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듣는 숭산 선사 법문 5
"원인없는 결과 없어 내 책임 다할때 삶 환해져"
"모양 이름 집착하고 살면 내 본래 마음 몰라요"
숭산 스님.
이 지구가 돌고있는 한 하나도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살아나가느냐 그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 살아나가는 데 있어서 첫째 나 자신이 어떻게 마음을 잘 가지며 내 가정을 어떻게 잘 지키며 또 내 나라는 어떻게 육성시키며 모든 인류가 어떻게 잘 사느냐 하는 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 나라를 볼 때에 여성이라는 그 힘이 올바른 정도를 잡을 때에 그 나라가 발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의 여성이 타락되면 인간성이 상실되고 나라가 망해갔습니다.
지나온 역사를 뒤돌아보면 왕실 안에서 흐름을 조정한 것이 여성들이었습니다. 그 방향을 바꾼 것도 여성이었으며 또 나라의 흥망성쇠를 가져오게 한 것도 여자입니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의 힘이라는 것이 밖에 나타나는 힘보다도 안에서 조정하는 힘이라는 것이 굉장하다는 것이 역사상에 나타난 사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떠한 일을 해야만 되겠는가. 또 이 세상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그 가운데 우리는 주부로서 어떻게 나 자신을 콘트롤하고 가정을 리드하고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가를 연구해 보기로 합시다. 이 세계의 흐름을 보면 격동기입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두 개의 진영으로 벌어졌습니다. 공산국가가 탄생된 것이 1617년입니다. 그 무렵 독재가 심했습니다. 인간들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그 사회가 어떠한 주권자들에 의해서 노예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것을 타파하기 위해서 인간은 자유다, 평등이다 하는 것을 부르짖으며 1917년도에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이제 백년도 못가서 공산주의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동·서독이 서로 손을 맞잡고 통일을 이루었는가 하면 소련과 중공의 개방정책을 비롯하여 공산국가가 자멸하기 했습니다. 이것은 커다란 사건이었습니다.
제가 소련에 종교인으로서 참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소련정부가 세계에 있는 모든 종교인과 정치가·학자·예술인 등 각계 분야에 있는 3백명을 초청했습니다. 그 다음 소련내에 있는 각계각층 사람들, 특히 현정부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많이 초대했습니다. 또 소련 내에 있는 권력을 가진 3백명과 같이 일주일 동안 이 지구상에 사는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한 방향을 향해서 갈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야기의 주요 주제가 무엇이냐 하면 ‘환경과 인간의 방향’이었습니다.
기원전 1900년 전에 그때 우리 인구가 1억도 못되었습니다. 그것이 1750년도 그러니까 1700년 동안 10억이라는 인간이 태어났었습니다.
해방되던 1945년도에 20억이라는 인구가 불어났습니다.
그러면 이 많은 인구가 얼마인가. 50억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러면 이 많은 인구가 어디서 왔느냐. 이 많은 인구를 하나님이 만든 것이냐. 부처님이 만든 것이냐. 근원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구가 팽창한다 할 것 같으면 2000년대에 가서는 80억이 된다고 합니다. 지금은 50억인데 80억으로 늘어나면 인간은 설 땅이 없습니다. 인간폭발이 됩니다. 소련내에 있는 고등학교 학생 150명과 미·영국 고등학교 학생 150명 등 300명을 참여시켰습니다. 그때 고르바쵸프가 말하기를, “우리 인간들이 이 지구상에서 제일 악질적인 동물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해치고 공기와 물을 더럽게 만들고 이 세상에 모든 악행을 하는 것은 인간입니다. 인간이 동물을 죽여서 고기를 먹고, 모자를 해쓰고, 가죽옷을 입고, 신발을 쓰고 다닌다 라는 말입니다. 모든 동물의 것을 다 착취해서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 동물이 얼마나 인간보다 착합니까. 인간이 이 지구상에선 독재자입니다. 이 독재적인 인간은 얼마 안가서 멸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은 사상이니 하는 것은 철폐를 하고 인간이 어떻게 해서 환경정리를 올바로 만들었으며 우리 인간이 어떤 방향으로 올바로 나아갈 것이며 또한 다음 세대에 무엇을 전할 것인가를 여러분들이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라고 고르바쵸프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옛날 어머니들은 아이 많이 낳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무엇이냐면 지금 세대가 다음 세대에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낳는 자식들한테 돈·권력·투쟁을 물려줄 것인가. 한번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우리의 자손들에게 물려줄 것입니까. 돈·권력·투쟁 어떤 것을 물려주는 것이 좋은지 곰곰히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옛날에 1억도 못되던 인간이 50억이라는 인구로 늘어났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서 많은 인구가 늘어났는가.
고르바쵸프는 현실에서 미래를 향한 것만 얘기했습니다. 강력히 우리는 인간성을 복구해야 되겠다는 이야기만 했습니다. 우리가 어째서 인구가 팽창했는지 그 원인을 이야기 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이 왜 이렇게 불어났는지 그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얼마만큼 악질 동물인가? 이 세상은 불교적으로 이야기하면 윤회를 하게 됩니다. 닦은 대로 짓는다고 했습니다.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고 좋은 일을 하면 그만큼 존경을 받게 됩니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떠한 일을 책임지고 행해야 될 것인가. 부모에게 효도를 하고, 남편에게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도록 도와주고, 아이들에게는 교육을 잘 시키고 그것이 나의 책임입니다. 그러니까 내 위치와 내 환경과 내 수용, 이 세 가지를 분명히 할 때에 대한민국의 여성으로서 떳떳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내 책임을 다할 때에 내 갈 길이 환하게 열립니다. 사람답게 사는 길, 여성답게 사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우리가 변화하는 격동기에 있어서 지구상에 있는 인간 폭발지경에 있는 위기의 시기에 어떻게 해야만 여성으로서 올바른 길을 찾을 수가 있겠는가. 항상 나 자신이 무엇인가부터 찾아야 합니다. 내가 도대체 무엇인가. 나 자신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올 적에 어디서 왔느냐. 죽어서는 어디로 갈 것이냐. 도대체 우리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갈 것이냐. 한번 생각해 봅시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이 지구를 창조했다는 것이 맞는 것인가.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 일체 내 마음으로 된 것이 맞는 것인가.
또 유물론에서 물질로써 된 것이 맞는 것인가 각 종교끼리 논쟁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생각을 버리자. 생각으로써 본체를 찾고 우주의 근본을 찾는 것은 안됩니다. 그래서 내 자신을 찾아 들어가는 참선을 해야 합니다. 지금 서양에서는 신부나 수녀, 목사들이 참선을 많이 하고 있습 니디.
옛날 대혜선사가 황벽선사를 찾아갔는데,
“제가 법을 배우러 왔습니다.”
“네가 법을 배우러 와. 누가?”
“제가요.”
“이놈의 자식 어째서 송장을 끌고 다니느냐”
옛날 서암선사께서는 매일같이 “주인공아”라고 물으면 “네”하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려라” “네”, “언제나 남한테 속지 말아라”
“네”“주인공아”하고 “나”라는 사람이 대답을 하셨는데 어떤 것이 진짜 주인공인가?
옛날 보리달마께서 인도에서 중국에 왔습니다. 달마는 양무제를 만났습니다.
양무제는 달마대사에게 예의를 갖추고 하는 말이, “대사님, 나는 수천 절을 짓고 수많은 스님들에게 가사장삼을 비롯하여 많은 공덕을 지었는데 내 공덕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무 공덕이 없소. 겨울같이 텅 빈 자리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모를 뿐입니다.”
달마대사께서 아무 미련없이 양무제 곁을 떠나 양자강을 건너 위나라로 갔습니다. 소림사의 조그마한 굴에서 9년간 면벽참선을 했습니다.
당시 위나라에 혜가라는 국사가 있었는데, 혜가대사는 문무백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왕실에서 설법을 매월 행하여 오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혜가스님이 방안에서 경전을 보고 있는데 밖에서 어린아이의 메아리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스님이 문을열고 살펴보니, 허공에서 오색광명이 비추면서
“네가 옳은 불법을 알고자 하면 소림굴로 찾아가라.”
“네.”
그 길로 소림굴로 찾아갔습니다. 달마가 혜가를 보고,
“무엇하러 여기 왔느냐?”
“법을 구하러 왔습니다.”
“법을 구하러 왔느냐. 그럼 네가 나를 믿느냐?”
“네, 믿습니다.”
“믿는 표시를 해라.”
그때 혜가스님은 손을 잘랐습니다. 손이 끊어지니 혜가스님은 몹시 아파했습니다.
“스님, 법은 고사하고 내 마음이 아픕니다. 아픈 마음부터 편안하게 해주십시요.”
“그래. 그 아픈 마음을 내게 가져오너라.”
“아픈 마음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여 살게되면 내 본래 마음을 모릅니다.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지 아니했을 때 내 본래 성품으로 돌아갑니다. 본 성품으로 돌아갔을 때 내가 지금 이 시대에 무엇을 해야 될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여러분들에게 끝으로 한가지 말씀드릴 것은 내 마음을 찾는 공부를 합시다.
그렇게 되면 올바른 어머니와 부인, 국민이 되고 올바른 한 사람이 되어서 우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인류의 행복을 줄 수 있는 마음의 광명을 찾게 됩니다. 열심히 여러분들이 나를 찾아서 모든 사람들한테 광명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04-11-30 오후 5:43:00
다시 듣는 숭산 선사 법문 4
수행-포교 둘 아닌 하나 ‘깨달음 향한 길’
가을이 익어가고 있었다. 서울 삼청동 칠보사 조실당의 열려진 창가에서 석주스님은 비스듬히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노사(老師)의 독서 내용은 무엇일까.
숭산 스님.
“스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숭산스님은 석주스님께 예를 표하고 오랜만에 손을 맞잡았다.
“어서 오시오.”
“이 아이는 제 미국인 제자인데 무심이라 합니다.”
넙죽 삼배를 올리는 벽안의 젊은 선승을 석주스님은 짧지만 긴 여운의 인사로 맞았다.
“무심(無心)이라… 무심해야 공부가 되는 법이지.”
국내에서 한글경전보급과 어린이 포교에 힘써 온 석주스님과 해외를 돌며 전법의 행로를 넓혀 온 숭산스님.
두 대덕(大德)의 만남은 순탄치 못했던 현대 한국불교사를 지켜 오며 차곡차곡 쌓아 이룬 수행의 결정(結晶)을 활인(活人)의 검(劍)으로 벼르는 자리였다. 그러나 그 자리는 부드럽고 온화했다. 곤궁을 양식삼아 공부에 매진하던 시절에의 회상,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사에 대한 근심과 희망을 나누는 지혜의 법석이었다. 중추가절의 넉넉함을 수미산의 한가위 달로 띄워 올리는 두 대덕의 법담은 서로의 건강을 물으며 시작됐다.
숭산:스님, 건강은 어떠십니까?
석주:하루 세끼 끼니 잘 챙기고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책 읽고 이런저런 행사에도 나가고… 나야 이렇게 살지 뭐.
숭산:건강하신 법체를 뵈오니 기쁩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찾아 뵙게 되어 면목 없습니다.
석주:자주 만나는 것이 대숩니까. 서로 할 일 잘하면 되는 것이지. 스님이야 한국불교를 세계에 전하는 최고의 수행을 하시는 분인데. 종종 소식은 들었어요. 참으로 장하고 훌륭하십니다.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 포교하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숭산 스님과 대담하는 석주 스님(오른쪽).
숭산:정화시절에 스님의 뒤를 이어 종무를 걱정하던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석주:그때 스님이 애를 많이 썼지요. 그런 시대적 혼란과 노력들이 오늘을 만들어낸 것 같아요.
숭산:그런데 요새는 세상이 워낙 빨리 변해서 모든게 정신 없이 돌아가요. 이런 모습이 오히려 분명한 중생계의 실상이긴 하겠지만 말입니다. 스님께서도 젊으셨을때 여러 절을 다니시며 공부하셨는지요.
석주:나야 어려서부터 선학원에 살다가 범어사에서 나이 스물에 계를 받고 한 6년 공부하고 다시 선학원으로 와서 오래 머물렀지요. 그때 적음스님이 원장이셨는데 나는 그 스님의 일을 많이 거들었어요. 참, 숭산스님이 수덕사에서 공부를 하셨잖아요. 나도 수덕사의 정혜도량에서 밥을 한 철 먹은 적이 있어요. 만공 혜암 효봉 금봉 고봉스님들이 다 살아 계실때였어요.
숭산:저도 오래전에 그런 얘길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들어가기 조금 전의 일인 것 같군요.
석주:(눈을 지긋이 감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참 그 시절이 좋았지. 정말 좋은 시절이었어. 그때는 정말 공부 잘 하는 스님들이 많았거든요.
숭산:공부만 잘 했습니까. 일도 잘 했지요. 일도 공부였고 하루에 무와 잡곡으로 쑨 멀건 죽 한그릇 먹는 것도 공부였지만 말입니다. 정말 배가 많이 고팠어요. 그런 대중 생활에서는 베게도 없어서 목침 하나를 놓고 다투는 경우마저 있었습니다.
석주:그때야 일을 하지 않으면 누가 죽 한 그릇이라도 줬나요. 내가 정혜사에 있을때 효봉스님이 입승을 보셨고 나는 그 스님에게 무서운 감명을 받았어요. 아, 효봉스님이 말이지, 섣달 그믐께였는데 목 아래에다가 칼을 세워 두고 혼자 정진을 하시더란 말이예요. 참 무서운 열정이셨어요. 그것도 하루가 아니라 이레를 그렇게 용맹정진 하시는데 나는 아무 말도 못했어요.
숭산:영운스님이란 분은 한 겨울에도 문을 열어 놓고 참선을 하셨잖아요. 추위를 못이기면 자기를 이길 수도 없다면서 말입니다.
석주:그랬지요. 참 공부를 열심히 하는 시절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모두 한가락씩 특기(?)가 있었어요. 그런 얘기는 스님도 다 잘 알고 있을겁니다.
숭산:알다마다요. 거 왜 혜암스님은 남의 칭찬을 잘 해서 ‘칭찬제일’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석주:맞아요. 혜암스님이 ‘칭찬제일’이었지요. 그 분은 무조건 남을 칭찬하며 일생을 사셨는데 고암스님도 칭찬에는 매우 후하신 분이었어요. 그 스님들은 칭찬하면 죄인도 그 죄를 뉘우친다고 했어요. 그런데 혜암스님이 절대 칭찬하지 않는 것이 있었어요. 공부를 점검할 때, 그러니까 누구하고 법담을 하다가 틀린 말이 나오면 용서를 안했어요. 한번 걸리면 두고두고 까는데 참 매서운 면모였어요. 숭산:청담스님은 ‘인욕제일’이었습니다. 참 잘 참으시는 분이었어요. 누가 뭐래도 절대로 화를 내지 않으셨지요. 인욕에 큰 도가 베어 있음을 청담스님은 많이 보여 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 스님은 누가 찾아가서 이러니저러니 흉을 잡고 욕을 해도 묵묵히 다 듣고 계시다가 끝에 한마디 툭 던지시는데 그게 “스님 왜 그러십니까?”였지요. 그러면 흥분해서 떠들던 사람이 오히려 부끄러워지기 일쑤였고요.
(두 대덕은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석주:춘성스님은 욕을 잘하기로 일등이었잖아요. 참 욕 한번 걸팡지게 잘 했지요. 그런데 그 스님의 욕은 더러 욕이 아니라 법문 같았다니까요. 공부를 잘 하는 스님이 많은 시절엔 그렇게 재미있는 일화도 많은가 봅니다. 설봉스님이나 ‘방울스님’이라 불렸던 홍도스님도 그렇고요. 그러고 보니 우리 숭산스님도 해외전법의 제일인자가 아니십니까.
숭산:그럼 석주스님께서는 어린이 포교와 역경의 제 일인자이십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치열한 공부와 무애의 법력을 보이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걱정이 많은데요. 스님, 사실 이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닙니까?
석주:시대가 바뀐 것 뿐이지 부처님 법이 바뀐 것은 아니거든요. 지금도 눈에 안보이게 용맹정진 하는 스님이 한둘이 아니예요. 우리가 다 가고 난 뒤에도 큰 스님들이 얼마든지 나올 겁니다.
숭산 스님.
숭산:그런데 듣기민망하게도 요새 공부하는 스님이 없다는 말들을 합니다. 세상도 그렇지만 수행환경도 많이 변했으니까요.
석주:세상이란 언제나 변하는 것이지요. 요새는 대중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도시로 나와 포교당을 운영하는 스님들도 많고 혼자 토굴을 마련해 정진하는 스님들도 많아요. 그게 다 공부하는 환경이 변하는 과정 아닙니까. 이런걸 두고 좋다 나쁘다를 구별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어디건 어떤 환경에서건 자기가 수행이라 생각하고 그것이 부처님 법에 어긋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니까요. 다만 스스로 거스름이 없이 불법을 닦고 대중을 포교하는 일에 매진해야 겠지요. 수행과 대중교화는 따로 두고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수행 가운데 포교가 있고 포교하는 가운데 수행을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숭산:그러니까 우리나라 불교는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는 특징을 갖는다는 것 아닙니까. 참선이건 염불이건 사경이건 그것이 자기수행과 교화의 방편으로 잘 쓰여지면 되는 것입니다.
석주:우리나라 불교를 통불교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겁니다. 원효스님이 그랬고 성철스님도 “종단의 이름을 바꿔야 된다면 통불교라고 해야한다.”고 말했었지요. 법계의 진리를 체득하고 중생을 교화하는 것은 부처님 재세시나 다를 것이 없어요. 법계의 실상을 바로 보고 바로 증득하는 공부가 된다면 방편에 끄달릴 필요는 없잖아요.
숭산:‘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배는 버려야한다’는 말이 생각나는군요. 우리의 공부도 강을 건너는 것이지 배를 타는 것에 목적이 있는건 아니잖습니까. 스님 우리나라는 여러 종교들이 난립해 포교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데 스님 생각에 불교의 포교는 잘되고 있다고 보십니까.
석주:외국에 나가 제일 포교를 많이 하신분이 그런 질문을 하니 뭐라 할말이 없군요. 우리나라 불교의 포교는 점차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포교승과 포교법사가 다니면서 포교하는 것만 포교가 아니지 않습니까. 불교가 여러 방면으로 발전하는 것 그게 다 포교거든요. 요새 조계사 앞에만 나가봐도 얼마나 책이 많습니다. 불교책들이 수없이 나오는 것이 포교가 잘 된다는 증명일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전에야 참 책도 몇권 없었어요. 용성스님이 몇가지 책을 펴내 읽혔고 한자에 음만 달아 놓은 송주들이 책으로 만들어져 읽히던 시절에 비하면 요새는 불교책의 풍년이 아닙니까. 글 모르는 사람도 없는 시대인데 이만하면 포교도 잘 된다고 봐야지요. 역경불사도 매우 잘 되고 있는데 보다 활발히 진행되어야 합니다. 역경은 경전의 의미만 한글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고 그 가르침의 정신마저 고스란히 전할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역경에 능한 인재를 많이 길러야 합니다. 외국의 포교는 어떻
습니까.
숭산:외국은 어렵습니다. 언어와 문자의 벽을 뛰어 넘는 것부터 서로의 습성과 사는 방법이 다른 것을 융화 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래도 불법은 마음의 법이라서 조금만 마음이 열린 사람이면 쉽게 선(禪)공부에 매력을 느끼고 불법에 귀의 합니다. 여러나라에 홍법원을 세웠지만 다 마음의 공부를 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석주:서울의 각황사(조계사)나 대구 보현사 강릉포교당 등이 포교를 주로하던 시절에 비하면 얼마나 발전된 겁니까. 한국불교가 국내외에서 커져가고 있잖아요. ‘1면1사 운동’까지 거론되던 때도 있었잖습니까. 어린이 합창단의 경우도 그래요. 내가 칠보사에서 어린이 합창단을 할 때만 해도 반대가 많았어요. 그런건 해서 뭐하느냐는 것과 말하기 우습지만 애들이 무슨 시주를 하는 것도 아니고 시끄럽기만 하다는 이유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나는 절 문 앞에다 애들을 모아 놓고 노래를 부르게 한 적도 있답니다. 거기에 비하면 요새는 거의 모든 절에 어린이 법회가 있고 합창단도 있거든요. 아예 어린이 교육시설을 운영하는 절도 늘어나고 있으니 얼마나 반가운 일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불교가 나름대로 잘 홍포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요즘은 개신교가 더 활발히 전도를 하는 것 같아요.
숭산:사실입니다. 불교의 포교가 잘 되려면 조직이 잘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승가는 승가대로 재가는 재가대로 일사불란한 조직을 가져야 합니다. 우선 스님들 조직이 강화 되어야죠. 다시말해 법계(法階)가 바로 서야 한다는 겁니다. 초심자나 노장님들이나 다 같이 여겨져서야 되겠습니까. 수행의 정도와 깊이에 따라 법계를 철저히 품수하고 그에 따른 기강도 확고히 세워야 합니다. 신도조직도 지금처럼 중앙에서만 몇사람이 움직이는 체계로는 안됩니다. 전국적인 규모의 탄탄한 조직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불교계의 조직이 새로이 정비되고 시대의 변화에 부응해가는 수행과 교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앞날에 대한 희망도 없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석주:그렇게 잘 된 조직이 운영되면 개인의 수행뿐 아니라 대중의 수행도 훨씬 잘 되겠지요. 그래야 불교도 바로 서고 좋은 세상도 빨리 오지 않겠습니까.
숭산:스님께서 성불이란 말씀을 하셨지만 우리시대 중생들은 정말 성불의 큰 원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시대나 어느 중생이나 다 그렇겠지만 성불의 서원이 절실하기는 바로 지금이 아닌가 싶습니다. 선(禪)에서야 견성을 하면 거기서 다 끝난다고 하지만 그런 경지에 이르기를 발심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석주:교학적 입장에서는 견성이 곧 성불이라고는 하지 않아요. 견성을 했어도 3아승지겁을 더 닦아야 성불을 한다고 하거든요. 더 닦는다는 것은 곧 보살행인데 이 세상은 그 보살도를 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숭산:그렇게 해서 온 중생이 평상심을 누리게 되면 일체의 성불이 가능해 지겠지요. 평상심이란 ‘나’라는 것을 없애는 것 아닙니까. 내가 없는 곳의 모든일이 도가 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평상심이 도라는 말이 나온 것인데 내가 있다고 나를 내세우니까 모든 일에 끄달려 집착을 낳고 중생계를 벗어 던지지 못하는 겁니다. 우주는 그 자체가 진리인데 그 속에 살며 진리를 모르는 것도 나를 내세우는 탓 때문입니다. 시간과 공간이 있는 곳은 속세이고 속세에서는 모든 것을 실체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진리를 진리 그대로 받아들여 실체를 벗어난 곳이 실상의 세계이며 그 실상을 바로 보면 실용의 세계를 펼 수 있는데 바로 이 실용의 세계를 펴는 것이 스님께서 말씀하신 보살행의 세계가 아니겠습니까. 진리를 수용하되 혼자하면 소승이고 대중에 회향하면 대승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진리로 남을 이롭게 하면 보살의 세계가 이뤄지는 것을 모두 명심해야죠.
석주:생각이 현재를 낳고 고통을 낳는 것이니 그걸 뚝 잘라내고 진리의 몸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려는 노력이 모든 불자들에게 필요합니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어서 수행에도 여러 방편이 있고 계율도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계율을 벗어나서 이룰 수 있는 도란 있을 수 없지만 그 계율에 집착을 하는 것도 바람직 스럽지 못하거든요. 계율에 집착하면 그 본래의 뜻마저 잃어버리기 쉬우니까요.
숭산:그렇습니다. 계율의 문제를 두고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지만 부처님의 말씀은 절대불변의 진리 그 자체입니다.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걸 바꿔야 한다느니 어쩌느니 하기에 앞서 그 본래의 의미를 잘 알고 공부의 바탕으로 삼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수행자가 길을 가다가 물을 만나 한 수행자가 건너편의 여자를 업어 건네 주었습니다. 한참을 가다가 다른 수행자가 “자네는 계율을 어겼으니 함께 갈 수 없네”라고 하자 “자네는 아직도 그 여자를 업고 있구먼”이라 답해서 깨우쳤다고 하지 않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계율이라는 것도 잘못 알면 집착이 된다는 가르침이 아닐까요. 시대가 변해도 그 시대마다 불교의 자세가 오롯이 서있으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석주:우리나라의 불교도 그런 면에서는 반성해야할 것이 많아요. 일제때도 육식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철저히 안하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각자의 노력과 정진력에 달린 것이 계율의 문제입니다. 무엇을 허용한다 안한다 하는 제도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나는 승가의 육식은 절대 안된다고 생각해요.
숭산:의제개혁을 두고 요즘 의견이 많다고 합니다. 중국의 경우 승단의 복식은 매우 정확한 구분을 가졌었지요. 아까 얘기한 법계의 구별이 옷으로 매우 엄격히 구분 되었던 것인데 우리도 우리의 전통이 있으므로 그 전통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전통을 지키는 일 만큼이나 시대의 발전에 따라 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요새는 정보화 시대라서 정보교환이 눈 깜짝할 사이에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의 변화에 따르는 것도 우리불교의 자세를 다잡는 일이겠습니다. 여기 무심스님의 경우 방에서 컴퓨터로 세계에 퍼져 있는 홍법원과 의견을 나누고 지시사항을 전하고 그쪽의 일들을 전해 듣기도 합니다. 불교계도 이런 장치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고 이미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석주:컴퓨터야 포교하기에 썩 좋은 것이라할 수 있지요. 앞으로는 불교의 세계화가 컴퓨터 포교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컴퓨터를 통해 뭔가를 알리려고만 해서는 안되고 그걸 통해 세계인이 뭘 요구하는가를 알아서 만족시켜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역시 컴퓨터 불교가 할 일이겠지요. 올 가을은 북한의 무장공비 때문에 매우 걱정스러운데 왜 이런 일이 자꾸 일어나는지…
숭산:제가 보기에 북한은 현재 스스로 혼돈의 지경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원론적인 공상당의 입장과 군사력을 장악한 실력파 그리고 페밀리 파워의 갈등이 뒤범벅이 되어 있다는 견해입니다.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피해를 입는 것은 남한의 자유민주주의 뿐입니다. 저렇게 군사도발을 하는 일이 어제오늘 저질러진 것도 아니고 하루이틀에 끝날 것 같지도 않으니까요. 따라서 우리 정부도 보다 정확하고 폭넓은 정보체계를 갖고 항상 만약을 대비해야 합니다. 미국만을 믿고 있을 때가 아니거든요. 전국민의 대비태세가 필요합니다. 분단의 현실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보정신이 강조 되기 전에 사회의 도덕적인 타락이 더 큰 걱정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석주:나는 그 원인을 두가지로 봐요. 잘못된 교육과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외면이 그것입니다. 학교교육이 인성을 바로하는데 치우치지 않고 출세하는 기계 만드는 쪽으로 치우친 잘못이 오늘의 사회 범죄를 만든 것입니다. 종교인들의 반성도 필요해요. 전법의 현장이 넓어 질수록 사회가 평화롭고 정의로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거든요. 뭔가 잘못 되었다는 증거가 아닙니까. 아까 말한대로 불교는 보살행의 종교인데 과연 오늘의 불교는 얼마나 보살행을 하고 있는지 돌이켜 봐야 합니다.
많은 복지 시설이 운영되고 있지만 아직은 좀 부족해요. 바른 복지 사업은 시설을 운영하는데 있지 않고 ‘나’를 비우고 보살행을 하는데 있어요. 그 보살행의 현장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어야 하고요.
숭산:종단이 스님들의 특기를 살려서 그 특기대로 활동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 될 겁니다. 뭘 하든 아상에 집착하지 않고 공부를 겸한 교화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 스님들의 활동이 커지면 사회의 병폐도 저절로 치료가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사회의 도덕 윤리적 타락은 휴전선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이미 우리나라의 평화는 타락된 평화라 생각합니다.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국민의 정서마저 외국의 좋은 것을 우리 것으로 융화해 내기 보다는 좋지 못한 풍속을 너무도 빠르게 받아 들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국민적인 반성과 새로운 각오가 필요하고 거기에 불교가 큰 힘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석주:그렇지요. 호국불교란 외세의 침략에 맞서는 것만이 아니고 국민의 바른 정신을 이끌어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실현시키는데서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요.
숭산:스님 오늘 문득 찾아 와서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석주:내가 할 말을 먼저 하시는군요.
(두 대덕은 조실당을 나와 큰법당 앞을 거닐며 잠시 가을 풍광을 쏘이고 총총히 작별의 합장을 했다.)
2004-11-30 오후 5:44:00
수행-포교 둘 아닌 하나 ‘깨달음 향한 길’
가을이 익어가고 있었다. 서울 삼청동 칠보사 조실당의 열려진 창가에서 석주스님은 비스듬히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노사(老師)의 독서 내용은 무엇일까.
숭산 스님.
“스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숭산스님은 석주스님께 예를 표하고 오랜만에 손을 맞잡았다.
“어서 오시오.”
“이 아이는 제 미국인 제자인데 무심이라 합니다.”
넙죽 삼배를 올리는 벽안의 젊은 선승을 석주스님은 짧지만 긴 여운의 인사로 맞았다.
“무심(無心)이라… 무심해야 공부가 되는 법이지.”
국내에서 한글경전보급과 어린이 포교에 힘써 온 석주스님과 해외를 돌며 전법의 행로를 넓혀 온 숭산스님.
두 대덕(大德)의 만남은 순탄치 못했던 현대 한국불교사를 지켜 오며 차곡차곡 쌓아 이룬 수행의 결정(結晶)을 활인(活人)의 검(劍)으로 벼르는 자리였다. 그러나 그 자리는 부드럽고 온화했다. 곤궁을 양식삼아 공부에 매진하던 시절에의 회상,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사에 대한 근심과 희망을 나누는 지혜의 법석이었다. 중추가절의 넉넉함을 수미산의 한가위 달로 띄워 올리는 두 대덕의 법담은 서로의 건강을 물으며 시작됐다.
숭산:스님, 건강은 어떠십니까?
석주:하루 세끼 끼니 잘 챙기고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책 읽고 이런저런 행사에도 나가고… 나야 이렇게 살지 뭐.
숭산:건강하신 법체를 뵈오니 기쁩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찾아 뵙게 되어 면목 없습니다.
석주:자주 만나는 것이 대숩니까. 서로 할 일 잘하면 되는 것이지. 스님이야 한국불교를 세계에 전하는 최고의 수행을 하시는 분인데. 종종 소식은 들었어요. 참으로 장하고 훌륭하십니다.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 포교하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숭산 스님과 대담하는 석주 스님(오른쪽).
숭산:정화시절에 스님의 뒤를 이어 종무를 걱정하던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석주:그때 스님이 애를 많이 썼지요. 그런 시대적 혼란과 노력들이 오늘을 만들어낸 것 같아요.
숭산:그런데 요새는 세상이 워낙 빨리 변해서 모든게 정신 없이 돌아가요. 이런 모습이 오히려 분명한 중생계의 실상이긴 하겠지만 말입니다. 스님께서도 젊으셨을때 여러 절을 다니시며 공부하셨는지요.
석주:나야 어려서부터 선학원에 살다가 범어사에서 나이 스물에 계를 받고 한 6년 공부하고 다시 선학원으로 와서 오래 머물렀지요. 그때 적음스님이 원장이셨는데 나는 그 스님의 일을 많이 거들었어요. 참, 숭산스님이 수덕사에서 공부를 하셨잖아요. 나도 수덕사의 정혜도량에서 밥을 한 철 먹은 적이 있어요. 만공 혜암 효봉 금봉 고봉스님들이 다 살아 계실때였어요.
숭산:저도 오래전에 그런 얘길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들어가기 조금 전의 일인 것 같군요.
석주:(눈을 지긋이 감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참 그 시절이 좋았지. 정말 좋은 시절이었어. 그때는 정말 공부 잘 하는 스님들이 많았거든요.
숭산:공부만 잘 했습니까. 일도 잘 했지요. 일도 공부였고 하루에 무와 잡곡으로 쑨 멀건 죽 한그릇 먹는 것도 공부였지만 말입니다. 정말 배가 많이 고팠어요. 그런 대중 생활에서는 베게도 없어서 목침 하나를 놓고 다투는 경우마저 있었습니다.
석주:그때야 일을 하지 않으면 누가 죽 한 그릇이라도 줬나요. 내가 정혜사에 있을때 효봉스님이 입승을 보셨고 나는 그 스님에게 무서운 감명을 받았어요. 아, 효봉스님이 말이지, 섣달 그믐께였는데 목 아래에다가 칼을 세워 두고 혼자 정진을 하시더란 말이예요. 참 무서운 열정이셨어요. 그것도 하루가 아니라 이레를 그렇게 용맹정진 하시는데 나는 아무 말도 못했어요.
숭산:영운스님이란 분은 한 겨울에도 문을 열어 놓고 참선을 하셨잖아요. 추위를 못이기면 자기를 이길 수도 없다면서 말입니다.
석주:그랬지요. 참 공부를 열심히 하는 시절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모두 한가락씩 특기(?)가 있었어요. 그런 얘기는 스님도 다 잘 알고 있을겁니다.
숭산:알다마다요. 거 왜 혜암스님은 남의 칭찬을 잘 해서 ‘칭찬제일’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석주:맞아요. 혜암스님이 ‘칭찬제일’이었지요. 그 분은 무조건 남을 칭찬하며 일생을 사셨는데 고암스님도 칭찬에는 매우 후하신 분이었어요. 그 스님들은 칭찬하면 죄인도 그 죄를 뉘우친다고 했어요. 그런데 혜암스님이 절대 칭찬하지 않는 것이 있었어요. 공부를 점검할 때, 그러니까 누구하고 법담을 하다가 틀린 말이 나오면 용서를 안했어요. 한번 걸리면 두고두고 까는데 참 매서운 면모였어요. 숭산:청담스님은 ‘인욕제일’이었습니다. 참 잘 참으시는 분이었어요. 누가 뭐래도 절대로 화를 내지 않으셨지요. 인욕에 큰 도가 베어 있음을 청담스님은 많이 보여 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 스님은 누가 찾아가서 이러니저러니 흉을 잡고 욕을 해도 묵묵히 다 듣고 계시다가 끝에 한마디 툭 던지시는데 그게 “스님 왜 그러십니까?”였지요. 그러면 흥분해서 떠들던 사람이 오히려 부끄러워지기 일쑤였고요.
(두 대덕은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석주:춘성스님은 욕을 잘하기로 일등이었잖아요. 참 욕 한번 걸팡지게 잘 했지요. 그런데 그 스님의 욕은 더러 욕이 아니라 법문 같았다니까요. 공부를 잘 하는 스님이 많은 시절엔 그렇게 재미있는 일화도 많은가 봅니다. 설봉스님이나 ‘방울스님’이라 불렸던 홍도스님도 그렇고요. 그러고 보니 우리 숭산스님도 해외전법의 제일인자가 아니십니까.
숭산:그럼 석주스님께서는 어린이 포교와 역경의 제 일인자이십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치열한 공부와 무애의 법력을 보이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걱정이 많은데요. 스님, 사실 이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닙니까?
석주:시대가 바뀐 것 뿐이지 부처님 법이 바뀐 것은 아니거든요. 지금도 눈에 안보이게 용맹정진 하는 스님이 한둘이 아니예요. 우리가 다 가고 난 뒤에도 큰 스님들이 얼마든지 나올 겁니다.
숭산 스님.
숭산:그런데 듣기민망하게도 요새 공부하는 스님이 없다는 말들을 합니다. 세상도 그렇지만 수행환경도 많이 변했으니까요.
석주:세상이란 언제나 변하는 것이지요. 요새는 대중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도시로 나와 포교당을 운영하는 스님들도 많고 혼자 토굴을 마련해 정진하는 스님들도 많아요. 그게 다 공부하는 환경이 변하는 과정 아닙니까. 이런걸 두고 좋다 나쁘다를 구별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어디건 어떤 환경에서건 자기가 수행이라 생각하고 그것이 부처님 법에 어긋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니까요. 다만 스스로 거스름이 없이 불법을 닦고 대중을 포교하는 일에 매진해야 겠지요. 수행과 대중교화는 따로 두고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수행 가운데 포교가 있고 포교하는 가운데 수행을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숭산:그러니까 우리나라 불교는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는 특징을 갖는다는 것 아닙니까. 참선이건 염불이건 사경이건 그것이 자기수행과 교화의 방편으로 잘 쓰여지면 되는 것입니다.
석주:우리나라 불교를 통불교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겁니다. 원효스님이 그랬고 성철스님도 “종단의 이름을 바꿔야 된다면 통불교라고 해야한다.”고 말했었지요. 법계의 진리를 체득하고 중생을 교화하는 것은 부처님 재세시나 다를 것이 없어요. 법계의 실상을 바로 보고 바로 증득하는 공부가 된다면 방편에 끄달릴 필요는 없잖아요.
숭산:‘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배는 버려야한다’는 말이 생각나는군요. 우리의 공부도 강을 건너는 것이지 배를 타는 것에 목적이 있는건 아니잖습니까. 스님 우리나라는 여러 종교들이 난립해 포교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데 스님 생각에 불교의 포교는 잘되고 있다고 보십니까.
석주:외국에 나가 제일 포교를 많이 하신분이 그런 질문을 하니 뭐라 할말이 없군요. 우리나라 불교의 포교는 점차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포교승과 포교법사가 다니면서 포교하는 것만 포교가 아니지 않습니까. 불교가 여러 방면으로 발전하는 것 그게 다 포교거든요. 요새 조계사 앞에만 나가봐도 얼마나 책이 많습니다. 불교책들이 수없이 나오는 것이 포교가 잘 된다는 증명일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전에야 참 책도 몇권 없었어요. 용성스님이 몇가지 책을 펴내 읽혔고 한자에 음만 달아 놓은 송주들이 책으로 만들어져 읽히던 시절에 비하면 요새는 불교책의 풍년이 아닙니까. 글 모르는 사람도 없는 시대인데 이만하면 포교도 잘 된다고 봐야지요. 역경불사도 매우 잘 되고 있는데 보다 활발히 진행되어야 합니다. 역경은 경전의 의미만 한글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고 그 가르침의 정신마저 고스란히 전할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역경에 능한 인재를 많이 길러야 합니다. 외국의 포교는 어떻
습니까.
숭산:외국은 어렵습니다. 언어와 문자의 벽을 뛰어 넘는 것부터 서로의 습성과 사는 방법이 다른 것을 융화 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래도 불법은 마음의 법이라서 조금만 마음이 열린 사람이면 쉽게 선(禪)공부에 매력을 느끼고 불법에 귀의 합니다. 여러나라에 홍법원을 세웠지만 다 마음의 공부를 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석주:서울의 각황사(조계사)나 대구 보현사 강릉포교당 등이 포교를 주로하던 시절에 비하면 얼마나 발전된 겁니까. 한국불교가 국내외에서 커져가고 있잖아요. ‘1면1사 운동’까지 거론되던 때도 있었잖습니까. 어린이 합창단의 경우도 그래요. 내가 칠보사에서 어린이 합창단을 할 때만 해도 반대가 많았어요. 그런건 해서 뭐하느냐는 것과 말하기 우습지만 애들이 무슨 시주를 하는 것도 아니고 시끄럽기만 하다는 이유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나는 절 문 앞에다 애들을 모아 놓고 노래를 부르게 한 적도 있답니다. 거기에 비하면 요새는 거의 모든 절에 어린이 법회가 있고 합창단도 있거든요. 아예 어린이 교육시설을 운영하는 절도 늘어나고 있으니 얼마나 반가운 일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불교가 나름대로 잘 홍포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요즘은 개신교가 더 활발히 전도를 하는 것 같아요.
숭산:사실입니다. 불교의 포교가 잘 되려면 조직이 잘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승가는 승가대로 재가는 재가대로 일사불란한 조직을 가져야 합니다. 우선 스님들 조직이 강화 되어야죠. 다시말해 법계(法階)가 바로 서야 한다는 겁니다. 초심자나 노장님들이나 다 같이 여겨져서야 되겠습니까. 수행의 정도와 깊이에 따라 법계를 철저히 품수하고 그에 따른 기강도 확고히 세워야 합니다. 신도조직도 지금처럼 중앙에서만 몇사람이 움직이는 체계로는 안됩니다. 전국적인 규모의 탄탄한 조직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불교계의 조직이 새로이 정비되고 시대의 변화에 부응해가는 수행과 교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앞날에 대한 희망도 없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석주:그렇게 잘 된 조직이 운영되면 개인의 수행뿐 아니라 대중의 수행도 훨씬 잘 되겠지요. 그래야 불교도 바로 서고 좋은 세상도 빨리 오지 않겠습니까.
숭산:스님께서 성불이란 말씀을 하셨지만 우리시대 중생들은 정말 성불의 큰 원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시대나 어느 중생이나 다 그렇겠지만 성불의 서원이 절실하기는 바로 지금이 아닌가 싶습니다. 선(禪)에서야 견성을 하면 거기서 다 끝난다고 하지만 그런 경지에 이르기를 발심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석주:교학적 입장에서는 견성이 곧 성불이라고는 하지 않아요. 견성을 했어도 3아승지겁을 더 닦아야 성불을 한다고 하거든요. 더 닦는다는 것은 곧 보살행인데 이 세상은 그 보살도를 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숭산:그렇게 해서 온 중생이 평상심을 누리게 되면 일체의 성불이 가능해 지겠지요. 평상심이란 ‘나’라는 것을 없애는 것 아닙니까. 내가 없는 곳의 모든일이 도가 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평상심이 도라는 말이 나온 것인데 내가 있다고 나를 내세우니까 모든 일에 끄달려 집착을 낳고 중생계를 벗어 던지지 못하는 겁니다. 우주는 그 자체가 진리인데 그 속에 살며 진리를 모르는 것도 나를 내세우는 탓 때문입니다. 시간과 공간이 있는 곳은 속세이고 속세에서는 모든 것을 실체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진리를 진리 그대로 받아들여 실체를 벗어난 곳이 실상의 세계이며 그 실상을 바로 보면 실용의 세계를 펼 수 있는데 바로 이 실용의 세계를 펴는 것이 스님께서 말씀하신 보살행의 세계가 아니겠습니까. 진리를 수용하되 혼자하면 소승이고 대중에 회향하면 대승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진리로 남을 이롭게 하면 보살의 세계가 이뤄지는 것을 모두 명심해야죠.
석주:생각이 현재를 낳고 고통을 낳는 것이니 그걸 뚝 잘라내고 진리의 몸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려는 노력이 모든 불자들에게 필요합니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어서 수행에도 여러 방편이 있고 계율도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계율을 벗어나서 이룰 수 있는 도란 있을 수 없지만 그 계율에 집착을 하는 것도 바람직 스럽지 못하거든요. 계율에 집착하면 그 본래의 뜻마저 잃어버리기 쉬우니까요.
숭산:그렇습니다. 계율의 문제를 두고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지만 부처님의 말씀은 절대불변의 진리 그 자체입니다.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걸 바꿔야 한다느니 어쩌느니 하기에 앞서 그 본래의 의미를 잘 알고 공부의 바탕으로 삼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수행자가 길을 가다가 물을 만나 한 수행자가 건너편의 여자를 업어 건네 주었습니다. 한참을 가다가 다른 수행자가 “자네는 계율을 어겼으니 함께 갈 수 없네”라고 하자 “자네는 아직도 그 여자를 업고 있구먼”이라 답해서 깨우쳤다고 하지 않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계율이라는 것도 잘못 알면 집착이 된다는 가르침이 아닐까요. 시대가 변해도 그 시대마다 불교의 자세가 오롯이 서있으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석주:우리나라의 불교도 그런 면에서는 반성해야할 것이 많아요. 일제때도 육식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철저히 안하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각자의 노력과 정진력에 달린 것이 계율의 문제입니다. 무엇을 허용한다 안한다 하는 제도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나는 승가의 육식은 절대 안된다고 생각해요.
숭산:의제개혁을 두고 요즘 의견이 많다고 합니다. 중국의 경우 승단의 복식은 매우 정확한 구분을 가졌었지요. 아까 얘기한 법계의 구별이 옷으로 매우 엄격히 구분 되었던 것인데 우리도 우리의 전통이 있으므로 그 전통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전통을 지키는 일 만큼이나 시대의 발전에 따라 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요새는 정보화 시대라서 정보교환이 눈 깜짝할 사이에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의 변화에 따르는 것도 우리불교의 자세를 다잡는 일이겠습니다. 여기 무심스님의 경우 방에서 컴퓨터로 세계에 퍼져 있는 홍법원과 의견을 나누고 지시사항을 전하고 그쪽의 일들을 전해 듣기도 합니다. 불교계도 이런 장치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고 이미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석주:컴퓨터야 포교하기에 썩 좋은 것이라할 수 있지요. 앞으로는 불교의 세계화가 컴퓨터 포교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컴퓨터를 통해 뭔가를 알리려고만 해서는 안되고 그걸 통해 세계인이 뭘 요구하는가를 알아서 만족시켜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역시 컴퓨터 불교가 할 일이겠지요. 올 가을은 북한의 무장공비 때문에 매우 걱정스러운데 왜 이런 일이 자꾸 일어나는지…
숭산:제가 보기에 북한은 현재 스스로 혼돈의 지경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원론적인 공상당의 입장과 군사력을 장악한 실력파 그리고 페밀리 파워의 갈등이 뒤범벅이 되어 있다는 견해입니다.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피해를 입는 것은 남한의 자유민주주의 뿐입니다. 저렇게 군사도발을 하는 일이 어제오늘 저질러진 것도 아니고 하루이틀에 끝날 것 같지도 않으니까요. 따라서 우리 정부도 보다 정확하고 폭넓은 정보체계를 갖고 항상 만약을 대비해야 합니다. 미국만을 믿고 있을 때가 아니거든요. 전국민의 대비태세가 필요합니다. 분단의 현실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보정신이 강조 되기 전에 사회의 도덕적인 타락이 더 큰 걱정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석주:나는 그 원인을 두가지로 봐요. 잘못된 교육과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외면이 그것입니다. 학교교육이 인성을 바로하는데 치우치지 않고 출세하는 기계 만드는 쪽으로 치우친 잘못이 오늘의 사회 범죄를 만든 것입니다. 종교인들의 반성도 필요해요. 전법의 현장이 넓어 질수록 사회가 평화롭고 정의로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거든요. 뭔가 잘못 되었다는 증거가 아닙니까. 아까 말한대로 불교는 보살행의 종교인데 과연 오늘의 불교는 얼마나 보살행을 하고 있는지 돌이켜 봐야 합니다.
많은 복지 시설이 운영되고 있지만 아직은 좀 부족해요. 바른 복지 사업은 시설을 운영하는데 있지 않고 ‘나’를 비우고 보살행을 하는데 있어요. 그 보살행의 현장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어야 하고요.
숭산:종단이 스님들의 특기를 살려서 그 특기대로 활동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 될 겁니다. 뭘 하든 아상에 집착하지 않고 공부를 겸한 교화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 스님들의 활동이 커지면 사회의 병폐도 저절로 치료가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사회의 도덕 윤리적 타락은 휴전선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이미 우리나라의 평화는 타락된 평화라 생각합니다.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국민의 정서마저 외국의 좋은 것을 우리 것으로 융화해 내기 보다는 좋지 못한 풍속을 너무도 빠르게 받아 들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국민적인 반성과 새로운 각오가 필요하고 거기에 불교가 큰 힘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석주:그렇지요. 호국불교란 외세의 침략에 맞서는 것만이 아니고 국민의 바른 정신을 이끌어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실현시키는데서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요.
숭산:스님 오늘 문득 찾아 와서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석주:내가 할 말을 먼저 하시는군요.
(두 대덕은 조실당을 나와 큰법당 앞을 거닐며 잠시 가을 풍광을 쏘이고 총총히 작별의 합장을 했다.)
2004-11-30 오후 5:4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