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적어 놓은 얼마되지 않는 옛일기를 지우다가 문득, 이 작은 삶 속에서도 지워야 할 부끄러움이 있음을 알았다.
미친다는 건 현실 도피의 한 방편이다. 자기 속으로 한 없이 잠겨드는 일. 이는 방편이기 때문에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다는 --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 큰 문제점을 갖고 있다. 미친 사람들이 가진 유일한 걱정은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가끔 미치고 싶다가도, 미쳤다가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가서 내가 벌려논 일들을 보고 자괴할 생각을 하면 감히 미치질 못하겠다. 아무 생각 없이 생활하다보면, 문득 치매 걸린 사람처럼 정신이 번쩍 들어 방금 전까지 내가 한 짓을 떠올리고는 이러다 정말 미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 유일한 걱정은 고장난 경고등 같은 내 제정신이 언젠가 멈춰버리진 않을까 하는 것 뿐이다. 만약 멈춘다면, 영원히 멈춰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