…. 하지만 나중에 Cigar가 모래주로로 전향하여 첫 경주에서 승리하자 그가 생산한 최초의 암말(Filly) 챔피언 Eliga를 씨암말로 주고 도로 빼앗았다. 그리고 시가를 물고 2년간 최고 마주의 포즈를 취했다.

지난해까지 미국 경마 사진 기수의 복장에서 A.P란 글자가 자주 보였는데, 이것은 아내의 복색 M.P(Madeleine Paulson)에서 A.P로 바뀐 약간 치사한 장면을 기억나게 하는 모습이다.

잔디주로에서 모래(Dirt)주로로
모래나 잔디에서 다른 곳으로 바꾼 후 성공을 거두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

660만달러를 수득한 John Henry도 잔디주로로 옮긴 후 제대로 달리기 시작했고, Vigors는 모래주로로 전향한 후 슈퍼스타가 되었다. Cigar도 잔디주로에서 모래주로로 옮긴 후 최고 경주마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경우는 사정이 약간 다르다. 3세 봄부터 잔디경주에 출주하기 시작했으나 4세 가을까지는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11번 출주하여 Allowance경주에서 한 번 이겼을 뿐이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잔디주로의 말은 평평하고 넓은 굽을 가지고 있으며 달릴 때 무릎을 높게 든다고 하는데, Cigar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조교사 William I. Mott에 의하면 4세가 되던 해 가을 모래주로로 전향하기 전까지 Cigar의 마체(특히 무릎)는 성숙되지 않았다. 조교 때도 모래주로에 나서기를 꺼려했다고 한다. 부마인 Palace Music이 유럽·미국의 잔디주로 GⅠ경주에서 승리한 까닭에 자식도 당연히 잔디주로 말로 간주됐을 듯하다. 주위에서 왜 모래주로로 바꿔 보지 않느냐고 충고할 때도 Mott 조교사는 묵묵히 잔디만 고집했다. 무릎이 약하고 아직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교사는 4세 가을까지 이기기 위한 훈련은 시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마체가 성숙되기 전까지는 모래와 잔디의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지하실 구석에 몇백년 동안 잠재워 둔 포도주가 제 맛을 내듯이.

마침내 4세가 되던 1994년 10월 모래주로 첫 도전인 Allowance경주에서 승리하고 한 달 후 곧바로 NYRA(New York Racing Association) GⅠ경주에 현역 최고 기수인 Jerry Bailey를 태우고 모래주로 16연승 북미지역 타이기록 수립의 대장정에 돌입하게 된다(그때까지 Cigar의 기수였던 Mike Smith는 NYRA경주 때 최고 인기마인 Devil His Due로 옮겨가고 Jerry는 대타로 등장했다). 4세인 1994년 10월부터 96년 7월까지의 16연승 대기록 행진에는 GⅠ경주 10승과 Dubai World Cup이 포함되며, 94년도 연도 대표마 Holly Bull과 95년도 켄터키 더비와 벨몬트스테이크스의 Thunder Gulch가 희생양이 되어 경주 은퇴를 강요받기도 했다(위 2두의 마필은 각각 Cigar와의 경주에서 왼쪽 앞다리를 다쳐 경주마 생활을 마감하였다).

20분간의 기립박수
매디슨스퀘어 가든에서 화려한 은퇴식을 가졌으나 생식능력이 없어 Kentucky Horse Park에서 사진 모델로 전락하여 쓸쓸한 여생을 보내고 있지만, 미국민들에게는 경주마 시절 모든 영광을 다 누렸다고 기억되고 있는 Cigar는 결승전 전방까지 페이스를 조절하려는 Jerry의 손가락을 끊어 낼 듯한 엄청난 파워를 지녔다. 5세 때 10전 10승 중 8승이 GⅠ경주였으며, 6세 때 Dubai World Cup 승리를 포함한 8전 5승의 전적으로 2년 연속 연도대표마에 선정되었다. 5세 때 브리더스컵 클래식 경주(2,000m)에서의 우승기록 1분 59초 58은 아직도 이 경주의 최고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6세 때인 1996년 6월 13일 15연승을 기록 중인 Cigar를 위해 시카고에서 Arlington Citation Challenge경주를 특별히 마련했다.

여기에는 50년 전 16연승의 위업을 달성한 Citation의 조교사 Jimmy Jones도 초대되었다. 130파운드(58.9㎏)의 부담중량으로 거뜬히 승리한 Cigar는 3만4,000여명의 관중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내는 바람에 가뿐 숨을 몰아쉬며 20분간이나 한자리에 서 있어야만 했다.

황제같은 은퇴생활
14연승 때인 Dubai World Cup경주 전후부터 Cigar의 앞다리와 굽은 상당히 망가진 상태였다. 게다가 중동까지의 장거리 여행으로 피로가 누적되었다. 조교사 Mott가 마방에서 쉬고 있는 Cigar를 찾을 때마다 그의 커다란 눈은 항상 ‘이제 그만하고 집에 가요. 쉬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은퇴 직전 Jockey Club Gold Cup경주에서 3세마 Skip Away에 머리차로 지고(Skip Away는 Cigar를 이긴 후 승승장구하며 960만달러를 획득하여 Cigar에 이어 역대 2위의 수득상금마가 된다) 은퇴 경기가 된 6세 때의 브리더스컵 클래식에서 Alphabet Soup에 이어 3착으로 골인한 후(코차+머리차) 앨런은 대답했다. “그래, 이제 그만하자. Cigar, 널 사랑한다.”

일본중앙경마회(Japan Racing Association)로부터 Cigar를 3,000만달러에 팔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있었으나 앨런은 거절했다. 그를 멀리 떠나 보내면 더 많이 보고 싶어질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투자자의 모습에서 진정한 Horse Man으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그후 매매가액 2,500만달러의 75% 지분을 쿨모어 목장의 Ashford Stud에게 양도했다. 쿨모어 목장은 Cigar를 맞이하기 위해 이 세상에서 제일 근사한 마사를 지었다. 필자는 1999년 초 그 목장을 방문하여 1,000만달러짜리 Cigar의 호화저택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생식능력이 없었다. 2년간 최고 전문가들에 의해 검사받고 치료받았으나 허사였다. Cigar는 그 목장에서 조금 떨어진 Kentucky Horse Park에 있었다. 그날 오후 늦은 시간에 그를 찾아 갔을 때 이미 1일 3회의 쇼를 끝내고 낡은 마방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Cigar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당시 그의 눈망울은 너무 크고 시렸다. 금방이라도 굵은 눈물방울이 맺힐 것만 같았다. 돌아서는 필자의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던지…. 그러나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앨런이 그를 정말 편히 쉬게 해 주었구나’

쇼가 끝나고 패독에서 Cigar가 달리기 시작하면 15년 선배인 John Henry가 그 뒤를 따르고 그 뒤에는 더비마 Bold Forbes가 따라 달린다. Cigar는 은퇴해서도 황제처럼 쉬고 있다.


글 / 김종식 푸른목장 대표
2006/01/04 01:18 2006/01/04 01:18

Northern Dancer는 숏다리였다




늦둥이 · 꼬마 그러나 노던댄서(Northern Dancer)
1961년 5월 27일 캐나다의 원드필드 목장에서 태어난 노던댄서(Northern Dancer)는 ‘The Blood-Horse’지에 의해 선정된 20세기 최우수 경주마 100두 중 생일이 가장 늦은 ‘늦둥이’이면서 키가 작아 1세마 경매시장에서 아무에게도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늦둥이·꼬마(runt)였다.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그를 찾은 샤다이목장의 요시다씨도 ‘소처럼 생긴 말’로 표현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80년대에 이르러서는 마체심사 기준이 달라질 뻔했다.

‘좋은 경주마는 어떻게 생겨야 하는가? Northern Dancer와 얼마나 닮은 데가 많은가? 그의 유전 형질이 마체에도 느껴지는 것 같은가?’ 어디 경주마로서 자질뿐인가. 일본의 씨수말 전문지 ‘Futurity’는 1999년도 최우수 경주마 146두 중(북미, 유럽, 호주, 일본, 두바이의 챔피언 및 G1경주 승리마) 45%인 65두가 Northern Dancer의 부계라인이며, 78%인 114두의 혈통표에 그의 이름이 있다고 발표했다. 20세기 마지막 30년 동안 그의 후손들은 9번이나 최고 씨수말의 영예를 누렸으며 지금도 손자 Storm Cat에 의해 그 기록은 계속되고 있다.

야심과 수완, 그리고 행운이 따른 Taylor
생산자 겸 마주 Edward Plunkett Taylor는 서러브레드 생산에 뛰어들면서 미국으로부터 무시당하는 변방 캐나다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탔다. 그는 기업운영에서 벌어들인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실전 경영기법을 도입했다. 넓은 국토에 흩어진 소규모 목장들이 서로 연맹체(circuit)를 형성하도록 후원했으며, 주위의 목장들은 직접 통합하고 국립교배소도 인수하여 윈드필드 목장을 설립했다. 세계적 규모를 자랑하는 Woodbine경마장도 만들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경주마 생산역사 중 최고의 행운이 그에게 다가왔다. 켄터키 오크스를 준비 중이던 Natalma가 칼슘 과다급여로 추측되는 무릎 고장으로 3세 봄에 경주생활에서 은퇴하게 된다. 그리고 적당한 교배상대는 이미 예약이 완료되어 할 수 없이 같은 목장에 있던 Nearctic에게 시집보내졌다. 그래서 늦둥이가 태어났으며, Taylor는 그를 Northern Dancer라 불렀다.

목장에서 태어난 망아지들이 1세가 되면 Taylor는 캐나다의 이름있는 사업가들을 초청해 목장에서 칵테일 파티를 열었다. 그리고 망아지들을 보여 주면서 “이 놈은 얼마면 팔겠소”하고 이른바 ‘Pre-Priced Yearling Sale’이라는 새로운 경매제도를 시행했다. ‘꼬마’도 이때 당시 가격으로는 상당히 높은 2만5,000달러에 선보였으나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서러브레드 역사상 이런 흥밋거리가 도처에 산재한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다.

Secretariat는 동전던지기로 마주가 정해졌고, Seattle Slew와 Sunday Silence도 Northern Dancer와 비슷한 경우이고, 660만달러를 수득한 John Henry는 1976년 1세마 경매에서 단돈 1,100달러에 팔렸다. 국내 우수경주마도 마사회 6개월령 매입검수에 떨어져 선진국의 교훈(?)을 따르는 일이 더러 있다.

Northern Dancer가 탄생하기까지



Northern Dancer의 탄생 과정은 최소한 2대모 Lady Angela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캐나다에서 경마기반을 착실히 다진 Taylor는 다른 한편으로 우수 번식마 확보에도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영국의 뉴마켓 경매에서 최고 씨암말을 구해 오도록 지시한다. 그리고 1952년 세일에서 최고가인 1만500기니(약 2만5,000달러)로 Nearco의 자식이 수태된 Hyperion의 딸 Lady Angela를 손에 넣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 말을 곧바로 데려오지 않았다. 다시 Nearco와 짝지어 주기 위함이었다. 선경지명이었을까? 먼저 태어난 망아지는 실패였다. 두번째가 수태되어 캐나다로 데려왔다. 이듬해 태어난 망아지가 Nearctic이었다. 이 망아지가 나중에 Northern Dancer뿐 아니라 Clever Trick(76), Wild Again(80), Explodent(69)등 걸출한 씨수말을 배출하면서 야심가 Taylor를 업계의 독보적 존재로 부상시켜 준다.

한편 그는 1958년 사라토가 1세마 세일에서 ‘회색괴물’ Native Dancer의 딸 Natalma를 두번째 고가인 3만5,000달러에 구입한다. Natalma는 분명히 우수한 경주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앞서 말한 것처럼 켄터키 오크스를 앞두고 부상으로 은퇴해 Nearctic이 기다리는 윈드필드 목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듬해 첫 자마로 Northern Dancer를 배출하게 된다. Northern Dancer가 2세부터 승승장구하자 Taylor는 같은 배합을 5차례 되풀이했으나 더 이상의 명마는 하늘이 점지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씨수말과의 사이에서 스테이크스 승리마가 3두 더 나왔다. 우수한 씨수말에서 명마가 태어날 확률이 10%, 씨암말은 25% 수준에 이른다는 통계를 다시 한 번 입증한 셈이다.

짧은 경주마 생활
그는 조기 성숙형이었다. 2세부터 이미 캐나다에는 적수가 없었다. 미국으로 무대를 옮겨 Secretariat의 삼관마 시절 기수로 유명한 Ron Turcotte를 태우는 등 승수를 계속 늘려갔다. 그러나 미국은 시골뜨기를 여전히 무시했다. 이 때문에 큰 경주에 나갈 때면 항상 낮은 부담중량을 부여받았다. 켄터키더비 때는 몇번 기승한 적이 있는 Bill Shoemaker로부터도 무시를 당했다. “괜찮기는 한데 너무 숏다리라서…”(Bill Shoemaker는 1999년 겨울 Pincay에 의해 깨진 생애 8,832회의 우승전적이 있는 전설적 기수다) 그러나 Northern Dancer는 더비에서 Secretariat에 이어 역대 2번째 기록인 2분00초로 Shoemaker를 태운 Hill Rise를 물리친다(애석하게도 올해 더비마 Monarchos의 기록에 0.03초 밀려 역대 3위로 내려앉음). 2주 후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를 거머쥔 Northern Dancer는 그러나 삼관마 마지막 관문인 벨몬트의 2,400m 코스에서 거리 적응의 한계로 3위로 밀려나고 만다.

그는 경주마 시절 초기부터 뒷다리 고장으로 고통을 받아왔다. 처음에는 오른쪽 뒷다리 굽이 갈라져 경주와 치료를 반복했다. 이때 유명한 일화가 있다. 굽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아 캐나다로 돌아갈 절박한 순간, 어떤 사람이 굽을 감싸는 압축고무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얼마간 치료하니 새살이 돋기 시작했다. 그것을 그 사람의 이름을 따 ‘Bane Patch’라 부른다고 한다. 다음에는 비절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3세 후반기 망가지고 짧은 뒷다리를 오직 투쟁심 하나로 버텨온 그는 마침내 짧은 2년간의 전적(18전 14승, 수득상금 58만달러)를 남긴 채 은퇴하고 고향으로 개선한다.

폭풍우를 몰고온 그의 망아지들
그는 캐나다에서 교배료 1만달러로 씨수말 생활을 시작하고, Taylor가 메릴랜드의 동부 해변가에 또 다른 윈드필드 목장을 만들면서 부마 Nearctic과 그 곳으로 이주했다. 1967년에 두번째 자마군인 NijinskyⅡ, Vice Regent가 태어나고 연이어 최고의 망아지들이 줄을 이었다. 1970년대에는 240만달러로 신디케이트가 형성되었으며,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20세쯤이 되었을 때는, 유럽에서 4,000만달러(약 510억원)에 팔 수 없겠느냐는 제의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제의는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정중히 거절되었다. 영국 조교사 Vincent O’Brien이 캐나다에서 NijinskyⅡ를 구해 영국 삼관마에 올려 놓자 세계의 관심은 Northern Dancer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Storm Bird와 Sadler’s Wells는 영국에서, Lyphard와 Nureyev는 프랑스에서, Northern Taste는 일본에서, Danzig와 Vice Regent는 미국에서, 바야흐로 전세계를 동시에 지배하는 최고의 혈통이 되었다. 이때 서러브레드에 관련된 모든 자금은 미국의 경매시장으로 모여 들었고, 그의 망아지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듯…. Storm Bird도 이때 홀연히 날아왔다.

큰말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씨수말 활동을 시작한 지 몇 년쯤 지나 ‘The Blood-Horse’지에 씨수말 홍보를 하면서 “체고가 15.1핸드(153.4㎝)가 아닌 15.2핸드이니 1㎝를 올려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으며, 초기 상대 씨암말을 고를 때도 키가 커야 한다는 우선 조건을 내세우기도 했다. 이 사실은 당시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키가 큰 경주마를 선호했음을 확인해 준다. 하기야 훨씬 전 유럽에서는 키가 작은 말은 아예 번식마로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법까지 만들었으니….

그러나 키가 커야 잘 달린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경주마의 스피드나 스테미나는 체고와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 경주마는 긴 다리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튼튼한 심장과 투쟁심으로 달리기 때문이다. 씨수말의 조건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성공한 씨수말의 체고는 대부분 15.2핸드(154.4㎝)와 16핸드(162.6㎝)사이에 분포한다. 그리고 최소한 그들의 절반 이상은 최고의 경주마 출신이다.

필자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큰 경주마, 큰 번식마를 외치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다. 그러나 Northern Dancer뿐만 아니라 Hyperion도 그러했고, 더 옛날 Lexington도 그러했다. 그들은 모두 꼬마였다. 한편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Phar Lap이란 말은 174㎝가 넘는다. 그는 단 한 차례 미국 원정경기에서 그 곳 경마계의 기를 단숨에 꺾어버린 최고 경주마였다. 그러나 그가 잘 달릴 수 있었던 것은 긴 다리보다 지금도 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유별나게 큰 심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체고가 큰 말을 피하는 논리적 근거는 무엇일까?

닮은 것끼리(Type to Type)
마를린 먼로가 ‘당신의 두뇌와 나의 몸매’ 운운하면서 아인슈타인을 유혹했을 때 거절당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배우자끼리는 닮은 구석이 있어야 한다. 이 이론의 지지도는 점점 높아지는 듯하다. 생산배합이론에서 ‘Type to Type’이란 첫째 키와 외형 등이 비슷한 것끼리, 둘째 경주적응거리가 비슷한 것끼리, 셋째 질(수준)도 비슷한 것끼리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둘째와 셋째의 경우는 1,200m의 단거리에 소질이 있는 씨암말과 2,400m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씨수말을 짝지우지 말 것이며, 싸구려 씨암말에 40만달러를 투자해 Storm Cat을 찾는다면 후일 태어난 망아지를 팔 때 크게 손해를 본다는 가르침이다. 그리고 첫째의 경우는 씨암말의 체고는 수말에 비해 작은 편이며 대부분이 16핸드 이하이니 씨수말도 당연히 비슷한 놈이어야 궁합이 맞다는 것이다.

글 / 김종식 푸른목장 대표
2006/01/04 01:08 2006/01/04 01:08

3펄롱타임

2006/01/04 01:01 / Horse Racing
Q 마사회 홈페이지에서 제공하고 있는 경주자료를 보고 내가 뭘 잘못알고 있는 것인지 해서 질문합니다.

우선 4월21일 4경주 ‘호탕한’의 경주 기록을 살펴보면 3F타임이 39.7로 되어 있습니다. 3F타임이 골인지점 전방 600m의 경주주파기록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좀더 아랫부분에 제공되고 있는 펄롱타임과 기록이 일치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펄롱타임을 보죠. 13.8 12.0 12.9 13.5 13.0 13.8 마지막 3구간의 펄롱타임을 합산해보면 40.3이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3F타임에는 39.7 이라고 되어 있는데, 왜 펄롱타임 합산기록과 일치하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A 안녕하십니까? 마사회 홈페이지 담당자입니다.

우선 3펄롱타임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마사회에서 측정하는 3F타임은 두가지로 구분됩니다. 우선 개별경주마의 3F타임입니다. 이것은 3F지점에 센서와 녹화카메라를 작동하여 개체별 경주마의 3F타임을 측정하여 공표하는 것입니다. 이 기록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경주마의 개체별 지구력 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가지는 경주의 전반적 주행상태 흐름 등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결승지점부터 200m 단위로 자동센서(녹화장치가 아님)를 설치하여 구간별 통과타임을 자동으로 측정하여 3F타임을 산정하고 있습니다. 이때의 구간기록 및 3F타임 측정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구간별 선두마의 200m 기록은 발주 직후 선두마가 200m 지점을 통과하는 즉시 센서로 측정되고, 그 기록을 기준으로 다음 200m 구간을 먼저 통과하는 경주마의 기록을 측정하는 방식입니다. 즉 발주 후 첫 200m 지점을 먼저 통과한 말이 다음 200m 구간 주행중 선두를 빼앗기게 되는 경우에 다음 200m 구간의 기록은 처음 200m구간을 통과한 마필의 구간기록이 아니고, 그 시점을 기준으로 다음 200m지점을 먼저 통과한 마필의 기록이 측정되는 것입니다. 귀하께서 지적하신 4월 21일 4경주에서도 경주전개상 1번마 ‘정보통’의 선행이 빨라 각 구간별로 먼저 통과하였으나 4번째로 주행하던 ‘호탕한’이 추입에 성공하여 우승하여 전체적인 3F타임은 '정보통'이 구간을 먼저 통과한 기록을 기준으로 ‘호탕한’이 기록한 결승기록과의 관계에 의해 40.3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호탕한’의 개별적인 3F타임은 39.7입니다.

더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핸디캡전문위원실(담당 : 장병운(02-509-1723))으로 문의하시면 상세히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펄롱타임과 통과타임
1펄롱(Furlong) :1마일(1609.3m)의 1/8, 약 200m의 거리
펄롱타임 : 경주로 각 200m마다의 주파기록
통과타임 : 각 펄롱구간 지점을 통과하는데 소요된 시간의 누적기록
2006/01/04 01:01 2006/01/04 01:01

테시오와 Ribot

1. 테시오와 테일러
국내·외에서 출판된 혈통서적을 접하다 보면 페데리코 테시오(Federico Tesio)란 사람을 빼놓을 수 없는데, 그의 곁에는 항상 에드워드 테일러(Edward. E. Taylor)가 이야기의 단짝이 되고 있다. 왜일까?

물론 두 사람은 서러브레드 생산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기도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들의 생산방법이 너무나 동떨어진 때문이 아닐까 한다. 우선 노던댄서를 생산한 테일러는 양조업에서 성공한 사업가 출신으로 사업에서처럼 풍부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주위의 소규모 목장들을 흡수.통합하여 기후적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최고 의 생산목장·경마장을 만들어 갔다. 반면 Nearco와 Ribot을 생산한 이탈리아의 생산자이자 마 주 겸 조교사 테시오는 그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오로지 말에 대한 전문성 하나만을 재산으로 하여 남들이 쳐다보지도 않는 바겐세일장의 싸구려 씨암말들을 구입하여 몇십년의 노력 끝에 최고 의 경주마를 생산해 갔다.

테일러는 경매시장에서 최고의 가격으로 니어아크틱(Nearctic)의 모마 레이디 안젤라(Lady Ang ela)와 노던댄서의 모마 나탈마(Natalma)를 구입한 반면, 테시오는 자기가 필요로하는 스피드를 보유한 씨암말이라면 마격상 하자가 있거나 인기없는 혈통이더라도 구입·생산의 과정을 반복해 갔다.(그는 말에 관한 경쟁에서 남에게 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으며, 그가 저술한 책에서조차 그만의 특별한 배합기법은을 결코 타인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위에서 언급한 생산기법도 켄터키 게인즈웨이 목장에서 40년간 매니저로 활동한 후 가족들과 테일러메이트 목장을 설립한 조지프 레넌 테일러의 이야기 속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그에게 이러한 생산패턴이 가능했던 이유는 테일러나 대다수의 목장이 상업적 생산자였음에 반해 그는 애초부터 자기가 생산한 망아지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의사가 전혀 없어 남들의 평가나 세간의 인기를 철저히 무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비교되는 결정적인 동기는 영국의 유명한 조교사 빈센트 오브라이언(Vincent O'Brien)이 미국으로 건너간 Ribot의 망아지를 구입하기 위해 북미지역을 돌아보던 중 당시 별 로 인기가 없었던 노던댄서의 자마 1두를 구입한 사건이다. 그 망아지가 바로 1935년 바브람(Babram) 이후 35년 만에 영국의 삼관마로 등극한 니진스키(NijinskyⅡ)이다.

2. Ribot에 투자한 세월 - 30년
유명씨수말이 자기 손에 있으면 보유 씨암말 중 최선의 상대마 선택이 게을러지고, 유럽 구석구 석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씨암말 구입하는 발걸음 또한 무디어진다는 것이 테시오의 지론이었다. 그가 생산한 Ribot의 3대부 Covaliere d'Arpino는 위대한 St.Simon의 3대손으로 부마는 이탈리아 최우수 씨수말을 11년간 연속해서 석권했다.

상대마 Bella Minna는 Ribot 생산을 위한 제일보로 1200기니(테일러가 레이디 안젤라를 1만500 기니(약2만5천달러)에 구입했다니 상대적 비교는 가능하다))에 구입했고, 그로부터 Ribot의 2대부 Bellini가 태어났으며, 상대마 Tofanella는 뉴마켓 1세마 세일에서 140기니로 구입하여 부마 TENERANI를 탄생시켰다. 이 말은 이탈리아더비와 영국의 퀸엘리자베스스테이크스에서 우승하였다. 그리고 Ribot의 모마 로마넬라를 위해 그의 어미 Babara Burrini를 뉴마켓 당세마 세일에서 350기니에 구입했다. 로마넬라 또한 2세 암말 챔피언이 되었다. 이렇게 30년을 허비(?)하고 Ribot이 경주마로 데뷔하기 몇달 전 테시오는 숨을 거둬 경주로를 달리는 Ribot을 보지 못했다. 그는 죽기전 자기가 생산한 최고말은 Nearco도 Ribot도 아닌 Covalier d'Arpino라 했다. 유럽 전문가들이 20세기 유럽 최고 경주마를 선정할 때 Sea-Bird와 Ribot 중 누가 센지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는 짐작이나 했을까?

3. 불패의 명마
Ribot Ribot은 엄밀히 말해 이탈리아 태생이 아니다. 테시오가 씨수말 테네라니를 영국으로 보내면서 수태된 어미말 로마넬라도 딸려 보냈다. 이듬해의 교배 상대로 그를 다시 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듬해 봄 Ribot은 뉴마켓의 국립 교배목장에서 태어났다.

그가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에서 16전 전승의 기록으로 은퇴하기까지 탁월한 경주능력을 대변하는 일화를 하나 소개하려 한다. 1950년대 경마 위세는 유럽이 미국보다 한 수 위였던 것 같다. 미국의 우수한 클래식 경주마들이 프랑스 개선문상을 여러 차례 노크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Ribot이 3세에 이어 4세에도 개선문 경주에 등록했을 때 미국에서 Bold Raler의 기수로 유명한 Eddie Arcaro가 Career Boy라는 말로 도전해 왔다 (페이스 메이커로 그 말의 짝인 Fisherman도 동행) 우리식의 결승주로에서 아카로가 '이길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하는 순간, 어떤 말이 그의 옆을 휙하고 스쳐갔다. 그는 경주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그 말이 어떤 말인지 정말 알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미국말로 당시까지의 최고 성적인 4위에 입상하는데 그쳤다. 이와 같은 탁월한 경주능력과 씨수말로서의 우성 유전력을 알아내기 위해 휴이트(A.Hewitt)와 그 주위의 전문가들이 Ribot의 혈통표와 씨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무리 살펴보아도 모계쪽에는 톱 클래스의 경주마가 없었고 일류혈통도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몇백달러, 기껏해야 몇천달러 짜리 씨암말만 주워모았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들의 이야기 마지막 줄에 이런 글이 보인다.

'그의 제자들은 아무런 결론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다만 현대의 서러브레드 세계에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4. 스태미나와 건장함의 결정체
경주 은퇴 후 Ribot은 이탈리아와 영국에서 4년간 씨수말 생활을 한 후 미국으로 임대되어 왔으나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다음장에서 말하기로 하고, 하여튼 그는 영국에서 Ragusa, 미국에서 Tom Rolfe, Graustark, His Majesty, Arts and Letters 등 걸출한 후세마를 남겼다. 그러나 Ribot은 우수씨수말(LS: Leading Sire)보다 우수씨암말(BMS : Bloodmare Sire, 모계의 부마성적)에서 더 위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의 아들 Tom Rolfe의 딸들은 102두의 스테이크스 우승마를 배출하고, 아들의 아들인 Hoist The Flag의 딸들은 82두, 아들의 아들의 아들 Alleged는 1999년까지 85두의 스테이크스 우승마를 배출하고 있으니, 그 어떤 가계에서 이런 성적을 낼 수 있겠는가? 그런 까닦에 모든 전문가들은 어미말에게 필요한 스태미나와 건장함의 대명사로 Ribot계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5. 고약한 성격 때문에
그가 개선문상을 2연패하고 이탈리아로 돌아왔을 때 전쟁 패망국은 성대하게 은퇴식을 베풀었다. 전 국민이 Ribot을 연호하는 순간, 그는 갑자기 기수를 내동댕이치고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했다. 잔치는 완전히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그후 미국의 더비던목장이 임대계약을 체결했다. 5년 계약기간에 135만달러였다. 당시까지 미국에서 최고가로 거래된 씨수말나슈어(Nashua)의 매매가가 125만2천2백달러였으니 그의 명성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미국에서 첫해 태어난 그의 자식 Tom Rolfe가 1세가 되던 1963년에 영국에서는 이미 최고의 씨수말 위치에 올랐다. 그래서 중동의 오일달러가 미국으로 밀려들어왔고, 빈센트 오브라이언도 그들과 동행했으며, 니진스키도 만들어질 수 있었다.

당시 더비던목장에는 미국 역사상 최고 전문가 올린 젠트리가 매니저로 있었는데 Ribot의 폭력 앞에는 그도 어쩔 수 없었는지 차이고 받히기를 수차례 경험하였다. 방목장에서 Ribot의 시야에는 어떤 씨수말도 보이지 않아야 했다. 아무도 그를 목장 밖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고향으로 되돌아 갈 수 없었다.

필자는 가끔 만일 Ribot의 성격이 조금만 더 점잖았더라면 서러브레드의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를 생각해 본다. 배합이론에 '국제적 원교배'란 방법이 있다. 어느 특정지역에서 근친에 근친을 되풀이하여 무력화되어 버린 혈통에 대한 처방으로 전혀 이질적인 피를 수혈해 주면 활성화가 가능하다는 비유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유럽의 Nasrullah가 싱싱한 미국의 Native Daner를 만나 Bold Ruller가 탄생했듯….

필자의 생각으로도 맞는 듯 하다. St.Simon의 유럽 혈통이 미국에서 신선한 파트너를 만났으니 그의 위력은 배가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유럽과 미국은 가끔 서로 말들을 바꾸어 교배했던 것은 아닐까? 혼혈가수 중에 내가 최고라고 여기는 가창력의 소유자가 있듯이…. 끝.

글 / 김종식 푸른목장 대표
2006/01/04 00:49 2006/01/04 00:49

아! 알리다여 알리다여...

Alydar와 칼루멧 목장
알리다의 이름은 여 생산자 Markey의 친구 알리 칸 왕자(Prince Aly Khan)를 위해 이름 붙여진 ‘Aly darling’이란 뜻이다.

알리다는 ‘Affirmed와 Alydar’의 한쪽 부분으로 기억되고 있는데, 그만큼 이들의 라이벌 관계는 미국 경마 역사상 최고의 화젯거리이기도 했다.

한편 칼루멧 목장은 1900년대 중반 미국의 최고 생산목장이다. 창설 후 10년 만에 최고 상금수득목장, 최우수목장의 영예를 10년 이상 연속해서 독점했다.

여기에는 더비마 8두(삼관마 2두 포함), 연도대표마 선정 5두, 명예의 전당 헌액말 11두, 수많은 챔피언, 그리고 미국 역사상 최고의 씨수말 Bull Lea 등등… 그 영광의 나열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백번을 양보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칼루멧 목장의 파산…반세기도 채 이어가지 못한 영광의 끝자락에 Alydar의 처참한 죽음이 있었으니, 사람들은 이를 20세기 최대의 미스터리라 부른다.

그리고 필자는 이를 우리의 정서인 한(恨)이란 글자로 풀어 보려 한다.

Affirmed와 Alydar
Alydar는 1975년 3월 22일 켄터키 칼루멧 목장에서 Raise A Native와 Nasrullah의 손녀딸 Sweet Tooth 사이에서 태어난 밤색 수말이다.

많은 경주마에게 별명이 있는데, Alydar는‘경주에 지게 되면서 더욱 인기가 높아진 말’로 이해함이 타당할 것이다.

77년부터 78년까지 삼관마 경주를 거치면서 Affirmed와 10번 대결했는데 3승 7패(10번째 경주의 승리는 상대방의 진로방해로 얻은 실격승임)를 기록했다. 이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2번 이길 때는 3½마신, 1¼마신 착차였다. 질 때는 목차, 머리차, 코차였다. 켄터키더비에서의 1½마신차가 가장 크게 완패한 경우이고 프리크니스스테이크스에서는 목차, 벨몬트스테이크스에서는 머리차였다.

조카(부마쪽에서 볼 때 Alydar는 Affirmed의 삼촌이다)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총 22마신 차이로 여유있게 후착마를 따돌리고 삼관마에 등극했을 것이다.

마지막 실격승을 양보받았을 때 그의 비통한 표정이 눈에 선하다. 2세, 3세 챔피언 선정 때도 Affirmed에게 패하면서 “가장 위대한 차점 탈락자”란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그는 점점 신경질을 부리고 쌓인 스트레스로 벽을 걷어차는 등 자학하곤 했다.

씨수말로 명예회복을 노리다
3년간 26회 출주해 1착 14회, 2착 9회로 수득상금이 100만달러에 약간 못 미친 채 경주생활을 은퇴하고 고향에서 씨수말로 데뷔하면서 그는 마음을 비우려 무진 애썼다. 각고의 노력 끝에 그의 성적은 Affirmed를 대차로 앞질렀다.

1회 교배료가 25만달러에 달하고(올해 초 고령으로 안락사된 Affirmed의 교배료는 3만달러 수준) 첫 자마군 1세마들이 키니랜드 경매에서 80만달러를 가볍게 뛰어 넘어 단숨에 노던댄서에 이어 2인자의 자리에 오른다.

670만달러를 수득하여 당시 최고 상금마가 된 Alysheba, 선데이사일런스의 영원한 파트너 Easy Goer, 90년 올해의 말 Criminal Type, 91년 더비마 Strike The Gold 등 수많은 준족들을 세상에 내보내면서 86년부터 사망한 해인 90년까지 최고의 씨수말로 자리잡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몹쓸 인간들이 채 아물지도 않은 그의 가슴을 다시 쥐어뜯기 시작했으니, 빚쟁이들에게 그의 교배료 2∼3년치를 앞당겨 팔아먹은 것이다.

칼루멧의 몰락과 Alydar의 죽음
이제 미국 경마 역사상 최고의 미스터리이자 아직도 의혹만 더해가는 그의 죽음을 이야기할 때인 것 같다.

1930∼40년대의 짧은 목장의 전성기는 1950년 설립자 Warren Wright Jr가 죽으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상속자들이 고인의 손녀사위 Lundy라는 이방인을 경영자로 추대하고 난 뒤부터다.

Alydar가 죽은 지 정확히 8개월 후부터 파산절차가 시작되고 오래지 않아 경매에 부쳐졌다. 당시 그 목장을 욕심냈던 3,000명 이상이 경매에 참여했는데 낙찰가격은 Alydar 보험금 3,650만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으니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다만, 돈을 너무 흥청망청 쓴 결과로 추측될 뿐이다. 자꾸만 들어오는 수입금을 주체할 수 없어 누구든지 보이는 대로 먼저 쓰는 이가 임자였으니, 목장 매니저의 1년 판공비가 100만달러가 넘고 경영자 Lundy가 죽은 후 그가 사용처도 밝히지 않고 가져간 현금이 3억달러가 넘는다는 증언도 나왔다(목장 최초의 미스터리 Lundy의 의문사는 보험금을 노린 사건이란 것이 최근 수사 결과 밝혀졌다).

빚쟁이들은 Alydar의 교배료를 받아 챙기기 위해 줄을 섰다. 경주마 시절의 울분을 억지로 삭이고 있던 그에게는 이제 삶 자체가 고통이었으리라. 그는 빌었다. - 앞으로 나의 후손들은 인간들을 위해 절대로 빨리 달리지 말라 - 정말 그의 손자세대부터는 평범한 가문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1990년 11월 13일 저녁 Alydar의 사고 소식이 매스컴을 타고 전국에 전해졌다. “오른쪽 뒷다리 정강이뼈가 완전히 부러졌다. 이유는 마방문을 심하게 걷어찼기 때문이다.” 경주마 시절 기수의 회고에 의하면 은퇴 후 Alydar에게는 분명히 자학증세가 있었다. 마방에서 “헤이, 챔프”하고 부른 후 몸을 숨기면 그를 부른 사람이 모습을 보여줄 때까지 스스로 가해행위를 했다고 한다. 이런 습성을 이용하여 마방문에 까치발을 설치하고 다리가 부러지기를 기다렸던 듯하다.

그러나 첫번째 사고는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수술 후 그는 분명히 안정되었고 건초도 잘 먹었다. 다음날 또 같은 사고가 났다. 그리고 다음날 죽었다. 어떤 사람들은 보험금 3,650만달러보다 살아 있는 채 교배료를 착취하는 것이 더 유리했으니 죽일 이유가 없었다고 말한다.

하여튼 오리무중이다. 사고 후 10년이 지난 2000년 2월에 미국 수사당국은 아직도 그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발표했다. 장례식은 최고의 말에게만 베풀어지는 ‘Whole’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 맺힌 한은 도저히 잠들 수 없을 것이다. 그 누구도 잠들게 하지 못할 것이다. 영원히….

글 / 김종식 푸른목장 대표
2006/01/04 00:27 2006/01/04 0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