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않는 경주마
John Henry




아무도 쳐다보지 않던 망아지
John Henry를 소개한 글에는 ‘No One wanted’란 수식어가 항상 첫머리에 등장한다.

필자가 지난 10월 켄터키 호스 파크의 챔피언 홀 마지막 공연시간에 맞추어 도착했을 때 처음 등장한 Cigar가 한 차례 거드름을 피우고 퇴장한 후 John Henry가 나왔다.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가 시작됐다. “신사 숙녀 여러분, 아무도 쳐다보지 않던 망아지가 660만달러나 벌어들였습니다. 망아지 시절 괴이한 행동들이 26세가 된 지금도 계속됩니다. 새로운 관리사가 부임해 오면 몇번씩 물어뜯거나 차거나 하면서 호된 신고식을 치르게 합니다. 그리고 그는 피자와 크림과 설탕을 곁들인 커피를 즐겨 마십니다….”

1975년 3월 9일 켄터키 Golden Chance Farm에서 태어난 그는 작고 볼품없었으며, 특히 무릎이 뒤로 휘어져(Back at the knee) 경주마로서는 최악의 마격 상태였다. 게다가 마방에서 조금만 심사가 뒤틀리면 물통이든 밥통이든 닥치는 대로 차고 부수고, 관리인의 접근조차 허용하지 않는 고약한 성질 때문에 제일 먼저 팔아 치울 망아지로 점찍혔다.

혈통표에서도 그의 악조건은 계속된다. 부마 Ole Bob Bowers(1963)는 Princequillo의 2대손으로 500달러의 교배료가 책정되어 있었으나 켄터키의 어떤 씨암말도 그를 상대하려 하지 않았으며(John Henry의 고약한 성격은 부마로부터 한치의 오차도 없이 물려받음), 다만 Golden Chance Farm의 저능력 씨암말의 ‘청소용’, 야구에서의 패전 처리 전담이 그의 역할이었다. John Henry가 태어난 이듬해 그는 900달러에 시골로 팔려갔다.

모마 Once Double(1967)의 부마 Double Jay는 John Henry에게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B.M.S에서 6년간이나 수위를 유지한 위대한 Domin의 후손이었으나 역시 모마의 1대모, 2대모, 3대모를 통틀어 단 한두의 stakes경주 승리마를 배출하지 못했다. 모마 역시 John Henry가 1세가 되던 해 5,000달러에 매각되었으며, 나중에 John Henry가 스타가 되었을 때 몸값이 55만달러로 치솟기도 했으나 변변한 자식 하나 생산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계속되는 바겐세일
1세가 된 John Henry가 키니랜드 1월 세일에 처음 내보내졌을 때 그의 두번째 주인이 된 Jean Gallaway는 부마 Ole Bob Bowers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이 단지 그의 모마의 부마가 Double Jay란 사실에 5,000달러 정도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세일 진행자가 최초 호가 1,000달러에서 1,100달러로 올렸을 때 Gallaway 이외에는 그 누구도 호응하지 않았다. 싱겁게 주인이 바뀌었다. 그때 경매장에 들어선 John Henry의 얼굴은 피투성이였다. 닥치는 대로 벽을 들이받아 ‘나는 이런 놈이오’ 하고 경마계에 자신의 인상을 남긴 것이다.

Gallaway는 구입한 망아지를 목장에 풀어 놓고 며칠간 살펴보았다. 그는 ‘아, 이 망아지는 도저히 경주마가 될 수 없겠구나’ 하고 탄식했다. 안장 한번 제대로 올려 놓을 수 없었다. 그럭저럭 1년이 지난 후 다시 키니랜드 1월 세일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고, John Henry는 2,200달러에 팔렸다. Gallaway는 이윤이 100%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새 주인은 그를 거세하고 기승 순치를 조금씩 해 나갔다. 몇달 후 다시 주인이 바뀌었다. 다른 2세마 한 마리를 끼워서 1,100달러에 겨우 처분되었다. 마방에서 그를 붙잡는데 10분, 조금 떨어진 트랙까지 데려가는 데 45분이 걸렸으니 새 주인이 다시 정해진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이렇게 바겐세일은 계속되었으며 새 주인은 또 다른 주인을 찾아 나섰다.

괴짜 마주 Sam Rubin
Rubin은 뉴욕 빈민가 출신이었다. 그가 John Henry의 마지막 주인이 되었을 때의 나이는 63세. 경주마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마권 구입이 전부였다.

최고의 악벽마와 경마 투기꾼 출신이 만났다는 사실은 어쩌면 재미있는 경주마 이야기 전개와는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사실이 경마팬들에게 호기심을 자아내게 하고 더 큰 영웅으로 자리매김케 했을지도 모른다.

뉴욕 빈민가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던 Rubin은 어느날 경마 베팅으로 4,000달러라는 거금을 벌어 세탁소를 사들여 운영했으며, John Henry를 구입할 당시에는 제법 큰 자전거포 주인 아저씨였다.

베팅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어 모은 돈 2만5,000달러로 경주마를 구입하기로 작정했다. 경마와 관련이 있는 친구를 찾아가 경주마 구입을 부탁했는데, 이것이 John Henry와 인연이 닿은 것이다. 마권밖에 모르는 사람에게 악벽마를 처분하기가 얼마나 쉬웠을까?

어느 친구가 Rubin에게 물었다. “자네 경주마를 구입했다면서, 어떤 말이야?”

Rubin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조교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교사, 내가 구입한 말이 무슨 색깔입니까?” John Henry가 Rubin의 이름으로 첫 경주에 출전했을 때 다시 조교사에게 전화했다. 어느 말에 베팅하면 되겠느냐고. 그리고 그는 단번에 10만달러를 벌었다.

늙지 않는 경주마
John Henry는 어펌드와 알리다와 같은 해 태어났다. 그들이 3세가 되던 해, 어펌드와 알리다가 최고의 경주마로서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던 그 순간 John Henry는 2만5,000달러 클레임 경주에 출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음해 경주생활을 마감했지만, John Henry는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모래(Dirt)에서 잔디주로로 전환한 후 G1경주를 16번이나 이겼다. 이런 불가사의는 9세인 1984년까지 계속되었다.

장수한 경주마로 그는 가끔 60년대의 Kelso와 70년대의 Forego와 비교된다. Kelso는 5년간 연속해서 연도 대표마가 되었지만 8세에 이르러 사양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9세 때 단 1회 출주해 4착에 머물며 은퇴했다. Forego 또한 3년 연속 연도 대표마로 선정되었지만 8세 때 2차례 경주 후 은퇴했다. 그러나 John Henry는 9세 때 9전 6승(마지막 4경주 연속 승리, G1경주 3회 우승)으로 Slewo’Gold를 물리치고 연도 대표마에 등극했다. 이는 최고령 연도 대표마 기록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이 그가 왜 강한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우선 15핸드 정도의 작은 체고였으나 다른 말에 비해 다리의 길이가 1인치 정도 더 길었고, 심장의 크기도 평균치보다 25% 무거웠으며, 걸음걸이의 중심 이동도 효율적이었다. 모마의 부마인 Double Jay로부터 건장함과 파워를 물려받은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기 마음대로 해야 식성이 풀리는 기질을 잘 살려 항상 자신감에 충만했다는 점이 그의 최대 장점이었다.

3세 가을 어떤 야간 경주에서 출발 후 갑자기 정전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잠시 후 불이 켜진 후 주로의 상황은 정말 가관이었다. 기수 3명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2두는 경마장의 허술한 벽을 뚫고 줄행랑쳤으며, 1두는 수로에 처박혔고, 나머지는 마방 쪽으로 허겁지겁 도망치고 있었다. 그러나 John Henry는 기수를 태우고 주로 한가운데에 늠름하게 서 있었다.

Japan Cup과 Breeder’s Cup
John Henry는 멀리 일본까지 원정길에 올랐지만, Breeder’s Cup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사업상 알게 된 일본 친구들에게 John Henry를 자랑하기 위해 주위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7세 때인 1982년 Japan Cup에 무리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Japan Cup경주 15일 전에 1개 경주를 치르고 다음날 바로 비행기에 올랐다. 25시간 동안의 장거리 여행으로 일본에 도착했을 때 그는 피로와 감기몸살로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13착의 치욕은 Rubin이 자초한 결과였다. 한편 Breeder’s Cup은 부마 Ole Bob Bowers가 그의 자식들의 B.C경주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아 출주를 위해서는 40만달러의 출주료를 지불해야 했다. B.C Turf경주 우승상금 중 마주 몫 60만달러와 비교한 결과, 불참은 사업가인 Rubin의 입장에서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다.

마지막 주인 Kentucky Horse Park
John Henry는 1977년부터 1984년까지 8년간 83전 39승으로 659만달러를 수득했다. 부문별 챔피언인 Eclipse상을 7회나 수상했고, 6세와 9세 때 연도 대표마에 선정되었다. 1981년 이후 수득상금은 당시 Spectacular Bid의 세계 최고 수득상금 278만1,608달러를 경신하고 이길 때마다 최고 기록을 수립했다. ‘People’지에 의해 1984년 ‘기인 25인’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10세 때인 1985년 봄 조교 중 오른쪽 앞다리 건 고장으로 은퇴를 선언하고 Horse Park로 향하게 된다.

이듬해 11세 때 재기를 시도하여 왕년의 경주능력을 되찾은 듯했으나 앞다리 구절 고장으로 그 꿈은 아쉽게도 사라져 버렸다. 그 누구도 그의 고령이 재기의 방해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Cigar와 함께 미국의 희망,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는 것이다.


글 / 김종식 푸른목장 대표
2006/01/04 01:54 2006/01/04 01:54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Trackback RSS : http://www.fallight.com/rss/trackback/586

Trackback ATOM : http://www.fallight.com/atom/trackback/586


« Previous : 1 : ... 976 : 977 : 978 : 979 : 980 : 981 : 982 : 983 : 984 : ... 1287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