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듣는 숭산 선사 법문 3

-“참모습 못보는데서 번뇌 시작됩니다” -
- IMF시대 거품 빼고 과욕 버려야 회생 -
-“근원캐보면‘春日鷄聲’서도 불법만나”-





온 나라가 어수선 합니다. 누구든 입만 열면 경제 얘기를 합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목표를 잘못 세웠던 탓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을 가다듬지 못한채 너무 거창하게 세계화라는 목표를 세웠고 그 목표에 이르는 길을 잘못 걸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미궁을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이 좀 풍요로와 지니까 우리도 서구 선진국의 흉내를 내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과욕이 생겼습니다. 국민소득 1만불이라는 수치가 과욕의 도화선이 되었고 거기서 붙은 불은 소비와 향락의 잿더미를 안겨준 것입니다. 이제 참회할 때입니다.

국민소득 1만불 시대라는 수치상의 발전이 우리의 현실적인 풍요라고 믿은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잘사는 나라의 뒤꽁무니만 허겁지겁 따라다니다 보니 정부가 발표하는 수치들이 국민의 행복을 가늠하는 척도인양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착각을 한 국민이나 그렇게 수치를 앞세워 치세의 공을 선전한 정부 관료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오늘의 이 경제대란은 누구 한사람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의 착각과 과욕에서 나온 것이니까요.

발을 땅에 두지 않고 허공에 목표를 매달아 둔채 정신없이 헤매다가 이제서야 국제통화기금(IMF)이라는 철퇴를 한방 맞은 꼴입니다. 아픕니다. 정신이 아뜩합니다. 이제 빨리 정신을 가다듬고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들여다 보아 우리의 참모습을 만들어 내는 일이 중요합니다.

‘땅에 넘어진 사람은 땅을 딛고 일어난다’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난세야 말로 호시절’이란 말씀도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면 넘어진 땅이 재기의 토대가 되고 마음만 흐트리지 않으면 난세를 빌어서 정말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힘들다’ ‘죽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며 시절만 탓하다보면 정말 힘들어 죽고맙니다.
나는 청년시절에 일본 경찰에 잡혀 감옥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평양서 학교를 다니다가 느닷없이 일본 경찰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죄라야 일본인 학생들을 때려주고 골탕먹이는 정도지요. 그런데 감옥까지 들어가다니 정말 막막한 일이었습니다. 과학에 관심이 많던 내가 당시로선 구하기도 힘들고 일반인이 소지해서는 안되는 부속품들을 좀 모아갖고 있었던 것이 독립군을 돕는 것으로 오해되어 치른 옥고였지만 그곳에서 나는 중요한 것을 배웠습니다.



석주 스님(오른쪽)과 환담하는 숭산 스님.

어떤 경우에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였습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옛말을 실감했던 것이지요. 일본인 형사들은 아예 나를 독립운동하는 학생으로 표적을 정해두고 심문을 했습니다. 그들의 질문 한마디를 어떻게 받아 넘기느냐에 내 삶의 방향이 달려있는 것이었습니다. 감옥에서 쌀 암매상이나 고기 암매상들이 “어떤 걸 물어도 정신을 차리고 곰곰히 생각해보고 대답하라”고 조언을 했기에 나는 내가 어떤 일에 휩쓸려 있고 나의 대답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어린 나이에 감옥과 일본 형사라는 환경에서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정신을 바로 갖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운 셈입니다.
우리의 경제가 어려우면 그 어려워진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그 원인을 봐야합니다. 참선 수행법에 관(觀)한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 국민들도 경제대란의 원인을 제대로 관해야 합니다. 머리로 계산해서 알아내는 것은 관이 아닙니다. 분석이고 추산일 뿐입니다. 관이란 마음의 잣대, 다시말해 우리의 정신 상태까지를 철저히 들여다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오늘날 우리가 받고있는 고통의 근원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목표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섣불리 세계화라는 거창한 구호를 목표로 삼은 과거의 허세를 걷어내야 합니다. 요즘 거품을 뺀다는 말이 유행입니다. 우리 경제가 거품위에 떠 있다가 이제야 땅으로, 우리의 현실로 그 발을 붙이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듯이 우리들 정신 속의 거품도 속속들이 빼내야 합니다. 세계화가 아니면 어떻습니까.
나는 세계화 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한국화라고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경제, 문화, 사상은 급변하는 사회 정치 경제질서 속에서 국적을 잃어 버렸습니다. 우리민족이 태어나 살아온 땅인 이 한국이란 국적을 잃어 버리고 서양식에만 젖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화도 못한채 세계화를 넘보다가 이렇게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만 것입니다.

한국화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문화적 뿌리, 우리의 정신사상적 뿌리를 올바르게 세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뿌리에다가 현대화의 정치 경제 문화를 접목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지난 30년간 세계 30여개국에 160여개의 홍법원과 선센터를 세우며 불법의 세계화를 위해 뛰었습니다. 내가 무슨 사업가여서 세계에 그렇게 많은 사무소를 설치하고 외화를 벌었으면 참으로 국익에 보탬이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수행자로서 돈이 아닌 정신으로 국익에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아상을 보이는 것 같지만 여러분을 이해시키기 위해 드리는 말씀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그것이 가능했던 원인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66년 일본의 수도 동경에 홍법원을 세운 이후 대만과 미국 등 서구 유럽에 차례로 홍법원을 세워 그곳 현지인들에게 선수행을 가르칠 수 있었던 원인. 여러분은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한국선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르치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철학이었거나 스피노자의 철학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내가 가르치는 것이 과학 기술 분야거나 정치경제학이었어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나는 한국의 선수행법을 가지고 해외를 다니며 전법을 하는 수행자일 뿐이었습니다.

한국의 선이 서구 유럽에는 생소한 것이었고 그들의 황폐한 정신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기에 그렇게 긴 세월간 세계를 무대로 전법의 길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물론 요즘도 그 길은 이어지고 있고 나를 인연으로 한국에 와서 한국스님들과 똑같이 수행하는 눈푸른 스님들도 많습니다.

우리는 우수한 민족입니다. 우리에게도 서구유럽인들이 가진 정신적인 고급문화, 과학적인 아이디어가 충분히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제의 통치와 동족상잔의 전쟁 그리고 서양열강의 군사정치 논리에 정신을 잃었었습니다. 미처 그 정신을
찾기도 전에 자본주의의 달콤한 맛에 빠져 또 한번 정신을 잃어 버렸던 것 입니
다. 그러다보니 한국화, 한국적인 것을 챙기지도 못하고 세계화의 깃발을 달고 높
히 날아가는 꿈만 키웠던 것입니다.


세상의 무슨 일에든 목적과 목표가 있습니다. 한 나라의 앞길도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IMF를 극복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해서는 안됩
니다. 그것은 짧은 견해일 뿐입니다.


아까 땅에 넘어진 사람은 땅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지금 당
장 우리의 목표는 IMF를 빌어서 정말 한국적인 기업, 진실로 한국적인 경제구조
를 창출해 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굵고 깊은 뿌리가 있는 경제대국을 세워
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당장의 일이 급합니다. 외화를 벌어야 하고 소비를 줄여야
합니다. 그러나 목표는 보다 더 멀고 높은 곳에 두어야 합니다. 터무니 없이 높게
목표만 세우라는 것이 아니라 ‘첫발을 내디디며 다음을 준비하는’ 마음을 가져
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교를 믿는 데도 먼저 그 목적을 바로 알고 갈길을 잘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
다. 불교를 믿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다들 아시는대로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무
엇을 깨닫는 겁니까. 이렇게 이 세상에 와서 살다가는 이 ‘나’라는 것이 무엇인
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옛날 한 스님이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불법입니까(如何是佛法)?”

“봄날 닭우는 소리이니라(春日鷄聲).”


도대체 이게 무슨 말입니까. 불교가 무엇이냐고 묻는데 봄날 닭우는 소리라니. 봄
날에 닭이 우는 소리가 어떻게 불법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봄날 닭우는
소리를 알면 인생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고 했잖습니까. 닭 우
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누가 그 소리를 들었나요. 내가 들었습니다. 무엇으로 들었
는가요. 귀로 들었습니다. 그럼 죽은 사람의 귀도 뚫려 있는데 그 죽은 사람도 들
을 수 있을까요. 없겠지요. 그럼 나는 무엇으로 봄날 닭의 울음 소리를 들었습니
까. 그 소리를 들은 나는 과연 무엇이란 말입니까.


자, 이렇게 자기의 근원을 캐 묻고 또 캐 묻는가운데 우리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
습니다. 불교를 봄날 닭우는 소리라 해서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는 이치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닭울음 소리에도 불법의 적적대의(的的大義)가 들어 있는 겁니다.
익히 들어 본 것이지만 선문답을 더 들어 봅시다.


어떤 스님이 동산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如何是佛)?” “삼
서근이니라(麻三斤).” 또 어떤 스님이 운문스님께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부처
입니까(如何是佛)?” “마른 똥 막대기니라(乾屎궐).” 불교를 묻는데 이런 괴상한
답이 나올 수 있을까요. 어떻게 부처를 똥막대기에 비유한다는 겁니까. 모를 일입
니다. 모른다는 것은 그 말을 한 놈이나 듣는 놈이 다 모른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모르느냐. 그 말한 것, 부처나 똥막대기 마삼근을 모른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대화하는 너와 나의 마음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또 무엇이냐. 그것은 곧 부
처입니다. 마조스님의 유명한 공안이 있습니다.


어떤 스님이 마조스님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如何是佛)?” “마음
이 곧 부처니라(心卽是佛).” “어떤 것이 마음입니까(如何是心)?” “부처가 곧
마음이다(佛是卽心).” 마음과 부처는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부처이고
부처가 곧 마음이란 것인데 문답은 그렇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부처냐고 다시 물어 보는데 그때는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
佛)라고 합니다.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닌 것, 그것은 무엇입니까. 집착이 없어서
부처에게 의지하지도 않고 마음에 매달리지도 않는 곳에서 부처를 이룬다는 뜻입
니다.


이렇게 말로 하면 장난 같기도 하고 도무지 헷갈려 이해가 가지 않을 것입니다.
선 공부하는 이들에게 기본이 되는 이 화두들을 들어 설명하는 것은 불교를 쉽게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묻는 말은 한결 같습니다. “무엇이 부처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대답은 가지각색입니다. 말로 글로 이름지어진 것에 집착해서는 그 도리를
절대 알지 못합니다. 태양을 일본사람은 ‘다이요’라 부르고 미국 사람들은
‘Sun’이라 부릅니다. 그렇다고 태양의 본질이나 그 빛이 변하는가요.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이라 부르던 상관없이 태양은 그렇게 떴다 집니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인간이라는 ‘나’를 비롯해 모든 사물의 진실, 그 본래의
모습입니다. 진실된 모습, 참 모습을 보지 못하고 섣불리 이름을 붙여 버리는데서
우리의 번뇌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불교의 목적이 깨달음을 얻는 것이라면 무엇을 깨달을 것인지 어떻게 깨달아야
하는지, 깨달은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장서방이 장에 가니 나도 간다는 식으로 불교를 믿으면 번뇌의 그늘만 더 커지는
겁니다.

요즘의 경제위기도 우리가 우리의 본질, 우리 나라의 현실을 잘 들여다 보지 못하
고 다른 나라가 가는 길이 위대하게만 보여서 무작정 그 길을 따라 가다가 만난
막다른 길인 것입니다. 옛 선사들이 끊임없이 “무엇이 불교인가”를 물었듯이 현
대인들도 끊임 없이 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현대에 맞는 불교의 실체가 보일 것입
니다. 진리를 향한 구도심이 없는 세상은 경제, 정치, 도덕, 문화도 없습니다. “무
엇이 불교입니까?”라고 묻듯 “무엇이 정치입니까?” “무엇이 경제입니까?”라
고 물어 봅시다. 오늘의 어려움이 극복될 것입니다.

정리=임연태 기자

2004-11-30 오후 5:54:00
2004/11/30 16:58 2004/11/30 16:58

다시 듣는 숭산 선사 법문 2

“세계는 한송이 꽃이예요”

우리의 좋은 것은 반드시 지키고 남의 좋은 것은 대범하게 수용
과학과 지식만으로 인류 책임질 수 없어 인간성 회복 시급해요



숭산 스님.

1970년대 후반, ‘지구촌’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세상에 얼굴을 드러낼 때만 해도, 그것은 그리 실감나는 말이 아니었다. 아주 먼 훗날의 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의 들머리에 선 지금, ‘지구촌’이라는 말은 ‘세계화’라는 말로 옷을 바꿔 입고 우리 눈앞에 현실로 다가왔다.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정보 통신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이루어낸 결과이다. 인터넷의 등장이 1980년대의 중반이고 보면, 불과 15년의 세월이 인류의 지난 몇천년을 능가하는 문명사적 전환을 이끌어낸 것이다. 이제 ‘세계화’는 지향해야 할 목표가 아니다. 이미 세계화된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고민할 바가 있다면, 19세기의 가치와 20세기의 시스템과 21세기의 비전이 혼재한 상황에서 ‘세계화’된 ‘세계’가 요구하는 ‘우리 다움’을 추스리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것을 알아 보기 위해 북한산 자락의 화계사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미 30여년 전부터 한국 선불교의 세계화를 실현하고 있는 숭산 큰스님을 만나 뵈었다.


― 큰스님께서는 ‘세계화’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인 1966년부터 일본 홍법원의 개설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에 한국 선불교를 전파하시고 있습니다. 특별한 동기나 원력이 있었는지요. ▲ 일찍이 만공 스님께서 수덕사에 계실 때 ‘세계일화(世界一花)’라는 말을 남기셨어요. ‘세계는 한 꽃’이라는 뜻인데, 세계의 실상을 이보다 더 멋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사실 세계는 한 송이 꽃이예요. 그리고 나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세계 포교에 나선 겁니다. 만공 스님께서 말로 하신 것을 나는 실천에 옮긴 것이지요.



숭산 스님.

― 지금까지 몇 나라에나 선방을 여셨습니까?
▲ 32개국에 130여개의 선방을 열었어요. 한창 때는 한해에 지구의 두 바퀴를 돌기도 했지요.

― 언어와 문화, 관습 등이 제각기 다른 그 많은 나라에 한국의 선불교를 심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특별한 방편 같은 게 있었을 법한데요. ▲ 상대를 인정해 주는 겁니다. 내 식만을 고집해서는 곤란해요.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그 나라의 법식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각 개인의 근기에 맞추어 설법을 하는 것처럼 각 나라의 풍속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는 특별한 통제와 간섭이 필요없어요. 목탁을 치고 설법 준비를 하기도 전에 미리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기다립니다. 반면에 프랑스 사람들의 경우는 반대예요. 시간이 다 되어야 어슬렁어슬렁 모이는 사람들이 프랑스인이예요. 그게 바로 그 나라 사람들의 국민성이라는 겁니다. 무엇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예요. 이렇듯 나라마다는 각기 다른 특성이 있습니다. 그것을 존중해야만 포교가 가능해요. 그래서 저는 어떤 나라에 가든지 그 나라의 영웅에 대해 험담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 평범 가운데 숨겨진 비범이라 할 방편인 것 같습니다. 이걸 문화인류학자들은 문화적 상대주의라고 말하는데, 세계화된 사회의 국제적 매너 또한 그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가 ‘세계화’하는 모습을 보면 걱정스런 부분이 아주 많습니다. 세계화가 곧 서구화인 양 무분별하게 서구를 뛰좇는 경향이 대표적인 경우인데요, 상당히 걱정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 그 점에 대해서는 좋은 예가 있어요. 한 15년 전쯤의 일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 신도와 미국 신도들이 함께 모여 파티를 했어요. 그런데 아주 재미난 현상이 벌어졌어요. 미국 사람들은 다 젓가락을 사용해서 음식을 먹는데, 한국 사람들은 오히려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음식을 먹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지요. “이건 거꾸로 된 게 아니냐.” 하고 말이죠. 그러니까 미국 법사 한 사람이 뼈 있는 농담을 하더군요. “동양 문화 가운데는 본받을 게 참으로 많은데 동양 사람들은 그것의 중요함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바로 그거예요. 우리 것 중에서 좋은 것은 반드시 지키고 남의 것 중에서도 좋은 것은 대범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동양의 정신과 소중한 전통을 버리고 서구를 따르는 것은 인류 모두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 말씀을 듣고 보니 미국인이 한국의 선불교를 받아들이는 태도에서도 교훈 삼을 일이 있을 것 같은데요? ▲ 미국인들이 젓가락을 사용하는 걸 보세요. 한국 음식을 먹는 데는 젓가락이 훨씬 더 편리하다는 걸 알아차린 겁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선의 정신’이야말로 자신들이 애타게 찾던 삶의 빛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지요.


― 다시 화제를 세계화의 문제로 돌려 보겠습니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화의 실상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불교에서 흔히 말하는 사물의 연기(緣起)적 관계가 국가간의 관계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계화의 이념적 바탕이 ‘탈국가주의’인 것도 그렇고, 실제로 세계화의 진전 양상이 ‘국제적 상호의존성’의 증대라는 측면에서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의 세계화는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자 바람직한 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국가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기도 하고 애당초 국경의 개념이 없는 공해는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인종과 종교 문제로 인한 분쟁이 끊이질 않고 범죄 또한 증가일로에 있습니다. 가히 인류 파멸의 징후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 그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인구의 급속한 팽창에 있어요. 1945년, 그러니까 우리 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되던 해의 세계 인구가 약 20억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60억을 넘었어요. 몇천년 동안 증가한 인구가 20억인데 불과 30년 사이에 40억 가까운 인구가 늘어난 겁니다. 그러다 보니 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이 먹거리예요. 더 중요한 것은 먹을 것의 부족이 아니라 지나침에 있어요. 못살던 시절에는 배고픈 것만이 문제였어요. 고기 한점이라도 먹으려면 명절이나 가능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어때요. 엄밀한 의미에서 살생이 생활화 된 거예요. 불교 신자의 입장에 그 많은 생명들의 윤회와 환생을 생각해 보세요. 인면수심(人面獸心)이 될 수밖에 없어요. 둘째, 구 소련의 붕괴와 함께 이념이 퇴조하면서 갑자기 방향을 잃어버렸어요. 그러다 보니 이제 붙잡을 것이라곤 경제밖에 없어요. 경제라는 게 뭡니까? 그 거, 개가 똥덩어리 좇아가는 것과 똑같아요. 물론 인간이 살아가려면 경제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얘기 하는 경제 문제는 그것과 차원이 달라요. 오로지 먹을 것에만 혈안이 된 동물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발버둥치는 형국이예요. 셋째, 인간의 기계화예요. 요즘은 컴퓨터가 그것을 더 가속화시키고 있어요. 앞으로 인공 지능을 가진 컴퓨터가 등장한다고 하는데, 기계 문명과 인간의 불화는 지금과는 또다른 모습으로 전개될 것입니다.

― 이렇게 원인을 진단하셨으면 처방도 있을 법한데요.
▲ 인간성 회복이 시급해요. 먼저 교육 현장에서부터 인성 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과학과 지식으로 머리통만 비대해진 인간으로는 인류의 건강한 미래를 생각할 수 없어요. 기계화된 사고를 하는 사람에게 인간성이라는 걸 기대할 수 있겠어요. 머리와 몸의 조화, 물질과 정신의 균형이 중요한 겁니다. 인간성이 회복되어야만 ‘올바른 관계, 올바른 위치, 올바른 수용’이 될 수 있고 세계 평화도 이루어지는 겁니다.

― ‘올바른 관계, 올바른 위치, 올바른 수용’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일러 주시지요. ▲ 올바른 관계란, 말 그대로 바람직한 관계를 말하는 겁니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국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바르게 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자각할 때, 결코 인간은 자연을 함부로 파헤칠 수 없습니다. 인간과 자연이 한 몸인 관계를 투철히 알아야만 환경문제도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올바른 위치란, 각자의 역할에 대한 자각입니다. 가정을 예로 들어 봅시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지신의 위치가 있어요. 그 위치를 제대로 인식해야만 바람직한 행동이 나와요. 그것을 모르니까 자기 식의 고집을 하게 되는 겁니다. 흔히 악법이라고 말하는 세간법을 보세요. 그건 사회적 고집입니다. 그런 고집이 순리를 거스를 때, 불화가 생기고 혼란이 오는 것이지요. 그럼 올바른 수용이란 뭐냐, 제대로 받아들여서 제대로 쓰는 겁니다. 머리 속에 쓸데없는 지식이 너무 많은 것이 현대인의 병통이예요. 본연의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르게 쓰라는 겁니다.

― 너무 귀하신 말씀이어서 거듭 여쭙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겠습니까? ▲ 갑자기 한꺼번에 하려고 하지 마세요. 하나씩 하나씩 자신의 처지에 맞추어서 고쳐 나가야 합니다. 중생 교화라는 것도 그래요.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한꺼번에 교화시킵니까. 그러면 또 반발이 생겨요.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입니다. 남에게 잘하라고 할 것이 없어요. 스스로 잘하면 옆에 있던 사람도 따라하게 돼 있어요. 나 자신을 정화시키는 일이 곧 세상을 정화시키는 일입니다.

― 이렇게 말씀을 듣고 보니까 과학과 합리로 길들여진 미국인들이 스님의 제자가 되어 불교에 귀의를 하는 까닭을 알 것도 같습니다. 잠시 책 얘기 좀 하겠습니다. 이미 미국에서는 선불교의 고전이 된 <부처님께 재를 털면(Dropping ashes on the buddha)>이라는 책을 보면 참으로 독특한 스님만의 선풍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에 알려진 한국의 선불교를 ‘숭산불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입니다. 한국식으로 하면 숭산 가풍이 되겠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인지 일러 주시면, 많은 부분에서 서구화된 오늘의 한국 사람에게도 ‘반면 교사’가 될 것 같습니다. ▲ 남녀노소나 승속을 따지지 않습니다. 오로지 수행만을 강조할 뿐입니다. 합리와 이성으로 길들여진 그들은 지식의 차원에서 보면 최고의 엘리트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너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는 물음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 때 나는 그들 머리 속에 가득 채워진 지식들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들임을 일깨워줍니다. 그러면 그들은 충격을 받는 한편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삶’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깨닫습니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나는 그들에게 “오직 모를 뿐(only don’t know)”인 그 마음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대화의 바탕을 우리는 미국식으로 ‘공안 인터뷰’라고 합니다. 이 공안 인터뷰의 특징은 스승과 제자가 마주한 그 순간의 상황에 최선을 다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들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곧 진리임을 스스로 체득해 나가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 긴 시간 동안 참으로 귀한 말씀을 현대불교 독자들과 함께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의 말씀은 한국 불교의 세계화뿐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세계화 또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아울러 성찰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부 말씀이 있으시면 한 마디 더 일러 주시지요. ▲ 21세기 인류의 대안은 선입니다. 참선을 통하지 않고는 인간성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수행들 하세요.

삼배 올리고 물러 나오는데, 하얀 고무신을 신은 눈푸른 외국인 행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 ‘나이키’ 신발을 신고 조계사 앞을 지나는 스님들이 떠오른 건 무슨 심사에서였을까? ‘세계화’의 참뜻을 다시금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대담=윤제학 부장
(jhyun@buddhapia.com)

2004-11-30 오후 5:48:00
2004/11/30 16:56 2004/11/30 16:56

다시 듣는 숭산 선사 법문 1

“우리는 오직 모를 뿐”
“언제나 이순간 밖에 없다 아무것도 집착하지 말라”

서양인들 설교식 불교 원치않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 보고파 해




계룡산 국사봉 자락에 위치한 국제선원 무상사에서도 3개월 동안 용맹정진을 다짐하는 결제 법회가 열렸다. 이번 결제 법회에는 특별히 화계사 조실인 숭산 스님이 오셔서 법문을 해주시기로 한 까닭에 무상사는 아침부터 큰 스님 맞을 준비로 분주했다.

오전 10시경 숭산 스님과 화계사 대중들이 무상사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대중들이 “헬로우, 하우아 유?(안녕, 잘 지냈어요?)”하며 서로 정겹게 악수하고, 포옹하며 가벼운 볼 키스까지 나누는 풍경이 자연스럽고 다정해 보였다.

숭산 스님도 대중들을 향해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헬로 에브리바디(여러분 안녕하세요), 결제일입니다. 결제일이라는 것은 마음을 텅 비우고,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드디어 법회가 시작됐다. 무상사 선원동 2층 법당 앞쪽에 대중들을 마주보며 숭산 스님과 무상사 조실 대봉스님, 주지 오진 스님, 그리고 통역을 맡은 도관스님이 나란히 앉았다. 주지 스님과 조실 스님의 짧은 인사와 법문이 끝나고, 숭산 스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에 와서 결제를 하게 되고, 이곳 무상사가 수행하기에 얼마나 좋은 장소인가를 설명하겠습니다.



숭산 스님.

무상사는 백두산에서부터 태백산을 거쳐 계룡산으로 이어진 국사봉 정맥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계룡산은 그 드높고 신비한 힘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동학사, 갑사, 신원사와 같은 큰 사찰들이 계룡산에 자리를 잡았으며, 한국 근대 불교의 정신적 스승인 경허·만공 스님과 같은 위대한 선사들이 이곳에서 수행을 하였습니다. 2년 후 무상사가 완공되면 이곳은 옛 선인들이 예언했던 대로 한국을 돕고, 세계를 도울 훌륭한 스승들이 여럿 나올 것입니다. 예로부터 큰 사람이 날려면 그 터를 보라고 했습니다. 명당이 아니고서는 훌륭한 도인이 나올 수 없습니다. 장소와 시간, 노력 모든 것이 들어맞아야 합니다. 깨달음을 이루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앞으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와서 수행을 하고, 깨달음을 이룰 것입니다. 그리고 궁극에는 세계 평화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대중 모두가 저마다 큰 원력을 갖고, 무상사에서 참선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어 널리 중생 제도를 위해 힘써 주기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법문은 짧고 간단하면서도 힘찼다. 숭산 스님은 평소에도 긴 법문을 하지 않는다. 제자들의 질문에 간단한 대답으로 응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지도한다. 이는 순간 순간의 연결을 통해 제자와 스승의 밀접한 관계를 이루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숭산 스님은 줄곧 이 방법을 고수해 왔다.

이날 법회에는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70여명이 동참했다. 이들은 3개월간 무상사 선원에서 함께 수행할 것을 서원했다. 보통의 한국 선원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다. 승속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본성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숭산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승속을 초월해 모든 대중이 똑같이 수행한다. 최근 재가불자들이 안거수행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는 하지만, 스님은 스님들만의 공간에서, 재가불자들은 또 다른 공간에서 각각 따로 수행을 하고 있음에 비추어 파격적이다.

숭산 스님의 안거 수행지도 방법 또한 전통적인 한국의 수행지도 방법과 다르다. 철저한 묵언수행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씩 법회를 연다. 이때 참석자들은 수행에 대한 모든 질문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숭산 스님과 제자사이에 오가는 질문과 대답을 ‘공안인터뷰’라고 하는데, 숭산 스님은 이번 동안거 기간 중에도 화계사와 무상사를 오가며 공안인터뷰를 통해 제자들의 수행을 점검, 지도할 계획이다.

지난 30년간 해외 포교를 통해 숭산 스님이 배출한 서양인 제자는 5만명이 넘는다. 그 제자들의 공통적 특징 가운데 하나가 서양철학에 심취하고, 기독교적 전통에서 살아왔으면서도 내가 누구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삶의 방향과 목표를 찾지 못했던 이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숭산 스님의 가르침을 접하고서야 비로소 그 의문들을 풀고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었다. 그동안 읽었던 많은 책의 지식과 논리적 근거들을 버리고, 원래 그대로의 본성인 마음자리로 향하는 수행의 길에 올랐다. 이미 자전적 에세이집 <만행>으로 유명해 진 현각스님(미국인)을 비롯해 무상사 조실 대봉스님(미국인), 무상사 주지 오진스님(폴란드인) 등이 모두 그러한 인연들로 이국땅인 한국에서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이다.

이 스님들은 모두 숭산 스님의 생활 자체가 그대로 가르침이며 귀감이 된다고 말한다. 숭산 스님은 “언제나 이 순간 밖에 없다. 아무 것도 집착하지 말라. 우리는 오직 모를 뿐이다! 공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생과 같이 있는 것이다. 우리 생활과 떨어진, 지식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 생활의 영향을 그대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본래 있는 그대로에서 깨달음을 구하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제자들과 신도들은 순간순간 올바른 상황, 관계, 행동으로 자신의 인생을 실천하고 있는 숭산 스님을 수행자의 사표로 삼아, 스승의 삶을 바로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본래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하나씩 터득해 나간다.

오래 전 숭산 스님이 제자들과 멕시코에 갔을 때의 일이다. 어느 곳에서 잠시 머물렀는데, 숭산 스님에게 궁금한 점을 질문하러 대봉 스님이 숙소를 찾아갔다. 그때 스님은 잠에서 깨어나 속옷 차림으로 대봉 스님을 반갑게 맞았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또 다른 스님이 숭산 스님을 찾아왔다. 숭산 스님은 티셔츠와 바지를 입고, 그 스님을 반갑게 맞았고, 스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나서 잠시 후에 한국인 제자 스님이 숭산 스님을 찾아왔다. 숭산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저고리와 마고자를 차려입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저마다 어떻게 다른지 헤아리는 스님은, 찾아오는 제자들에 따라 옷 입는 그 한 가지에도 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하신 것이다. 그때 대봉 스님은 숭산 스님의 작은 행동에서 큰 가르침을 얻었다고 한다.

이뿐이 아니다. 이번 동안거 결제 법회 날 아침 대봉 스님은 몇몇 스님들과 유성의 여관으로 숭산 스님을 모시러 갔다. 한국인 시자 스님과 외국인 스님들이 큰 탁자에 둘러앉았는데, 숭산 스님이 언제 준비해 오셨는지 사탕, 과자, 빵 등을 한아름 내놓고 먹으라고 권했다. 계룡산 산골에서 군것질거리가 궁했을 외국인 제자들을 위해 서울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직접 휴게소에서 사 오신 것이다. 외국인 제자들은 그 과자들을 맛있게 먹었다. 그러자 한국인 시자스님이 과자, 빵을 다시 숭산 스님 앞에 가져다 놓았다. 숭산 스님은 다시 그 과자들을 앞으로 내어 놓았고, 몇 번의 오고감 속에서 모두의 눈빛이 하나로 모아졌다.

대봉 스님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이 다르다. 생활방식과 문화도 다르다. 어떻게 그 사람과 사람사이를 연결하여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가? 이것이 숭산 스님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가르침이다. 숭산 스님은 진정으로 모르는 마음을 가지고, 집착 없이 모든 상황들에 대처하라고 당신 스스로의 실천을 통해 말없는 법문을 항시 해 주시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덧붙여서 대봉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서양의 불자들은 기도와 명상 외에는 관심이 없다. 대부분이 수행을 통해 마음이 맑아지고 깨달음을 얻길 원한다. 기독교적 선교 방식에 피곤해져 있는 서양인들은 불교의 스님들이 행동으로 실천하는 걸 보고 싶어 하지, 설교식으로 하는 불교를 원치 않는다. 숭산 스님은 한국인 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적인 방식이나 형태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 가시더라도 그 나라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의 마음을 먼저 헤아린다. 어떤 계획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다. 구하는 바가 바르고, 마음이 맑을 뿐. 순간에 한사람을 만나서 얼마나 올바른 방향을 보여줄 수 있나를 몸소 보이신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가 참 힘들다.”

이렇듯 제자들을 사랑으로 감싸 안아 진정한 보살도로 이끌어 주는 숭산 스님. 매일 매일의 생활수행을 통해 우리 자신을 깨우고, 이 세상에 도움이 되도록 중생 제도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숭산 스님의 가르침의 핵심이다.

“우리는 진리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만물은 공(空)하므로 모든 것이 이미 완벽한 길입니다. 이것을 지적으로 혹은 학문적으로 이해하려 하면 안됩니다. 수행을 통한 어떤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실제로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절대이고 경계가 없으며, 나의 모든 행동이 순간순간 중생을 향한 큰 사랑과 자비라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사실 본래 ‘나’라는 것도 없으므로 다른 중생을 위한다는 말조차 틀린 말입니다. ‘나’와 ‘남’의 경계가 없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 길에는 생각도 없고, 고통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방해하는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순간순간의 모든 행동은 진리이며 완벽하게 다른 중생의 고통과 닿아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그를 도와 줄 수 있을까?’ 이것이 진정한 인간의 길이며, 완벽한 길이며, 진리의 길입니다.”

무상사에서의 동안거 결제 법회가 끝나고, 숭산 스님은 무상사를 떠나기 전에 제자들과 요사채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오! 에브리바디 히어. 원더풀, 원더풀.(여러분 다 여기 모여 있었군요. 좋아요)” 특유의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미소로 숭산 스님은 제자들과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다. 차에 올라타 무상사를 뒤로 하면서도 연신 손을 흔들며 “바이, 바이”를 외치는 스님과 합장으로 배웅하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자비로운 큰 스님의 그늘이 얼마나 크며 포근하고, 또 소중한 것인지 알수 있었다.

글=이은자 기자 ejlee@buddhapia.com
사진=고영배 기자 ybgo@buddhapia.com



숭산스님은?

숭산 스님은 제자들로부터, 존경하는 선의 선생님이라는 뜻인 ‘선사(禪師)님’으로 불린다.

30년 이상 전 세계를 돌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 온 숭산 스님. 그동안 세계 30개국에 세워진 선원만 120여 군데나 되고, 교수 박사 등 엘리트층의 일반신도를 비롯해 신부 수녀 목사 등에 이르기까지 인종과 언어, 문화와 종교를 초월한 폭넓은 포교를 해왔다.

숭산 스님은 5년 전 부터 전 세계의 불교신자들이 함께 모여 수행할 수 있는 국제선원을 계룡산에 마련할 계획을 세웠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계룡산 국제선원에서 수행하여, 법사나 선사가 된 후 자신의 나라에 돌아가 선원을 세우고 한국식 불교를 가르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1927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난 숭산 스님은 47년 마곡사에서 출가해, 49년 수덕사에서 고봉 선사를 법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58년 화계사 주지, 60년 불교신문사 초대 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66년 일본 홍법원 개설을 시작으로 홍콩, 미국, 캐나다, 브라질, 프랑스, 싱가포르 등에 홍법원과 국제선원을 개설하며 적극적인 해외 포교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현재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이며, 화계사 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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