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수도이전법 위헌결정 전문
[경향신문 2004.10.21 16:29:06]
        


◎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이상경 재판관)는 2004. 10. 21. 수도의 이전을 내용으로 하는 신행정수도의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이 우리나라의 수도가 서울이라는 우리 헌법체계상 자명하고 전제된 불문의 관습헌법사항을 헌법개정절차를 이행하지 않은 채 법률의 방식으로 변경한 것이어서 그 법률 전체가 청구인들을 포함한 국민의 헌법개정국민투표권을 침해하였으므로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선고하였다.

○ 이 결정은 이 사건 법률이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된다는 김영일재판관의 별개의견과, 국민투표권을 포함한 청구인들의 기본권 침해의 가능성 자체가 인정되지 않으므로 부적법 각하하여야 한다는 전효숙재판관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나머지 재판관들의 의견일치에 의한 것이다.

1. 사건의 개요(1) 신행정수도의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은 2004. 1. 16. 공포되어 같은 해 4. 17.부터 발효되었다. 이 법률에 근거하여 발족한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는 2004. 7. 21. 주요 국가기관 중 중앙행정기관 18부 4처 3청(73개 기관)을 신행정수도로 이전하고, 국회 등 헌법기관은 자체적인 이전 요청이 있을 때 국회의 동의를 구하기로 심의·의결하였다. 한편 2004. 8. 11. 위 위원회는 ‘연기-공주 지역’(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금남면, 동면, 공주시 장기면 일원 약 2,160만평)을 신행정수도 입지로 확정하였다.

(2) 청구인들은 전국 각지에 거주하는 국민들로서, 위 법률이 헌법개정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수도이전을 추진하는 것이므로 법률 전부가 헌법에 위반되며 이로 인하여 청구인들의 국민투표권, 납세자의 권리, 청문권, 평등권 등의 기본권을 침해받았다는 이유로 위 법률을 대상으로 그 위헌의 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였다.

2. 심판의 대상이 사건 심판의 대상은 신행정수도의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 (2004. 1. 16. 제정 법률 제7062호, 이하 ‘이 사건 법률’이라 한다)이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이다.

3. 주 문신행정수도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2004. 1. 16. 법률 제7062호)은 헌법에 위반된다.

4. 결정의 요지가. 이 사건 법률의 내용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수도는 국가권력의 핵심적 사항을 수행하는 국가기관들이 집중 소재하여 정치·행정의 중추적 기능을 실현하고 대외적으로 그 국가를 상징하는 곳을 의미한다. 이 사건 법률은 신행정수도를 “국가 정치․행정의 중추기능을 가지는 수도로 새로 건설되는 지역으로서……법률로 정하여지는 지역”이라고 하고(제2조 제1호), 신행정수도의 예정지역을 “주요 헌법기관과 중앙행정기관 등의 이전을 위하여 ……지정·고시하는 지역”이라고 규정하여(같은조 제2호), 결국 신행정수도는 주요 헌법기관과 중앙 행정기관들의 소재지로서 국가의 정치·행정의 중추기능을 가지는 수도가 되어야 함을 명확히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은 비록 이전되는 주요 국가기관의 범위를 개별적으로 확정하고 있지는 아니하지만, 그 이전의 범위는 신행정수도가 국가의 정치·행정의 중추기능을 담당하기에 충분한 정도가 되어야 함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은 국가의 정치·행정의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기관의 소재지로서 헌법상의 수도개념에 포함되는 국가의 수도를 이전하는 내용을 가지는 것이며, 이 사건 법률에 의한 신행정수도의 이전은 곧 우리나라의 수도의 이전을 의미한다.

나. 수도가 서울인 점이 우리나라의 관습헌법인지 여부(1) 성문헌법체제에서의 관습헌법의 의의우리나라는 성문헌법을 가진 나라로서 기본적으로 우리 헌법전(憲法典)이 헌법의 법원(法源)이 된다. 그러나 성문헌법이라고 하여도 그 속에 모든 헌법사항을 빠짐없이 완전히 규율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한 헌법은 국가의 기본법으로서 간결성과 함축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형식적 헌법전에는 기재되지 아니한 사항이라도 이를 불문헌법(不文憲法) 내지 관습헌법으로 인정할 소지가 있다. 특히 헌법제정 당시 자명(自明)하거나 전제(前提)된 사항 및 보편적 헌법원리와 같은 것은 반드시 명문의 규정을 두지 아니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헌법사항에 관하여 형성되는 관행 내지 관례가 전부 관습헌법이 되는 것은 아니고 강제력이 있는 헌법규범으로서 인정되려면 관습헌법의 성립에 요구되는 요건들이 엄격히 요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2) 기본적 헌법사항으로서의 수도문제국가의 정치·행정의 중추기능을 가지는 수도를 정하는 문제는 국가의 정체성(正體性)을 표현하는 실질적 헌법사항의 하나이다. 여기서 국가의 정체성이란 국가의 정서적 통일의 원천으로서 그 국민의 역사와 경험, 문화와 정치 및 경제, 그 권력구조나 정신적 상징 등이 종합적으로 표출됨으로써 형성되는 국가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수도를 설정하거나 이전하는 것은 국회와 대통령 등 최고 헌법기관들의 위치를 설정하여 국가조직의 근간을 장소적으로 배치하는 것으로서, 국가생활에 관한 국민의 근본적 결단임과 동시에 국가를 구성하는 기반이 되는 핵심적 헌법사항에 속하는 것이다.

(3) 수도 서울의 관습헌법성 여부에 대한 판단(가) 우리 헌법전상으로는 ‘수도가 서울’이라는 명문의 조항이 존재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서울은 사전적 의미로 바로 ‘수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1392년 조선왕조가 창건되어 한양이 도읍으로 정하여진 이래 600여년간 전통적으로 현재의 서울 지역은 그와 같이 일반명사를 고유명사화하여 불러 온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서울 지역이 수도인 것은 그 명칭상으로도 자명한 것으로서, 대한민국의 성립 이전부터 국민들이 이미 역사적, 전통적 사실로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대한민국의 건국에 즈음하여서도 국가의 기본구성에 관한 당연한 전제사실 내지 자명한 사실로서 아무런 의문도 제기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 후에도 수차의 헌법개정이 있었지만 우리 헌법상으로 수도에 관한 명문의 헌법조항은 설치된 바가 없으나, 서울이 바로 수도인 것은 국가생활의 오랜 전통과 관습에서 확고하게 형성된 자명한 사실 또는 전제된 사실로서 모든 국민이 우리나라의 국가구성에 관한 강제력 있는 법규범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나) 수도 서울의 역사적 존속 경위1) 조선의 창건과 서울의 수도설정·계속서울은 일찍이 고려시대에 남경(南京)이 설치되어 고려의 이른바 삼경제를 이루는 지방행정의 중심지역할을 하였으며 조선왕조의 창건 직후 곧 수도가 되었다. 한양 즉 서울의 수도로서의 지위는 성종 때에 완성된 조선의 기본법전이었던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경국대전에는 한성부가 경도(京都) 즉 서울을 관장한다고 명시하여 한성의 수도로서의 지위를 법상 분명히 하였다. 이러한 경국대전의 내용은 개정됨이 없이 조선왕조가 존속한 500여년의 장구한 기간동안 계속하여 국가생활의 기본적인 최고법규범으로서 효력을 유지하였다.

2) 일제강점시대의 서울의 수도성 유지1910. 8. 한일합방에 의하여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는 상황이 시작되었으나 이후에도 경성부(京城府), 즉 서울은 우리나라의 행정중심지로서의 역할을 계속하였으며, 국권을 상실한 상황에서 1919. 3. 1. 민족대표들에 의하여 우리나라의 독립이 선언된 곳이기도 하였다. 비록 일제의 국토강점으로 인하여 국가조직이 와해된 상태에 있었지만 서울은 우리나라의 수도로서의 대외적인 상징성을 유지하였고 임시정부에서도 서울의 수도성을 당연한 전제로 하여 항일활동조직을 편성하였으며 국민들의 의식도 변화가 없었으므로 서울의 수도성은 이 시기에도 사실상 유지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3) 해방과 건국 이후 현재까지의 서울의 수도성 유지해방 이후 서울이 수도인 것을 언급하는 법률조항들이 계속 존재하여 왔으나, 이들은 서울이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수도라는 점을 이미 존재하는 규범적 전제로서 받아들이면서 이를 기준으로 수도 서울의 특별한 지위를 법률적으로 설정하기 위한 조항들이었고, 법률의 차원에서 서울이 수도인 점을 확정하고자 하는 내용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해방 이후 현재까지의 이러한 입법의 상황을 살펴보아도 서울이 수도인 점에 대한 우리 국민의 전통적인 법적 확신이 확인된다.

(다) 그렇다면 수도가 서울로 정하여진 것은 비록 우리 헌법상 명문의 조항에 의하여 밝혀져 있지는 아니하나, 조선왕조 창건 이후부터 경국대전에 수록되어 장구한 기간동안 국가의 기본법규범으로 법적 효력을 가져왔던 것이고, 헌법제정 이전부터 오랜 역사와 관습에 의하여 국민들에게 법적 확신이 형성되어 있는 사항으로서, 우리 헌법의 체계에서 자명하고 전제된 가장 기본적인 규범의 일부를 이루어 왔기 때문에 불문의 헌법규범화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라) 이를 관습헌법의 요건의 기준에 비추어 보면, 서울이 우리나라의 수도인 것은, 서울이라는 명칭의 의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 이래 600여 년 간 우리나라의 국가생활에 관한 당연한 규범적 사실이 되어 왔으므로 오랜 전통에 의하여 형성된 계속적 관행이라고 평가할 수 있고(계속성), 이러한 관행은 변함없이 오랜 기간 실효적으로 지속되어 중간에 깨어진 일이 없으며(항상성), 서울이 수도라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국민이라면 개인적 견해 차이를 보일 수 없는 명확한 내용을 가진 것이고(명료성), 나아가 이러한 관행은 장구한 세월동안 굳어져 와서 국민들의 승인과 폭넓은 컨센서스를 이미 얻어(국민적 합의) 국민이 실효성과 강제력을 가진다고 믿고 있는 국가생활의 기본사항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서울이 수도라는 점은 우리의 제정헌법이 있기 전부터 전통적으로 존재하여온 헌법적 관습이며 우리 헌법조항에서 명문으로 밝힌 것은 아니지만 자명하고 헌법에 전제된 규범으로서, 관습헌법으로 성립된 불문헌법에 해당한다.

다. ‘수도 서울’의 관습헌법 폐지를 위한 헌법적 절차우리나라의 수도가 서울이라는 점에 대한 관습헌법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른 헌법개정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성문의 수도조항이 존재한다면 이를 삭제하는 내용의 개정이 필요하겠지만 관습헌법은 이에 반하는 내용의 새로운 수도설정조항을 헌법에 넣는 것만으로 그 폐지가 이루어진다. 예컨대 충청권의 특정지역이 우리나라의 수도라는 조항을 헌법에 개설하는 것에 의하여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은 폐지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헌법규범으로 정립된 관습이라고 하더라도 세월의 흐름과 헌법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이에 대한 침범이 발생하고 나아가 그 위반이 일반화되어 그 법적 효력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상실되기에 이른 경우에는 관습헌법은 자연히 사멸하게 된다. 이와 같은 사멸을 인정하기 위하여서는 국민에 대한 종합적 의사의 확인으로서 국민투표등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이 고려될 여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에 이러한 사멸의 사정은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수도가 서울인 것은 우리 헌법상 관습헌법으로 정립된 사항이며 여기에는 아무런 사정의 변화도 없다고 할 것이므로 이를 폐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헌법개정의 절차에 의하여야 한다.

라. 국민투표권의 침해 여부수도의 설정과 이전의 의사결정은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기본적 헌법사항으로서 헌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민이 스스로 결단하여야 할 사항이다. 또한 서울이 우리나라의 수도인 점은 불문의 관습헌법이므로 헌법개정절차에 의하여 새로운 수도 설정의 헌법조항을 신설함으로써 실효되지 아니하는 한 헌법으로서의 효력을 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헌법개정의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수도를 충청권의 일부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이 사건 법률을 제정하는 것은 헌법개정사항을 헌법보다 하위의 일반 법률에 의하여 개정하는 것이 된다.

한편 헌법의 개정은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되어(헌법 제128조 제1항)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에 따른 국회의 의결을 거친 다음(헌법 제130조 제1항) 의결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만(헌법 제130조 제3항) 이루어 질 수 있다. 따라서 헌법의 개정은 반드시 국민투표를 거쳐야만 하므로 국민은 헌법개정에 관하여는 찬반투표를 통하여 그 의견을 표명할 권리를 가진다.

그런데 이 사건 법률은 헌법개정사항인 수도의 이전을 위와 같은 헌법개정절차를 밟지 아니하고 단지 단순법률의 형태로 실현시킨 것으로서 결국 헌법 제130조에 따라 헌법개정에 있어서 국민이 가지는 참정권적 기본권인 국민투표권의 행사를 배제한 것이므로 동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5. 결 론그렇다면, 청구인들이 제기한 다른 쟁점들에 대하여 더 나아가 판단할 필요도 없이, 수도의 이전을 확정함과 아울러 그 이전절차를 정하는 이 사건 법률은 우리나라의 수도가 서울이라는 불문의 관습헌법사항을 헌법개정절차를 이행하지 않은 채 법률의 방식으로 변경한 것이어서 그 법률 전체가 청구인들을 포함한 국민의 헌법개정국민투표권을 침해하였으므로 헌법에 위반된다.

6. 재판관 김영일의 별개의견 요지이 사건 법률은 청구인들의 기본권인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 별개의견의 요지이다.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은 헌법 제72조가 규정하는 국방‧통일 및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해당하므로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의 대상이 된다. 대통령이 어떠한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의하는 행위는 자유재량행위이다. 그러나 법치주의의 원리는 어떠한 공권력의 작용이라도 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요구하므로 대통령의 국민투표부의행위가 자유재량행위라고 하더라도 재량권의 일탈‧남용이 있는 경우에는 그 재량권의 근거규범인 헌법 제72조에 위반된다.

대통령이 수도이전문제를 국민투표에 붙이지 아니하는 것은 헌법 제72조의 입법목적과 입법정신에 위배되고 자의금지원칙과 신뢰보호원칙에 반하므로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헌적인 것이 된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재량권을 적법하게 행사한다면 위 문제를 국민투표에 붙이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대통령은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을 국민투표에 붙일 의무가 있다. 이에 국민은 위 대통령의 의무에 상응하는 권리인 국민투표권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이 사건 법률은 국민투표에 의하지 아니하고 수도이전의 의사결정을 한 것이어서 국민투표를 확정적으로 배제하고 있기 때문에,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한다.

수도의 위치가 관습헌법규범이라고 단정하기 어렵지만, 가사 다수의견과 같이 관습헌법규범이라고 보는 경우에도 이 사건 법률이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하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나아가 헌법 제130조보다는 헌법 제72조에 의하여 이 사건 법률의 위헌성을 확인함이 보다 타당하다.

7. 재판관 전효숙의 반대의견 요지가. 나는 다수의견의 논지는 우리 헌법의 해석상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므로 다음과 같이 견해를 밝힌다.

(1) 우선 오늘날의 헌법에서 과연 한 나라의 수도의 위치가 어느 정도의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를 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수도의 소재지는 국가 정체성에 관한 중요한 사항이었으나, 자유민주주의와 입헌주의를 주된 가치로 하고 있는 우리 헌법은, 국가권력의 통제와 합리화를 통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실현하려는 것이 그 근본 목적이다. 수도의 소재지가 어디이냐 하는 것은 그러한 헌법의 목적 실현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며, 그러한 목적 실현에 직접 영향을 주는 사항이라 보기 어렵다. 그러므로 헌법상 수도의 위치가 반드시 헌법제정권자나 헌법개정권자가 직접 결정해야 할 사항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2) “서울이 수도”라는 관행적 사실에서 “관습헌법”이라는 당위규범이 인정되기 어렵다.

서울이 수도라는 사실이 오랫동안 우리 민족에게 자명하게 인식되어 온 관행에 속한다 하더라도, 우리 국민이 그것을 강제력 있는 법규범으로 확신하고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우리 국민들에게 수도의 위치가 성문헌법과 동등한 효력을 지니는, 즉 헌법개정절차에 의해서만 개정되어야할 정도의 법적 확신이 존재하여 왔다고 볼 수 없다. 수도이전 문제는 최근에야 우리 사회의 주된 쟁점이 되었고, 이 사건 법률의 입법과정에서도 여야 국회의원들은 수도이전 사안이 국민의 헌법적 확신을 지니는 헌법사항이라든가, 그 개정은 헌법개정절차를 통하여야 하므로 입법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든가 하는 점에 관한 인식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서울이 수도이다”라는 사실로부터 “서울이 수도여야 한다”는 헌법적 당위명제를 도출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 있는 것이다.

(3) 성문헌법을 지닌 법체제에서, 관습헌법을 성문헌법과 “동일한” 혹은 “특정 성문헌법 조항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효력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없다.

성문의 헌법전은 헌법제정권자인 국민들이 직접 “명시적” 의사표시로써 제정한 것으로서 국가의 법체계 중 최고의 우위성을 가지며, 그 내용의 개정은 엄격한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는 점에서, 관습헌법과 성문헌법은 동일한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 성문헌법의 특징은 최고법규범으로서 모든 국가권력을 기속하는 강한 힘을 보유하는 것인데, 이는 국민주권의 명시적 의사가 특정한 헌법제정절차를 거쳐서 수렴되었다는 점에서 가능하다. 관습만으로는 헌법을 특징화하는 그러한 우세한 힘을 보유할 수 없는 것이다.

성문헌법 체제에서 관습헌법은 성문헌법에 대한 보완적 효력만을 가진다. 성문헌법이 존재하는 한, 관습헌법은 성문헌법으로부터 동떨어져 성립하거나 존속할 수 없고, 항상 성문헌법의 여러 원리와 조화를 이룸으로써만 성립하고 존속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헌법적 관행에 의해서 성문헌법이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게 되고 성문헌법전보다 불문적인 헌법의 관행예가 우선하고 국가생활을 지배하는 결과가 된다.

이러한 법리는 관습헌법의 내용이 중요한 “헌법사항”이라 하더라도 동일하다. 국민들은, 설령 헌법제정시 자명한 사실이어서 성문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사항이 있더라도, 언제든지 그러한 사항을 성문 헌법전에 수록할 수 있는 헌법개정권력을, 자신의 대표자와 국민투표를 통하여 행사할 수 있고, 이로써 성문헌법의 효력을 가지게 할 수 있다. 마치 법률에 규정되지 않은 한 아무리 처벌필요성이 있는 사항도 처벌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성문헌법에 규정되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법적 효력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4) 다수의견은 관습“법률”이 아닌 관습“헌법”은 “헌법”이므로 그 변경은 헌법개정절차를 통해야 한다고 하나, 이는 형식적 개념논리만 강조된 것이다.

“관습헌법”이란 실질적 의미의 헌법사항이 관습으로 규율되고 있다는 것을 뜻할 뿐이며, 관습헌법이라고 해서 바로 성문헌법과 똑같은 효력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성문헌법의 강력한 힘은 국민주권의 명시적 의사가 특정한 헌법제정절차를 거쳐서 나왔기 때문인데, 관습은 그러한 명시적 의사나, 특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인정되므로 성문헌법과 같은 효력을 인정할 근거가 없다.

다수의견은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중요한 사항은 “국민이 스스로 결단하여야 할 사항”이라고 하나, 우리나라의 국기인 태극기와 한글의 경우도, 대한민국국기에관한규정과 한글전용에관한법률에서 규율되고 있는데, 그러한 규정 형식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다.

수도와 같은 관습헌법의 변경을 헌법개정으로 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헌법의 개정은 “형식적 의미”의 헌법, 즉 성문헌법과 관련된 개념이다. 헌법제정권자가 헌법개정을 일반 법률절차보다 훨씬 엄격한 절차를 거치도록 한 이유는, 헌법전에 규정된 내용이 주권자의 의지의 명시적 표명으로서 이를 함부로 변경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헌법에 들어있지 않은 헌법사항 내지 불문헌법의 변경은 헌법의 개정에 속하지 않으며, 우리 헌법이 마련한 대의민주주의 절차인 법률의 제정, 개정을 통하여 다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만일 국회가 수도이전과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민의를 대변하지 않고 당리당략적으로 입법한 것이라면, 그것이 헌법과 국회법 절차에 위반되지 않는 한, 그러한 입법의 궁극적 책임은,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여야 하는 대의기관에 불과한 이상, 그러한 입법부를 구성한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다수의견의 논지에 따르면 아무리 국회가 이 사건 법률 제정과정에서 공청회와 청문회 등 충분한 국민의사 수렴절차를 거쳤고, 국회의원 전원일치로 법률이 통과되었더라도, 헌법개정절차를 거치지 아니하였다는 형식적 이유만으로 위헌이 되는데, 그러한 결론이 타당하리라 보기 어렵다.

(5)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의 변경은 헌법개정에 의해야 한다면, 이는 관습헌법이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 입법권을 변경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관습헌법에 대하여 국회의 입법권보다 우월적인 힘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헌법은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제40조)고 규정하며, 헌법에 달리 규정이 없는 한 국회의 입법권은 포괄적 대상을 지닌다. 입법권의 주체는 다름 아닌 국민에 의하여 직접 선출된 대의기관이며, 헌법은 국민주권과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대의제를 기본형태로 채택하고, 국민으로부터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대표기관이 입법작용을 통하여 그 이념을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수도이전과 같은 헌법관습의 변경의 경우, 별도로 이를 제한하는 헌법규정이 없는 경우에 왜 국회의 입법으로 불가능한 것인지 실질적 이유를 발견하기 어렵다. 많은 나라에서 의회가 국민투표 없이 헌법을 개정할 수 있는데, 이는 의회가 다름 아닌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주권의 대행기관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 법률은 투표의원 194인 중 찬성 167인(반대 13인, 기권 14인)으로 재적과반수와 출석 3분의 2 이상의 압도적 다수로 통과되었는데, 그러한 입법이 국민의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였다는, 혹은 민의를 배신하였다는 정치적 비난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별도로 하고, 적어도 헌법적 측면에서 그것이 “국회의원들의 권한이 아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한 결론은 관습헌법으로써 국회의 헌법상의 입법권한을 부인하는 것이고, 이는 헌법을 변경하는 것이 되므로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다수의견은 “관습에 의한 헌법적 규범의 생성은 국민주권이 행사되는 한 측면인 것이다.”라고 하나, 성문헌법 체제하에서 국민주권의 행사는 저항권의 행사와 같은 특별한 예외가 아닌 한 성문헌법의 테두리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현실적으로 무엇이 진정한 국민의 의사인지를 확인하기 어렵고 국민들 간에도 특정 사안을 놓고 갈등과 대립이 있을 수 있으므로, 헌법이 객관적으로 규정한 제도화된 절차가 아닌 헌법 외적인 방식으로 “국민주권의 행사”를 인정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헌법이 예정하지 않은 그러한 문제는, 그것이 국가의 위기상황에 관련된 것이 아닌 한, 정치적 의사결정 구조에 맡겨야 하는 것이다.

(6) 결론적으로 서울을 수도로 한 관습헌법의 변경이 반드시 헌법개정을 요하는 문제라고 할 수 없고, 헌법해석상 국회의 입법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이 헌법 제130조 제2항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할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나. 한편 나는 별개의견이 이 사건 법률은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하였다고 한 논지도 받아들일 수 없다.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에게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의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재량을 주고 있는데,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그 재량 여부가 달라진다고 해석할 수 없다. 헌법 제72조가 대통령에게 과도한 재량을 주고 있어 국민주권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하는 효과적인 제도인지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현행 헌법상 위와 달리 해석할만한 근거가 없다. 또한 그러한 재량은 헌법이 직접 부여한 것이므로, 행정법상의 재량권의 일탈·남용 법리는 적용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 행정수도의 이전 정책에 대하여 대통령이 국민투표 부의를 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국민투표권이 행사되지 못했더라도, 이로 인하여 청구인들의 국민투표권이 침해될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다.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청구인들의 국민투표권 침해 주장은, 권리의 침해가능성 자체가 인정되지 않으므로 부적법하다. 청구인들이 주장한 다른 기본권 침해 주장 역시 기본권 침해의 자기관련성, 직접성 혹은 현재성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 결국 이 사건은 “기본권 침해”를 구제하기 위한 헌법소원절차에서, 헌법재판소가 본안판단을 하기에 부적법한 것이다.

2004/10/22 16:49 2004/10/22 16:49

뇌를 단련하다

2004/10/20 05:06 / My Life/Diary
《뇌를 단련하다》(2004, 청어람미디어) 를 읽다.

다치나바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학창시절에는 그렇게 누가 더 큰지, 발돋움을 하면서 키재기를 하는 듯한 설익은 논쟁을 벌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발돋움이라도 해서 키를 재보지 않으면 자기 키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내가 사실은 뭘 알고 뭘 모르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p.23)


「먼저 사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특정한 사상은 종종 특정한 사람에게 무서운 흡인력을 발휘합니다. 그런 사상을 너무 이르게 만나버리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블랙홀로 빨려드는 별처럼 평생 거기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흔한 말로 폭 빠져버린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특정 종교사사에 깊숙이 들어간 사람이 대개 그렇습니다. 옴이나 통일교 같은 신흥 종교뿐만 아니라 기독교 같은 유서 깊은 정통종교도 모두 그렇습니다. 일단 빠져들면 자기가 믿는 것만이 진리며 정의고 다른 것들은 다 사이비고 허위고 악의 덩어리라고 믿게 됩니다.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절대적 진리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아두어야 합니다. 물론 '절대적 진리는 있을지도 모른다. 없다고 단정하는 것 자체가 도그마 아니냐'는 생각도 있을 법합니다. 그렇습니다. 내 말은 최종적으로는 그렇게 믿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는 정도의 뜻입니다.

과거에도 '이것이 절대 진리'라고 멋대로 주장하는 사상이 여럿 있었지만, 그것이 절대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들 나름대로는 증명이랍시고 한 적은 있지만 그것은 애초부터 믿었던 사람이 아니라면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아마 없겠지요. 이러한 경험과 예측을 근거로 절대 진리는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 (p.27)


「지의 전승은 단순한 전승이어서는 안 되며 늘 '업 투 데이트 up to date'한 것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경신 작업이 필요합니다. 지의 유지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만 머물면 안 됩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지를 보태어 지의 총체를 보다 크고 보다 견고한 것으로 만들어 가는 지의 확대재생산 과정으로 이끌어가야 하는 것 입니다.」 (p.58)


「교실에서 가르치는 것은 아우트라인뿐이고 나머지는 스스로 알아서 하지 않으면 따라가질 못합니다. 대학이란 대체로 그런 곳입니다. 교수가 뭔가를 가르쳐주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는 곳입니다. 스스로 배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곳입니다.교실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이며 나머지는 교수나 친구로부터 자극을 받으며 스스로 배워 나가야 하는 곳입니다. 대학이란 주어진 교육을 받는 장이라기보다 스스로 자신을 교육해 나가는 자기 교육의 장입니다.



도쿄대생 중에는 두 부류가 있는데, 그 하나는 이런 환경에 바로 적응해서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즐기고, 위에서 그냥 내려주기만 하는 교육을 스스로 거부하고 대학 수업에 제대로 출석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자기 교육에 몰두하기 시작하는 유형입니다. 주목할 만한 학생은 대체로 이런 유형에서 나옵니다.」 (p.66)


「어린이에게 자극을 지나치게 많이 주면 울거나 신경증적인 증상을 보이는데, 젊은이나 성인도 마찬가지여서, 이 책에 따르면 "의미 있는 출력을 뽑아내기 전에 입력을 종합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합니다. 입력과 출력사이에 '동화'의 시간을 두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나는 종종 공부를 지나치게 많이 하는 학생에게 밖에 나가 그냥 잔디밭에 뒹굴거나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을 올려다보라고 말한다"라고 쓰고 있군요. 물론 그런 것도 필요하겠지요.

또 한 가지 저자가 말하는 것은, 이건 뤼벤 하레크에게서 인용한 글인데, "자라나고 있는 신경계에 줄 수 있는 최선의 교육은 이미 알려진 오감을 전부 자극하는 교육이다. 단 하나, 혹은 겨우 두 개의 감각만 집중적으로 훈련한 인물은 잘 돼야 가련한 인간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p.118)


「여러분도 지금 자의식 과잉일 겁니다. 스무 살 전후 시절이란 대체로 자의식 과잉이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지나친 자의식 속에서 모종의 광기와 같은 욕망을 품고 모종의 열병을 앓는 겁니다. 그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며, 만약 그런 것을 전혀 겪지 않는다면 차라리 그게 병이겠지요. 그런 욕망이나 열병이야 말로 인간에게서 활력의 바탕이 되는 것이며, 발레리도 그랬듯이 그것이야말로 한 사람의 개성을 만드는 것입니다.

발레리는 정확성이라는 열병을 앓은 결과 문학도 철학도 다 내버리고 말았습니다. '정확성이라는 급성병'에 걸린 사람이라면 여러분 중에도 많을 겁니다. 머리깨나 좋다는 젊은이는 '정확성이라는 급성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지요. 이 병에 걸리면 정확하지 못한 것을 말하는 사람을 모두 바보로 봅니다. 자신이 뭔가를 말해야 할 떄는 철저히 정확한 것을 말하려고 하기 떄문에 결국 아무 말도 못하게 됩니다. 글을 쓸 떄도 뭐든 정확하게 말하려고 하는 나머지 유보조건이 지나치게 많은 글을 써서 다른 사람은 통 알아먹지 못하는 글밖에 쓰지 못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정확성이라는 급성병'에 걸리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도 있지만, 그 병에 걸려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정확성이라는 것은 시간과 상황에 따라 필연적으로 정해집니다. 시간과 상황을 무시하고 필요 이상의 정확성에 연연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강박신경증(포비아)의 일종이며 병이 아닐 수 없습니다.」 (p.147)


「시는 뭐니 뭐니 해도 음성언어로 이루어진 작품이므로 번역을 하면 그 뉘앙스가 다 사라져 버립니다. 번역을 해서 남는 것은 문자언어가 가진 의미작용뿐이며, 이를테면 잘해야 2,3할밖에 남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는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를 번역해서 이해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p.152)


「읽고 싶은 책을 다 읽는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느 정도에서 포기해야 합니다. 읽고 싶은 책을 전부 읽은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들 머릿속에 어중간한 지식을 채운 상태로 출항합니다. 애초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초조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힐 수 있었던 것은 세월이 더 지나서였습니다.」 (p.201)


2004.10.20
2004/10/20 05:06 2004/10/20 05:06
TAGS

2004.09.24 | 08:44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edaily] 두 대선진영에서 내내 논란이 되어오던 일종의 뜨거운 감자들 중 하나였던 전략비축유(SPR)에 대해 드디어 백악관에서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잠깐 움찔하던 국제석유가격은 이내 백안관을 무시하고 다시 49불 선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애당초 단순한 석유가격의 변동에 대한 안정이 비축목적이 아니기에 논란거리가 되어서도 안될 사항이고 정치집단인 백악관보다는 에너지성의 결단이 중요한 것이고 에너지성의 입장에서는 쉽사리 방출할 사항이 못될 것이란 시장의 해석이 보다 존중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긴 당장 방출을 지시한다해도 그게 거리의 주유소까지 나오려면 절차상으로 엄청 험난한(?) 과정을 겪어야 할 것입니다. 올 겨울은 아무래도 따스하게 지내긴 어려울 듯합니다.

경제란 것이 참 요상스러워 보는 사람마다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석해도 그럴싸하다는데 묘미가 있습니다. 오늘은 도이체방크에서 나온 자료를 보며 혼자 재미있어하다가 그 내용을 요약해 봅니다.

이코노미스트인 토마스 메이어가 강의한 ‘Inflation is dead! Long live inflation!"이란 간단한 자료입니다. 제목부터가 참 코믹하단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현재 또는 향후의 인플레이션 동향에 대한 무슨 논쟁거리라도 시작하려는 표현인가 싶기도 한 그런 제목이지만 사실은 ’King is dead! Long live King!"이란 말에서 따온 것이지요. 신왕의 등극시에 ‘옛왕이 죽었단다. 새로운 왕이시여 천세를 누리소서!’라는 표현이지요. 결국 이제까지는 인플레이션은 죽었지만 앞으로 새로운 인플레이션이 시작하여 위협이 될 것이란 표현입니다.

90년대 들어 지속적인 기업의 재무구조개선(de-leveraging) 노력은 차입을 줄이고 투자에 소극적이 되며 2000년 3분기를 정점으로 기업들의 수익구조를 악화시키고 주가를 하락하게 만들고 미국경제를 병들게 만드는 원인이 됐습니다. 이를 치료하기 위한 약으로 사용한 감세와 저금리정책은 민간가계부문의 소득에 비하여 과도한 소비증가를 유도하여 가계부채를 늘리고(re-leveraging), 정부부문 역시 재정지출을 확대함으로 적자를 급증케하는(re-leveraging) 요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re-leverage 정책은 드디어 효과를 발휘하여 주요 선진국들의 가계소비증가와 함께 GDP성장을 이끌어내고 경기침체로부터 점차 벗어나기 시작했지요. 치료약이 제대로 먹혔나 싶었지요. 그러나 새로운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경기회복이란 필연코 인플레이션을 수반하는 것이고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감수해야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일명 정책수단으로 사용한 재정적자와 아울러 정책결과로서의 경상수지적자라는 쌍둥이 적자가 그것입니다.

인플레이션이란 근본적으로 화폐현상이고 시중의 유동성이 많으면 발생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바, 90년대 말 전세계적인 생산시설의 과잉이란 문제는 결국 저금리와 함께 기업들을 위주로 과잉유동성문제를 야기하고 이것이 또한 인플레이션을 잉태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보다 장기로는 전쟁기에는 높은 인플레이션을 보이고 평화기에는 디플레이션을 보이게 되어 월남전 이후 별다른 전면전 내지 장기전이 없는 2000년대는 일단 평화기로 구분되어 인플레이션보다는 디플레이션 경향이 더 강할 수 밖에 없으나 평화기간에도 나름대로의 속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1인 1표를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와 1달러 1표를 표방하는 자본주의의 갈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사회구조는 민주주의이며 동시에 자본주의를 추구하기에 이들간의 태생적 갈등은 필연적으로 자본의 사용상의 제한으로 인하여 인플레이션에 주는 영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성행할수록 정부지출이 커지고 재정적자를 수반한 인플레이션이 강해지는 반면,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성향이 강해지면 인플레이션이 억제되고 디플레이션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70년대 후반부터 세계경제의 추는 자본주의로 흘러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2000년도의 세계적인 자산가격의 붕괴를 초래하였으며 이후 다시 민주주의로 중심추가 이동하면서 자산가격의 상승과 공공부문의 부채증가 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세계적인 고령화문제는 고령인구에 대한 공공지출을 확대하고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이 되고 있으며 특히 자산가격의 앙등을 초래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지요. 노인들은 일반재화나 서비스를 구입하여 소비하기 보다는 점점 높아지고 있는 기대수명에 대비하기 위하여 부동산, 주식, 채권 등의 실물자산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단 해석입니다.

결국 최근의 부동산버블 논쟁에도 불구하고 고령화사회의 초입에 들어서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란 것입니다. 아울러 이제까지의 채권가격의 상승(금리하락)과 주식가격의 상승도 충분히 예상되었던 전반적인 경제현상이란 것이지요.

따라서 보다 장기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려면 이러한 요소들 즉, 이미 적당히 상승한 자산가격, 불안정한 경제성장과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을 감안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적당한 부를 보유하지 못한 대부분의 예비고령자들에게는 아무래도 소비보다는 저축을 먼저 생각하여야 할 것이지만 말입니다.

하긴 최근 미국금리 인상으로 인해 가계부문의 소비감소와 저축증대가 오히려 경기회복을 더디게 하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하고 벌써부터 고민하고 있다고는 하더군요 최근 미국 가계부문의 저축률이 고작 0.5% 수준이었다지요. 이제 금리가 오르면 좀 저축해볼까 한다는데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 경제는 어떤 시각에서 해석되어야 할지 참 궁금합니다.

이제 막 자본주의를 마감하고 민주주의로 나아가고 있다면 더구나 고령문제가 이제 시작하는 분위기라면 인플레이션과 저성장이란 단어가 함께 붙어다는 것 아닐까요. 그런 현상을 스태그플레이션이라 한다던데… 으스스한 괴기담같은 소리지요. (산업은행 런던지점 부지점장)  




Copyright© 2000 ~ 2004 edaily. All rights reserved. webmaster@edaily.co.kr

2004/10/19 08:02 2004/10/19 08:02

« Previous : 1 : ... 396 : 397 : 398 : 399 : 400 : 401 : 402 : 403 : 404 : ... 429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