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주ㅡ 즐겁다. 쓰는 글마다 어째 울적하지만, 그건 글이기 때문. 그런 글만 써왔으므로 즐거울 때조차 그런 글밖에 나오질 않는 것이다. 무표정 짓기와 우울한 글짓기는 오래된 습관이다. 여하튼, 즐겁다. 말하자면, 지금 나는 해맑은 웃음를 지으며, “당장이라도 죽을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살고 있다.”고 쓴다. 오로지 하루 일과를 충실히 마치겠다는 생각. 그리고 내일 새벽에 죽어버리면 그만, 이라는 생각으로 산다.
“네가 헛되이 보낸 하루는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구하던 하루”라는 개소리가 있다. 지하철 화장실 변기 앞에 붙어 있는 “멋진 당신, 한 발자국만 더 앞으로” 같은 느낌. 내가 내일 죽을 줄을 오늘 안다면, 내일 하루를 갈구하느니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겠다. 내일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또한 헛되이 보내는 하루 따위는 없다. 살아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충실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러고 있단 말이다…
무작정 열심히 일하고 있다. 목표도, 계획도, 희망도 없다. 돈을 모으기 위해 일하는 것도 아니다. 일이 있으니까, 누군가 시켜서, 남들도 하니까ㅡ 나도 한다. 집에 돌아와선 컵에 꼭 술을 반씩 채워 마시며 책을 읽는다. 아무 걱정이 없다. 여차하면 죽으면 그뿐. 나는 지금 죽음이니 자살이니 하는 우울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하루를 충실히 사는 방법을 정말 확신에 차서, 얼굴에 미소까지 지어가며 쓰고 있는 거란 말이다…
해탈했다고 생각했다. 불경도 꽤 읽었고, 새벽마다 백팔배도 해온데다가, 요 며칠, 증오도 분노도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그러나 어제, 잠들기 전 물을 마시러 나갔다가 엄마가 툭 던진 한마디에 세게 맞았다. 어김없는 개소리. 아무 것도 느껴지질 않았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분노하고 있었다. 괴로웠던 기억들을 하나씩 끄집어내 돌려보면서 불에 기름을 붓고 있었지만… 아무 것도 타오르질 않았다.
결국 하릴없이 살짝 웃고는 방에 들어와 불을 끄고 눕는데, 뭔가 번쩍ㅡ.
문득, 나 자신, 분노가 되버린걸까.
술병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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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부터 벗어버려ㅡ 그냥 진통제 먹으면서 사는 거야. 기요틴 기요틴, 슈루슈루 슈ㅡ. 웃지 말고 잘 들어. 여섯 시간마다 두 알씩… 꼬박꼬박. 기요틴 기요틴, 슈루슈루 슈ㅡ. 담배는 한 번에 두 개비씩. 필터는 꼭꼭 깨물어서. 그래야 단맛이 나거든. 기요틴 기요틴, 슈루슈루 슈ㅡ.
행복한 여자와 행복한 남자가 만나면, 그 행복은 <8+8 = 16>이 되지. 그럼 불행한 남자와 불행한 여자가 만나면, 그 불행은? <8-8 = 0>, 땡. <8+8 = 16>, 땡. <8ⅹ8 = 64>, 땡. 정답은 <8의 8제곱근 = 16,777,216>이라네! 기요틴 기요틴, 슈루슈루 슈ㅡ.
하나도 피곤하지 않은데, 눈이 빨개.
그래 물론, 행복한 여자와 불행한 남자가 만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아아ㅡ 그것은 그야말로 잔혹한 범죄… 불행한 남자가 저지르는. 용서받지 못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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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깊은 자는 사랑도 깊다.” ㅡ『청춘의 착란』(다자이 오사무), p.277 |
지난 주는 기분이 없었습니다. 이유 없이 몸이 고단했고, 악몽을 두 번. 충격적인 사건은, 집에 가는 버스 중간에 내려 맥도날드 딸기 쉐이크를 사러 갔는데ㅡ 팔지 않았던 것. 션 뉴튼을 죽여버리고 싶었습니다. (션 뉴튼은 맥도날드 코리아 사장으로 영수증에 찍혀 나오는 이름입니다. 면상을 한번 보고 싶네요.)
맥도날드 앞에 있는 서점에서 우연찮게, 최근 번역된 다자이 오사무의 서간집을 찾아 사들고 와선 첫 장을 펼쳤는데… 저 말이 있지 뭡니까. “죄가 깊은 자는 사랑도 깊다.” ㅡ 그날은 도저히, 읽을 엄두가 안 나서, 책을 덮고 잠에 들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가 6월 19일 태어나서 6월 13일 죽은 사실… 아니, 6월 13일 야마자키 도미에와 함께 저수지에 투신, 서른 아홉번째 생일인 6월 19일 시체가 떠오른 사실, 아십니까? 아, 오늘이 투신한 그날입니다. 술을 먹고 싶은데 취할 용기가 나질 않아 가게에서 청주 댓병을 사서 작은 컵에 반쯤 담아 마셨습니다. 한동안 기분이 없었는데, 비가 내리고 바람이 치고 술이 들어가니 즐거운 절망감이 미지근하게 올라오네요.
“술을 마시고 싶지만, 그러나, 마셔 봐야, 더욱 즐겁지 않습니다. 취해서 잠에 들 뿐입니다. 저희가 살아 있는 동안, 늘 이럴지도 모르겠습니다.” ㅡ p.269
요즘 부쩍, 다시 담배에 손이 갑니다. 마지막으로 태운 게… 그러니까 일 년 전쯤. 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한 날. 그의 사상이나 행적에 존경심을 갖었다기 보다는 (전 그가 두 번 죽어도 개인적으로는 별로 슬프지 않을 겁니다), 당시 제 처지가 그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해 오산한 셈일세. 너무 만만하게 얕잡아 봤었어. 이제 와서, 주위를 둘러보면, 눈앞의 사실은 스무 살 무렵에 생각하고 있던 것과 전부, 완전히 달라져 있네. 분명히, 이런 게 아니었는데. 우리의 오산ㅡ 이것도 우리 불운의 근원일세.” ㅡ p.41
자살은 그저 하나의 선택입니다. 좋고 나쁨을 논하는 건 살아있는 자들의 유희일 뿐. 투신, 투신하니까 나로호가 생각나네요. 뒤집힌 촛불 하나가. 펑ㅡ. 그렇게 힘들게 올라가더니 참으로 빠르게 떨어지데요. 그 순간 저는 느꼈습니다. 우리를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어떤 운명 같은, 잠깐, 청주를, 반 컵 더.
“오늘은 바람이 거세어, 저는 얌전히 독서 등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아서, 그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려 와, 39세인 저도, 울고 싶어집니다.” ㅡ p.297
멍청하게 하루를 살고 있고, 내일도 그럴 겁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그저 담담하게, 강요된 웃음으로. 이번 달이 지나면, 돈도 충분합니다. 선택권이 저에게로 넘어옵니다. 아무튼, 내일도 근면하게 살려고, 청주 반 컵을 입에 털고, 책을 덮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죄가 깊은 자는 사랑도 깊다.”
다만. 사랑하지 않기만을. 이게 가장 문제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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