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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2002,우리교육) 를 읽다.


시평(詩評)이나 문학해설(文學解說) 같은 문학평은 평(評)이라는 것 자체가 가진 특성상 당최 객관적으로 글을 쓸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신경림은 책의 서문에서 "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내 시관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 그러면서도 한 시인의 평전적 성격에서 벗어나 서로 유기적으로 조합되어 우리 시의 한 경관(景觀)이 되게끔 노력했다. " 라고 적으면서 평(評)의 기본적인 성질을 간과했다. 더욱이 서문을 의식하지도 않았는지 책의 내용은 전부가 자기 주장의 고집이다.


2002.05.11
2002/05/11 04:51 2002/05/11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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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복

2002/03/23 23:02 / My Life/Diary
어느 고장에서는 새벽을 새복이라고 발음한다. 어째 좀 덜 쓸쓸해 보이고 덜 차가운 느낌이 아닐까?

밤은 깊어가고-혹은 아침은 밝아오고- 정신은 퇴폐했다. 시간은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흔해빠진 말이 묵직하니 아랫배에 증오스럽게
쌓여간다. 이기와 위선에 저주 받아 불룩해진 내 배를 움켜잡고 고통에 벌벌벌 떠는 이 새복에는,

폭죽 터지듯 무수한 창자들이 작열했으면 하는 우스운 생각이 머리 속에 맴돈다. 터져라, 터지지 말아라, 터져라, 터지지 말아라, 터져라... 주문을 외우다, 외우다, 혼미해지는 정신을 느끼다, 잠이 들다.

잠에서 깨어났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시간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었다. 무척이나 많은 예외를 제외하고.

우울한 글은 어울리지 않는 이곳에, 다소 미안하지만 이런 글 하나쯤 서 있는 것도 나쁘진 않을거야. 아주 가끔은.

이런 나도 당신을 생각해도 되겠지- 허락없이, 아주 가끔은.
2002/03/23 23:02 2002/03/23 23:02

객혈(喀血)

2002/02/26 22:43 / My Life/Diary
객혈(喀血)을 하다. 화장지 열댓장을 흠뻑 적실 정도의 양이었으나 아무런 고통도 없었다. 야간진료 병원의 말린 멸치 같은 젊은 의사는 엑스-레이에서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고, 예의 그렇듯 환자의 걱정만 늘리는 헛소리를 뱉어냈다. " 원칙상 입원입니다만, 내시경 검사를 해야하는데 이 병원엔 장치가 없습니다. 다시 객혈할 경우 기도가 막혀 위험할 수도 있으니 일주일간 입원을 권고합니다. " -숫자 계산 속에 우리는 멈칫했고, 그러자- " 아니면 주사를 맞고 내일 큰 병원으로 가시던지요. " 의사는 건성으로 말했고, 주사실의 간호사는 반말을 쏘아대며 벗겨진 엉덩이를 후려쳤다. 내가 주사를 맞고 나온건 의사가 9시 뉴스를 보러 대기실로 사라진 후였다.

병원 앞 약국의 약제조사는 " 야간진료 담당의(醫)는 의사로 볼 수 없지… 갑자기 그런 것이라면 신경과민과 과로로 인해 생겼던 코피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 기도에 쌓였던 것이야… " 라며 놀라운 추리력을 발휘했지만 전화번호와 호수를 헷갈려했다. 검은 챙모자를 쓰고 나온 어머니는 치료비 걱정에 어두웠고, 까만 바탕 속 하늘의 보름달은 노랗게 밝았다.

집에 돌아와 3일간의 휴가를 내고 뒷수습을 끝내자 역사드라마 상도의 방영에 앞서 CF가 흘러가고 있었다. 더 이상의 객혈은 없었으며 가슴도 아프지 않았고 몸은 나른했지만 정신은 평온했다. 모든 것이 지난주와 같았다.


2002.02.26
2002/02/26 22:43 2002/02/26 22:43

2002.02.24

2002/02/24 23:13 / My Life/Diary
아침 5시에 잠들어 오전 10시에 일어나다. 남자 500m 쇼트트랙, 여자 1000m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를 12시까지 봄. 온 몸이 쑤신다.
2002/02/24 23:13 2002/02/24 23:13

《한국사상사의 과학적 이해를 위하여》(1997,청년사) 를 읽다.

00년 2학기 교양필수 과목인 '인간의 역사' 교재였던 것을 근 이년만에야 독료(讀了)하였다. 국사 교과서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지지부진한 내용을 가진 논문들을 모아 놓았다. 8천원이란 가격이 터무니 없이 느껴짐.

" 이렇게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 수많은 책들을 보면서 마음이 늘 개운하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이들 책들이 고단하고 힘들었던 우리 조상들의 역사를 너무 가볍게 흥미 위주로 그리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서문 中)

기존의 수많은 책들이 흥미 위주로서의 문제점이 있었다면 이 책은 그것 조차 없다.


2002.02.24
2002/02/24 04:50 2002/02/24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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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23

2002/02/23 23:10 / My Life/Diary
고등학교 동창인 K에게 연락이 오다. 공익요원 생활 초기에 한 번 만난 후로 첫 연락. 삼수를 했던 그는 이번에 대입에 성공했으나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번에 진학하지 못할 경우 군에 끌려가는 상황인지라 자의반 타의반의 결정인 듯 함. 다음 주 토요일에 만날 것을 약속. 아주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여럿 만날 수 있을 듯 하다.

구청 직원과 함께 중국집에서 점심(짬뽕)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7시까지 잠을 잤다. 8시에 저녁을 먹다. 책상은 난잡하고 옷걸이엔 청바지와 외투, 공익복 등이 죽은듯이 누워있음.
2002/02/23 23:10 2002/02/23 23:10

2002.02.16

2002/02/16 23:07 / My Life/Diary
술을 마시다.
술을 마시다.
술믈 마시다.

어지럽다. 파노라마와 같은 시각.



2002.02.16
2002/02/16 23:07 2002/02/16 23:07

2002.02.15

2002/02/15 23:06 / My Life/Diary
상당한 시력의 저하. 야구게임을 너무 많이 한 탓인지, 아니면 저가형 모니터를 사용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근 1년 사이에 내 눈은 엄청나게 늙어버렸다.

땅콩은 여전히 떨고 있다. 추운 듯 하여 이불을 덮어주면 더운 듯 걷어차고 나와버리니 그년 속을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내일이 의사가 단언했던 완치일.

수시로 멈추는 컴퓨터의 원인을 인터넷공유기(Airlinktek社의 GW-100)에서 찾을 심산으로 A/S 지점까지 파악한 후에 혹시나 하는 생각에 LAN선을 여분의 새 것으로 교체했더니 증상이 깨끗이 사라졌다.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님. 10여분간의 ping 에서 0% loss 기록.

이야기에서 漢字가 보이지 않아 애를 먹었다. 게시판에서 해답을 찾아 원상복구했다.

【定刊法改定】 문제로 신문사간의 의견 충돌. 나는 그 누구의 의견에도 전적으로 동조하지 않는다. <조선일보>,<문화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社主를 옹호하는 私社임을 공개적으로 천명, <한국일보>,<국민일보>-언제나 그렇듯 미온한 중립노선으로, <한국일보>는 고즈넉히 사태관망을 한 후 한달 즈음 뒤에야 사설을 발표할 듯. 장명수 女士의 변명이 궁금하다. <세계일보>,<대한매일>-'민간기업의 탈을 쓴 공기업 전문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김삼웅氏는 다시 자유롭게 역사비평이나 써야 할 인물이다. <한겨레>-외눈박이 꼴통들의 헛소리. <경향신문>-관련 사설 없어 제외되었다.
2002/02/15 23:06 2002/02/15 23:06

2002.02.14

2002/02/14 23:05 / My Life/Diary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기제(忌祭)준비. 몇 가지 지방(紙榜)쓰는 법을 익히다.
약간의 돈을 저금, 엄마 빼감.
땅콩은 약간의 미열이 있는 것으로 판명. 완쾌엔 2일 소요. 주사를 한 대 맞고, 음용액을 얻어왔다. 심장사상충약 구입, 약 3만원.
2002/02/14 23:05 2002/02/14 23:05

김약국의 딸들

2002/02/14 04:50 / My Life/Diary
《김약국의 딸들》(1993,나남) 을 읽다.


같이 근무하는 P씨의 추천으로 읽었으나 《레테의 연가》(1994,둥지) 를 읽고 이문열에게서 받은 실망감과 (일종의) 분노를 박경리에게서 느꼈다. 전체적으로 잘 짜여진 소설이지만 한 달 방영되고 영영 기억에서 잊혀질 시대극(時代劇)의 완성도 이상의 것을 찾을 수 없다. ① 비약적이고 허술한 사건 전개 ② 연유를 찾기 어려운 감정 표현 ③ 시대적 사상에 관한 얕은 이해(p113-115, p192-196) ④ 한·외어(韓·外語)의 비적절한 사용(p216-217) 과 같은 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많은 찬사를 받은 건 당시 시대상황에 대한 친절한 묘사와 대화속에 나타나는 토속어의 광범위한 사용 때문일 것이다. 과거 한국문학계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남발된 사투리가 대화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설에 상당히 후한 점수를 주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역적, 토속적 묘사에 대한 높은 평가?)

제목 그대로 김약국의 다섯 딸들에 대한 얘기가 시간의 흐름을 타고 비극적인 종결로 마무리 짓는 이 소설은 지나치게 극적인(≒ 비현실적인) 요소(p297, p372) 와 지루한 결말(p372, p387)로 시대극으로서는 물론이고 비극소설 자체로서의 현실감도 떨어뜨렸다. 단지 봐줄 구석이라고는 소설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한돌이와 한실댁의 죽음(p310-312) 부분 뿐이다.


2002.02.14
2002/02/14 04:50 2002/02/14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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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13

2002/02/13 23:04 / My Life/Diary
9시간의 여독(旅毒) 때문인지 아니면 찬 바람을 장시간 동안 쐬어서인지 땅콩은 하루종일 퀭한 눈으로 밥도 거른 채 비실대더니 지금은 얌전히 배를 깔고 누워 곤히 자고 있는 듯 하다.

정보처리기능사 시험 준비를 하다. 실기 문제집 3장까지 무난한 진도. 다음 장부터 고될 것.

SBS에서 방영한《매트릭스(Matrix)》를 보다. 뻔한 헐리우드식 구성. Led Zeppelin의 Kashmir. 엄청난 특수효과. 사망한 알리야.
2002/02/13 23:04 2002/02/13 23:04

《장정일의 독서일기(1993.1~1994.10)》(1995,범우사) 를 읽다.


장정일은 국내작가에 대한 불신임 내지는 비교하위적(比較下位的) 관점을 가지고 있다. 상당히 건방진 시각이지만 타당한 이유와 자료에 기초하고 있기에 반론을 제기하기 어렵다. 다만 그 잣대의 근간을 이루는 국외서적의 번역본, 이상의 것을 읽지 못한 작가 자신의 편협성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2002.02.13
2002/02/13 04:46 2002/02/13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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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Und sagte kein einziges Wort)》(1984, 학원사) 를 읽다.

하인리히 뵐(Heinrich Boll) 지음
고위공 옮김


「 나는 그녀가 네 숟갈 가득 커피 가루를 니켈 뚜껑 안으로 쏟아 넣고 뚜껑을 밀어서 닫은 다음 찻잔을 커피 머신에서 빼내고 차 주전자 하나를 그 밑에 놓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조용히 수도 꼭지를 틀었고 물이 끓는 소리가 났다. 김이 소리를 내며 그녀의 얼굴을 스쳐 갔고 흑갈색의 액체가 주전자 안으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내 심장이 조용히 고동치기 시작했다.

나는 가끔 죽음이라는 것과 이 세상에서 저 세상의 생으로 변화되는 순간을 생각해 볼 때가 있다. 그리고 순간 나에게 남게될 것들을 한 번 상상해 본다. 아내의 창백한 얼굴, 고해소에서의 신부의 밝은 귀, 의식의 화음으로 가득 찬 어두컴컴한 성당에서 갖는 몇 차례의 조용한 미사. 빨갛고 따스한 아이들의 피부, 내 혈관을 흐르는 술, 그리고 몇 번의 아침 식사, -- 그리고 커피 머신의 수도 꼭지를 작동시키는 소녀를 보는 순간 그녀도 함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p.35-36) 」

「 나는 그를 쳐다보며 애써 웃으려고 해 보았으나 거친 딸꾹질만 마치 트림처럼 올라왔다. 모든 것이 그에게는 성가신 일이었을 것이다. 깨끗하게 손질한 그의 평복, 세련된 손, 섬세하게 면도한 볼, 이런 것들이 나에게 다 낡아 빠진 우리 집을 의식하게 했다. 맛도 없고 느끼지도 못하는 흰 먼지처럼 십 년 동안 우리가 들이마시는 이 가난. -- 보이지 않고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정말로 존재하는 빈곤의 먼지가 내 폐와 심장과 뇌에 쌓여 있고 내 몸의 혈액 순환을 조정하고 있고 나에게 호흡 장애를 일으키고 있다. 나는 심한 기침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p.47) 」

「 주위가 고요한 밤이면 소파에 누워서 울 때도 있다. 애들의 숨소리와 이가 나기 때문에 불편해하며 꼬마가 몸을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 온다. 나는 울며 기도한다. 시간의 맷돌이 천천히 갈리며 지나가는 것이 들린다. 결혼 당시 내 나이는 스물 세 살이었다. 그 후 십 오 년이 흘렀다. 나이를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시간은 지나가 버렸다. 그러나 애들의 얼굴만 쳐다보면 나이를 알 수 있다. 애들이 먹어 가는 한 해 한 해가 내 인생에서 없어져 가는 것이다. (p.66) 」

「 "아침 때문이지. 나는 일생을 같이 아침 먹을 사람을 찾고 있었어. 그런데 당신이 나타났지.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당신은 멋진 아침 식사의 파트너였지. 그리고 나는 당신과의 생활이 결코 권태롭지 않았어. 당신도 아마 내가 지루하지 않았을 거야." (p.105) 」


2001.09.10
2001/09/10 05:03 2001/09/10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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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한 명이 내년 초 쯤에 결혼을 할 예정이란다. 학교 선배는 아니고 공익 선배. 26살 먹고 들어와서는 한참 어린 애들에게 반말이나 들어가면서도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선배. (물론 안 할 수 없기에 하는거다.)

오래 알고 지내던 여자고, 그리고 연상이며, 올해 초 부터 급격히 가까워졌다. 하지만 결혼까지 고려할 정도는 아닌 관계 - 라고 말하면 조금 이상하지만 (물론 그 나이 즈음 되면 여자건 남자건 결혼을 전제로 깔지 않을 수 없는 거 겠지만) - 에서, 문득 여자의 월경 주기가 늦어졌다는 알싸한 소리를 듣고는 부랴부랴 날짜를 잡기에 이르른 것이다.

" 넌 능력이 없잖아 "

생긴 것도 기생 오래비 같이 생긴 연하의 선배란 놈이 내뱉는 소리가 고작 리의 신분이 겨우 이 정도인데 너 따위가 결혼해서 1년을 버틸 수 있을 것 같냐는 조롱 섞인 한마디였다.

" 배추라도 팔아야죠 "

치기어린 선배의 머리속을 혼란하게 만들어 놓는 말을 툭 뱉고서는 ' 너 같이 어린 자식이 결혼을 아느냐? ' 는 표정으로 담배를 물었다.

" 선배 제대가 언제죠 ?"

내가 물었다. 그래도 현실 속에서 생활하기 위해선 현실적이어야 하니까.

" 이천.....삼..년... 일월... 즈음 "

그는 반쯤 타버린 담배를 오른손에 끼워 넣으며 읊조리듯이 말했다. 앞으로 1년 4개월. 배추장사를 해서 1년이라도 어떻게 버텨나갈 수 있을까? 그렇다면... 1년 후에는? 아이는? 산후조리에 지쳐있을 아내는?

" 그래도 좋아하긴 좋아하나 보네, 한 번 일 냈다고 결혼할 생각을 하는걸 보면 말이야... "

기수가 제일 높기에, 그거 하나로 최고참으로 대접 받는 왕고(王古)의 말에 그는 씁쓸한 마지막 반 모금의 담배 연기를 뿜어 날리곤 떨떠름히 웃었다.

' 결혼은 사랑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

누구의 말인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전혜린, 혹은 기형도일테지. 어린 나의 생각이 점점 통속화 되가는 이 하루하루가 가끔은 살인적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과거엔 상상도 못했던, 지금은 용납이 안 되는.

사랑 여자 결혼 낙태

…그러나 빈번히 일어나는


2001.08.21
2001/08/21 22:43 2001/08/21 22:43

아쉬운 하루

2001/03/25 22:42 / My Life/Diary
오늘 하루는 밤만 있었다.

본래 해가 잘 들지 않는 방이기도 하지만 해가 다 지고 난 뒤에야 기나긴 잠을 끝내고 깨어났으니 어두운 밤만 보이는게 당연했다. 욱신대는 목덜미와 돋아난 혓바늘이 불안한 신경을 자꾸만 흔들어대는 통에 괜한 성질로 가족들 분위기만 잔뜩 흐려놓고, 갑자기 울려댄 알람시계는 벽으로 내동댕이 쳐져 부서질 뻔 했다.

어디서 올라오는지 알 수 없는 열기는 쳐진 몸을 더욱 쳐지게 만든다. 창문을 열고 찬바람을 맞아 보지만 시원한 줄을 모르고 몸은 무겁기만 하다. 감기가 걸렸나? 몸이 허해진걸까? 하루 한끼도 못 먹은 탓일까? 아니다. 모두 아닌 것 같고, 그대 없는 생일날 장례식을 치룬 탓일게다.

어제는 어제로 버려두자. 방 청소를 하고 미지근한 물에 목욕을 해야겠다. 창문도 닦아야지. 앞이 흐리다.


2001.03.25
2001/03/25 22:42 2001/03/25 22:42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기억되고자 하는 모종의 욕구(내지는 두려움)는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만나서 헤어짐을 아쉬워 하지만, 한 달도 못 다 채우고 망각 속으로 날려 버릴 그런 인연들은 아닐까…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어찌보면 자기 자신에 대한 도전일런지도 몰라. 최종적 자아완성을 사랑을 통해 찾으려 하는 본능적 욕망… 하지만 자신의 존재가 그 도전에 다다르기엔 너무 멀리 자리해서 시도조차 해보기 어려운 사람도 있어.

우리의 인생은 터럭보다 짧고 시간은 빛보다 빨라 망각은 시간과 비례하고 감정은 인생에 반비례 한다. 사랑이 무엇인지, 왜 사랑하는지, 누굴 사랑하는지 나는 모른다. 내 사랑은 진실된 것인가…?


Manha De Carnaval,
Black Orpheus 를 듣다가…
2001/01/19 22:59 2001/01/19 22:59

한 동안 나이를 생각해보지 않았다. 라고 전혜린은 말하며 여자에게 서른이란 어떤 크나큰 전환기라고, 자신의 글 속에 그녀의 우울함을 축축하게 한껏 담았다.

나도 한동안 나이를 생각해보지 않았다. 라고 말하며 헤아려보니 이제 내 나이만으로 스물이다. 감히 짐작해 보건데 내 나이 스물은, 나에게 어떤 크나큰 전환기가 될 전망이다. 빛나는 햇살 같은 청춘을 간직한 스물이 아니라 오래된 삼원색 형광등 불빛 같은, 30년전에 출판된 세로읽기쇄의 너덜한 수필집 같은 스물이다.

곧 푸른 점퍼를 입고 동사무소에 들락거리는 신세가 될 것이고, 내 시기의 보편적 청년들이 생각하듯 3년을 16절 갱지에 낙서하는양으로 보내게 될것이다. 물론, 나는 그러고 싶진 않지만… 20년간 바람은 내가 불어줬으면 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적이 없었다. 점퍼의 먼지를 털어내도 털어지지 않을 때 쯤 되면 제대를 할 테고… 어느새 23살, 학기에 맞춰 복학을 하게 되면 24살. 대학을 졸업하고 주위를 정돈할 즈음 되면, 한동안 나이를 생각해보지 않던 여인에게 우울한 생각을 떠올리게 만든 서른살이다.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 - 중학교 교무실 앞에 걸려있던 문구에 건방진 투로 왠 프리-모더니즘한 말똥이냐! 실실대며 꿈의 이십을 꼽아왔건만 그 실실대던 실없던 소년은 이리 쉽게 늙어버렸다. 그 무엇도 이루지 못한 채...

아무렇지 않게 먹어왔던 나이가 갑자기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역시나 건방지게 스무살 문턱을 조금 넘은 주제에…


2001.01.11
2001/01/11 22:41 2001/01/11 22:41

변모

2001/01/02 22:58 / My Life/Diary
예전에는 내 반려자가 없는 중년이나 노후는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도저히 살 수 없을거라 생각했고, 지금도 외로운데 나중엔 얼마나 더 외로울까 싶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그까짓 반려자 없어도 행복하고 기쁘게, 외롭지 않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로 변해버렸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보고 밥을 먹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컴퓨터를 붙잡고 앉아있다가 멍청히 혼자 웃고 즐기다 보면 어느새 오밤 중이다. 그리고 돌이켜 보면 만족스럽게 하루를 보낸 것 같다. 나돌아다니는거엔 별 취미가 없으니 돈 들어갈 일이 없고, 딱히 챙겨줄 사람이 없으니 이런저런 신경쓸 일이 없다. 고작 오늘 내가 신경쓴 일이란 어느 책을 몇 페이지까지 읽었으며, 아까 끓인 헤이즐넛이 너무 맛이 옅었으니 다음 번에는 물을 조금 덜 부어야 하겠구나... 혹은 내일은 학교에 가봐야지... 같은 사소한 것들 뿐이다.

하루종일 느꼈던 갈색 외로움 같은건 어디론가 휭하니 사라져 버리고, 이제는 무감해 진건지 익숙해진건지 알 수 없는 내 삶 속에서 만족하며 살고 있다. 사랑? 결혼? 이제는 끝간 터널구멍처럼 까마득히 멀리 느껴져서 내 머리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나란 인간은 x랜덤 함수에 무한 루프를 걸어준 것 같은 존재라 언제까지 이런 상태가 계속 될지 모르지만 이렇게 사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구나 싶다.

...

아! 다시 생각해보니, 당신에게 지쳐버린 것 같다.
2001/01/02 22:58 2001/01/02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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