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경주들이 벌어진 하루. 미국에선 젠야타(Zenyatta)가 파죽의 16연승. 한국에선 동반의강자가 12연승을 거뒀고, 노던에이스가 더비를 앞두고 대차 승리.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강의 마필인 동반의강자는 이번 경주 63kg을 지고 내내 어려운 주행을 하더니 아슬아슬하게 연승 성공. 사실 편성 자체로만 보면 63kg도 적다. 기본적으로 동반의강자가 가진 능력이 압도적이며, 그에 도전할 만한 마필을 가진 마주ㆍ조교사들은 어떻게든 더 많은 상금을 벌기 위해 동반의강자를 피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핸디캡이 낮아지기는 쉽지 않다. 현행 제도는 핸디캡 부담중량에 상한선을 두고 있지 않다.

영국이나 프랑스, 아일랜드 등 경마 역사가 깊은 유럽에서는 60kg을 넘게 달고 뛰는 마필을 종종 볼 수 있다. 다만 대개 잔디 주로를 쓰고 있기에 마필에 무리가 덜하며 우리나라처럼 편성에 의해 부중의 높낮이가 좌지우지될 가능성은 비교적 적다. 핸디캐퍼의 레이팅에 기반한 경주보다는, 우리나라로 치면 별정중량의 핸디캡 경주가 대다수이기 때문. 또다른 거대 경마 시장인 미국의 경우 역시 이번에 젠야타가 뛰어 16연승을 달성한 애플 블로섬 핸디캡도 별정중량 개념으로 부중이 책정됐다. 더욱이 미국은 전체적으로 부담중량을 적게 주기에 60kg까지 달고 뛰는 마필을 요즘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일면 좋은 현상이지만, 거꾸로 말하면 마필이 약해졌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다. 나중에.)

출전 마필 모두에게 우승 기회를 주려는 목적과 더욱 강한 말을 가리고자 하는 목적 두 가지 가운데 어느 쪽에 보다 큰 무게가 실리느냐에 따라 나라별 핸디캡 운영정책에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서로 다른 경마 환경 및 문화적 특성 역시 부중 책정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하나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부중이 말을 죽이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마필에게 무리라고 생각되면 말을 출전시키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그럴 경우 매우 한정된 경주에 출전해야 하며, 출전한다해도 여전히 높은 부중을 받을 것은 자명하기에 현실적으로 그런 일이 없을 뿐이다. 한국에서의 높은 상금을 포기하고 부중을 적게 주는 해외로 가지도 않는다. 결국 마필만 죽어나가는 모양새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선 1군 핸디캡 경주 및 대상경주를 정비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현재 서울에서 시행하는 리스티드(Listed)급 대상경주만 11 경주. 일전에 마사회 관계자는 권위가 없는 대상경주가 많지만 언론사 이름이 붙은 것들이 많아서 없애고 싶어도 관계가 나빠질까봐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 가운데서 2세마 대상경주를 제외한 나머지 2ㆍ3군 대상경주는 모두 1군 마필만 참가할 수 있는 대상경주로 꾸리자. 1ㆍ2군 일반 경주의 경우 별정중량으로 운영하되 상금 규모를 상당폭 축소시키고 재원을 대상경주에 투입, 이 대상경주들의 1~5착 사이의 상금 격차를 줄이고 수득상금별로 상당한 액수의 출전료를 받아 핸디캡으로 시행하면 어떨까.

상금을 바라볼 수 있는 1군 우수마들만 출전하므로 대상경주의 권위도 살고 핸디캡 격차는 줄어들 것이다. 하위급 1군마들은 1군 일반 경주에서 근근히 살아나가면 되고, 동반의강자 같은 마필의 경우 많은 출전료를 내고 매달 대상경주만 출전하면 된다. 마사회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소위 선진 경마 스타일의 변형이다. 다만, 경주당 출전마는 적어질테니 마사회 매출에는 도움이 안 되겠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이런 식으로 가야된다고 본다.

노던에이스는 상당히 약한 상대들을 만나 호기롭게 우승, 더비에서 머니카와의 일전이 기대된다. 지난 2년간 교류 경주에서 부산 마필이 우위를 보이자 여러가지 이유가 등장했다. 부산은 과학적이고 강력한 조교를 하기 때문이라던지, 서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경쟁 시스템이 구축되있기 때문이라던지 등등… 이번에 만약 서울이 우위를 보이면 어떤 이유들이 나타날지 궁금해진다.

하나 더, 마사회에서 이번엔 어린 마필을 뽑아서 미국으로 해외 원정을 보냈다. 그런데 소위 선진 경마를 배우고 싶으면 조교사를 초빙하면 될 것이고, 마필 수준을 비교하고 싶으면 경주마를 사오는 게 낫다. 픽미업과 백파의 경주 결과를 놓고 미국과의 엄청난 수준 격차 운운하는 것도 우스운 일인데 이후 행보 역시 마뜩치가 않다. 지난 달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경마 대회인 두바이 월드컵에서 브라질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마필이 미국ㆍ아일랜드 등의 마필을 크게 누르고 우승했다. 브라질과 미국의 수준 격차는 얼마나 될까? 아니, 어느 쪽이 위인가? 왜 우린 브라질로는 가지 않는가?

2010/04/10 23:03 2010/04/10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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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0

2010/04/10 04:16 / My Life/Diary
지난 밤에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언젠가 그에게서 왔던 참 즐거웠던 편지 하나가 기억났다. 그것은 단지 흰 종이 위에 ‘죽었니?’ 라고 써 있었다.
전혜린, 1964. 7. 23.

바퀴벌레 하나 죽이지 않는 이가 자신을 죽일 리 있나. 삶보다 끔찍한 일이 바로 죽음. 우리는 기어코 죽고 나서도 죽음 후의 삶을 또 살지 않는가. 하나의 빗방울이 바다로 떨어지면 그것은 빗방울인가 바닷방울인가? 다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죽음은 삶보다 끔찍하다.

안병무 선생에 따르면 삶이란 가능성의 총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주요한 가능성은 죽을 수 있는 가능성. 이 가능성은 매우 특이해서 가능성을 발현시키는 순간 가능성이 소멸된다. 가능성은 가능성으로 존재할 때만 가치있다.

정거장에서의 충고
기형도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뻑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들어서는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되리
그렇다면 나는 저녁의 정거장을 마음속에 옮겨놓는다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비가 내린다. 구름이 떠다닌다. 그러나 내리지 않는 비, 떠다니지 않는 구름이 있던가. 일생의 부조리를 직시하는 이에게는 네 가지 길이 있다. 스스로 부조리가 되는 길, 부조리 속에서 죽어버리는 길, 부조리 속에서 미쳐버리는 길, 부조리를 떠나는 길. 이 갈림길 앞에서 안절부절 세월만 보내는 최악의 인생을, 나는 산다.

이것 저것 정리하고 보니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금 백만원 가량만 남았다. 여름이 되기 전에 끝낼 수 있을 듯.

…『기형도 전집』이 사라졌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어떤 획기적인…

2010/04/10 04:16 2010/04/10 04:16

2010.03.26

2010/03/26 15:30 / My Life/Diary
법정스님 '무소유' 93년판 110만원에 낙찰 (김지연, 연합뉴스, 2010.03.26)
<법정스님 '무소유 소유하기' 점입가경> (연합뉴스, 2010.03.20)
법정 스님이 돌아가시고 벌어지는 웃지 못할 일들. 무소유라 말하면 이미 소유가 있고 집착이 있다. 그대로 두면 되실 일을 무소유도 못 버리시고 말빚도 부둥켜 안고 가신 모양이다. 쌍차쌍조(雙遮雙照). 대종사가 이를 모르실 리 없다. 다만 부처되기가 힘들 뿐.

오늘날 학인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대개가 명칭을 잘못 알고 알음알이를 내기 때문이다. 큰 책자 위에다 죽은 노장들의 말을 베껴 가지고 남이 보지 못하도록 세 겹 네 겹 보자기에 싸 놓고는 그것을 ‘오묘한 이치’ 라고 하면서 애지중지하는데, 크게 잘못된 일이다. 바보들아! 말라빠진 뼈다귀 위에서 무슨 국물을 찾고 있느냐.

좋고 나쁜 것도 모르는 어떤 작자들은 경전을 자기 나름대로 이리저리 따져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는 마치 똥덩이를 머금었다가 다시 뱉어서 다른 사람에게 먹여주는 것과도 같고, 속인들이 귓속말로 비밀 전하는 것과 같다.

ㅡ『임제록』(선림고경총서), p.87
2010/03/26 15:30 2010/03/2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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