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나이를 생각해보지 않았다. 라고 전혜린은 말하며 여자에게 서른이란 어떤 크나큰 전환기라고, 자신의 글 속에 그녀의 우울함을 축축하게 한껏 담았다.

나도 한동안 나이를 생각해보지 않았다. 라고 말하며 헤아려보니 이제 내 나이만으로 스물이다. 감히 짐작해 보건데 내 나이 스물은, 나에게 어떤 크나큰 전환기가 될 전망이다. 빛나는 햇살 같은 청춘을 간직한 스물이 아니라 오래된 삼원색 형광등 불빛 같은, 30년전에 출판된 세로읽기쇄의 너덜한 수필집 같은 스물이다.

곧 푸른 점퍼를 입고 동사무소에 들락거리는 신세가 될 것이고, 내 시기의 보편적 청년들이 생각하듯 3년을 16절 갱지에 낙서하는양으로 보내게 될것이다. 물론, 나는 그러고 싶진 않지만… 20년간 바람은 내가 불어줬으면 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적이 없었다. 점퍼의 먼지를 털어내도 털어지지 않을 때 쯤 되면 제대를 할 테고… 어느새 23살, 학기에 맞춰 복학을 하게 되면 24살. 대학을 졸업하고 주위를 정돈할 즈음 되면, 한동안 나이를 생각해보지 않던 여인에게 우울한 생각을 떠올리게 만든 서른살이다.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 - 중학교 교무실 앞에 걸려있던 문구에 건방진 투로 왠 프리-모더니즘한 말똥이냐! 실실대며 꿈의 이십을 꼽아왔건만 그 실실대던 실없던 소년은 이리 쉽게 늙어버렸다. 그 무엇도 이루지 못한 채...

아무렇지 않게 먹어왔던 나이가 갑자기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역시나 건방지게 스무살 문턱을 조금 넘은 주제에…


2001.01.11
2001/01/11 22:41 2001/01/11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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