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Articles, Search Results for 'Horse Racing/Articles & Data'

  1. 2006/01/04 16연승의 기록 남긴 명마 Cigar
  2. 2006/01/04 Northern Dancer는 숏다리였다
  3. 2006/01/04 테시오와 Ribot
  4. 2006/01/04 아! 알리다여 알리다여...
  5. 2006/01/03 명마생산에 대한 특별기고
  6. 2006/01/03 맨 오워(Man O′ War) -2
  7. 2006/01/03 일본인이 본 한국경마
  8. 2006/01/03 맨 오워(Man O′ War)
  9. 2006/01/03 기수의 일과/새벽을 여는 말굽소리
  10. 2006/01/03 경마를 건전한 놀이로 즐겨야
  11. 2006/01/03 정보경마 및 부담중량을 통한 부정경마
  12. 2006/01/03 경마의 올림픽 '98.브리더스컵 경주
  13. 2006/01/03 경주마의 천국 리토트레이닝센터
  14. 2006/01/03 부정경마는 교수형으로 다스렸다
  15. 2006/01/03 영원한 퇴출대상 ‘부정경마’
  16. 2006/01/03 전설속의 명마‘에이원’36승으로 역대 최다승
  17. 2006/01/03 세계적인 혈통을 가진 우리 씨수말 (3)
  18. 2006/01/03 켄터키더비,프리크닉스 스테이크스
  19. 2006/01/03 전통을 중시하는 경마 선진국/아일랜드
  20. 2005/12/19 TOP 20 Century Race Horses
  21. 2005/11/07 Man o'War voted best of 20th Century (1999.12.22)
  22. 2005/10/28 2005년 17~18일 서울경마공원 외주로에 모래 보충 공사
  23. 2005/10/28 2005년 10월 17~18일 서울경마공원 외주로에 모래 보충 공사
  24. 2005/09/09 Sunday Silence
  25. 2005/09/09 Man o' War came close to perfection
  26. 2005/09/09 Seabiscuit: An American Legend
  27. 2002/01/29 Archer City Slew, Nite Dreamer, Walkslikeaduck to stand in Korea
황제의 휴식
16연승의 기록 남긴 명마 Cigar


모마(Solar Slew)와 생후 10일째의 Cigar.


말띠 경주마의 탄생
시가(Cigar)는 4년간 총 33회 출주하여 1착 19회, 2착 4회, 3착 5회의 전적으로 999만9,815달러를 획득한 세계 최고 상금 수득마이다. Northern Dancer의 손자인 Palace Music을 부마로, Seattle Slew의 딸 Solar Slew를 모마로 하여 태어난 그는 흔히 일류마의 전력에서 볼 수 있는, 삼관마 경주 경력도 없을 뿐 아니라 4세 가을 때까지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그렇고 그런 존재였다. 조기완성형을 요구하는 현대 경마세계에서 퇴출을 면한 것은 어쩌면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최고의 경주마로 부상할 때 심심한 호사가들이 Cigar의 사주를 보았다. 1990년생 말띠, 수호신은 전쟁의 여신 마르스(Mars), 부와 품위를 상징하는 다이아몬드가 그의 보석이다. 그러나 북미지역에서 태어난 같은 말띠는 4만4,000두가 넘었으니 진정한 성공의 열쇠는 다른 곳에 있었을 것이다.

마격(Conformation) 연구가 Cecil Seaman의 자료에 의하면 Cigar의 마체구조는 그가 데이터로 보유하고 있는 최고 경주마 4만5,000여두 중 큰 심장뿐 아니라 체장도 평균치 228.6㎝보다 9㎝가 더 길었다. 어깨뼈 또한 평균치보다 4㎝ 정도 길고 잘 경사져 있었으며, 다리뼈도 모든 부분이 평균치 보다 길었고 완벽할 정도로 균형이 잡혀 있었다. 특히 엉덩이뼈에서 시작된 뒷다리는 웅장할 정도라고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보폭이 길며 폭발적인 파워가 용출되었다.

금연가의 Cigar
마주 겸 생산자 Allen E. Paulson은 파일럿 출신의 항공분야 사업가였다.

매년 100두 이상씩 태어나는 망아지의 이름을 지을 때 하늘에서 내려다본 거점지점의 지명을 따 마명을 짓곤 했는데, Cigar는 미국 남부 멕시코만의 마을 이름이다(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우승 트로피를 받을 때 카메라 앞에서 시가를 물고 있기만 했다).

생산자 앨런은 엄청난 부자이다. 1985년 켄터키에 서러브레드 생산공장 Brookside Farm을 세울 당시 소유하고 있던 항공사의 지분을 크라이슬러 회사에 매각한 금액이 6억달러를 훨씬 넘었다. 매년 1,000만~2,000만달러를 망아지나 씨암말 구입에 쏟아부었고, Cigar가 데뷔할 당시 600두 이상의 말을 소유하고 있었다.

규모뿐 아니라 품질 수준도 놀랍다. ‘금으로 도금하고 통로에 실크카펫을 치장한 제트기가 제일 잘 팔린다’는 기업 경영철학을 그대로 도입했다. 그러나 몇백만달러에 구입한 망아지가 단 한푼의 상금도 벌지 못한 경우가 한둘이 아니며, Cigar의 모마 Solar Slew도 당해 2세 암말 최고가인 51만달러에 구입하였으나 겨우 5,000달러 정도 벌여들여 앨런의 눈밖에 나 교배시즌에는 공동 소유 씨수말 Palace Music과 교배된 상태로 켄터키에서 메릴랜드로 쫓겨났다(메릴랜드 Country Life Farm의 씨수말 2두를 공동 소유하여 하위급 씨암말의 씨수말로 활용함). 그래서 Cigar의 고향은 메릴랜드이고 망아지 때도 한쪽 구석의 패독에서 그럭저럭 지냈다.

MP에서 AP로
Cigar가 벌어준 1,000만달러는 투자액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니 사업가 앨런은 경주마 사업에서는 실패한 셈이다. 그러나 그는 명예와 즐거움을 얻었다.

마사의 둥근 천장에는 크리스털 칸델라를 달았고, 목장 안에 테니스장을 만들어 가족·친구들과 휴가를 즐겼다. 한번은 목장 매니저에게 골프장을 만들어 달라고 보채다 거절당하자 곧바로 캘리포니아에서 골프장을 구입해 버렸다. 초기 Cigar의 성적이 신통치 않자 아내 마들렌 파울손(Madeleine Paulson)에게 선물해 버렸다. 그래도 혈통은 최고라고 하면서…. 하지만 나중에 Cigar가 모래주로로 전향하여 첫 경주에서 승리하자 그가 생산한 최초의 암말(Filly) 챔피언 Eliga를 씨암말로 주고 도로 빼앗았다. 그리고 시가를 물고 2년간 최고 마주의 포즈를 취했다.

지난해까지 미국 경마 사진 기수의 복장에서 A.P란 글자가 자주 보였는데, 이것은 아내의 복색 M.P(Madeleine Paulson)에서 A.P로 바뀐 약간 치사한 장면을 기억나게 하는 모습이다.

잔디주로에서 모래(Dirt)주로로
모래나 잔디에서 다른 곳으로 바꾼 후 성공을 거두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

660만달러를 수득한 John Henry도 잔디주로로 옮긴 후 제대로 달리기 시작했고, Vigors는 모래주로로 전향한 후 슈퍼스타가 되었다. Cigar도 잔디주로에서 모래주로로 옮긴 후 최고 경주마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경우는 사정이 약간 다르다. 3세 봄부터 잔디경주에 출주하기 시작했으나 4세 가을까지는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11번 출주하여 Allowance경주에서 한 번 이겼을 뿐이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잔디주로의 말은 평평하고 넓은 굽을 가지고 있으며 달릴 때 무릎을 높게 든다고 하는데, Cigar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조교사 William I. Mott에 의하면 4세가 되던 해 가을 모래주로로 전향하기 전까지 Cigar의 마체(특히 무릎)는 성숙되지 않았다. 조교 때도 모래주로에 나서기를 꺼려했다고 한다. 부마인 Palace Music이 유럽·미국의 잔디주로 GⅠ경주에서 승리한 까닭에 자식도 당연히 잔디주로 말로 간주됐을 듯하다. 주위에서 왜 모래주로로 바꿔 보지 않느냐고 충고할 때도 Mott 조교사는 묵묵히 잔디만 고집했다. 무릎이 약하고 아직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교사는 4세 가을까지 이기기 위한 훈련은 시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마체가 성숙되기 전까지는 모래와 잔디의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지하실 구석에 몇백년 동안 잠재워 둔 포도주가 제 맛을 내듯이.

마침내 4세가 되던 1994년 10월 모래주로 첫 도전인 Allowance경주에서 승리하고 한 달 후 곧바로 NYRA(New York Racing Association) GⅠ경주에 현역 최고 기수인 Jerry Bailey를 태우고 모래주로 16연승 북미지역 타이기록 수립의 대장정에 돌입하게 된다(그때까지 Cigar의 기수였던 Mike Smith는 NYRA경주 때 최고 인기마인 Devil His Due로 옮겨가고 Jerry는 대타로 등장했다). 4세인 1994년 10월부터 96년 7월까지의 16연승 대기록 행진에는 GⅠ경주 10승과 Dubai World Cup이 포함되며, 94년도 연도 대표마 Holly Bull과 95년도 켄터키 더비와 벨몬트스테이크스의 Thunder Gulch가 희생양이 되어 경주 은퇴를 강요받기도 했다(위 2두의 마필은 각각 Cigar와의 경주에서 왼쪽 앞다리를 다쳐 경주마 생활을 마감하였다).

20분간의 기립박수
매디슨스퀘어 가든에서 화려한 은퇴식을 가졌으나 생식능력이 없어 Kentucky Horse Park에서 사진 모델로 전락하여 쓸쓸한 여생을 보내고 있지만, 미국민들에게는 경주마 시절 모든 영광을 다 누렸다고 기억되고 있는 Cigar는 결승전 전방까지 페이스를 조절하려는 Jerry의 손가락을 끊어 낼 듯한 엄청난 파워를 지녔다. 5세 때 10전 10승 중 8승이 GⅠ경주였으며, 6세 때 Dubai World Cup 승리를 포함한 8전 5승의 전적으로 2년 연속 연도대표마에 선정되었다. 5세 때 브리더스컵 클래식 경주(2,000m)에서의 우승기록 1분 59초 58은 아직도 이 경주의 최고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6세 때인 1996년 6월 13일 15연승을 기록 중인 Cigar를 위해 시카고에서 Arlington Citation Challenge경주를 특별히 마련했다.

여기에는 50년 전 16연승의 위업을 달성한 Citation의 조교사 Jimmy Jones도 초대되었다. 130파운드(58.9㎏)의 부담중량으로 거뜬히 승리한 Cigar는 3만4,000여명의 관중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내는 바람에 가뿐 숨을 몰아쉬며 20분간이나 한자리에 서 있어야만 했다.

황제같은 은퇴생활
14연승 때인 Dubai World Cup경주 전후부터 Cigar의 앞다리와 굽은 상당히 망가진 상태였다. 게다가 중동까지의 장거리 여행으로 피로가 누적되었다. 조교사 Mott가 마방에서 쉬고 있는 Cigar를 찾을 때마다 그의 커다란 눈은 항상 ‘이제 그만하고 집에 가요. 쉬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은퇴 직전 Jockey Club Gold Cup경주에서 3세마 Skip Away에 머리차로 지고(Skip Away는 Cigar를 이긴 후 승승장구하며 960만달러를 획득하여 Cigar에 이어 역대 2위의 수득상금마가 된다) 은퇴 경기가 된 6세 때의 브리더스컵 클래식에서 Alphabet Soup에 이어 3착으로 골인한 후(코차+머리차) 앨런은 대답했다. “그래, 이제 그만하자. Cigar, 널 사랑한다.”

일본중앙경마회(Japan Racing Association)로부터 Cigar를 3,000만달러에 팔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있었으나 앨런은 거절했다. 그를 멀리 떠나 보내면 더 많이 보고 싶어질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투자자의 모습에서 진정한 Horse Man으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그후 매매가액 2,500만달러의 75% 지분을 쿨모어 목장의 Ashford Stud에게 양도했다. 쿨모어 목장은 Cigar를 맞이하기 위해 이 세상에서 제일 근사한 마사를 지었다. 필자는 1999년 초 그 목장을 방문하여 1,000만달러짜리 Cigar의 호화저택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생식능력이 없었다. 2년간 최고 전문가들에 의해 검사받고 치료받았으나 허사였다. Cigar는 그 목장에서 조금 떨어진 Kentucky Horse Park에 있었다. 그날 오후 늦은 시간에 그를 찾아 갔을 때 이미 1일 3회의 쇼를 끝내고 낡은 마방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Cigar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당시 그의 눈망울은 너무 크고 시렸다. 금방이라도 굵은 눈물방울이 맺힐 것만 같았다. 돌아서는 필자의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던지…. 그러나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앨런이 그를 정말 편히 쉬게 해 주었구나’

쇼가 끝나고 패독에서 Cigar가 달리기 시작하면 15년 선배인 John Henry가 그 뒤를 따르고 그 뒤에는 더비마 Bold Forbes가 따라 달린다. Cigar는 은퇴해서도 황제처럼 쉬고 있다.


글 / 김종식 푸른목장 대표
2006/01/04 01:18 2006/01/04 01:18

Northern Dancer는 숏다리였다




늦둥이 · 꼬마 그러나 노던댄서(Northern Dancer)
1961년 5월 27일 캐나다의 원드필드 목장에서 태어난 노던댄서(Northern Dancer)는 ‘The Blood-Horse’지에 의해 선정된 20세기 최우수 경주마 100두 중 생일이 가장 늦은 ‘늦둥이’이면서 키가 작아 1세마 경매시장에서 아무에게도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늦둥이·꼬마(runt)였다.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그를 찾은 샤다이목장의 요시다씨도 ‘소처럼 생긴 말’로 표현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80년대에 이르러서는 마체심사 기준이 달라질 뻔했다.

‘좋은 경주마는 어떻게 생겨야 하는가? Northern Dancer와 얼마나 닮은 데가 많은가? 그의 유전 형질이 마체에도 느껴지는 것 같은가?’ 어디 경주마로서 자질뿐인가. 일본의 씨수말 전문지 ‘Futurity’는 1999년도 최우수 경주마 146두 중(북미, 유럽, 호주, 일본, 두바이의 챔피언 및 G1경주 승리마) 45%인 65두가 Northern Dancer의 부계라인이며, 78%인 114두의 혈통표에 그의 이름이 있다고 발표했다. 20세기 마지막 30년 동안 그의 후손들은 9번이나 최고 씨수말의 영예를 누렸으며 지금도 손자 Storm Cat에 의해 그 기록은 계속되고 있다.

야심과 수완, 그리고 행운이 따른 Taylor
생산자 겸 마주 Edward Plunkett Taylor는 서러브레드 생산에 뛰어들면서 미국으로부터 무시당하는 변방 캐나다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탔다. 그는 기업운영에서 벌어들인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실전 경영기법을 도입했다. 넓은 국토에 흩어진 소규모 목장들이 서로 연맹체(circuit)를 형성하도록 후원했으며, 주위의 목장들은 직접 통합하고 국립교배소도 인수하여 윈드필드 목장을 설립했다. 세계적 규모를 자랑하는 Woodbine경마장도 만들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경주마 생산역사 중 최고의 행운이 그에게 다가왔다. 켄터키 오크스를 준비 중이던 Natalma가 칼슘 과다급여로 추측되는 무릎 고장으로 3세 봄에 경주생활에서 은퇴하게 된다. 그리고 적당한 교배상대는 이미 예약이 완료되어 할 수 없이 같은 목장에 있던 Nearctic에게 시집보내졌다. 그래서 늦둥이가 태어났으며, Taylor는 그를 Northern Dancer라 불렀다.

목장에서 태어난 망아지들이 1세가 되면 Taylor는 캐나다의 이름있는 사업가들을 초청해 목장에서 칵테일 파티를 열었다. 그리고 망아지들을 보여 주면서 “이 놈은 얼마면 팔겠소”하고 이른바 ‘Pre-Priced Yearling Sale’이라는 새로운 경매제도를 시행했다. ‘꼬마’도 이때 당시 가격으로는 상당히 높은 2만5,000달러에 선보였으나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서러브레드 역사상 이런 흥밋거리가 도처에 산재한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다.

Secretariat는 동전던지기로 마주가 정해졌고, Seattle Slew와 Sunday Silence도 Northern Dancer와 비슷한 경우이고, 660만달러를 수득한 John Henry는 1976년 1세마 경매에서 단돈 1,100달러에 팔렸다. 국내 우수경주마도 마사회 6개월령 매입검수에 떨어져 선진국의 교훈(?)을 따르는 일이 더러 있다.

Northern Dancer가 탄생하기까지



Northern Dancer의 탄생 과정은 최소한 2대모 Lady Angela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캐나다에서 경마기반을 착실히 다진 Taylor는 다른 한편으로 우수 번식마 확보에도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영국의 뉴마켓 경매에서 최고 씨암말을 구해 오도록 지시한다. 그리고 1952년 세일에서 최고가인 1만500기니(약 2만5,000달러)로 Nearco의 자식이 수태된 Hyperion의 딸 Lady Angela를 손에 넣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 말을 곧바로 데려오지 않았다. 다시 Nearco와 짝지어 주기 위함이었다. 선경지명이었을까? 먼저 태어난 망아지는 실패였다. 두번째가 수태되어 캐나다로 데려왔다. 이듬해 태어난 망아지가 Nearctic이었다. 이 망아지가 나중에 Northern Dancer뿐 아니라 Clever Trick(76), Wild Again(80), Explodent(69)등 걸출한 씨수말을 배출하면서 야심가 Taylor를 업계의 독보적 존재로 부상시켜 준다.

한편 그는 1958년 사라토가 1세마 세일에서 ‘회색괴물’ Native Dancer의 딸 Natalma를 두번째 고가인 3만5,000달러에 구입한다. Natalma는 분명히 우수한 경주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앞서 말한 것처럼 켄터키 오크스를 앞두고 부상으로 은퇴해 Nearctic이 기다리는 윈드필드 목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듬해 첫 자마로 Northern Dancer를 배출하게 된다. Northern Dancer가 2세부터 승승장구하자 Taylor는 같은 배합을 5차례 되풀이했으나 더 이상의 명마는 하늘이 점지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씨수말과의 사이에서 스테이크스 승리마가 3두 더 나왔다. 우수한 씨수말에서 명마가 태어날 확률이 10%, 씨암말은 25% 수준에 이른다는 통계를 다시 한 번 입증한 셈이다.

짧은 경주마 생활
그는 조기 성숙형이었다. 2세부터 이미 캐나다에는 적수가 없었다. 미국으로 무대를 옮겨 Secretariat의 삼관마 시절 기수로 유명한 Ron Turcotte를 태우는 등 승수를 계속 늘려갔다. 그러나 미국은 시골뜨기를 여전히 무시했다. 이 때문에 큰 경주에 나갈 때면 항상 낮은 부담중량을 부여받았다. 켄터키더비 때는 몇번 기승한 적이 있는 Bill Shoemaker로부터도 무시를 당했다. “괜찮기는 한데 너무 숏다리라서…”(Bill Shoemaker는 1999년 겨울 Pincay에 의해 깨진 생애 8,832회의 우승전적이 있는 전설적 기수다) 그러나 Northern Dancer는 더비에서 Secretariat에 이어 역대 2번째 기록인 2분00초로 Shoemaker를 태운 Hill Rise를 물리친다(애석하게도 올해 더비마 Monarchos의 기록에 0.03초 밀려 역대 3위로 내려앉음). 2주 후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를 거머쥔 Northern Dancer는 그러나 삼관마 마지막 관문인 벨몬트의 2,400m 코스에서 거리 적응의 한계로 3위로 밀려나고 만다.

그는 경주마 시절 초기부터 뒷다리 고장으로 고통을 받아왔다. 처음에는 오른쪽 뒷다리 굽이 갈라져 경주와 치료를 반복했다. 이때 유명한 일화가 있다. 굽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아 캐나다로 돌아갈 절박한 순간, 어떤 사람이 굽을 감싸는 압축고무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얼마간 치료하니 새살이 돋기 시작했다. 그것을 그 사람의 이름을 따 ‘Bane Patch’라 부른다고 한다. 다음에는 비절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3세 후반기 망가지고 짧은 뒷다리를 오직 투쟁심 하나로 버텨온 그는 마침내 짧은 2년간의 전적(18전 14승, 수득상금 58만달러)를 남긴 채 은퇴하고 고향으로 개선한다.

폭풍우를 몰고온 그의 망아지들
그는 캐나다에서 교배료 1만달러로 씨수말 생활을 시작하고, Taylor가 메릴랜드의 동부 해변가에 또 다른 윈드필드 목장을 만들면서 부마 Nearctic과 그 곳으로 이주했다. 1967년에 두번째 자마군인 NijinskyⅡ, Vice Regent가 태어나고 연이어 최고의 망아지들이 줄을 이었다. 1970년대에는 240만달러로 신디케이트가 형성되었으며,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20세쯤이 되었을 때는, 유럽에서 4,000만달러(약 510억원)에 팔 수 없겠느냐는 제의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제의는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정중히 거절되었다. 영국 조교사 Vincent O’Brien이 캐나다에서 NijinskyⅡ를 구해 영국 삼관마에 올려 놓자 세계의 관심은 Northern Dancer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Storm Bird와 Sadler’s Wells는 영국에서, Lyphard와 Nureyev는 프랑스에서, Northern Taste는 일본에서, Danzig와 Vice Regent는 미국에서, 바야흐로 전세계를 동시에 지배하는 최고의 혈통이 되었다. 이때 서러브레드에 관련된 모든 자금은 미국의 경매시장으로 모여 들었고, 그의 망아지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듯…. Storm Bird도 이때 홀연히 날아왔다.

큰말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씨수말 활동을 시작한 지 몇 년쯤 지나 ‘The Blood-Horse’지에 씨수말 홍보를 하면서 “체고가 15.1핸드(153.4㎝)가 아닌 15.2핸드이니 1㎝를 올려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으며, 초기 상대 씨암말을 고를 때도 키가 커야 한다는 우선 조건을 내세우기도 했다. 이 사실은 당시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키가 큰 경주마를 선호했음을 확인해 준다. 하기야 훨씬 전 유럽에서는 키가 작은 말은 아예 번식마로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법까지 만들었으니….

그러나 키가 커야 잘 달린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경주마의 스피드나 스테미나는 체고와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 경주마는 긴 다리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튼튼한 심장과 투쟁심으로 달리기 때문이다. 씨수말의 조건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성공한 씨수말의 체고는 대부분 15.2핸드(154.4㎝)와 16핸드(162.6㎝)사이에 분포한다. 그리고 최소한 그들의 절반 이상은 최고의 경주마 출신이다.

필자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큰 경주마, 큰 번식마를 외치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다. 그러나 Northern Dancer뿐만 아니라 Hyperion도 그러했고, 더 옛날 Lexington도 그러했다. 그들은 모두 꼬마였다. 한편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Phar Lap이란 말은 174㎝가 넘는다. 그는 단 한 차례 미국 원정경기에서 그 곳 경마계의 기를 단숨에 꺾어버린 최고 경주마였다. 그러나 그가 잘 달릴 수 있었던 것은 긴 다리보다 지금도 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유별나게 큰 심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체고가 큰 말을 피하는 논리적 근거는 무엇일까?

닮은 것끼리(Type to Type)
마를린 먼로가 ‘당신의 두뇌와 나의 몸매’ 운운하면서 아인슈타인을 유혹했을 때 거절당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배우자끼리는 닮은 구석이 있어야 한다. 이 이론의 지지도는 점점 높아지는 듯하다. 생산배합이론에서 ‘Type to Type’이란 첫째 키와 외형 등이 비슷한 것끼리, 둘째 경주적응거리가 비슷한 것끼리, 셋째 질(수준)도 비슷한 것끼리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둘째와 셋째의 경우는 1,200m의 단거리에 소질이 있는 씨암말과 2,400m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씨수말을 짝지우지 말 것이며, 싸구려 씨암말에 40만달러를 투자해 Storm Cat을 찾는다면 후일 태어난 망아지를 팔 때 크게 손해를 본다는 가르침이다. 그리고 첫째의 경우는 씨암말의 체고는 수말에 비해 작은 편이며 대부분이 16핸드 이하이니 씨수말도 당연히 비슷한 놈이어야 궁합이 맞다는 것이다.

글 / 김종식 푸른목장 대표
2006/01/04 01:08 2006/01/04 01:08

테시오와 Ribot

1. 테시오와 테일러
국내·외에서 출판된 혈통서적을 접하다 보면 페데리코 테시오(Federico Tesio)란 사람을 빼놓을 수 없는데, 그의 곁에는 항상 에드워드 테일러(Edward. E. Taylor)가 이야기의 단짝이 되고 있다. 왜일까?

물론 두 사람은 서러브레드 생산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기도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들의 생산방법이 너무나 동떨어진 때문이 아닐까 한다. 우선 노던댄서를 생산한 테일러는 양조업에서 성공한 사업가 출신으로 사업에서처럼 풍부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주위의 소규모 목장들을 흡수.통합하여 기후적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최고 의 생산목장·경마장을 만들어 갔다. 반면 Nearco와 Ribot을 생산한 이탈리아의 생산자이자 마 주 겸 조교사 테시오는 그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오로지 말에 대한 전문성 하나만을 재산으로 하여 남들이 쳐다보지도 않는 바겐세일장의 싸구려 씨암말들을 구입하여 몇십년의 노력 끝에 최고 의 경주마를 생산해 갔다.

테일러는 경매시장에서 최고의 가격으로 니어아크틱(Nearctic)의 모마 레이디 안젤라(Lady Ang ela)와 노던댄서의 모마 나탈마(Natalma)를 구입한 반면, 테시오는 자기가 필요로하는 스피드를 보유한 씨암말이라면 마격상 하자가 있거나 인기없는 혈통이더라도 구입·생산의 과정을 반복해 갔다.(그는 말에 관한 경쟁에서 남에게 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으며, 그가 저술한 책에서조차 그만의 특별한 배합기법은을 결코 타인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위에서 언급한 생산기법도 켄터키 게인즈웨이 목장에서 40년간 매니저로 활동한 후 가족들과 테일러메이트 목장을 설립한 조지프 레넌 테일러의 이야기 속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그에게 이러한 생산패턴이 가능했던 이유는 테일러나 대다수의 목장이 상업적 생산자였음에 반해 그는 애초부터 자기가 생산한 망아지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의사가 전혀 없어 남들의 평가나 세간의 인기를 철저히 무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비교되는 결정적인 동기는 영국의 유명한 조교사 빈센트 오브라이언(Vincent O'Brien)이 미국으로 건너간 Ribot의 망아지를 구입하기 위해 북미지역을 돌아보던 중 당시 별 로 인기가 없었던 노던댄서의 자마 1두를 구입한 사건이다. 그 망아지가 바로 1935년 바브람(Babram) 이후 35년 만에 영국의 삼관마로 등극한 니진스키(NijinskyⅡ)이다.

2. Ribot에 투자한 세월 - 30년
유명씨수말이 자기 손에 있으면 보유 씨암말 중 최선의 상대마 선택이 게을러지고, 유럽 구석구 석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씨암말 구입하는 발걸음 또한 무디어진다는 것이 테시오의 지론이었다. 그가 생산한 Ribot의 3대부 Covaliere d'Arpino는 위대한 St.Simon의 3대손으로 부마는 이탈리아 최우수 씨수말을 11년간 연속해서 석권했다.

상대마 Bella Minna는 Ribot 생산을 위한 제일보로 1200기니(테일러가 레이디 안젤라를 1만500 기니(약2만5천달러)에 구입했다니 상대적 비교는 가능하다))에 구입했고, 그로부터 Ribot의 2대부 Bellini가 태어났으며, 상대마 Tofanella는 뉴마켓 1세마 세일에서 140기니로 구입하여 부마 TENERANI를 탄생시켰다. 이 말은 이탈리아더비와 영국의 퀸엘리자베스스테이크스에서 우승하였다. 그리고 Ribot의 모마 로마넬라를 위해 그의 어미 Babara Burrini를 뉴마켓 당세마 세일에서 350기니에 구입했다. 로마넬라 또한 2세 암말 챔피언이 되었다. 이렇게 30년을 허비(?)하고 Ribot이 경주마로 데뷔하기 몇달 전 테시오는 숨을 거둬 경주로를 달리는 Ribot을 보지 못했다. 그는 죽기전 자기가 생산한 최고말은 Nearco도 Ribot도 아닌 Covalier d'Arpino라 했다. 유럽 전문가들이 20세기 유럽 최고 경주마를 선정할 때 Sea-Bird와 Ribot 중 누가 센지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는 짐작이나 했을까?

3. 불패의 명마
Ribot Ribot은 엄밀히 말해 이탈리아 태생이 아니다. 테시오가 씨수말 테네라니를 영국으로 보내면서 수태된 어미말 로마넬라도 딸려 보냈다. 이듬해의 교배 상대로 그를 다시 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듬해 봄 Ribot은 뉴마켓의 국립 교배목장에서 태어났다.

그가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에서 16전 전승의 기록으로 은퇴하기까지 탁월한 경주능력을 대변하는 일화를 하나 소개하려 한다. 1950년대 경마 위세는 유럽이 미국보다 한 수 위였던 것 같다. 미국의 우수한 클래식 경주마들이 프랑스 개선문상을 여러 차례 노크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Ribot이 3세에 이어 4세에도 개선문 경주에 등록했을 때 미국에서 Bold Raler의 기수로 유명한 Eddie Arcaro가 Career Boy라는 말로 도전해 왔다 (페이스 메이커로 그 말의 짝인 Fisherman도 동행) 우리식의 결승주로에서 아카로가 '이길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하는 순간, 어떤 말이 그의 옆을 휙하고 스쳐갔다. 그는 경주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그 말이 어떤 말인지 정말 알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미국말로 당시까지의 최고 성적인 4위에 입상하는데 그쳤다. 이와 같은 탁월한 경주능력과 씨수말로서의 우성 유전력을 알아내기 위해 휴이트(A.Hewitt)와 그 주위의 전문가들이 Ribot의 혈통표와 씨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무리 살펴보아도 모계쪽에는 톱 클래스의 경주마가 없었고 일류혈통도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몇백달러, 기껏해야 몇천달러 짜리 씨암말만 주워모았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들의 이야기 마지막 줄에 이런 글이 보인다.

'그의 제자들은 아무런 결론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다만 현대의 서러브레드 세계에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4. 스태미나와 건장함의 결정체
경주 은퇴 후 Ribot은 이탈리아와 영국에서 4년간 씨수말 생활을 한 후 미국으로 임대되어 왔으나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다음장에서 말하기로 하고, 하여튼 그는 영국에서 Ragusa, 미국에서 Tom Rolfe, Graustark, His Majesty, Arts and Letters 등 걸출한 후세마를 남겼다. 그러나 Ribot은 우수씨수말(LS: Leading Sire)보다 우수씨암말(BMS : Bloodmare Sire, 모계의 부마성적)에서 더 위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의 아들 Tom Rolfe의 딸들은 102두의 스테이크스 우승마를 배출하고, 아들의 아들인 Hoist The Flag의 딸들은 82두, 아들의 아들의 아들 Alleged는 1999년까지 85두의 스테이크스 우승마를 배출하고 있으니, 그 어떤 가계에서 이런 성적을 낼 수 있겠는가? 그런 까닦에 모든 전문가들은 어미말에게 필요한 스태미나와 건장함의 대명사로 Ribot계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5. 고약한 성격 때문에
그가 개선문상을 2연패하고 이탈리아로 돌아왔을 때 전쟁 패망국은 성대하게 은퇴식을 베풀었다. 전 국민이 Ribot을 연호하는 순간, 그는 갑자기 기수를 내동댕이치고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했다. 잔치는 완전히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그후 미국의 더비던목장이 임대계약을 체결했다. 5년 계약기간에 135만달러였다. 당시까지 미국에서 최고가로 거래된 씨수말나슈어(Nashua)의 매매가가 125만2천2백달러였으니 그의 명성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미국에서 첫해 태어난 그의 자식 Tom Rolfe가 1세가 되던 1963년에 영국에서는 이미 최고의 씨수말 위치에 올랐다. 그래서 중동의 오일달러가 미국으로 밀려들어왔고, 빈센트 오브라이언도 그들과 동행했으며, 니진스키도 만들어질 수 있었다.

당시 더비던목장에는 미국 역사상 최고 전문가 올린 젠트리가 매니저로 있었는데 Ribot의 폭력 앞에는 그도 어쩔 수 없었는지 차이고 받히기를 수차례 경험하였다. 방목장에서 Ribot의 시야에는 어떤 씨수말도 보이지 않아야 했다. 아무도 그를 목장 밖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고향으로 되돌아 갈 수 없었다.

필자는 가끔 만일 Ribot의 성격이 조금만 더 점잖았더라면 서러브레드의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를 생각해 본다. 배합이론에 '국제적 원교배'란 방법이 있다. 어느 특정지역에서 근친에 근친을 되풀이하여 무력화되어 버린 혈통에 대한 처방으로 전혀 이질적인 피를 수혈해 주면 활성화가 가능하다는 비유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유럽의 Nasrullah가 싱싱한 미국의 Native Daner를 만나 Bold Ruller가 탄생했듯….

필자의 생각으로도 맞는 듯 하다. St.Simon의 유럽 혈통이 미국에서 신선한 파트너를 만났으니 그의 위력은 배가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유럽과 미국은 가끔 서로 말들을 바꾸어 교배했던 것은 아닐까? 혼혈가수 중에 내가 최고라고 여기는 가창력의 소유자가 있듯이…. 끝.

글 / 김종식 푸른목장 대표
2006/01/04 00:49 2006/01/04 00:49

아! 알리다여 알리다여...

Alydar와 칼루멧 목장
알리다의 이름은 여 생산자 Markey의 친구 알리 칸 왕자(Prince Aly Khan)를 위해 이름 붙여진 ‘Aly darling’이란 뜻이다.

알리다는 ‘Affirmed와 Alydar’의 한쪽 부분으로 기억되고 있는데, 그만큼 이들의 라이벌 관계는 미국 경마 역사상 최고의 화젯거리이기도 했다.

한편 칼루멧 목장은 1900년대 중반 미국의 최고 생산목장이다. 창설 후 10년 만에 최고 상금수득목장, 최우수목장의 영예를 10년 이상 연속해서 독점했다.

여기에는 더비마 8두(삼관마 2두 포함), 연도대표마 선정 5두, 명예의 전당 헌액말 11두, 수많은 챔피언, 그리고 미국 역사상 최고의 씨수말 Bull Lea 등등… 그 영광의 나열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백번을 양보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칼루멧 목장의 파산…반세기도 채 이어가지 못한 영광의 끝자락에 Alydar의 처참한 죽음이 있었으니, 사람들은 이를 20세기 최대의 미스터리라 부른다.

그리고 필자는 이를 우리의 정서인 한(恨)이란 글자로 풀어 보려 한다.

Affirmed와 Alydar
Alydar는 1975년 3월 22일 켄터키 칼루멧 목장에서 Raise A Native와 Nasrullah의 손녀딸 Sweet Tooth 사이에서 태어난 밤색 수말이다.

많은 경주마에게 별명이 있는데, Alydar는‘경주에 지게 되면서 더욱 인기가 높아진 말’로 이해함이 타당할 것이다.

77년부터 78년까지 삼관마 경주를 거치면서 Affirmed와 10번 대결했는데 3승 7패(10번째 경주의 승리는 상대방의 진로방해로 얻은 실격승임)를 기록했다. 이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2번 이길 때는 3½마신, 1¼마신 착차였다. 질 때는 목차, 머리차, 코차였다. 켄터키더비에서의 1½마신차가 가장 크게 완패한 경우이고 프리크니스스테이크스에서는 목차, 벨몬트스테이크스에서는 머리차였다.

조카(부마쪽에서 볼 때 Alydar는 Affirmed의 삼촌이다)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총 22마신 차이로 여유있게 후착마를 따돌리고 삼관마에 등극했을 것이다.

마지막 실격승을 양보받았을 때 그의 비통한 표정이 눈에 선하다. 2세, 3세 챔피언 선정 때도 Affirmed에게 패하면서 “가장 위대한 차점 탈락자”란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그는 점점 신경질을 부리고 쌓인 스트레스로 벽을 걷어차는 등 자학하곤 했다.

씨수말로 명예회복을 노리다
3년간 26회 출주해 1착 14회, 2착 9회로 수득상금이 100만달러에 약간 못 미친 채 경주생활을 은퇴하고 고향에서 씨수말로 데뷔하면서 그는 마음을 비우려 무진 애썼다. 각고의 노력 끝에 그의 성적은 Affirmed를 대차로 앞질렀다.

1회 교배료가 25만달러에 달하고(올해 초 고령으로 안락사된 Affirmed의 교배료는 3만달러 수준) 첫 자마군 1세마들이 키니랜드 경매에서 80만달러를 가볍게 뛰어 넘어 단숨에 노던댄서에 이어 2인자의 자리에 오른다.

670만달러를 수득하여 당시 최고 상금마가 된 Alysheba, 선데이사일런스의 영원한 파트너 Easy Goer, 90년 올해의 말 Criminal Type, 91년 더비마 Strike The Gold 등 수많은 준족들을 세상에 내보내면서 86년부터 사망한 해인 90년까지 최고의 씨수말로 자리잡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몹쓸 인간들이 채 아물지도 않은 그의 가슴을 다시 쥐어뜯기 시작했으니, 빚쟁이들에게 그의 교배료 2∼3년치를 앞당겨 팔아먹은 것이다.

칼루멧의 몰락과 Alydar의 죽음
이제 미국 경마 역사상 최고의 미스터리이자 아직도 의혹만 더해가는 그의 죽음을 이야기할 때인 것 같다.

1930∼40년대의 짧은 목장의 전성기는 1950년 설립자 Warren Wright Jr가 죽으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상속자들이 고인의 손녀사위 Lundy라는 이방인을 경영자로 추대하고 난 뒤부터다.

Alydar가 죽은 지 정확히 8개월 후부터 파산절차가 시작되고 오래지 않아 경매에 부쳐졌다. 당시 그 목장을 욕심냈던 3,000명 이상이 경매에 참여했는데 낙찰가격은 Alydar 보험금 3,650만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으니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다만, 돈을 너무 흥청망청 쓴 결과로 추측될 뿐이다. 자꾸만 들어오는 수입금을 주체할 수 없어 누구든지 보이는 대로 먼저 쓰는 이가 임자였으니, 목장 매니저의 1년 판공비가 100만달러가 넘고 경영자 Lundy가 죽은 후 그가 사용처도 밝히지 않고 가져간 현금이 3억달러가 넘는다는 증언도 나왔다(목장 최초의 미스터리 Lundy의 의문사는 보험금을 노린 사건이란 것이 최근 수사 결과 밝혀졌다).

빚쟁이들은 Alydar의 교배료를 받아 챙기기 위해 줄을 섰다. 경주마 시절의 울분을 억지로 삭이고 있던 그에게는 이제 삶 자체가 고통이었으리라. 그는 빌었다. - 앞으로 나의 후손들은 인간들을 위해 절대로 빨리 달리지 말라 - 정말 그의 손자세대부터는 평범한 가문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1990년 11월 13일 저녁 Alydar의 사고 소식이 매스컴을 타고 전국에 전해졌다. “오른쪽 뒷다리 정강이뼈가 완전히 부러졌다. 이유는 마방문을 심하게 걷어찼기 때문이다.” 경주마 시절 기수의 회고에 의하면 은퇴 후 Alydar에게는 분명히 자학증세가 있었다. 마방에서 “헤이, 챔프”하고 부른 후 몸을 숨기면 그를 부른 사람이 모습을 보여줄 때까지 스스로 가해행위를 했다고 한다. 이런 습성을 이용하여 마방문에 까치발을 설치하고 다리가 부러지기를 기다렸던 듯하다.

그러나 첫번째 사고는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수술 후 그는 분명히 안정되었고 건초도 잘 먹었다. 다음날 또 같은 사고가 났다. 그리고 다음날 죽었다. 어떤 사람들은 보험금 3,650만달러보다 살아 있는 채 교배료를 착취하는 것이 더 유리했으니 죽일 이유가 없었다고 말한다.

하여튼 오리무중이다. 사고 후 10년이 지난 2000년 2월에 미국 수사당국은 아직도 그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발표했다. 장례식은 최고의 말에게만 베풀어지는 ‘Whole’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 맺힌 한은 도저히 잠들 수 없을 것이다. 그 누구도 잠들게 하지 못할 것이다. 영원히….

글 / 김종식 푸른목장 대표
2006/01/04 00:27 2006/01/04 00:27

명마생산에 대한 특별기고


명마생산 운명인가, 인간의 비전과 의지인가

생명 설계도 DNA
생명의 모든 신비를 담고 있는 유전정보를 게놈(genome)이라고 한다. 게놈은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s)의 합성어이다. 요즘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인간 게놈프로젝트는 인간 DNA의 염기서열을 완전히 해독하여 유전질병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는 신기술을 창출하는 진행을 하고 있다. DNA의 해독은 인간의 달착륙에 비견되는 제4의 혁명이라고 한다.

인터넷 정보혁명의 기수 손정의는 1차 농업혁명은 인간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혁명이고, 2차 산업혁명은 인간 근육의 해방 혁명이며, 3차 정보화 혁명은 인간지능의 혁명이라고 말한다. 4차 혁명인 생물혁명시대에는 생명의 설계도(DNA)를 완전 해독함으로써 인간의 노력과 의지로 생명의 선천적인 결함을 치료하고 더 나아가 생명 진화의 열쇠를 발견하여 자연계 환경의 생존경쟁, 돌연변이, 적자생존, 용불용설 등에서 상상도 못할 진화가 빠르게 나아갈지도 모른다.

과학자들은 미래에는 자신의 의도대로 지능과 능력, 성격을 겸비한 ‘맞춤 아기’도 탄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유전자의 기능과 관련, 독일의 한 교수는 “수십만년 동안 빙하기·수렵·채집 생활을 거쳐 농경생활을 해오며 축적된 인간의 유전자 정보가 불과 2∼3세대 만에 사무실 위주의 현대인 생활에 적응하게 됐다. 그런 까닭에 유전자가 환경에 맞지 않아 비만, 심장병, 당뇨병 등 각종 성인병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그러면 유전자란 무엇인가?
모든 동식물은 세포라는 조그마한 수십 만개의 구성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세포는 세포막과 막 내에 하나의 핵을 가지고 있다. 핵 내부에 염색체가 있는데, 염색체상에 이중 나선모양의 유전전달물질인 DNA가 존재한다. 같은 종(種)의 생명은 일정한 수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46개를 가지고 있고, 말은 64개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교배시 정자와 난자는 각각 32개의 염색체와 결합하여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유전자는 새로운 생명을 만드는 부모로부터 전달되는 유전 설계도 물질이다.

경주마 생산과 멘델법칙
경마에 흥미를 갖고 서러브레드를 생산하는 사람들은 현재 주요 혈류의 산맥을 차지하는 네아르코, 나스룰라를 생산한 이탈리아 마주이자 생산자인 페더리코 테시오를 최고의 생산자로 뽑고 있다. 그의 성공은 말을 잘 다루는 기술보다 서러브레드의 유전 잠재력을 파헤치는 깊은 통찰력과 연구로 가능했다. 그는 1906년 봄에 기차여행을 하던 중 옆좌석의 외국인이 읽던 ‘멘델리즘’이란, 독일어를 영어로 번역한 멘델잡종에 관한 책을 빌려 보고 서러브레드종의 혈통을 이해하게 되었다. 테시오는 2두의 서러브레드가 같은 양친에게서 태어난 형제간임에도, 그리고 부모가 다같이 체격이 좋고 뚜렷한 결점이 없는데도, 1두는 위대한 경주마가 되고 1두는 평범한 경주마가 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3가지 원칙을 가지고 마필 생산에 임했다.

첫째는 최고의 자질의 종마를 선택하는 것이다.
둘째는 닉스이론, 즉 짝이 잘 맞는 계통끼리 교배해 성공을 거두는 것이다.
셋째는 근친교배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최고의 유전자 자질을 가진 씨수말은 최고의 자마를 생산한 확률이 높다. 부모의 유전 기여도는 각각 50%씩이다. 서러브레드의 경우 부모로부터 자손에게 전달되는 유전율은 25∼30%이다. 경마의 세계에서는 코차이로 승부가 결판나는데, 25∼30%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다. 그러나 최고의 씨수말이 항상 최고의 자마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닉스이론은 음식에도 궁합이 있듯이 유전자에도 궁합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서러브레드 계통은 주요 10개의 부계 혈통을 구성하고 있다. 노던댄서, 네이티브댄서, 나스룰라, 턴투, 파라스, 네아르코, 하이페리온, 세이트사이몬, 테디, 기타 혈통 등이 있고 계통들 간의 상호작용은 A계통-B계통은 우수한 경주마가 태어나지만, A계통-D계통은 우수하지 못한 마필이 통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경마장에 있는 94년 이후 입사한 외국산마 2,232두를 계열별로 분석한 결과 부계 노던댄서-모계 맨나 배합시 출주수당 등 상금을 가장 많이 수득했고, 그 다음이 프린스-프린스의 배합이고, 노던댄서와 니아크닉이 그 다음이다. 혈통을 연구하면 그만큼 명마생산 성공 확률에 근접할 수 있다.

서러브레드는 모두 서러브레드하고 근친교배하여 생산했다. 근친교배로도 명마를 생산할 수 있다. 피츠랙의 18.75% 법칙이론이다. 이 이론은 공통 선조가 부계 4대 6.25%와 모계 3대 12.5% 때 명마가 많이 생산된다고 한다.

근친번식은 우수한 형질을 자손에게 전달하는 장점이 있지만 좋지 않은 형질이 함께 후손에게 전달되는 단점도 있다. 경마장에 입사한 외국산마 2,232두를 근친과 수득상금 관계로 분석한 결과 근교계수가 0.30∼0.78%일 때 자마당 수득상금이 가장 많았고, 근교계수가 6.25% 이상일 때 적은 상금을 수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러브레드는 항시 신선한 혈통을 원한다.

경주마의 타고난 재능
두 마리의 서러브레드를 같은 조건의 애정, 합리적 사양관리, 과학적인 조교훈련, 초지 방목위주의 관리 속에 키운다고 해도 경쟁에서는 차이가 난다. 차이가 나는 것은 유전자의 질 차이에서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프랑스의 뷜리에르가 시작하여 미국의 로먼에 의해 완성된 ‘도시지 시스템’이라는 이론이 있다. 이 이론은 후대에 큰 영향을 준 씨수말의 목록을 작성하여 거리적성에 따라 브릴리언트(Brilliant·단거리), 인터미디어트(Intermediate), 클래식(Classic), 솔리드(Solid), 프로페셔널(Professional·장거리)로 분류하여 경주마가 어느 능력에 치우쳐 있는가를 수학적으로 측정하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속도와 지구력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면 도시지 지수가 1이 되고, 수치가 클수록 속도가 뛰어나고 작을수록 지구력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속도와 지구력의 균형 정도를 계산하는 분포중심점은 -2∼+2의 범위를 가지며, 수치가 0에 가까울수록 클래식에 가깝고-수치는 단거리+수치는 장거리 말로 나타났다.

라스무센은 1929년 이래 도시지 지수가 4.00 이상, 분포중심점 1.25 이상의 값을 가진 경주마가 켄터키더비에서 우승한 예가 없다고 밝힌 뒤 이중자격마 도시지 시스템으로 발전시켰다. 도시지 시스템은 현재 마필교배시 국내산마 생산현장에서 활용하고 있다.

도시지 이론의 문제점은 중요 씨수말 선정시 미국산마를 집중적으로 반영하였고, 씨암말 수치를 배제하였으며, 경주마 능력발휘 주요수단인 자연환경·육성·조교·기수능력을 배제한 부분이다.

2000년 6월까지 국내산마의 씨수말 자마의 출주당 수득상금을 분석한 결과 단거리(1,000∼1,400m)에서 두각을 나타낸 씨수말은 로드오브워, 로스트마운틴, 디디미순으로 나타났다. 중거리(1,700∼1,900m)에서는 디디미, 피어슬리, 로스트마운틴 순으로 나타났고 장거리(2,000∼2,300m)에서는 피어슬리, 글로리화이, 랜드러쉬 순으로 수득상금을 많이 획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것으로 보면 서러브레드 적성거리 능력은 부모로부터 유전된다고 할 수 있다.

경마와 혈통
경마가 재미있는 것은 단순하게 행운을 운에 맡기지 않고 말·기수·환경 등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추리하고 판단하여 즐기는 지적게임이기 때문이다.

21세기에는 자본, 노동, 토지 등 외형보다는 무형의 지식, 정보, 자신감,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한다. 따라서 경마에 있어서도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필의 잠재력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0년 전에 손자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서러브레드의 적성거리는 유전될 확률이 많다. 그렇다면 마필혈통의 선조로부터 유전되는 잠재력 적성거리를 알면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우선 경주에 출주한 마필의 적성거리를 알면 우승마 예측에 한층 더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생산자는 경주거리를 분석하여 3∼5년 후 경주 우승을 위해 씨수말과 씨암말 교배배합시 적성거리와 계통교배, 근친 등을 염두에 둔 교배배합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또 마주는 마필 거래시 현 경주체계와 맞는 혈통을 갖춘 마필을 구매할 수 있다. 조교사는 유전자의 능력한계를 깊이 인식하여 단거리 마필은 단거리에 맞게 조교계획을 수립하여 좀더 합리적인 조교훈련에 임할 수 있고, 경주 출주투표시 마필혈통 능력에 맞게 단거리면 단거리에 맞는 말을 출주하고, 장거리면 장거리에 맞는 말을 출주하여 우승의 확률을 더욱더 높일 수 있다.

우수한 성적을 거둔 말은 퇴역하여 제2의 혈통을 만들어 경마의 순환이 이루어진다. 경마란 혈통경주이기 때문에 경마고객, 생산자, 마주, 조교사는 혈통의 유전학적 능력한계를 깊이 인식하여 잠재되어 있는 재능을 최대한 발휘·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민족은 유목민족이다. 말을 잘 다루고 상마법(相馬法)에 대한 선견지명이 뛰어났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설화가 나오는 삼국유사에 보면 “주몽은 말을 키울 때 미리 준마를 알아보고 그 말은 잘 먹이지 않아 여위게 키우고, 좋지 않은 말은 잘 먹여 살을 찌워 남이 볼 때에 좋은 말로 보이도록 키웠다. 왕은 살찐 말이 좋은 말인 줄 알고 왕이 갖고, 여윈 말은 주몽에게 주었다”고 한다.

설화에서 알 수 있듯이 사료공급으로 평범한 마필을 명마로 만들 수는 없다.

말은 타고난 선천적 유전자질이 좋아야 한다. 그렇지만 씨앗이 우수하다고 좋은 꽃과 열매가 열리는 것이 아니다. 비옥한 토양, 온도, 습도뿐만 아니라 인간의 피와 땀, 눈물이 있어야 가능하다. 명마를 만들려면 혈통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말에 적합한 자연환경, 합리적 사료, 과학적 조교훈련, 초지 방목위주의 마필 관리와 비전을 갖고 있어야 한다. 여기에 미지에 대한 무한탐구 정신, 가능성에 대한 도전, 분투하는 노력이 있어야 진정한 명마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글 추만호 마사등록팀 과장
2006/01/03 23:41 2006/01/03 23:41

맨 오워(Man O′ War)
“역사를 다시 쓴 말”

그 다음 주 맨오워는 자키 클럽(Jockey Club : 현재는 골드컵) 스테이크스에서 1과 1/2마일을 2분28초80에 주파해 또 하나의 미국 신기록을 세웠는데, 이 기록은 향후 17년간 깨지지 않았다. 그는 이어 포토맥 핸디캡에서도 와일드에어, 블레이지스, 그리고 켄터키더비 우승마인 폴존스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 경주에서 그는 다리 힘줄에 문제가 약간 생겼는데, 퓨스털은 그가 한 경주만 더 뛰어주기를 원했다.

맨오워의 경력 중에서 최고의 경주는 사상 처음으로 미국 트리플크라운을 제패한 말로 유명한 캐나다 말 서바톤(Sir Barton)과의 대결이었다. 1920년 10월 12일, 그들이 만난 곳은 케닐워스 파크 골드컵이 열린 온타리오의 윈저였다. 1과 1/4마일을 달리는 그 경주에서 맨오워는 120파운드를, 그리고 서바톤은 126파운드를 짊어졌는데, 맨오워가 무려 7마신이나 앞서며 승리를 거뒀다.14) 맨오워는 경주기록에서도 종전보다 자그마치 6초 이상이나 앞서는 기록을 세웠다. 맨오워는 여러 곳으로부터 출전 제의를 받았지만, 그 경주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하였는데, 이미 신화적인 말이 되어 있었다. 지난 세기 가장 위대한 말이 누구인가 - 콜린(Colin)15)인가 아니면 시스온비(Sysonby)16)인가 - 라는 논쟁은 경마인들 사이에서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둘 다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서러브레드 역사상 가장 많은 상금인 24만9,465달러를 벌어들이고 은퇴를 했으며, 1919년 6월부터 시작해 1920년 10월에 이르는 16개월 동안 경마 역사책을 새로 썼다. 그는 그저 기록들을 갈아 치운 게 아니라, 그것들을 영원히 지워버린 것이다. 그가 출전한 경주들을 정리해 보자.


□ 2세마 시절 : 챔피언 2세 수말
- 킨 메모리얼(Keene Memorial) 스테이크스
- 유스풀(Youthful) 스테이크스
- 허드슨(Hudson) 스테이크스 : 130파운드 부담
- 트레몬트(Tremont) 스테이크스 : 130파운드 부담
-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호텔(United States Hotel) 스테이크스 : 130파운드 부담
- 그랜드 유니온 호텔(Grand Union Hotel) 스테이크스 : 130파운드 부담
- 호프풀(Hopeful) 스테이크스 : 130파운드 부담
- 벨몬트 퓨트리티(Belmont Futurity) : 127파운드 부담
- 샌퍼드(Sanford) 스테이크스 : 2위

□ 3세마 시절 : 올해의 말, 챔피언 3세 수말
- 프리크니스(Preakness) 스테이크스
- 벨몬트(Belmont) 스테이크스 : 20마신 차이 우승, 1과 3/8마일 세계 신기록
- 드와이어(Dwyer) 스테이크스 : 1과 1/8마일 세계 신기록
- 위더스(Withers) 스테이크스 : 1마일 미국 신기록
- 스타이비선트(Stuyvesant) 핸디캡 : 135파운드 부담
- 밀러(Miller) 스테이크스
- 트래버스(Travers) 스테이크스 : 1과 1/4마일 경주기록과 동일
- 로렌스 리얼라이제이션(Lawrence Realization) 스테이크스 : 100마신 차이 우승, 1과 5/8마일 세계 신기록
- 자키 클럽(Jockey Club) 스테이크스:15마신 차이 우승, 1과 1/2마일 미국 신기록
- 포토맥(Potomac) 핸디캡 : 138파운드 부담, 1과 1/6마일 경주 신기록
- 케닐워스 파크 골드 컵(Kenilworth Park Gold Cup) : 1과 1/4마일 경주 신기록

1947년판 ‘미국의 경주마들(American Race Horses)’이라는 책의 서문에서, 경마기자이자 경마사가였던 조 팔머(Joe Palmer)는 맨오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그는 그저 물리친 것이 아니라, 철저히 짓밟아 버렸다. 그는 세계 기록을 세우기 위해 달린 것이 아니고, 그들을 앞지르기 위해 질주한 것이다. 그는 당대의 다른 말들에 비해 워낙 출중하였기 때문에, 존 그리어가 맞섰던 단 한 경주를 제외하고는 감히 그에게 도전할 수 없었다. 1920년은 그가 경마를 지배한 해였다. 그 어떤 운동 선수도 - 틸던(Tilden)17), 존스(Jones)18), 뎀프시(Dempsey)19), 루이스(Louis)20), 누르미(Nurmi)21), 도프(Thorpe)22), 또는 그 어느 누구라도 - 자신의 분야에서 그런 지배력을 행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밤색 망아지가 경주마로서 은퇴를 할 무렵 새뮤얼 리들은 그의 몸값으로 100만달러를 제의받았다. 그는 그것을 거절하고 말았는데, 서러브레드가 그만큼의 값을 받고 팔리기까지는 그후 35년 이상이 걸렸다. 맨오워의 씨수말 경력 또한 경주마로서의 그것만큼 화려하다. 켄터키 렉싱턴의 히나타목장에서 그는 첫 해에 13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말이 아메리칸플래그(American Flag)였다. 리들은 자신 소유의 암말 외에는 맨오워의 종부를 허락하지 않았다. 따라서 후손들이 세운 우승으로 인해 선두적인 씨수말 자리에 오르긴 했지만, 좀더 좋은 암말들과 교배했더라면 그는 아마 더욱 훌륭한 씨수말 경력을 쌓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맨오워가 배출한 후손들 중에는 트리플크라운 우승마인 워애드머럴(War Admiral), 크루세이더(Crusader), 블락케이드(Blockade), 워히어로(War Hero), 워레릭(War Relic), 클라이드반듀젠(Clyde Van Deusen), 그리고 배틀십(Battleship) 등이 있다. 그는 총 379마리를 낳았는데, 그들은 모두 1,286승을 기록했다.

1921년부터 그가 죽기 3개월 전인 1947년까지 맨오워는 켄터키 렉싱턴에 있는 리들의 히나타목장과 뒤에 옮겨 간 파어웨이(Faraway)목장에서 대략 최소 150만명에서 300만명 이상의 방문을 받았다. 이들은 어딘지도 모르는 지역의 한 가운데 있는 작은 마을을 찾아 전세계로부터 왔으며, 목장에 당도하기 위해 좁은 시골길 - 러셀 케이브 파이크(Russell Cave Pike) -을 여행해야만 했다. 그 모두는 신화가 된 말을 한 번이라도 보려는 노력들이었다.

1947년 말솜씨가 좋은 그의 자상한 관리사였던 윌 하벗(Will Harbut)이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되는데,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최고의 말(The most horse)’23) 또한 서른살의 나이로 심장마비의 희생자가 된다. 맨오워의 장례는 전 국민의 추모를 받았다. 1947년 11월 1일 맨오워가 서른살의 나이로 사망하자 조 팔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옛 시절은 이제 결국 끝이 나고, 마지막 연결고리마저 끊어져 버렸다. 미국 경마계는 단 하나의 살아 있는 상징이자 동경의 대상인 최고의 정열적인 말을 잃었으며, 앞으로 그런 말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다. 그는 경마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또 그를 보러 온 모든 여행객들에게 ‘경마’ 그 자체였다.”

팔머는 또 “맨오워가 보통의 말 이상은 아니었다고 한다면, 과거 그 어느 때에도 말이라는 동물은 없었으며, 나는 감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덧붙이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의 장례는 라디오를 통해 방송되었으며 전세계 언론들이 그것을 보도하였다. 리들은 맨오워가 살아 있을 때, 허버트 하젤타인(Herbert Hazeltine)에게 기념 청동상을 조각하도록 주문해서 그의 무덤에 세워 놓았다. 1977년 맨오워와 그의 유명한 조각상은 켄터키 호스 파크(Kentucky Horse Park)로 옮겨졌다. 그리하여 지금도 그는 차량 진입로가 끝나는 지점의 바로 그곳에서 여전히 전세계로부터 오는 팬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20세기, 그리고 어쩌면 지난 1,000년 동안 가장 위대했던 서러브레드를 추모하며….


글 배기한 제2육성목장 전담반 대리


주 14)
당시 서바톤의 기수는 경주 바로 직전에 기존의 얼 산데(Earle Sande)에서 프랭크 키프(Frank Keogh)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당시 서바톤은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또한 경주 후 맨오워의 등가죽에 상처가 나 있는 것을 퓨스털이 발견하였다.
주 15)
코만도(Commando)와 파스토렐라(Pastorella)와의 사이에서 태어남. 1905~1932년. 15승 무패.
주 16)
멜톤(Melton)과 옵타임(Optime)의 사이에서 태어남 .1902~1906년. 15전 14승.
주 17)
1893~1953년. 1920년대 테니스계를 주도했던 선수.
주 18)
1902~1971년. 처음으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아마추어 골프선수.
주 19)
1895~1983년. 1919년부터 1926년까지 헤비급 챔피언을 지낸 미국 프로 복싱 선수.
주 20)
1903~1941년. 미국 프로 야구계의 대타자. 일명 루 게리그(Lou Gehrig).
주 21)
1897~1973년. 1920년대 장거리 육상종목을 석권했던 핀란드 선수.
주 22)
1888~1953년. 스포츠 역사상 가장 훌륭한 만능 운동선수로 꼽히는 미식축구 선수.
주 23)


이 말은 원래 하벗이 맨오워를 찾아 온 사람들에게 그의 무용담을 이야기하며 자랑삼아 썼던 표현으로, 한 잡지에서 재미난 그의 말을 인용한 이후 맨오워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일반인들도 널리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벗의 말은 다음과 같았다.“He wuz de mostest hoss...”
2006/01/03 23:26 2006/01/03 23:26

일본인이 본 한국경마



시바타 유타카의 한국경마사랑

시바타 유타카 약력
현직: 일본중앙경마회 P.R센타 상무이사(1941년 9월 5일생)
약력: 1964년 4월 일본 중앙경마회 입사
1971. 10 ~ `98.3 핸디캡퍼, 재결위원 역임
90년 9월 ~ 11월 우리회 심판실에서 재결자문역으로 초빙


서울경마공원
1990년 한국에 왔을 때 두 가지 점에서 놀랐다. 하나는 출마표에 혈통이 기재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럴 경우 신마경주 때 경마고객은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말들의 능력을 평가해 마권을 구매할 수 있을까? 그 능력판정의 근본이 되는 것이 바로 혈통이다. 혈통을 바탕으로 신마전을 치른 후, 이후 1전 1전을 쌓아 가면서 경주거리에 대한 적성과 능력을 판정하게 되는 것이다. 적성거리에 뛰어난 적응력을 보인 말은 당연히 생산계로 환류되어 그 경주성질을 자손에게 전달토록 하는 것이 바로 경마다. 아울러 대를 이어 경주를 제패하는 경주마 혈통의 우수성에 고객들이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되면 비로소 경마는 도박이 아닌 레저로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한국의 경마종사자들은 ‘경주마거리=경주마능력’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직도 신봉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경마는 ‘혈통의 스포츠’이다. 즉 경주마는 태어날 때부터 단거리마, 중거리마, 장거리마로서 만들어져 태어난 것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어찌 한국에서는 단거리마에서 점차 훈련을 거듭해 장거리마가 되는 것이 ‘성공’이라고 치부되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경마는 단거리왕자, 중거리왕자, 장거리왕자의 혈통을 놓고서 각 분야의 우수마를 선발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단거리마의 스피드와 장거리마의 지칠 줄 모르는 스태미나를 놓고 어중간한 거리를 만들어 경주를 시켜 본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에 빠지게 하는 것은 경마의 사치가 아닌가 싶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양쪽의 중간에 해당하는 경주거리 2,400m가 태어난 것이다. 경주마세계에서의 왕자를 겨루는 대회로 말이다.

이런 점에서 ‘코리안더비’는 하루 빨리 1,400m가 아닌 1,800m 또는 그 이상의 거리에서 치러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렇게 경주거리를 변경하는 것은 향후의 생산목표를 정하는 중요한 사항으로, 생산지의 경주마 능력 등을 고려하여 바꾸어야 한다. 만약 내년에 당장 1,800m로 바꾼다면 지금까지 스프린터나 마일러에 초점을 맞춰 경주마를 생산해 온 생산농가는 보이지 않는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혈통스포츠인 경마에서의 경주거리는 생산계를 지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주거리’가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바로 경주마 생산 등 경마의 기본을 이루는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코리안더비’가 지금은 비록 마일러경주지만 앞으로는 세계에서 통하는 경마가 될 수 있도록 경주거리가 늘어나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또한 경마의 세계화에 관련해 유럽경마로의 진출도 무시할 수 없으므로 잔디주로에서 2,400m를 주파할 수 있는 생산환경이 구축된다면 향후 건설될 경마장의 주로재질을 잔디주로로 해야 할 것이고 경주거리도 2,400m로 늘려야 한다.

경주거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 경마는 유럽에서 귀족의 스포츠로 시작되었고, 매치레이스로 대표되는 장거리 경주 위주였다. 따라서 유럽경마는 어느 쪽인가 하면 장거리경주, 즉 스태미나를 중시하는 경마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의 주요 경주는 잔디주로에서 개최되며, 그 대표 거리인 2,400m로 진행되는 것이 영국더비·오크스, 프랑스더비·개선문상이다.

그럼 미국은 어떤가. 미국은 스피드를 중시하고 있다. 미국의 3관경주를 예로 들어 보자. 미국 3관 경주의 첫 관문인 켄터키더비는 2,000m이다. 2관문인 프리크니스스테이크스는 1,900m이다. 그리고 마지막 벨몬트스테이크스는 2,400m이다. 이들 3관 경주는 모두 잔디주로가 아닌 더트(Dirt)주로에서 펼쳐지는데(경마장에 따라 잔디로 개최되는 경우도 있음), 이는 경주마에게 주는 부담을 고려해 스피드를 요구하려는 의도인 듯싶다. 즉 경주마의 경주거리 부담에 있어 잔디주로에서의 2,400m는 더트주로에서 2,000m 정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더트주로에서 진행되는 미국은 거리를 짧게 하고, 경주마에게 부담이 적은 잔디주로에서 경마를 시행하는 유럽과 일본더비는 2,400m로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한편 한국의 주로는 무기질성분이 많은 모래(Sand)주로로서 유기질로 구성된 미국의 더트주로와는 그 성질이 다르다. 경주마에 주는 부담 또한 달라진다. 그리고 언제나 베스트 컨디션으로 조정되지 못하는 서울경마장의 현실을 고려, 한국경마의 기본거리로서 1,800m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물론 이 경주거리는 과도기적 경주거리로, 향후 세계경마계에 데뷔하기 위해서는 2,400m를 겨냥해야 할 것이다. 샌드주로에서의 2,400m 질주는 경주마에게 많은 부담을 줄 것이기에 잔디주로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덧붙이고 싶다. 한국 서울경마장에서 2007년쯤에 국제대회를 유치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과연 경주거리는 몇 미터로 결정될지 지금부터 자못 궁금해진다.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코리안더비’를 봐서는 1,400m가 유력할 듯 싶다.

그렇다면 과연 어중간한 거리인 1,400m로 대회를 시행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 상황을 보더라도 절대 무리라고 생각된다. 세계 유명 경주는 대개 1,600m(영국 1000기니·2000기니, 브리더스컵 마일), 2,000m(브리더스컵클래식, 두바이월드컵), 2,400m(영국·프랑스·아일랜드·일본의 더비 및 오크스)로 개최된다. 물론 단거리로서 1,000m나 1,200m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서울경마장은 1,600m 경주를 개최할 수가 없다. 여러면에서 1,800m 또는 2,000m로 국제대회경마를 개최하게 되지 않나 싶은데, 경주거리 결정은 어떻든 쉬운 문제는 아니다. 참가 가능한 각국에 먼저 의견을 타진한 후 결정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지금 한국의 생산계는 대부분이 단거리마 위주로 생산을 하고 있다. 현재 보유 중인 씨수말의 혈통을 봤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2007년을 위해서 기획을 한다면, 그 대회에 내보낼 수 있는 경주마의 생산을 당장 올해부터 준비해야 한다. 올해 노던댄서계열을 대신할 수 있는 장거리 혈통의 씨수말을 구입해 내년(2001년)에 교배를할 수 있도록 한다면 생산은 2002년, 육성·조교를 거쳐 경주마로서의 데뷔는 2004년(3세마)에 가능하다. 따라서 지금 시작해도 빠른 게 아니다. 이와 동시에 지금의 단거리 위주에서 점차 경주거리를 늘려가야 한다. 물론 이러한 경주편성체계 개편은 생산·육성·조교가 뒷받침되는 중장기계획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한편 해외에서 보았을 때, 가장 중요한 사항은 안심하고 경주마를 보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느냐는 점이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검증된 수의진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따라서 당장에라도 수의사 양성을 서둘러야만 할 것이다. 쉬운 예로 두바이월드컵 개최 시 가장 관건이 되었던 것은 세계 최고 일류마를 다룰 수 있는 수의시설을 갖췄다는 사실을 미국측에 설득하는 일이었다.

결국 미국측을 설득하는 데 성공, 1회 대회에 ‘시가’가 참가하게 됨으로써 두바이월드컵은 상금뿐 아니라 경주질에서도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대회가 될 수 있었다.


제주도
제주도의 토양은 거의 대부분 산성토양이다. 화산재로 이루어진 홋카이도의 초지도 대부분 산성토양이다. 산성토양 여부는 개민들레가 자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초지를 위한 적정한 Ph는 6.5~7.5이다. 어느 정도 이용가능한 초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Ph 5.0 이상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경주마 사료는 아직도 개량의 여지가 있다. 한국에서도 양질의 사료를 공급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양질의 사료 공급이 좋은 말을 키우는 데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씨수말
어느 혈통이 번성하는 것에는 흐름이 있다. 즉 노던댄서계열이 현재 주류를 이룬다고 한다면 그 순간부터 노던댄서계를 대신할 다른 혈통과의 교배를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경주마의 세계에서 가장 ‘기적의 혈량’이라고 하는 3×4교배, 또는 2×3교배를 넘게 되면 좋은 형질의 유전보다도 안 좋은 형질의 유전이 나타나게 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 목장운영자뿐만 아니라 모든 생산계 종사자는 씨수말을 선정하는 일에서부터 좋은 경주마를 얻는 것에 대한 경쟁이 시작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의 생산계에서 운용되는 씨수말 교배는 경쟁 원리에 입각한 경주마생산이 아님을 깨닫고, 앞으로는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현재 마사회 보유 씨수말의 특징은 혈통면에서 스프린터나 마일러 계통이라는 점과 노던댄서계통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한 마리의 씨수말을 검정하는 데는 최소한 7년이 필요하다.

또한 좋지 않은 혈통이라고 판단되어 그 혈통을 없애려고 한다면 최소한 3대, 평균적으로 5대에 걸친 기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좋지 않은 형질마가 씨수말로 사용되는 일이 없도록 씨수말 구매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현실적인 상황을 놓고 예를 들어보면 바야흐로 노던댄서계열이 아닌 다른 말을 씨수말로 써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마사회 경주마목장뿐아니라 생산농가는 이에 신속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경마는 무조건 경쟁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우승열패’의 법칙 하에서 운영되어야만 한다. 경쟁없는 경마는 더 이상 경마가 아니다.

아울러 경마는 씨수말을 선정하고 고르는 데서부터 경쟁이 시작된다. 하지만 지금 한국 경주마 생산계의 현실은 씨수말 선정에서부터 제비뽑기식으로, 즉 전혀 혈통과는 관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것은 2006년부터는 완전경쟁으로 갈 수 있도록 올해부터 준비 작업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생산농가도 커다란 지장없이 2006년부터의 완전경쟁 체제에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서울경마공원에서도 제주경마공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경쟁체제, 즉 10두가 뛸 경우 8착 내 입상마에게만 출주수당을 주고 나머지 9, 10착마에게는 출주수당도 안주하도록 함으로써 능력이 미달된 마는 도태되는 ‘우승열패’의 경마가 도입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번 방문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숙하려고 노력 중인 한국마사회를 비롯한 경마관련단체를 볼 수 있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2~3배 더 성장하고 있는 한국의 생산계를 둘러볼 수 있어 좋았다.

향후 그 거취가 주목되는 한국경마의 성장모습을 그려보면 왠지 모르게 뿌듯해짐을 느낄 수 있다. 경마관계자들의 더 큰 노력을 바라면서 …
2006/01/03 23:20 2006/01/03 23:20

맨 오워(Man O′ War)
“역사를 다시 쓴 말”

1917년 3월 29일, 켄터키의 렉싱턴에서 약 3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오거스트 벨몬트(August Belmont) 소령 소유의 너서리 목장(Nursery Stud)에서는 쌀쌀하고 습기찬 겨울 안개가 마방 주위로 깔린 가운데 자정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의 어둠 속에서 암말 마후바(Mahubah)가 밤색 수망아지를 출산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너서리 목장의 업무일지 939쪽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입되었다. “1917년 3월 29일-마후바가 페어플레이(Fair Play)와의 사이에서 밤색 수망아지 출산. 이마에 반점, 그 오른쪽에서부터 코 한가운데까지 가느다란 줄무늬 반점. 신장:42, 허리둘레:33.”

귀족 경마 가문인 벨몬트가1) 출신이었던 벨몬트 2세는 당시 뉴욕에 있었는데, 그날 오후 한 통의 전보를 받았다. “마후바가 잘 생긴 밤색 수망아지를 낳았음.”

예순살이 넘은 벨몬트는 보통 때라면 자신이 무척 아끼는 너서리 목장의 일에 전적으로 몰두해 있었겠지만, 당시는 세계대전쟁에 미국이 개입함에 따라 그도 어쩔 수 없이 전쟁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보병으로 복무를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는 소령의 직위로 해외 파견군의 마필을 확보하고 훈련시키는 임무를 맡고 있었던 것이다.

마필 생산자였던 벨몬트는 기회를 즐기며, 틀에 박히지 않은 일을 했다. 그 밤색 망아지가 태어나던 3월 29일에도 벨몬트는 마후바와 페어플레이 사이에서 잘못하면 성미가 고약한 말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 페어플레이는 ‘미치광이’헤이스팅스(Hastings)의 자마이다2) - 한편으로는 괜찮은 경주마를 생산할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벨몬트 소령은 이전까지 자신의 1세마들을 판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1918년 전쟁으로 인해 해외로 나갈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사상 처음으로 씨암말로 쓸 망아지 6마리를 제외한 너서리 목장의 1세마 21마리 모두를 비공개리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들 모두를 한꺼번에 살 사람을 구하지 못해, 결국 소령은 21마리의 1세마 모두를 사라토가(Saratoga) 경매에 내보내기로 했다.

한편 그곳에서부터 수백마일 떨어진 펜실베이니아의 글렌 리들(Glen Riddle)에 위치한 글렌 리들 목장에서는 루이스 퓨스털(Louis Feustel)이 목장주 새뮤얼 리들(Samuel D. Riddle)의 조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퓨스털은 젊은 시절 오거스트 벨몬트의 너서리 목장에서 성장하며 일을 배운 사람이다.3) 그가 사망하기 1년 전인 1969년, 여든다섯살의 퓨스털은 터프 앤드 스포츠 다이제스트(Turf & Sport Digest)에 당시 벨몬트가 내놓은 1세마들을 모두 사기 위해 얼마나 리들을 졸랐는지에 대해 털어 놓았다. 그는 특히 마후바의 망아지를 비롯한 3마리의 말들을 갖고 싶어했다. 하지만 리들은 자신의 이웃이자 말고기에 관해서는 최고 전문가로 알려져 있던 마이크 댈리(Mike Daly)의 충고를 듣고는 그것을 거절하고 만다. 한 달 보름이 지난 1918년 8월 17일 어느 토요일, 사라토가 경매에는 너서리 목장의 1세마들 21마리가 모두 나왔다.

리들은 그 경매에 참가하여 벨몬트가 내놓은 말들 가운데 퓨스털이 점 찍어둔 3마리의 망아지 중에서 두 마리를 사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마후바의 망아지가 경매에 나오자 입찰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가 성화를 부리기 시작했다. “이리 와서 여기 앉으세요, 샘(Sam). 저는 루이(Louie)를 위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이 망아지를 사고 싶어요.”

리들은 결국 그 망아지를 5,000달러에 구입했다.4) 그때의 경매를 살펴보자. 1918년 사라토가 경매에서 팔린 1세마들의 평균 가격은 1,107달러였으며, 여섯 마리의 망아지들만이 5,000달러 이상에 팔렸다. 그리고 1918년의 그 경매에서 1만5,600달러라는 최고가에 팔린 말은 스위치(Switch)라고 불린 수망아지였는데, 나중에 이름을 골든 브룸(Golden Broom)으로 바꾸게 된다.

자신이 특별히 원했던 3마리를 모두 데리고 리들이 펜실베이니아의 목장으로 돌아오자, 퓨스털은 그들을 순치시키는 일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경매에 내보내기 전 벨몬트 여사가 남편의 부재 중에 그 망아지에게 이름을 지어준 것이 있었지만5), 마후바의 그 아들은 훈련을 받던 처음 몇 달 동안은 그저 ‘마후바의 망아지’로만 불렸다. “순치시키기 힘든 말이었습니다. 안장을 얹기도 어려웠죠.” 퓨스털이 얘기했다.

그는 “먼저 뱃대끈을 조금 단단하게 죄고 나서 주위를 걸어보게 했습니다. 그런 후 그것을 다시 한 번 더 조인 다음 또다시 걸어보게 했습니다. 만약 뱃대끈이 제대로 잘 죄어지지 않았다면, 그는 그대로 뛰어올라 마방 밖으로 달아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라고 얘기했다.

퓨스털의 동생도 그 마사에서 일을 하곤 했었는데, 자신의 빨간 머리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자주 ‘레드(Red)’라고 불렸다. 그리고 퓨스털이 이야기하기를 그 마후바의 밤색 아들도 글렌 리들 목장의 모든 사람들이 ‘레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말이 16핸드 이상 자라자, 그는 ‘빅 레드(Big Red)’로 불리게 된다.

1919년 봄, 그 망아지는 핌리코(Pimlico)의 아브르 드 그레이스(Havre de Grace)에서 훈련과 조교를 받는다. 그러나 퓨스털이 그의 육성을 천천히 하였기 때문에, 경주마로서의 데뷔는 그해 중반에 가서야 이뤄지게 된다.

퓨스털은 마후바의 아들이 첫 경주를 치르기 바로 전날 자신이 큰 걱정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그동안 훈련도 훌륭하게 해내고, 계시원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던 그 밤색 망아지가 갑자기 아침 훈련에서 자신의 마방 동료인 디나 케어(Dina Care)에 5마신이나 뒤진 채 들어왔기 때문이다. 훈련 기수는 사람들이 다음날 더 높은 배당을 받을 수 있게 디나 케어가 그를 쉽게 이기도록 내버려 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퓨스털은 확신을 하지 못하고 다음날까지 계속 걱정만 하고 있었다. 그의 걱정은 기우였다.

1919년 6월 6일, 드디어 주로에 등장한 마후바의 아들이 벨몬트 파크 직선 주로를 달리는 미승리마 경주(maiden race)에서 5펄롱을 59초에 주파, 득의양양하며 6마신의 낙승을 거둔 것이다. 그에게 걸린 배당은 3-5였다. 그것이 바로 마후바의 망아지 이름(맨오워)이 출마표에 처음 나타난 때였다. 그 이름은 그 날의 경마팬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큰 의미로 바뀌게 된다. 맨오워는 자신의 경력관리를 위해 이후부터는 큰 대상경주에만 출전을 했다.

사흘 뒤의 킨 메모리얼(Keene Memorial) 스테이크스, 그리고 11일을 쉬고 나서 출전한 유스풀(Youthful) 스테이크스에서 우승의 기록들을 쌓아감에 따라 그에게 요구되는 부담중량 또한 올라갔다. 그로부터 이틀 후 그의 네번째 경주인 허드슨(Hudson) 스테이크스에서 130파운드를 짊어졌는데, 2세마가 부담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중량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보다 부담중량이 21파운드나 적은 바이올렛팁(Violet Tip)을 1과 1/2마신 차이로 누르고 우승을 하였다.

1919년 8월 13일, 그는 자신의 여섯번째 경주인 샌퍼드 메모리얼(Sanford Memorial)에서 유일한 패배를 기록했다.6) 출발이 좋지 않아 10마신이나 손해를 봤고7), 곧 무리를 따라잡았지만, 레일쪽을 파고들다가 다른 말들에게 갇혀버리고 말았다. 그에게 패배를 안겨준 말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업셋(Upset)이라는 말이었는데8), 맨오워는 이후 다른 여섯번의 경주에서 그를 만나 설욕을 한다. 그는 켄터키더비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소유주였던 샘 리들이 켄터키까지 말을 보내는 것을 꺼렸을 뿐만 아니라 이제 겨우 3세마가 된 말이 5월에 10펄롱을 뛰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9) 대신 맨오워는 동부에 머물며 프리크니스(Preakness)에 대비했다. 그해의 켄터키더비에서는 17마리가 출전하였는데, 폴존스(Paul Jones)가 업셋을 머리 차이로 누르고 우승을 하였다. 그리고 열흘 뒤에 열린 프리크니스에서 더비에 출전했던 몇 마리의 말들이 맨오워에게 도전을 했지만, 맨오워는 출발선에서의 머뭇거림에도 불구하고10) 업셋과 와일드에어(Wildair)에 1과 1/2마신 차이로 앞서며 승리하였다.

1920년, 3세마 시절에도 맨오워는 불패의 연승행진을 이어가며, 각종 기록들을 경신해 갔다. 위더스(Withers)에서는 기수인 클래런스 커머(Clarence Kummer)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1마일 미국 기록을 0.4초 앞당기는 1분35초08의 기록을 세웠다. 또 벨몬트스테이크에서는 1과 3/8마일을 2분14초에 달렸는데, 이 기록은 향후 50년간 깨어지지 않았다.11)

열흘 뒤의 스타이비선트(Stuyvesant) 핸디캡에서 맨오워는 자신보다 32파운드나 적은 중량을 짊어진 옐로핸드(Yellowhand)의 도전을 받게 된다. 그에게 걸린 배당은 1-100으로, 만약 100달러를 걸어 맨오워가 이기면 101달러를 돌려받는다는 뜻이다.12) 맨오워는 거침없이 처음부터 5마신을 앞서 나가더니, 결승 주로에 접어들면서 8마신 차이로 격차를 벌이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애퀴덕트(Aqueduct)에서 열린 드와이어(Dwyer) 스테이크스에서 맨오워는 자신의 호적수를 한 마리 발견할 수 있었는데, 다름아닌 휘트니 목장(Whitney Stables) 출신의 존그리어(John P. Grier)13)였다. 그 경주에서 그리어가 맨오워에게 무섭게 도전해 오자, 커머는 처음으로 채찍을 사용하였다.

결국 맨오워는 승리를 향해 내달리며, 새로운 미국 기록인 1분45초20을 수립하게 된다.


글 배기한 제2육성목장 전담반 대리


주1)
원래 뉴욕의 제롬 파크(Jerome Park)였던 벨몬트 파크와 벨몬트스테이크스는 그의 아버지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주2)
두 마리 모두 성격이 고약하고 변덕스러웠지만 엄청난 부담중량을 짊어졌던 말들이었다. 페어플레이의 성격과 조화를 맞추기 위해, 벨몬트는 영국 트리플 크라운을 제패한 록샌드(Rock Sand)의 딸 마후바와 그를 짝지어 주었다. 마후바의 조상들은 점잖았을 뿐만 아니라 총명하기까지 했다. 또한 마후바는 페어플레이와의 사이에서만 새끼를 낳았기 때문에 ‘페어플레이의 아내’라고 불렸다.
주3)
그는 마후바, 페어플레이, 그리고 헤이스팅스를 훈련시킨 사람이다.
주4)
리들은 만약 그 덩치 큰 밤색 망아지가 경주마로서 성공하지 못하면, 장애물경주용 말로 훈련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주5)
그는 전쟁의 와중에 태어났기 때문에 벨몬트 여사로부터‘ 맨 오워’라는 이름을 얻었다.
주6)
경주가 열린 사라토가(Saratoga)는 이 날 ‘ 반전의 경마장’‘ 우승예상마들의 무덤’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주7)
출발 깃발이 떨어졌을 때, 맨오워는 출발선에서 신호를 보지 못한 채 배회하고 있었다.
주8)
당시 업셋의 부담중량은 맨오워보다 15파운드가 적었으며, 반마신 차이였다. 그리고 업셋은 다른 어느 말도 감히 넘보지 못한 이 한 번의 우승으로 경마사에 영원히 기억되게 되었다.
주9)
샘 리들은 나중에 워애드머럴을 출전시킬 때에는 생각을 고쳐 먹게 된다.
주10)
그의 이런 악벽은 그가 물려받은 집안 습관으로 알려져 있다.
주11)
당시 그에게 도전을 한 말은 도나코나(Donnacona)라는 말로 워클라우드(War Cloud :1918),서바톤(1919)에 이어 사상 세번째로 트리플 크라운에 도전했던 말이다. 그리고 맨오워가 세운 기록은 서바톤의 종전 기록을 3초나 앞당긴 것이었다.

주12)
그가 뛰었던 총 21번의 경주 중 3번의 경주에서 북메이커 배당률이 1-100으로 나왔다.
주13)
그리어는 뛰어난 기량에도 불구하고 업셋과 더불어 맨오워의 그늘에 가려 존재가 무색해진 말이다. 그는 드와이어에서 신기록을 세운 맨오워에 불과 1과 1/2마신 뒤졌으며, 당시 자기 또래의 말들 중에서 두번째로 우수한 말이라는 평을 듣고 있었다.
2006/01/03 23:17 2006/01/03 23:17

기수의 일과/새벽을 여는 말굽소리



경마팬 여러분, 안녕하세요.
경마초보자·지방팬·일반인들 가운데 기수들의 일과가 어떠하고,
여가를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아서, 저를 비롯한 기수들이 1주일을 보내는 모습을 간략하게 담아보았습니다.



월요일



1년 열두 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두컴컴한 새벽부터 개개인의 생활리듬에 맞추어 경주마의 조교를 시작합니다.대개 여름에는 4~5시, 겨울에는 5~6시에 합니다.보통 8시30분에서 9시면 하루일의 70%에 해당하는 조교를 마치게 됩니다. 추운 겨울과 비오는 날은 새벽조교를 해야 하는 기수들에겐 무척 힘든 때입니다.

일반인들에겐 토·일요일이 휴일이지만, 경마장에서는 월요일이 토요일에 해당하는 날입니다. 기수들은 각자 나름대로 여가를 즐기기도 하고, 토·일요일의 피로를 풀기 위하여 집에서 실컷 잠을 자는 기수가 많습니다.



화요일



휴일입니다.매일매일 새벽조교와 체력단련으로 긴장된 하루하루를 보내는 우리들이지만 이 날만은 가족과 함께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도, 각자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즐길 수도 있는 여유로운 날입니다. 계절에 따라 다소 변화는 있지만 등산, 낚시, 골프, 스키, 수영 등 각자 좋아하는 스포츠를 즐깁니다. 짧은 여행을 떠나거나 영화·독서에 푹 빠져드는 감성적인 기수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총각 기수들은 데이트 준비로 분주하기도 하고요.



수요일



오전 9시쯤 조교가 끝나면 부대시설이 갖춰진 기수회관에서 각자 자기생활들을 합니다. 기수별로 자주 이용하는 부대시설이 있습니다.
우선 체력단련을 위해 체력단련실을 많이 이용하는 기수로는 박태종, 김정년, 박윤규, 서영석, 전기혁 기수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최봉주, 임대규, 함완식, 김효섭, 송석헌 기수는 당구장을 자주 찾습니다. 또 탁구장에서 동료기수와 호흡을 맞추는 기수로는 우창구, 고성이, 강병은, 조용배, 이종섭 기수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수라면 필수적으로 체중조절을 해야 하는 까닭에 김택수, 유재길, 황영원, 배휴준 기수 등은 사우나에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오후 2시부터는 놀이운동(말을 타고 걷게 하는 운동:편집자주)을 합니다. 이때 산책로를 따라 자신의 애마를 운동시키며, 그 후 신인기수들은 말수영장·마필보건소·마방 등에서 일손을 돕습니다.
오후 4시 정도면 퇴근을 하는데, 8명의 신인기수들은 기수회관에서 숙소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10여명은 경마장 인근의 자택으로, 나머지 대부분의 기수들은 사택인 안양 준마아파트로 향합니다.



목요일



조교와 아침식사 후 9시30분부터 발주연습과 능력검사를 합니다. 거의 11시30분까지 계속되며, 10시부터 12시까지 출마투표에 참석하는 기수들은 20~30명입니다.오후 2시 이후 다음주 핸디캡경주 등록에 참여하는 기수가 10여명 정도됩니다. 나머지 일과는 수요일과 동일하게 놀이운동을 한 후 퇴근을 합니다.오후 5시부터는 기수들이 각자 동아리활동을 하는데, 현재 가장 활성화되어 있는 동아리는 기수축구부입니다.

3월 22일 일본에서 열리는 한·일 기수친선교류축구대회를 준비하느라 안양에 있는 덕천초등학교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현재 축구부회원은 36명이고, 장세한 기수가 축구부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더러 지역의 조기축구회나 관리원 축구회, 여고 축구부와 친선경기를 갖기도 합니다. 특히 서울 위례여상 축구부와 덕천초등학교 여자 축구부에 대해서는 기수축구부와 기수협회에서 매년 일정금액을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한·일 기수친선교류축구대회는 국제경기(?)라 언론 매체의 관심도 큽니다.



금요일



우스갯소리 하나 한다면, 매일 같이 조교를 하다 보니 기수들의 팬티에 구멍이 잘 생깁니다. 기수라는 특수한 직업에 종사하다 보니 직업병으로 고통을 받는 기수가 많은데, 대부분의 기수는 허리 디스크로 고생을 하며 복대를 착용하고 생활하는 기수도 여러명 있습니다.금요일은 체중조절에 가장 많이 신경쓰이는 날입니다. 경마 전날이라 체중조절뿐 아니라 최선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예민해지게 됩니다.

기수들이 체중조절하는 방법으로는 운동·사우나·등산 등 체질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대부분 경마 전날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은 기본입니다.오죽하면 배불리 실컷 먹는 꿈을 꾸는 기수도 많습니다.



토요일



경마일입니다.
잘 나가는 빅3(박태종·안병기·김효섭) 기수들은 하루 6~7회 정도 출전하지만 그외에 평범한 기수는 3~4회 출전하며, 저처럼 ‘무늬만 기수’인 경우는 1~2회로 만족해야 합니다.월평균 72~96회의 경주가 시행되므로 77명의 기수가 올리는 산술적 월평균 승수는 약 1승입니다.이런 상황에서 빅5기수(빅3와 이성일·임대규)가 챙기는 승수가 30여 승이니 나머지를 놓고 그외 기수들이 피박 터지게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경주가 끝나면 대개 사내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숙소에서 다음날의 경주를 위해 충분한 수면을 취하려 노력합니다.



일요일



역시 경마일입니다.새벽조교 도중 부상자가 많이 발생하는데, 지난 1월의 경우 10명이 부상을 입었고 2월 현재 7명이 입원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동절기에는 사고율이 높은 편입니다. 13년 동안 기수생활을 하면서 지켜본 것만으로도 1급 장애자가 1명, 목숨을 잃은 기수가 3명이나 될 정도로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험에 맞서 철저한 자기관리를 필요로 하는 직업이기에 기수들은 어느 스포츠 선수 못지 않은 프로의식을 가지고 생활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기수라는 직업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또한 기수들은 자기계발을 위하여 영어학원, 컴퓨터학원을 다니기도 하고 홍대유·김택수·김옥성·유재길·임대규 기수는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대학에서 관련공부를 하느라 바쁩니다.

기수라는 직업은 매주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쳐서 승리 혹은 패배의 희비를 체험하며 또다시 자신을 다듬어 나가야 하는 치열하고도 고달픈 직업입니다.하지만 그러한 모습을 사랑해 주는 경마팬들이 있기에 우리는 밥을 굶어도, 부상을 당해도 언제나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열심히 달릴 것입니다.

김택수 기수·기수협회 홍보이사
2006/01/03 03:44 2006/01/03 03:44

경마를 건전한 놀이로 즐겨야





인간은 어떤 한 가지에든 기대어 산다. 삶은 자주 우리를 지치게 하고, 우리는 이 삶에 대항하여 원기를 차려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는 술에 기대고 니코틴과 커피에, TV에도 기댄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은 서로서로에게 의지하며 즐거움과 자유, 휴식을 주는 놀이에 의지한다. 경마는 우리 앞에 그런 놀이의 하나로써 존재한다. 생존경쟁으로 채워진 산업사회의 1주일이 우리들의 일상이라면 놀이는 일상의 바깥 쪽에 존재한다. 일상생활은 우리가 욕망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얻기 위한 과정으로 점철되어 있다. 반면에 놀이는 일상으로부터 우리를 어떤 일시적인 활동의 영역, 쾌활함과 황홀감 및 자유가 생동하는 공간으로 건너뛰게 한다. 그래서 놀이는 순수한 의미에서 욕망의 수레바퀴와 일상생활을 정지시키고, 우리를 필요와 욕망의 밖에 잠시 존재하게 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는 원기와 힘을 되돌려준다.



놀이는 살아갈 수 있는 원기와 힘을 준다



그러나 놀이에는 분명 위험성도 내재한다. 놀이는 때로 우리를 현혹시키고 사로잡는다. 대개의 사람들은 놀이를 놀이로써 주말의 시간 내에 머물게 하지만, 어떤 사람은 놀이를 일상의 날들에까지 끌어들여 일상이 곧 놀이의 장소가 되어 버린다. 놀이가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놀이는 놀이로써의 즐거움을 잃어 버리고 삶을 지배하는 중독이 된다. 모든 놀이들처럼 경마 또한 그러하다. 많은 사람들이 주말에 경마를 즐기고 그 즐김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상담을 통해 경마중독에 빠진 여러 사람들을 만나 본 결과, 그 사람들은 대개 1주일의 시간을 모두 경마에 빼앗기고 있었다.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주말에는 경마장으로 몰려가고 월요일·화요일이 되면 자신이 경마를 했으며 돈을 잃었다는 실의와 자책감에 빠진다. 그러나 수요일·목요일이 되면 다시 ‘이번에는 큰 돈을 따지 않을까? 잃은 돈을 찾아야 한다’하는 불확실한 기대와 조급함에 사로잡혀 경마예상지를 사보고 데이터를 정리하며 주말을 기다린다. 금요일에는 베팅할 액수와 말을 결정하고 목돈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주말이면 첫 경주부터 베팅하기 위해 경마장으로 바쁘게 뛰어가서 하루종일 거의 모든 경주에 베팅을 하며 주말을 보낸다. 그래서 이들도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만큼이나 1주일이 바쁘게 지나간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생활이 가족과 일을 중심으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 1주일의 생활중심에 바로 경마가 있다는 것이다.




경마중독에 빠진 사람들



나는 이렇게 중독에 빠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느낀다. 그 안타까움은 첫째로 많은 사람들이 너무 늦게 상담을 요청한다는 데서 연유한다. 상당수가 직장과 가족을 잃고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는 상태에까지 자신을 내몰며 도박을 지속하는 것이다. 둘째는 자신이 중독상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언젠가는 단 한번에 복구를 할 수 있겠지’하는 비현실적 착각에 사로잡혀 경마를 포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들 중에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갖고 상담에 임하는 경우도 많다. 중독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경마를 끊으려는 마음가짐, 자기 인생과 가족의 고통을 해결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돈 따는 베팅방법을 알기 위해, 잃은 돈을 복구할 방법을 알기 위해’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들도 있다.



셋째로 가장 안타까운 점은 중독에 빠진 사람들 중에는 자신을 포기하려고 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자신의 중독수준을 말기 암환자에 비유한 사람도 있었다. 심한 중독의 경우에는, 모든 생활이 뒤바뀌면서 자신이 이전에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고 또 했었는지를 까마득히 잊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은 다시 일상의 세계로 돌아가 어려움에 맞서는 것을 두려워하고 다시 정상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신념을 되찾으려 하지 않는다. 놀이의 본성을 상실한 유희는 그처럼 위험하다. 모든 중독은 위험하다. 술은 사교생활에 필수적인 수단이지만 알코올중독은 생명을 빼앗고 인생을 황폐하게 한다. 장난으로 시작한 마약이나 약물은 뇌와 육체에 손상을 입히거나 현실에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마비시킨다. 그러나 돈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도박 혹은 경마중독은 모든 중독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질병이다. 알코올중독이나 마약중독은 자신의 육체와 정신만을 망치지만 경마중독은 가족 전체를 파탄으로 몰아넣고,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빠져들게 한다.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자주 가족과 친구들에게 ‘돈을 잃었으면서도 땄다’고 하고, 혹은 ‘경마할 돈을 빌리거나 마련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결국에는 엄청난 빚을 지게 된다. 주변사람들은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되고 급기야 중독자를 비난한다. 경마중독의 무서운 점은 이렇게 경제적 손실로 인한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더욱 무서운 점은 가족과 친구에게 신뢰감과 자존감을 잃게 된다는 데 있다.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존심과 신뢰를 잃는 것이다. 중독자들은 경제적인 복구를 위해, 잃은 자존심과 신뢰를 복구하기 위해 다시 베팅의 세계로 뛰어든다. 그러나 그럴수록 손실을 보상하려는 안간힘과 불합리한 기대가 커지면서 거는 베팅액, 빌리는 액수와 거짓말, 손실만 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질 뿐이다. 이렇게 점점 가정불화와 경제적 파탄, 실직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되면서, 우울감과 불안감에서 도피하기 위해 다시 베팅을 한다. 처음에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경마를 하였지만 이제는 반대로 경마가 스트레스를 일으키고, 중독자들은 다시 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마를 한다. 기묘한 말이지만,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분명 경마로 인한 스트레스를 다시 경마를 통해 풀려고 한다.



병으로 받아 들이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중독수준이라는 것을 내심으로는 알면서도 이를 치료받을 병으로 인정하지 않거나 숨기려고 한다. 그러나 중독은 분명 치료받아야 할 질병이며, 어떤 사람이 말한 것처럼 암보다도 무서운 병이다. 중독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소인이 있는 사람만이 중독이 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일생에 한번쯤은 우울증에 걸리는 것처럼 열심히 삶을 살던, 건강하고 정상적인 사람들도 중독이라는 질병에 ‘감염되거나 걸릴 수’ 있다. 또한 알코올중독에 술을 마시지 못하면 손이 떨리고 초조해지는 금단증상이 있는 것처럼 경마중독에도 금단증상이 있다. 경마중독에 빠진 어떤 사람들은 베팅을 하지 않더라도 경주를 봐야 초조하고 답답한 마음이 가라앉기 때문에 돈이 없어도 주말만 되면 경마장을 찾게 되고, 1주일 내내 주말에 있을 경마가 기다 려진다고 한다. 주말에 경마장에 가지 못하거나 베팅을 못하면 속이 타고 불안해지는 금단증상이 생기게 되는데, 이는 바로 경마중독이 깊은 병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따라서 이미 중독상태에 있다면 중독을 숨기거나 베팅을 통해 잃은 돈과 자존심을 복구하려 하지 말고, 중독을 병으로 받아들이고 치료받으려는 마음을 갖기를 바란다.



당신도 이전에는 건강한 시민이요, 직장인·사업가였고, 책임감있는 아빠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전에는 어떻게 돈을 벌었으며 어떻게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는가를 떠올려 보라. 과거를 돌아보면 건강했던 스스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될 수 있는 한 빨리 가정에 문제를 털어놓고 대화를 해야 한다. 처음에는 가족의 신망을 잃고 질책을 받을 일이 두려울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을 다 잃은 이후에는 어차피 가족과 친구들이 사실을 알게 되고 당신을 비난할 것이며, 그러면 더욱 더 어려운 곤경에 처할 것이다. 그 때에는 이미 다시 시작할 기반이 아무 곳에도 없게 된다. 지금 말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황폐할 것이다. 미래를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지금 솔직한 것이 훨씬 더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희망이 높다.



놀이를 놀이로 즐기기 위해



중독에 빠지지 않으려면 위험시기를 잘 알아 스스로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베팅액이 갑자기 커질 때나 위험도가 높은 곳에 베팅하기 시작할 때, 가족이나 직장에 거짓말을 하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거나 경마로 인해 일에 지장을 받을 때, 경마를 하기 위해 빚을 지거나 자기 소유의 물건 등을 팔려고 할 때 등이 위험한 시기다. 이런 경우 자신이 중독이라는 것을 빨리 자각하고 문제해결을 도모해야 한다. 또한 되도록 혼자서 해결하려 하지 말고 가족이나 믿을 수 있는 주변사람들, 상담기관에 이야기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다. 또한, 놀이로서의 경마규칙과 목적을 존중해야 한다. 경마는 놀이이며, 주말에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경마 본연의 목적이다. 경마를 게임으로 여겨 그 규칙과 목적을 존중한다면 그렇게 많은 돈을 걸지 않을 것이다. 놀이하는 자는 자신의 능력과 게임의 규칙을 다 같이 존중하므로 모든 경주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걸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확신되는 경주에만, 자신의 능력에 맞는 액수 한도에서 베팅을 하는 것이다.



사람은 투자한 것이 많을수록 발을 빼기가 어렵다.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액수 한도에서 베팅을 하고, 거는 게임이 적을수록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아진다. 투자에는 경제적 투자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투자에는 나의 기분과 생각 및 열정과 같은 모든 지적·정서적 투자가 포함된다. 경마는 30분 동안 심사숙고를 하면서 모든 지적·정서적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에 경주에 그만큼 더 많은 집중을 하게 되며, 그만큼 결과에 대한 흥분과 즐거움 및 아쉬움도, 같이 넘치게 된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적정선을 유지하고 게임을 자신의 능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과신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



주사위를 던질 때 6개의 숫자 중에서 1이 나올 확률은 1/6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사위를 던진 후 다시 던지면 1이 나올 확률이 그만큼 높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확률은 스스로의 운명을 따를 뿐, 사람들의 손끝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치 확률을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주사위를 던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물론 경마는 완전한 확률게임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말과 기수, 그외의 가외조건을 열심히 공부해서 선택을 한다고 해도 우리가 우리 자신의 우월한 지적 능력으로 1등을 맞힐 수 있는 가능성은 20~30%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마를 게임으로, 확률로, 그리고 놀이로 존중하고 즐겨야 한다. 놀이에는 놀이만의 가치와 즐거움이 있다. 재미의 요소가 놀이의 본질이다. 경마를 놀이로, 재미로 존중한다면 우리는 중독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거의 도박수준의 베팅을 통해서, 혹은 베팅을 병행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희망을 품고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이 바로 중독의 상태다. 중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도박을 끊으려는 마음을 갖고 자신의 능력과 운, 과거, 미래, 현재를 바로 볼 때만이 잃어버린 인생과 가족, 친구를 되찾을 수 있다.
● 경마상담실 : 080-342-0200(목, 금요일만 운영)
2006/01/03 03:36 2006/01/03 03:36

정보경마 및 부담중량을 통한 부정경마



기수는 말을 조종하는 역할을 하며, 모든 기술과 능력을 다해서 우승을 해야 한다. 경마의 우승열패 원칙을 가장 잘 지키는 사람이 기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기수는 불특정다수인을 상대하는 공인이다. 기수의 행동 하나 하나에 많은 사람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다면 공인으로서 자격을 갖췄다고 할 수 있으나, 불특정다수인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나름의 생활방식과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한다면 공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얼마전까지 쟁쟁한 기수로 활약하다가 어느날 검찰의 조사를 받는 사람들이 그 예이다.



마음을 졸여야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검찰의 조사를 받기 전까지 얼마나 가슴을 졸일까. 아마 하루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도를 낸 기업체의 사장이 검찰에 구속기소되면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항상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어쩔 줄 모르다가 막상 쇠고랑을 차고 나면 마음이 홀가분해진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체념한 때문일까.우리 기수들 중에서 과거와의 연결고리를 끊지 못하고 계속 끌려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앞에서 얘기한 부도를 낸 회사 사장과 똑같은 신세일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착잡할는지도 모른다. 부도를 낸 사람은 검찰에 붙들리지 않기 위해서 혼자 도망만 다니면 되지만, 기수에게는 그러한 여유가 없다. 매주 닥쳐오는 경마일마다 기수는 누군가의 집요한 갖가지 주문을 받아야 한다. 들어 주지 않을 수 없다. 이미 큰 낚싯바늘이 두툼한 입술에 꿰어 있기에 그들이 당기는 대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낚싯바늘을 빼 달라고 사정도 해본다. 그러면 그들은 “이번 한 번만 더”라며 절대 빼주지 않는다.



이러한 일은 기수뿐 아니라 조교사나 마필관리원에게도 벌어진다. 조교사나 마필관리원은 독자적으로 자기가 아는 범위에서 말의 컨디션만 전달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기수에게 주문을 하게 될 것이다. 결국 기수, 조교사, 마필관리원은 모두가 한통속이 되고 만다. 서로가 서로를 낚싯바늘에 꿰어 놓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그들은 각각의 고객들에게 코를 꿰인 상태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가 된 셈이다.



정보경마의 두 부류



기수나 조교사 그리고 마필관리원이 고객과 접촉해서 정보경마를 하는 것에는 두 부류가 있다. 우선 적극적인 자세로 정보경마를 하는 경우다. 이때 이미 착외로 들어오도록 약속이 되었다면 기수는 자기의 말이 아무리 인기마라고 해도 고의로 말의 고삐를 잡아당기든지 혹은 다른 수단을 강구하여 착순내에 들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반대로 별로 능력이 좋지 않은 말에 기승했지만 착순에 들어야 한다면 다른말을 방해해서라도 우승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즉 적극적인 자세로 고객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다. 이 경우는 정보경마라 하기보다는 승부조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경우다. ‘적당한 선’을 유지한 채 대충 말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고, 맞든지 틀리든지 별로 구애받지 않는 것이다. 결국에는 지쳐서 더 이상 요구하지 않도록 하자는 속셈이다. 그러나 경마고객은 기수가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요구할 것이다. 그 꾐에 걸려들면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에 몸을 던지게 된다.



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다가 고객과의 관계를 청산해야 할 필요를 느낄 때 이와 같은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하지만 고객은 예전과 같이 적극적으로 해주기를 바랄 것이고, 이에 기수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면 고객은 애가 타다가 할 수 없이 관계당국에 과거 사실을 고발하게 된다.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잘 되었다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맞지 않기 때문에 고객은 본전 생각이 나고, 그 보상을 기수에게 요구하게 된다. 이미 오랫동안의 관계에서 상당한 액수의 돈을 잃은 것이다.베팅을 해서 잃은 돈도 돈이지만 기수에게 베푼 향응비도 상당하다. 기수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액수이기도 하다. 과거 어느 기수는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던 고객과의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적극적인 방법에서 소극적인 방법으로 대처했지만 고객이 집요하게 변상을 요구하자 제3자를 개입시켜 협박하다가 모두가 쇠고랑을 찬 경우도 있다.



기수·마필 관계자와 고객의 연결에는 정보꾼들이 개입하기 마련이다. 그들은 경마계 주변을 돌면서 부정적인 방법으로 부정적인 돈을 먹으려는 사람들이며, 고객과 기수를 연결해 주거나 자신이 직접 기수와 연결된 사람들이다. 기수와 연결고리도 없으면서 기수와 잘 아는 사이인 것처럼 위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주로 초보고객에게 접근, 자기만이 아는 것인 양 정보를 알려주고는 맞으면 대가를 요구한다. 틀리면 슬그머니 사라진다. 역사적으로 보면 영국에서는 19세기께, 정확하게 말해서 1843년에 직업적 도박사가 등장하였고, 이들이 경마계의 물을 흐려 놓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사기꾼’ 혹은 ‘투기꾼’으로 불렸다. 이와 같은 사기꾼 혹은 투기꾼은 우리 경마장에도 상당히 많이 있다.



우승하기 위한 부정한 방법



우승하기 위해 남을 방해하거나 규정된 부담중량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외국에서도 부담중량을 속인 채 경주하고는 후검량 직전에 다시 원상으로 돌려놓은 뒤 후검량을 받다가 다른 기수가 항의를 해서 들통이 난 사례가 있다. 적극적으로 고객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기수, 즉 레이스를 조작하려는 기수라면 의도적으로 부담중량을 가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기마를 착순에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부담중량을 올리면 약물의 영향보다도 더 효과적일 수 있다. ‘7착 이후의 말에게는 후검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악용할 수도 있다. 설혹 재결위원으로부터 후검량 말로 지정되더라도 “말이 땀을 많이 흘려 잭킹이 젖었고, 또 전검량 후 목이 말라 물을 마셨다”라고 하면서 약 1㎏은 속일 수 있을 것이다.



기수의 부담중량이 부족하다는 것이 발견되어 이를 실격처리한 일이 우리나라의 초기경마에 있었다. 1922년 9월23일 제8경주는 당초 5두가 출주예정이었으나 2번 ‘인천호’가 부상으로 출주취소되어 4두만이 출주하였는데, ‘운룡호’라는 말이 예상을 뒤엎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후검량에서 부담중량이 부족한 것이 발견되어 재결위원에 의해 실격처리되고 2착한 ‘조일호’를 우승마로 확정하였다. 이때 ‘운룡호’ 마권을 구입한 고객들이 배당금 지불을 요구하면서 거센 항의를 하였고, 폐장 후까지 시비가 일었으나 주최측의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당시 재결위원은 2명이었는데, 일본 육군의 수의관과 경마구락부 직원이었다.



의도적이 아닌 부담중량 부족사태가 1970년에 발생하였다. 그해 7월2일 뚝섬경마장의 제10경주 때였다. 그해 5월에는 말인플루엔자가 발생하여 2주동안 경마가 중단돼 마사회로서는 어려울 때였는데 예기치 않은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결승선 약 2백m 앞에서 4번마의 잭킹 2장이 안장회전으로 떨어져나갔고, 그 말은 1착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후검량에서 부담중량이 부족한 것은 당연했다. 착순 4-1-6-3이 4번의 실격으로 1-6-3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고객들이 소동을 일으켰다. 고객들은 주로를 점거하고 각종 경마장의 기물을 파손하기도 하였다. 결국에는 경찰이 출동하여 고객들을 해산시켰으며 마사회는 두 가지의 마권, 즉 4-1과 1-6 모두를 적중마권으로 인정하였다.



부담중량과 관련, 영국 경마역사에 기록된 사실을 하나 소개한다. 앤 여왕 시절, 뉴마켓의 왕실마사 관리자이면서 당시 경마계의 지도자였던 트레곤웰 프램프턴(Tregonwell Frampton)과 관련된 이야기다. 당시 영국에서 최고의 경마실력자로 불리던 프램프턴이 큰 낭패를 본 일이다. 당시는북부와 남부의 경마관리체계가 서로 달랐다. 그때 요크셔에 사는 윌리엄 스트릭랜드라는 사람이 자신의 소유마 ‘메르린(Merlin)’을 이끌고 뉴마켓의 프램프턴에게 도전했다. 많은 사람이 큰 관심을 가졌으며, 전례가 없을 정도로 거액의 내기돈이 걸렸다. 북부와 남부의 대결양상이었다.프램프턴은 이름을 알 수 없는 말로 이 도전에 응했는데, 사전조사를 할 목적으로 예비경주를 벌였다. 이때 프램프턴은 약 7파운드를 더 실어 예비경주에서 졌다. 그래서 프램프턴은 의기양양하여 자신있게 내기를 걸었다. 하지만 본경주에서도 프램프턴의 말이 지고 말았다. 사실 스트릭랜드측의 조교사는 예비경주 때 프램프턴의 말보다도 더 많은 부담중량을 실었던 것이다. 이 경주의 결과로 뉴마켓 사람들은 많은 재산을 잃게 되었고, 프램프턴의 명예도 큰 손상을 입었다.



이와같이 부담중량은 경마에서 상당히 중요한 사항이다. 등짐을 무겁게 진 말은 지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지하에 후검량실이 마련돼 있어 일반사람은 검량 자체도 잘 모른다. 그러나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후검량을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후검량실이 관람대 전면 중앙에 위치, 경주 후 말들이 관람대 전면주로에 모이게 된다. 그리고 규정된 착순에 든 말의 기수는 안장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가슴에 안고 검량위원 앞에 놓인 저울에 올라선다. 이처럼 후검량이 고객에게 공개되기는 하지만 고객이 그 저울의 눈금을 읽기는 어렵다. 저울은 전자식이 아닌, 바늘침이 돌아가는 구식이며 그 직경은 겨우 30㎝ 정도다.영국 경마 초기에는 부담중량이 말의 나이에 의해 정해지지 않고, 체고에 의해 정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마주는 가급적 부담중량을 줄이고자 체측기(체고를 재는 계기)를 어깨에 갖다댈 때 말이 움츠리게 하는 짓을 시켰다. 매일 손이나 기구로서 말의 어깨를 치면 말은 어깨를 움츠리거나 앞다리를 벌려 그만큼 키를 줄였던 것이다. 당시는 검량위원의 경우 부담중량으로 부정을 저지르고, 발주위원은 늦발주나 재발주로 부정을 저지르던 때였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라우스 제독이다. 그는 연령에 의한 부담중량의 기초를 확립한 인물이었고, 그의 이론은 지금도 우리 경마장에서 핸디캡위원들이 이용하고 있다.
2006/01/03 03:35 2006/01/03 03:35

경마의 올림픽 '98.브리더스컵 경주



상금(총상금 1천2백만달러)이나 출전마필의 수준에 있어 세계최고를 자랑하며, 명실상부한 경마의 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1998년 브리더스컵경주가 지난 11월7일 열렸다. NBC방송이 전세계 40여개국에 생방송하는 가운데 미국 켄터키주 처칠다운스 경마장에서 개최된 이번 경주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아일랜드, 영국, 아르헨티나, 프랑스, 캐나다 등 전세계 경마선진국에서 82두가 출주해 7개의 경주를 펼쳤다.

우승마 7두 중 아일랜드 경주마 1두를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 경주마였으며, 특히 이중 5두가 켄터키주 출신이어서 켄터키주가 세계 서러브레드 경주마 생산의 중심지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지난 켄터키더비에 ‘네셔날 로레(Nationalore)’란 경주마를 출전시켜 9착을 차지한바 있는 한국인 마주 겸 조교사 조명권씨가 이번에는 브리더스컵 주버나일에 ‘셀렉트 퓨(Select Few)’란 경주마를 등록했으나 실제경주에는 출전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브리더스컵 클래식(Classic)



총상금 4백만달러로 두바이월드컵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상금이 높은 경주인 브리더스컵 클래식경주는 1차 출마등록마인 ‘왜건 리미트(Wagon Limit)’가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서 총 10두가 출주하였다.이번 대회에서는 당대 최고마라 일컬어지는 ‘스킵 어웨이(Skip Away)’와 출주마중 97년 국제프리핸디캡 최고마인 아르헨티나 국적의 ‘젠틀맨(Gentle-men)’ 그리고 98년 두바이월드컵 우승마이자 98년도 최고상금 수득마인 ‘실버 참(Silver Charm)’ 등 3마리의 특급 경주마가 우승을 다툴 것으로 예상됐으나 ‘오섬 어게인(Awesome Again)’이 우승을 차지하며 이변을 연출했다. 이 경주에서는 3세이상 서러브레드 경주마가 1과 4분의 1마일의 다트주로를 달린다.


부담중량은 북반구 출생 3세마가 1백22파운드(55.3kg), 북반구 출생 4세 이상마가 1백26파운드(57.1kg), 남반구 출생 3세마는 1백17파운드(53kg), 남반구 출생 4세 이상마는 1백26파운드다. 암말은 공히 3파운드의 감량이 적용된다. 우승마인 ‘오섬 어게인’은 강력한 우승후보마는 아니었으나 98년에 5전5승의 무패전적을 지니고 있던 상당히 유명한 경주마였다. 98년 6월 스테판 포스터 핸디캡(Stephan Foster Handicap)경주에서 ‘실버 참’을 꺾은 것을 비롯하여 휘트니 핸디캡(Whitney Handicap, GⅠ), 사라토가 브리더스컵 핸디캡(Saratoga Breeders’ Cup Handicap, GⅡ) 등의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 있어 이변을 예고했다.2착은 ‘실버 참’이 차지했고, 3착은 올해 두바이 월드컵 2착마이자 영국의 킹조지 4세 & 퀸엘리자베스 다이아몬드 스테이크스 우승마인 고돌핀 소속의 ‘스웨인(Swain)’이 차지했다. ‘스웨인’은 주로 잔디경주에서 강점을 보여온 경주마로 다트주로에서 개최된 이번 브리더스컵에서도 예상외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올해 벨몬트스테이크스 우승마인 ‘빅토리 갤럽(Victory Gallop)’이 4착을, 트래버스 스테익스(Travers Stakes, GⅠ) 우승마인 ‘코포나도스 퀘스트(Coponado’s Quest)’가 5착을 차지했다.

이번 경주 최고인기마(favorite)이자, 시가(Cigar)가 보유하고 있는 역대최고수득상금 기록(9백99만9천8백15달러)갱신을 눈앞에 두고 있던 ‘스킵어웨이’(총수득상금 : 9백61만6천3백60달러)는 6착에 머물러 기록경신을 다음 기회로 미룰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올해 브리더스컵 클래식 경주의 가장 큰 이변은 무려 80만달러의 추가등록료까지 지불하면서 출전한 아르헨티나의 ‘젠틀맨’이 최하위를 기록한 것이다.



브리더스컵 터프(Turf)



총상금 2백만달러가 걸린, 1과2분의 1마일 잔디주로 경주인 브리더스컵 터프에서는 아일랜드 경주마인 ‘벅스 보이(Buck’s Boy)’가 우승을 차지하였다.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던 아일랜드의 ‘데일라미(Daylami)’가 출주를 취소하여 다소 맥이 빠진 가운데 펼쳐진 이번 경주에서는 많은 이변이 연출됐다. 우승마 ‘벅스 보이’는 97년 브리더스컵 터프에서 4착을 기록했으며 통산전적 24전 13승, 2착 4회를 기록중이던 우승후보마 가운데 하나였다.올해 프랑스 개선문상 경주에서 2착을 한 아일랜드의 ‘레게라(Leggera)’가 총 13마리의 출주마 중 12착을 기록한 것과, 동경주 최고인기마이자 캐나디안 인터내셔널 스테이크스(Canadian International Stakes, GⅠ)에서 우승한 바 있는, 강력한 우승후보마였던 ‘로열 앤섬(Royal Anthem)’이 유리한 부담중량에도 불구하고 7착을 한 것은 이변이라 할 만하다.

지난해 이 경주 우승마였던 ‘치프 베어하트(Chief Bearhart)’는 4착을 차지했다. 2착은 ‘시가’의 조교사로 유명한 윌리엄 모트(Willam I. Mott)가 조교하고 코리 나카타니(Coruy Nakatani)가 기승한 ‘야글리(Yagli)’가 차지했다.



브리더스컵 디스태프(Distaff)



지난해까지 1백만달러였던 상금이 올해부터 2백만달러로 인상된 브리더스컵 디스태프 경주는 총 8마리의 경주마가 출주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디스태프 경주는 3세 이상 암말들의 경주로 1과 8분의 1마일의 다트주로를 달리는 경주이다. 이번 경주는 올해 브리더스컵 7개 경주 중 가장 이변이 적었던 경주로 국제프리핸디캡이 가장 높은 3마리의 우승후보마들이 1~3착을 기록하였다. 1착은 윌리엄 모트 조교사와 게리 스티븐스 기수의 ‘에세나(Escena)’가, 2착은 올해 9전6승을 기록중이던 최고인기마 ‘반시 브리즈(Banshee Breeze)’가, 3착은 올해 5월 켄터키 옥스(Kentucky Oaks)우승마인 ‘키퍼 힐(Keeper Hill)’이 각각 차지했다.브리더스컵 마일(Mile)브리더스컵 마일은 3세 이상 서러브레드 경주마가 1마일의 잔디주로에서 뛰는 경주다.

이 경주와 브리더스컵 터프는 잔디주로 경주가 많은 유럽의 경주마들이 강세를 보여 왔다.올해 브리더스컵 마일에는 총 14두의 경주마가 출주하여 존 벨라츠케즈(John Velazquez) 기수가 기승한 ‘다 호스(Da Hoss)’가 우승을 차지했다.우승마 ‘다 호스’는 96년 이 경주의 우승마로서 통산전적 19전 11승, 2착5회라는 우수한 전적을 가지고 있었으나 경주 전에는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97년 브리더스컵 주버나일(Juvenile : 2세마)경주에서 우승하고 같은해 이클립스상 시상식에서 북미연도대표마(Horse of the Year)로 선정된 바 있는 최고인기마 ‘페이버릿 트릭(Favorite Trick)’이 8착을 한 것과 유럽의 강력한 우승후보마였던 ‘데저트 프린스(Desert Prince)’가 최하위를 기록한 것은 이변이었다.2착은 알렉스 솔리스(Alex Solis) 기수가 기승한 아일랜드의 5세마 ‘혹슬리 힐(Hawksley Hill)’이 차지했다. 이어 3착은 켄트 데자무(Kent Desormeaux)기수가 기승한, 올해 3전3승의 전승기록을 가지고 있던 영국의 6세마 ‘라비브(Labeeb)’가 차지했다.



브리더스컵 스프린트(Sprint)



브리더스컵 스프린트는 브리더스컵 7개 경주 가운데 가장 짧은 1천2백m의 거리를 다트주로에서 뛰는 경주로 3세 이상 서러브레드 경주마가 출전대상이다. 올해 브리더스컵 스프린트에는 총 14두의 경주마가 출전하여 코리 나카타니 기수가 기승한 ‘리레이즈(Reraise)’가 우승을 차지하였다. ‘리레이즈’는 올해 9월 켄터키컵 스프린트 스테이크스(GⅡ)에서 우승한 바 있는 통산전적

5전4승의 경주마로 이번 경주의 우승후보마 중 하나로 꼽혀 왔다. 게리 스티븐스(Gary Stevens) 기수가 기승한 비인기마 ‘그랜드 슬램(Grand Slam)’이 2착을 한 것과 최고인기마였던 ‘어펌드 석세스(Affirmed Success)’가 6착을 한 것, 그리고 경마전문가 사이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마로 거론되던 ‘와일드 러시(Wild Rush)’가 최하위를 기록한 것 등은 이변이라 할 만하다.



브리더스컵 주버나일 필리스(Juvenile Fillies)



브리더스컵 주버나일 필리스 경주는 서러브레드 2세 암말들이 1과 16분의 1마일의 다트주로를 달리는 경주다. 부담중량은 모든 출주마 공히 1백19파운드(53.9kg)이고, 총상금은 1백만달러이며, 다른 브리더스컵 경주와 마찬가지로 당연히 GⅠ경주다.이 경주에서는 큰 이변없이 보브 베퍼트(Bob Baffert)조교사, 게리 스티븐스 기수의 최고인기마 ‘실버불릿데이(Silverbulletday)’가 예상대로 우승하였고, 2착은 켄트 데자무 기수가 기승한 ‘엑설런트 미팅(Excellent Meeting)’이 차지하였다.브리더스컵 쥬버나일(Juvenile)브리더스컵 주버나일 경주는 서러브레드 2세 수말경주로 1과 16분의 1마일을 다트주로에서 달린다. 부담중량은 모든 출주마가 동일하게 1백22파운드(55.3kg)이고, 총상금 1백만달러에 총 13두의 경주마가 출전하였다. 1착은 제리 베일리(Jerry Bailey) 기수가 기승한 ‘엔서 라이블리(Answer Lively)’가 차지했고, 2착은 에드가 프라도(Edgar Prado) 기수가 기승한 ‘알리즈 앨리(Aly’s Alley)’가 차지하였다.



정태인│대외협력팀
2006/01/03 03:25 2006/01/03 03:25

경주마의 천국 리토트레이닝센터



리토트레이닝 센터는 듣던 대로 한번 가볼 만한 곳이었다. 경주마들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광활한 벌판을 시원스레 달리는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트여 주기에 충분했다. 필자가 이곳을 들러보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고베에 사는 지인의 초청으로 갔던 관광길에 마사회 석영일 재결위원의 권유로 들렀던 것이다. 석위원이 소개해준 후루하시 수석재결위원과 이곳에서 11월11일 오전 6시40분에 만나 안내를 받기로 했었다. 혹여 약속시간에 늦을까봐 오전 4시 고베를 출발, 물어물어 찾아가 도착한 것은 오전 8시.



일본 아버지의 ‘경마조기교육’



도착 즉시 기자의 본능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주차장부터 둘러보며 우리와 다른점을 찾아본 것이다. 드디어 묘한 것이 포착됐다.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차량마다 남녀가 쌍쌍이 타고 있는 것이었다. ‘일본엔 여자 마필관리사도 있다더니 부부관리사도 많은 모양이다’하고 생각했는데 이들이 차에서 내리지를 않는 것이었다.출근했으면 들어갈 일이지 남녀가 깜깜한 차 안에서 무슨 짓을 하나 싶어 둘러봤더니 부부도 있었지만 젊은 연인들도 적지 않았다.

또 어떤 부부들은 뒷자리에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쯤 돼 보이는 자녀들까지 태우고 있었다. 이들이 뭐하는 사람들인지는 한참 뒤에 알았다. 후루하시 위원을 만나 조교관람대에 들어갔을 때 이들이 중앙경마회 직원의 안내를 받아 입장했다. 알고보니 이날은 나흘 뒤에 열리는 제25회 엘리자베스여왕배 출주마들의 조교 공개행사를 갖는 날이었다. 엘리자베스여왕배는 총상금 1억9천만엔(우승상금 1억엔)으로 전국 랭킹 8위, 관서지방 랭킹 4위인 대회다. 이 대회 출주마들의 조교장면을 보려고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세상에 그걸 보려고 생업을 제쳐두고 꼭두새벽에 오다니, 그것도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도 않은 채 데리고 오다니 부모가 어린 자녀들까지 경마꾼으로 키우는 모양이다’ 싶어 다가가 질문을 던졌다. 자영업을 한다는 도쿠마루 오시가즈(38)의 입에서 놀라운 대답이 나왔다. “학교 교육도 중요하지만 경마를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다. 학교는 오후에 보내기로 하고 데리고 왔다”어른이 돼서 경마를 도박이 아닌 건전 레저로 즐기도록 조기교육을 시킨다는 얘기다. 도쿠마루는 이를 위해 고베에서 새벽 5시에 출발했다고 한다.

고베에서 리토까지는 1백50km, 서울~대전 거리다. 자녀에게 경마에 대한 산교육을 시키기 위해 학교도 보내지 않고 데려온 아버지의 정성은 일본 경마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학교 성적만을 대수로 알고 수백만원짜리 고액과외나 시키는 한국의 아버지들과 대조적이었다. 망원경을 들고 말들이 뛰는 모습을 살펴보는 도쿠마루씨의 자녀에게서 일본 경마의 밝은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리토트레이닝센터의 6겹 트랙



이날 트레이닝센터를 찾은 사람은 60여명. 중앙경마회는 이들에게 망원경을 하나씩 빌려주고 아침식사와 커피를 제공했다. 안내원 핸드 마이크를 들고 조교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줬다. 엘리자베스여왕배에 출전하는 사로 기수(28)와 대화하는 시간에는 질문공세와 박수세례가 터졌다. 1시간 30분 동안의 조교관람 행사를 마치고 트레이닝센터를 한바퀴 둘러보아다. 리토 트레이닝센터는 1백49만㎥(약 45만평). 이중 마장이 42만㎥, 마사 41만7천㎥, 주택 14만2천㎥와 말 수영장,

말병원 등이 들어서 있다. 이 안에 경주마 2천1백58두와 1천2백세대 4천명이 거주하고 이다.경주마는 오사카, 교토, 고베경마장 등 관서지역 경마에 출전하는데 더러는 도쿄 등지로 원정경기에 나서기도 한다. 조교사는 1백11명, 기수는 90명이다. 조교사가 기수보다 많다는게 우리와 다른 점이다.

우리는 조교사 52명에 기수 77명으로 기수가 훨씬 많다. 조교사 1인당 평균 관리두수가 19.4두. 우리나라의 25.6두 보다 적다. 반면 기수와 경주마의 비율은 1대24로 우리나라의 1대17.3보다 훨씬 많다.리토 트레이닝센터의 조교트랙은 6개가 겹으로 설치돼 있다. 맨 안쪽 1번 주로는 1천4백50m, 다음 2번 주로는 1천6백m, 3번 주로 1천8백m, 4번 1천9백50m, 맨 바깥쪽 6번 주로가 2천2백m다.특이한 것은 조교트랙의 바닥이 세 가지라는 점이다.

1번과 4번주로에는 잔디, 2번 6번 주로에는 모래, 3번 5번 주로에는 우드칩이 각각 깔려 있다. 조교사들은 경주마에 알맞은 주로를 택해 조교를 시킨다. 우드칩이 깔린 주로는 모래주로보다 푹신해 다리 관절에 이상이 있는 말을 조교 시킬 때 이용한다. 그리고 트랙 안에는 소형트랙 4개가 있어 우리나라의 원형 마장처럼 이용하고 있다. 그래서 조교트랙에 나오면 실전을 벌이듯 전력질주한다.조교에 나오는 경주마들은 우리처럼 안장에 고유번호를 달고 나오는데 안장의 색깔이 나이별로 다르다. 우리는 이번주 출주마는 황색, 대상경주 출주마는 청색, 다음에 출주할 말은 적색, 미등록 신마는 황색선이 그어진 재킹으로 구분하고 나머지는 나이에 따라 3세 이하는 흑색, 4세 이상은 흰색 재킹을 사용하고 있다.

조교트랙은 하루 4시간 동안 개방하는데 여름철엔 오전 5시부터, 겨울철엔 오전 7시부터 시작한다. 동이 튼 뒤에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명등을 켜는 일이 거의 없다. 조명등도 우리처럼 조명탑이 아니라 가로등처럼 띄엄띄엄 설치돼 있다. 조교사, 기수, 중앙경마회 핸디캐퍼 등 관계자들의 일과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우리나라는 꼭두새벽부터 조명들을 켜놓고 조교를 한다. 조교가 끝나면 말도 자고 사람도 잔다.

이렇게 한숨 자고난 뒤 일과를 다시 시작하는 우리와는 너무나 다르다. 우리는 트레이닝센터가 따로 없어 경주트랙에서 새벽 4~5부터 조교를 시작해야 한다. 만약 일본처럼 7시부터 시작하면 경마날엔 조교를 제대로 할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꼭두새벽부터 조교를 하고 낮잠을 한숨 자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일본경마와 언론



리토 트레이닝센터엔 조교관람대가 2개 있다. 2백m쯤 서로 떨어녀 있는데 하나는 일반인 관람대이고 또 하나는 조교사와 기자전용이다. 기자 관람대에서 조교사 인터뷰가 있다고 해서 한번 가 보았다.가는 길엔 작은 등산로처럼 된 오솔길이 있었는데 그 동산의 위엔 흉상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다케다 조교사의 흉상이다.

그는 1906년 홋카이도에서 태어나 기수를 거쳐 조교사가 된 뒤 일본 조교사회 회장, 중앙경마회 운영심의회 위원, 조교사회 명예회장 등을 지냈으며 경마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훈장을 2번 받았다고 한다. 흉상 앞엔 벤치가 여러개 설치돼 조교사들이 앉아 담소를 나누며 조교장면을 지켜보는 게 마치 대선배를 기리는 뜻이 보였다. 오솔길을 지나면 커다란 마당에서는 말들이 조교트랙에 입장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고, 트랙 입구에는 카메라맨들이 진을 치고 엘리자베스여왕배 출전마들에 대한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출전마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낱낱이 카메라에 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대상경주가 열린다고 해서 카메라맨들이 몰려오지도 않을 뿐더러 와서 촬영해도 게재할 지면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일본에선 출전마의 조교장면을 다음날 아침신문에 상세하게 보도되고 있다.마당 주변에는 조교사와 기수, 조교보, 마필관리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조교사는 우리처럼 검은색 안전모를, 조교보는 검은색에 흰테가 있는 안전모를 쓰고 있었으나 기수의 안전모는 청색(우리는 노란색)이다. 기자 관람대 아래층은 조교사들이 이용하고 위층은 기자실이다. 기자실의 한쪽은 전문지 기자들이 다른 한쪽은 신문 기자들이 이용한다. 전문지 기자실에선 예상전문가들이 경주마들의 조교장면을 망원경으로 낱낱이 살피며 열심히 기록하고 있었다. 1개 예상지에 몇명씩 몰려온 것 같았다.

일본 최대 예상업체인 ‘슈칸 게이바북’의 기자만도 7~8명 눈에 띄었다.신문기자실은 각 스포츠신문과 일간지로서는 유일하게 예상지를 발행하는 산케이신문 기자들이 주로 이용하는데, 이날은 엘리자베스여왕배 출전마 조교장면 공개일이어서 방송기자들의 출입이 허용돼 방송카메라 7~8대가 와 있었다. 이날 인터뷰 대상 조교사는 강력한 우승후보마 ‘에어그룹’을 관리하는 이토 유지씨(61)였다. ‘에어그룹’은 지난해 천황상을 거머쥐며 연도 대표마로 뽑혔던 관서지방 최고의 명마. 93년 4월6일 홋카이도에서 태어났으며 4백70kg의 균형잡힌 몸매에 머리가 영리해 16전9승, 준우승 4회를 기록하고 있었다.

아비말 ‘토니빈’은 89년 개선문상을 안았던 명마로 유럽지역을 누비며 27전15승을 거뒀다. 89년 재팬컵에 원정 출전, 5착에 그쳤는데 일본의 생산업자가 씨수말로 거액에 사들였다.이런 명마의 아들인 ‘에어그룹’은 관서지방 경마팬들에겐 스타로서 모자람이 없다. 따라서 매스컴은 이토 유지 조교사에게 집중됐다. “충분히 조교했다. 80%는 완성된 것으로 본다. 지난번 삿포로에서 진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표를 정해 이길 경주에 승부해야 한다. 이번엔 한발한발 중요하게 풀어나갈 것이다.”지난번 경주에선 ‘안갔다’는 얘기다. 이런 얘기를 함부로 해도 괜찮은 것이다. 대상경주를 앞두고 전력을 아껴두기 위해 한 게임 버리는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를 대놓고 얘기했다가는 경마팬들의 비난을 면키 어려운 우리의 현실과는 판이하다.이토 조교사는 또 이런 말도 했다. “기승정지 처분을 받아 이번에 출전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당시 처벌을 받으리라고 생각지 않았다. 이의신청을 하려 했으나 주변의 만류로 참았지만 처벌을 받을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기자들 앞에서, 방송 마이크와 카메라 앞에서 재결 불만을 거침없이 털어놓은 것이다. 그래도 괘씸죄에 걸리지 않는 게, 언론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는 게 일본 경마의 현주소다.이토 조교사는 ‘에어그룹’에 과거 함께 출전한 경험이 있는 요코야마 기수를 태워 출전시켰으나 그와 수많은 경마팬들의 기대와 달리 아쉽게도 3위에 그치고 말았다.

이규승│스포츠조선 대기자
2006/01/03 03:23 2006/01/03 03:23

부정경마는 교수형으로 다스렸다



말의 능력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방법으로는 약물이나 약제, 기타 기계적인 방법 혹은 마체의 생리적인 기전을 이용하는 방법 등이 사용되고 있다. 그중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이 약물용법이라 할 수 있다. 경주마에 약물을 투여하는 것은 경마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약물검사를 영어로 도핑(Doping)이라고 하는데, 이는 말의 약물검사에서 유래되었다.

그것이 오늘날 운동선수나 경주마 혹은 개경주의 약물검사를 실시한다는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영국에서 근대경마가 처음 열릴 무렵에는 흥분제라든가 진정제보다는 우수한 말을 없애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흥분제로서 가장 널리 사용된 것은 출주할 말에게 위스키나 포도주를 마시게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는 마주들이 자기말이 우승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였고, 내기가 발달하여 도박꾼들이 끼어들면서 양상은 달라져 갔다. 인기가 있는 말이거나 배당률이 크게 오른 말이 출주할 때 이 말을 사전에 죽이거나 혹은 설사약 따위를 먹여서 능력을 떨어뜨리게 된 것이다.

그들이 인기마를 없애는 이유는 복병마를 맞히기 위함이었다. 이때는 대개 정보수집가들이 부정을 저지르며, 마주들도 이들과 같이 합세해서 자기말이 출주할 때 배당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장난을 치기도 하였다. 당시는 오늘날과 같이 토털라이제이터에 의한 베팅이 아니고 몇몇의 북메이커에 의하거나 직접 당사자들끼리의 내기였기에 오늘날보다도 심한 부정이 있었다.

영국의 경마 발전과정에서 빚어진 약물과 관련된 사건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772년 5월 ‘로즈버드’(Rosebud)라는 말이 요크경마장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었을 무렵 여러 명의 악한이 ‘로즈버드’ 마굿간에 침입하여 그 말에게 강제로 독약을 먹여 죽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그해 9월에는 스카보로에서 여러 명의 악당이 출주예정일 전날 밤에 토스폿에 있는 마사에 침입하여 말에게 설사약을 먹였다는 기록도 있다.

1778년 ‘미스나이팅게일’(Miss Nightingale)이라는 말이 경마에 출주하기 전 일요일에 죽었는데, 부검을 한 결과 이 말의 배 속에는 오트볼처럼 생긴 둥근 오리 사냥용 탄환이 2파운드나 들어 있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또한 조지4세가 황태자로 있을 때 그의 조교사 카스본(Casborne)은 귀족들의 마사에 침입하여 성적이 우수한 출주예정마에게 아편 따위의 환약을 먹이는 일당들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이같은 나쁜 짓은 수년간이나 계속되었다고 황태자의 전속기수였던 샘 치프니(Sam Chifney)가 증언하기도 하였다.

치프니 역시 황태자와 짜고 부정경마를 저질렀다. 돈 카스터의 어느 마사에서 사료통에 비소가 들어 있었으며, 뉴마켓에서도 비소가 든 사료를 먹고 두 마리가 죽었다. 가장 큰 사건은 1811년경에 뉴마켓의 리처드 프린스의 마굿간에 악당들이 침입하여 사료통에 비소를 넣어 폴리 경과 메리시대령의 말 4두가 죽었다. 곧 관련자들이 정보꾼들을 상대로 범인색출에 나서게 되었고, 가이스병원에서 약제사로 일했던 경력이 있는 세실 비숍이라는 자가 용의선상에 올랐다.

그를 추궁한 결과 자기는 공범이며 주범은 정보꾼으로 알려진 대니얼 도손(Daniel Dawson)이라고 자백을 하였다. 도손은 혈색이 붉고 키가 작은 사내로 항상 파이프를 물고 위스키를 마시며 밤을 새우는 사교가로 알려져 있었는데, 도손의 주변에는 직업적인 도박꾼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그후 도손은 케임브리지 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고 1812년 8월8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영국에서 부정이 가장 많이 발생한 시기가 1830~ 1950년 사이라고 한다. 존 켄트 조교사가 1848년 더비에 출전하기 위하여 자신의 말인 ‘서플라이스’(Surplice)를 이끌고 엡섬에 갔을 때, 이 말의 내기금액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이 말의 사료를 줄 때 상당히 신경을 써야 했다고 한다.

엄청나게 내기가 걸린 말을 제거하면 큰 돈을 벌 수가 있기에 도박꾼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을 해하려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해당말의 관리원까지도 매수하여 일을 저지르곤 했다. 조지4세에게 황태자 시절에 경마관여금지처분을 내린 찰스 번버리(Charles Bunbury)가 1821년에 죽은 후에는 경마계를 이끌 뚜렷한 사람이 없었다. 그후 1840년경에 얻은 인물이 조지 벤팅크경(Lord George Bentinck)이었다.

벤팅크경은 독재자 같은 인물이었다. 그의 종형제이면서 경마평론가인 찰스 그레빌이 기록한 바에 의하면 “용이주도하였던 그 시대 최고의 악당들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의 악행을 자신이 저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어쨌든 그는 그 시대 경마를 주관하면서 부정과 일대 투쟁을 전개하였고, 벤팅크 다음에 등장하는 라우스(Rous)제독도 부정과는 타협을 할 줄 몰랐으며, 그 결과 도박꾼이 사라지면서 부정경마는 한풀 꺾이게 되었다.

약물의 남용과 검출방법의 발견

19세기 말에는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경마가 다시 영국으로 되돌아 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미국인 기수와 조교사, 그리고 마주가 영국으로 이동하였다. 이 결과 영국에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중 하나가 약물에 의한 부정경마였다. 문제의 인물은 미국인으로서 영국에 온 위사드(Wishard)였다. 그는 레스터(Rester)형제를 기수로 데리고 왔는데, 시카고에서 호텔경영을 하는 존 드레이크와 직업적인 도박사로 알려진 존 게이트 등이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었다.

위사드는 격이 낮은 프레이트 출주마를 구입한 뒤 훈련을 시켜서 핸디캡경주에서 우승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였다. 1900년에 위사드가 조교한 말 중에서 54두의 우승마가 나왔으며, 그는 영국에서 최다승 조교사가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위사드는 영국에서 말을 잘 조교시키는 천재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부정적인 방법은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실제 그는 항상 부정경마를 해 왔었다. 약물을 사용한 것이다. 이 사실은 당시 영국에서는 믿을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모든 것이 밝혀졌다. 그는 코카인을 사용한 것이다. 한편 오래전부터 경주마에게 출주 전에 위스키를 마시게 했는데, 요크셔에 사는 수의사 지미 딘(Jimmy Dean)이 요크셔의 조교사들을 위해 ‘스피드를 내는 탄환(Speedy Balls)’ 이라는 약을 만들었다. 그러나 위사드는 미국 화학자들이 빛을 본 시대라고 했다.

즉, 영국의 ‘스피드를 내는 탄환’보다는 자기가 사용한 약이 더 효과적이라고 암시한 것이다. 아무튼 영국 경마계는 심각한 충격에 빠져들었다. 영국의 재결위원인 조지 램브턴과 자키클럽의 이사인 더람경은 약물의 효과를 직접 실험해서 약물투여가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을 실증하려고 했다. 그들은 능력이 좋지 않은 말에게 흥분제를 투여해서 경주에 우승했고, 이를 영국의 자키클럽 이사들에게 알렸다.

그래서 1903년에 경주마의 약물투여는 금지되었다. 미국인들이 실시하였던 약물투여는 영국에 이어 프랑스에서도 금지되었으나 제재방법이 없었다. 또한 이때 프랑스에도 많은 미국인들이 진출

하였기에 프랑스의 조교사들은 미국인들에게 완패를 당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약물을 사용하였다. 1911년 오스트리아 경마당국은 많은 경주마들이 약물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경주마에 투여하는 극히 적은 양의 약물을 검출하기 위하여 빈 대학의 화학자 프랜켈(Frankel)을 고용하게 된다.

그들이 고안한 방법은 약물이 투여되지 않은 정상적인 말의 타액(입속의 침)에는 약물이 함유돼 있지 않을 것이라는 데 기초를 두었으며, 대부분의 약물은 투여 후에 타액으로부터 검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실험의 결과로 경마당국은 약물의 사용증거를 제시하게 되었다. 그후 프랜켈 교수는 연구의 결과를 직접 적용하였는데, 약물투약 위반으로 면허를 정지당한 조교사는 자기자신을 방어할 목적으로 독일의 화학자를 고용하였다.

그 독일의 화학자는 정상적인 말의 타액에서도 일반적으로 어느 정도의 약물이 검출된다고 보고함으로써 프랜켈 교수의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학문적인 싸움은 1년간 계속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과학자 7명이 프랜켈의 방법이 정당한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동원되었다. 독일과 프랑스의 일부 학자도 가담하였다.

그들은 연구를 독일의 과학자가 발표한, 즉 프랜켈의 방법이 틀렸다고 보고한 그 논문이 잘못되었음을 밝혀냈다. 그는 면허정지를 당한 조교사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받고 거짓연구를 하였던 것이다. 조교사의 면허정지는 당연한 것이었고, 프랜켈의 방법은 프랑스나 영국으로 퍼져 나갔다. 1912년 버본 로즈(Burbon Rose)라는 말이 메이슨래핏 경마의 골드컵경주에서 우승하면서 검사를 받았는데 처음으로 양성반응이 나와 실격으로 처리되었다.

미국은 약물남용의 천국이라 할 정도로 많는 말들에게 약물이 투여됐다. 그러나 실제로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미국에서 제도적으로 약물투여를 금지하기 이전에는 마약을 포함하여 말의 능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약물이 널리 이용되었다.

이시영/경마평론가
2006/01/03 03:19 2006/01/03 03:19

영원한 퇴출대상 ‘부정경마’



부정경마는 우리 경마가 뿌리뽑아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로 공감되면서도 항상 우리 주변을 악령처럼 떠돌며 되살아나곤 한다. 그러나 ‘부정경마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척결의지가 있다면 반드시 근절시킬 수 있다는 것이 20년 넘게 경마일선에 종사하며 피부로 느껴온 필자의 생각이다. 부정경마의 유형을 쉽게 정리한 필자의 글을 통해 경마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정확하게 부정경마의 실체를 인식하고 대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며 글을 연재한다.


금년들어서 경마와 관련해서는 조용히 넘어 갈 것 같은 예감이 완전히 빗나갔다. 올해 초 새 정부의 개혁의지에 걸맞게 경마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정신을 차렸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졌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완전히 물거품이 되었다. 1년에 한건 있을까 말까 하는 사전약물검사에서 양성이 두번째 발견되었고, 기수가 기승전에 미리 고객과 약속한 신호에 따라 말의 정보를 알려준 것이 들통이 나서 고객 몇 사람과 기수가 구속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경마에서 부정이라는 종류는 모두 나왔던 한 해라고 해도 될 것이다.


경주마의 약물투여는 경주 10일이전부터 경주 직전까지 이루어지지만 기수가 고객과 짜고 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연결고리가 있어야 하기에 금년 들어 발생했다고 하기보다는 금년에 알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조교사 두 사람이 자살을 하고 많은 조교사와 기수들이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을 때, 일부 신문에서는 기수의 95%가 고객과 부정적인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해 가을에 많은 경마 관련단체들이 부정경마 추방결의대회를 갖기도 했는데, 그 시점에 또다시 일부 기수가 부정적인 모의를 하다가 들통이 나기도 하였다.

부정경마가 저질러 지는 방법

경마는 돈이 걸린 경기이므로 부정한 사람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부정한 돈을 구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경기를 시행하는 시행체나 관련자들은 모두가 이 부정경마를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경마에서 부정이 저질러지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말의 능력을 가감할 수 있는 약품이나 약제 혹은 물품을 사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수가 말의 능력을 조절토록 하는 것이다. 또, 우리들이 흔히 부정경마라고 하면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레이스 자체를 조작하려는 것이다. 즉 말이 가진 원래의 능력대로 혹은 기수가 가진 원래의 기술대로 기승하는 것이 아니고,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말의 능력을 은폐하거나 향상시키든지, 의도적으로 기승기술을 은폐하거나 타기수를 방해해서 타기수가 기승기술을 발휘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는 경주마에 약물을 투여하거나, 의도적인 부담중량의 증감 혹은 타마를 방해하거나, 경주중 기수의 이상한 행동으로 말의 능력에 영향을 미치게 하거나, 각종 장구를 교묘히 이용하여 말의 능력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방법들이 사용될 것이다.


둘째로는 우리사회에서 가장 많이 들어온 ‘정보경마’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수는 공정하게 경마를 진행하면서 자기가 아는 말의 능력이나 자기가 아는 레이스 전 행동에 대해서 혹은 자기의 작전 등을 아는 사람에게 알려서 베팅하는데 참고토록 하는 것이다. 엄격히 이야기해서 승부를 조작하는 것이 아니니까 부정경마와는 유형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것도 부정경마라고 하는 것은 기수가 단순히 말의 능력이나 컨디션을 알려준 것이 아니라 재결위원이 모르게 어떤 행위를 함께 했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올해 검찰에 구속된 사건도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 사실 우리 경마에서 기수가 부정한 방법을 사용한 예는 많다. 재결위원의 제재결과를 보면 상당히 많은 기수가 무성의 기승이나 기승법부적절이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기승정지를 당하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말의 능력을 의도적으로 은폐시켰다는 간접적인 자료이기도 하다.


세째는 공정하지 못한 경마를 한 것이다. 의도적이 아니더라도 타마를 방해한다든가, 사행으로 남을 방해하거나 혹은 사행으로 자기말의 능력에 손상을 가져 오는 경우 등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부정경마라고는 부르지 않는데, 정확한 것은 기수만이 알 것이다. 경마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부정경마에 대해서 이야기를 끄집어 내려고 하지 않는다. 웬지 말하면 덮어두려고 하는 경향도 있다. 하도 오랫동안 부정경마소리가 나오니까 이제는 창피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조교와 경주시 마체의 생리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약물투여와 기수가 말의 능력을 조종하는 것과 은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들, 즉 ‘정보경마’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부정경마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외국에서 배워 온 것이다. 경마 선진국이라는 영국, 미국, 호주 등지에서도 항상 말썽은 일어나고 있다. 즉, 우리나라에만 ‘부정경마’가 있는 것이라고 창피하게 생각할 일은 아닌 것이다.
한가지 미리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이 글이 지상을 통해 발표된다면 일부 경마관련자들이 불만스럽게 생각할지 모른다. 나도 과거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고객들 사이에서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과거 내가 현직시절에 생각했던 그 이상의 생각을 고객들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도 우리 경마계에서는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해왔지만 오히려 나보다도 더 많은 지식과 새로운 사건들에 대한 포용력과 이해력을 가지고 있다. 이제 경마에서는 쉬쉬할 것이 없다. 쉬쉬한다면 고객이나 관련자들의 의혹만 증폭시킬 뿐이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이시영/경마평론가
2006/01/03 03:14 2006/01/03 03:14

전설속의 명마‘에이원’36승으로 역대 최다승


70년대 초 25연승이라는 불멸의 기록과 죽음까지 예감했다는 이야기로 경마장에 전설로 남아있는 ‘에이원’(A1, 거세마, 호주산). 85년 본지 7~8월호에도 "대적할 상대를 못만나 恨에 묻혔다"라고 소개된 바 있는 에이원의 기록에 대해 궁금해 하는 팬들이 의외로 많아 이번에 새로 자료조사를 실시했다.

한국경마 60년사(83년, 한국마사회 발행)에서는 "‘에이원’은 69년에 도입되어 70~71년을 주름 잡았는데 특히 71년은 25전 25승 전승무패의 신화를 남겼으며..." 라고 간단히 적고 있다. 연도별 최다우승마 표에서도 ‘에이원’은 70년에 6승, 71년에 25승을 올렸다고만 기록되어 있고 72년과 73년의 기록이 소실되었기 때문에 이후의 기록은 안타깝게도 알 수가 없었다.

이번자료 조사를 통해 먼저 알게된 것은 74년 퇴사마 자료에서 찾아낸 ‘에이원’의 수의사 검안서였다. 그 검안서에는 ‘에이원’이 더러브렛 계종이며 69년 6월 4일 호주로부터 도입되어 9살이던 74년 6월 8일 죽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경마장에서 활약한 기간은 5년인 셈이다.

연도별 경마 통계자료에서는 한국경마 60년사 자료에 기록된 70년 6승, 71년 25연승 이외에 도입된 첫 해인 69년에 2승을 거둔 것과 병으로 죽었던 74년에 5전 3승 2착 1회, 3착 1회를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72년과 73년을 제외한 공식적인 ‘에이원’의 우승회수는 모두 36회가 되는 것이다.

72년과 73년 에이원의 활약상은 당시의 신문 기사(일간스포츠 73년 월 일자, 74년 월 일자)에서 알 수 있었지만 그것이 정확한 자료라고 입증할 만한 다른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공식적인 기록으로 인정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기사에 따르면 에이원은 72년에 21연승(2위는 20회 우승한 제네바), 73년에는 18전 15승(2위는 29전 13승의 제네바)로 2년 모두 최다 우승을 기록했다고 한다.

‘에이원’이 죽은 지 10여년이 흐른 85년에 김승길 조교사도 당시 에이원이 몇 번 경주에 출전했는지 기억할 수 없으나 단지 3번의 2착만 기록했을 뿐이라고 말한 것을 생각해 볼 때 에이원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많은 경주에 출전했고 우승도 많이 한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에이원’이 5년 동안 그렇게 많은 경주에 나왔고 우승을 많이한 이유는 당시의 경마 상황이 지금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에이원이 활약하던 70년대 초에는 주 3~4회 경마에 전체 경주마가 350여 마리에 지나지 않아 경주마 한 마리가 월평균 2.5회 정도 출주해 현재와 차이가 많고 당시 경주마 중에는 에이원을 당할 말이 없어 자신의 부담중량인 56kg에 무려 16kg을 더한 72kg 까지 달고 출전했고, 그래도 적수가 없자 결국 하위 등급 경주에 출전하는 애처로운 상황까지 격어야 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에이원의 연승과 다승 기록을 80년대 이후에 나타난 포경선, 대견 등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어렵지만 전설 속에 남기에는 충분한 명마임에 틀림없다.

김정구/홍보과
2006/01/03 03:12 2006/01/03 03:12

세계적인 혈통을 가진 우리 씨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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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국내 경주마 생산이 95년 제주 경주마육성목장 완공을 계기로 이제는 도약단계에 이르렀다. 특히 지난 5월17일에 제1회 ‘코리안 더비’가 개최됨으로써 1922년 일본인들에 의해 도입된 한국경마에 일대 획을 긋게 됐다.

우리가 피땀흘려 생산한 우리의 말(馬)로 뜻깊은 ‘더비경주’를 하게되었다는 마음 뿌뜻함을 고객, 마주, 조교사 및 시행체 직원 등 경마관계자 모두가 느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고객들이 국내산 경주마의 혈통에 관하여 많은 관심을 갖게됐다. 이에 간략하게나마 우리회가 보유하고 있는 씨수말의 혈통에 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 씨수말의 시조는 ‘킹스뷰우’와‘밥타이즈’

서러브레드는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순혈종(Thoroughbred) 즉 순수하게 개량된 것(Thorough+bred)이며 혈통이 가장 중요시되어 왔다. 약 3백년에 걸친 서러브레드 생산의 꿈은 “보다 빠른, 보다 강한, 보다 아름다운” 말을 추구하는 데 있고, 그 결과 오늘날 사람들의 머리속에 이상적인 서러브레드 모습을 그리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경마는 ‘혈통경주’인 것이다. 그러나 국내경마 여건은 여러가지 한국적인 특수성 때문에 혈통에 관하여 다소 관심이 덜 하였다. ‘혈통’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87년 호주에서 씨수말 ‘킹스뷰우’와 ‘밥타이즈’를 도입할 때부터다.

이후 97년까지 총 23두를 도입하여 1두가 도태되고, 현재는 22두가 제주 경주마육성목장과 원당목장에서 씨수말로 활동하고 있다. 이 씨수말들은 98년 중에 국제적으로 공인받을 예정인 한국혈통서(Korean Stud Book)의 근간마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최대 보유혈통은 ‘노던댄스’계

우리회가 보유하고 있는 씨수말의 혈통분포는 현대의 서러브레드 주요 혈통계열인 ‘노던댄서’계가 씨수말 22두 중 10두로 45.4%를 차지하고, 뒤이어 ‘네이티브댄서’계가 4두로 18.1%, ‘턴투’계가 3두로 13.6%, ‘나스룰라’계가 2두로 9.1% 차지하고 있다.

그외에 영세 혈통인 ‘튜어빌론’계, ‘워레릭’계 및 ‘팔라리스’계가 각각 1두로 세계적인 혈통분포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노던댄서’계가 다소 많은 편이다.매년 경마 선진국의 주요 경마잡지사에서는 씨수말의 능력을 후대 경주마 수득상금으로 집계하여 우수 씨수말 서열(Leading Sire)을 발표하고 있다.

97년도 경마선진국의 우수 씨수말 서열 25위까지의 혈통분포를 분석하여 보면 ‘노던댄서’계가 영국의 경우 64%, 프랑스 56%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에 미국은 32%, 일본 24%, 호주는 16%를 차지해 유럽국가는 우리와 같이 ‘노던댄서’계가 다수 분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소수의 씨수말을 보유하고 있고 경주마 생산이 초기단계인 만큼 국내에는 없는 ‘테디’계나 ‘세인트시몬’계 등 경마 선진국에서 유행하는 다양한 혈통으로 보완해야하겠다.

‘킹스뷰우’가 역대 상금랭킹 1위

국내 경마체계가 외국산마와 국내산마로 이원화되어 있어 우리나라에서 씨수말 서열을 정하기는 다소 무리가 있다. 올해들어 5월말까지 서울경마장에서 출주한 경주마를 놓고 볼때 외국산마 1천2백82두의 아비말이 6백51두, 국내산마 2백27두의 아비말 24두 등 총 6백75두이며 후대경주마의 총 수득상금을 기준으로 할 때 서열 1위는 87년에 도입한 ‘킹스뷰우’로 22두가 경주에 출주하여 2억3천5백39만4천원을 벌어들였다.

‘킹스뷰우’의 부마 ‘서트리스트람’은 82년부터 9년간 호주 씨수말 서열 1위에 랭크되었고 91년 이후에는 후계 씨수말인 ‘자빌’, ‘카아프 스타드’ 등이 씨수말 서열 상위에 언제나 위치하고 있다. 87년에 씨수말 2두를 호주에서 도입한 이후로 10년이 지난 97년에는 미국등지에서 도입가격 측면으로도 17배 이상 비싼 우수 씨수말을 계속 도입하여 국내산 경주마를 개량하고 있다.

트리플 크라운에 출전했던 ‘랜드러쉬’

91년에 도입한 ‘랜드러쉬’는 미국의 유명한 조교사 웨인 루카스의 소유마로 자신이 직접 조교하여 90년도 미국 3관마 경주에 출전한 바 있으며 부마 ‘니진스키’는 영국 3관마로 13전 11승 2착 2회라는 탁월한 성적의 경주마였고 ‘노던댄서’를 능가하는 후대능력을 보이고 있다.

92년에 도입한 ‘프로포슈어’는 아비말이 ‘미스터 프로스펙터’로 88·89년에 두번 미국 씨수말 서열 1위에 랭크됐다. 또 79·87년에 두번 미국 2세 씨수말 서열 1위에 랭크되었고, 80년부터 수년간 미국 씨수말 서열 상위에 군림하면서 미국 서러브레드 혈통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어미말‘로브리어린다’도 GⅠ경주 1회, GⅢ경주 3회 우승마다.

미국 첫배 씨수말 서열 27위 ‘해피째즈밴드’

93년에 도입된 ‘해피째즈밴드’는 제1회 코리안더비에서 우승한 ‘우승예감’의 아비말로 96년 미국 첫배 씨수말 서열(Leading First Crop Sires) 27위에 랭크된 씨수말이다.

미국에서 매년 신규로 데뷔하는 씨수말은 5백여두로 ‘해피째즈밴드’가 첫배 씨수말 서열 27위에 랭크됐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94년도에 도입한 ‘로스트 마운틴’은 98년 미국 첫배 씨수말 서열 56위에 랭크되었고, ‘무자지프’는 90년 미국 씨수말 서열 1위마였던 ‘알리다르’의 후대마이고 85년 미국 3세마 챔피언이었던 ‘스노우치프’의 반형제마로 92년 6월11일에 미국 ‘골든게이트 필드’ 경마장에서 1천7백m를 1분41초1로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바 있다.

영국 2관마의 피를 이어받은‘싸일런트 워리어’

‘싸일런트 워리어’는 95년 도입됐다. 그의 아비말 ‘나쉬완’은 영국의 2관마로 퀸 엘리자베스 스테이크스 등 7전 6승의 성적으로 영국 역사상 최고 가격으로 신디케이트가 구성되어 씨수말로 데뷔하였다. 어미말인 ‘아이디릭’도 유럽의 챔피언 씨수말이었던 ‘레인보우 퀘스트’와 ‘워닝’의 반자매마(어미말이 같고 아비말이 다른 암말)다. ‘싸일런트 워리어’는 호주·뉴질랜드에서 다수의 GⅠ 우승마를 배출하고 있는 씨수말 ‘씨닉’의 반형제마이다.

‘타임스타’는 이탈리아 더비 우승마

98년에 도입한 ‘라시그니’는 4세 때 GⅠ경주인 ‘로츠만스 엘티디 인터내셔널 스테이크스’에서 95년 캐나다 터프경주 챔피언마였던 ‘헤이슨 투 애드’를 이기고 우승하였고, 97년 미국 브리더스컵 터프경주에서 3착했던 ‘프래그다운’을 97년 2월15일에 GⅡ 경주인 ‘걸프 스트림 파크 브리더스컵’에서 이기고 우승하면서 2천2백m를 2분11초1로 최고기록을 경신하였다.

‘라시그니’의 아비말 ‘곤웨스트’는 95년 미국 씨수말 서열 3위에 랭크되어 GⅠ경주 4승의 ‘자포닉’을 배출하는 등 탁월한 스피드 혈통이고, 어미말 ‘러브포션’은 브라질산 말로서 GⅠ경주 1회, GⅢ경주 2회 우승하였다. 현재도 프랑스에서 씨암말로 활동중이다.

‘퓨처퀘스트’는 96년 켄터키더비에서 2착했던 ‘카보니어’를 95년 9월13일에 GⅡ경주인 ‘델마 퓨 투리티’에서 이긴 바 있고, 부마인 ‘리런취’는 88년 미국 씨수말 서열 5위에 랭크된 후 지금까지 꾸준히 상위에 포진하면서 현대의 번영 혈맥이 전혀 들어 있지 않아 현대의 주류혈맥과 교배할 때 항상 이계교배가 되는 아주 귀중한 혈통이며, 어미말 ‘다리언 미스’도 GⅢ경주 우승마이다. 아울러 ‘타임스타’는 94년 이탈리아 더비 우승마이다.

모두가 국내산 경주마의 혈통에 관심을기울여야 할 때

이렇게 요즈음 도입되는 씨수말의 수준은 국제적인 수준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97년 도입한 씨수말과 함께 검수대상마였던 ‘닥터 카툰’, ‘와일드 에스케이프’ 등이 올해 미국에서 씨수말로 데뷔하여 교배료를 3천5백∼5천달러를 받고 있으니까 우리회가 보유하고 있는 씨수말의 교배료를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우수한 혈통을 가진 씨수말도 국내 경마환경에 얼마나 적응하는지 계속 후대검정을 하여 후대성적이 나쁜 것은 자연스럽게 도태시켜야 할 것이다. 서러브레드 혈통은 계속 생존하는 것보다 도태되어 가는 쪽이 엄청나게 많다. 그렇다면 어떤 혈통이 한국 경마환경에 적응하여 계속 번영할 것인가? 경마와 생산 관계자 모두가 국내산 경주마의 혈통에 관심을 갖고 말의 외모나 체격보다도 혈통위주로 경주마를 선발하고 개량해야 할 것이다.

특히 ‘씨크리테리어트’와 ‘스와프스’와 같이 1천8백m를 극복할 수 있는 스피드와 지구력을 가진 모래주로형 혈통이 국내에 정착할 수 있도록 혈통에 관한 연구개발과 계속적인 투자가 있어야겠다. 물론 어려운 국내 경제여건으로 보아 많은 외화를 들여 고가의 씨수말을 도입하는데는 다소 어려움이 있겠지만 국내산 경주마의 뿌리 씨수말로서 중요성을 감안하여 이럴 때일수록 경마산업의 개방화 추세에 대비하고 국내산 경주마의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도록 우수 혈통의 씨수말 도입은 계속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계획적으로 선발된 우수 씨수말로써 생산되고 개량된 국내산 경주마가 서울경마장을 제패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믿는다.

최귀철/목장진료팀장
2006/01/03 03:00 2006/01/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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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의 기다림,트리플 크라운은탄생할 것인가?



켄터키더비

트리플 크라운 경주(켄터키 더비,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 벨몬트 스테이크스)의 출마등록은 한번의 출마등록료 납부로 세경주 모두의 등록을 마칠 수 있다. 1998년 1월17일까지는 6백달러, 이후 3월28일까지는 6천달러의 출마등록료를 납부하면 세 경주 모두에 등록을 할 수 있다. 켄터키 더비 이후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나 벨몬트 스테이크스에 대한 개별적 출마등록도 물론 가능하다. 그러나 이 경우 추가등록료는 10만달러나 된다.

출마등록을 마치고 켄터키 더비에 출주하고자 하는 말들은 이후 참가비로 1만 5천달러, 출주료(Starting Fee)로 1만 5천달러를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 켄터키 더비는 3세마 경주로 거세마도 출주가능하고, 부담중량은 수말 및 거세마가 1백26파운드 (57.1kg) 암말이 121파운드(54.8kg)이다. 출주두수는 20두를 초과할 수 없는데, 출주대상마가 20두를 넘을 경우에는 국제경주분류표준위원회(International Cataloguing Standards Committee)가 인정하는 그레이드 스테이크스경주에서의 수득상금 순으로 출주마가 결정된다.

총 상금은 1백만달러이고, 1착은 70만달러, 2착은 17만달러, 3착은 8만5천달러, 4착은 4만5천달러를 받는다.

북미에서는 5·6월의 트리플 크라운경주를 앞두고 수많은 3세마경주가 열린다. 매년 1월 플로리다주 걸프스트림 파크의 스펙태큘러 비드(Spectacular Bid Stakes:GⅢ)를 시작으로 켄터키 더비 개최 직전의 더비 트라이얼(Derby Trial:GⅢ)에 이르기까지 수십개의 3세마 그레이드 레이스가 개최되어 트리플 크라운경주에 대비한다.

그 중 세 개의 경주가 유명한데, 모두 4월11일 개최된다. 오클론 파크의 아칸소 더비(GⅡ)와 켄터키주 키니랜드 경마장에서 개최되는 블루그래스 스테이크스(Bluegrass Stakes:GⅡ), 뉴욕 애퀴덕트 경마장에서 열리는 우드 메모리얼(Wood Memorial:GⅡ)이 그것들이다. 이외에 매년 3월 걸프스트림 파크에서 개최되는 플로리다 더비(Florida Derby:GⅠ)와 4월 캘리포니아의 산타아니타 파크에서 개최되는 산타아니타 더비(GⅠ)도 매우 중요한 3세마 경주다.

트리플 크라운 경주의 전초전이라 불리는 이들 주요 5개 경주의 결과를 보면 우선 플로리다 더비에서는 ‘케이프 타운’이, 산타아니타 더비에서는 ‘인디언 찰리’가 우승했다. 이어 아칸소 더비에서는 ‘빅토리 갤럽’이 블루그래스 스테이크스에서는 ‘핼러리 헌터’가, 우드 메모리얼에서는 ‘코로나도 퀘스트’가 우승하였다.

켄터키 더비에서의 우승은 결국 ‘리얼 콰이어트’에게 돌아갔지만, 이전 각종 경주들에서의 성적을 감안할 때 이변임에 틀림없다.

발주번호 1번마 ‘내셔널로레’는 한국인 마주 겸 조교사 조명권씨로 인해 관심을 끌었지만, 경주전 가장 우승가능성이 낮은 말로 꼽혔고 98년 3세마 경주에서 한번도 우승한 기록이 없는 미승리마(Maiden)여서 9착의 기록도 그리 나쁜 성적이라 할 수 없다.

2번마 ‘리얼 콰이어트’는 최근 북미 최고의 조교사로 부상하고 있는 보브 배퍼트의 경주마로 경마전문가 및 경마팬은 물론 조교사조차 그리 큰 기대를 걸지 않은 말이었다. 배퍼트는 ‘리얼 콰이어트’ 외에 ‘인디언 찰리’라는 말을 같이 출주시켰는데, ‘인디언 찰리’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인디언 찰리’는 경주 전까지 최고 인기마였다.

3번마 ‘핼러리 헌터’는 경주결과 4착을 하였지만, 91, 94년 켄터키 더비 우승마 조교사인 닉 지토의 경주마로 블루그래스 스테이크스에서 우승하는 등 강력한 우승 후보마 중 하나였다.

6번마 ‘닉 지토’는 작년 이클립스상 시상에서 최우수 2세 수말로 선정됐으며 동시에 연도 최우수마(Horse of the Year)에도 선정되는 등 97년에 가장 각광받는 말이었다. 97년도에 8전8승을 기록하는 등 무적의 명성을 날렸으나 98년도 들어와서 첫 패배를 당하는등 약간 부진한 상태에서 경주를 펼쳤다. 결과는 8착이었다. 사실 ‘페이버리트 트릭’의 능력에 의문을 표시하는 전문가는 많았다.

이들이 근거로 한 것은 도시지 이론(Dosage Theory)이라는 경주마 능력을 예측하는 이론이었다. 정확히 말해 도시지는 켄터키 더비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경주마의 유전적 능력을 계량화한 것인데, 대상말에게 많은 유전적 영향을 주는 아비말(Influential Sires)의 능력을 고려하여 그 말의 경주능력을 두 개의 기준(스피드와 스태미나)으로 나타낸 수치다.

예를 들어보자.
도시지의 수치는 5개의 카테고리로 나뉘는데, 이 카테고리의 점수는 스피드 능력을 나타내는 좌측점수에서 스테미나 능력을 나타내는 우측점수 순으로 나열된다. ‘12-7-9-0-0’ 이라는 수치가 있다면 이는 스피드에 마필의 능력이 치우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페이버리트 트릭’의 점수나열(Dosage Profile)은 ‘7-2-5-0-0’ 으로 스피드를 위주로 하는 단거리 경주능력에 치우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이론적 수치에 따르면 ‘페이버리트 트릭’은 스태미나를 필요로 하는 장거리 경주에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음이 드러난다. 또한 ‘페이버리트 트릭’의 도시지 지수(Dosage Index는 Dosage Profile에 의해 결정된다)는 4.60인데, 이는 스피드를 요하는 단거리경주에는 강하나 스태미나를 요구하는 중장거리 경주에는 약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1929년 이래 도시지 지수 4.0 이상의 경주마가 켄터키 더비에서 우승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것은 이 이론의 신빙성을 입증한다.

‘페이버리트 트릭’은 경마계에 있는 또하나의 징크스를 이어갔는데 이클립스상 최우수 2세마 및 브리더스컵 주브나일 우승마의 3세마 경주부진이 그것이다. 79년 ‘스펙태큘러 버드’ 이래 이클립스상 최우수 2세마의 켄터키 더비 부진은 올해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또한 지금까지 브리더스컵 주버나일 우승마가 켄터키 더비에서 우승하지 못하는 징크스도 계속 이어졌다.

7번마 ‘인디언 찰리’는 지난 4월 산타아니타 더비에서 ‘리얼 콰이어트’를 제치고 우승한 경력이 있는, 켄터키 더비 최고 인기마였다. 조교사인 보브 배퍼트도 ‘리얼 콰이어트’보다 ‘인디언 찰리’에게 훨씬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고 경마전문가들도 마찬가지였으나 결과적으로 ‘인디언 찰리’는 3착에 머무르고 말았다. 이와 관련해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79년 ‘스펙태큘러 버드’ 이래 현재까지 켄터키 더비에서 최고 인기마가 우승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켄터키 더비 경주에서 이변이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10번마 케이프 타운은 유명한 조교사 웨인 루카스(D.Wayne Lukas)의 경주마로 지난 3월 걸프스트림 파크에서 개최된 플로리다 더비에서 우승을 차지한 우승 후보마였으나 5위에 그쳤다.

12번마 ‘빅토리 갤럽’은 위에서 언급한 아칸소 더비에서뿐 아니라 지난 3월의 레벨 스테이크스(Rebel Stakes:GⅢ)에서도 우승하는 등 뛰어난 전적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많은 이들이 켄터키 더비에서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으나, 2착을 차지하는 좋은 성적을 냈다.

트리플 크라운의 공식 스폰서인 비자카드사는 트리플 크라운 우승마에게 5백만달러의 상금을 거는 등 경주에 많은 재정적 기여를 하고 있고, 동시에 98년 개최된 주요 경주의 성적을 토대로 3세마, 조교사, 기수의 성적을 점수로 환산해 발표를 한다. 이 점수에 따르면 ‘리얼 콰이어트’는 서러브레드 3세마중 7~8위에 불과하다. 반면 ‘케이프 타운’은 2위, 이번 켄터키 더비에서 13위를 차지한 ‘아택스’가 3위,' ‘핼러리 헌터’가 5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비자점수 순위(VISA Point Standings)에서 1위였던 ‘릴스 래드’나 우드메모리얼 우승마인 ‘코로나도 퀘스트’ 98년 무패의 전적으로 더비 우승을 노리던 ‘이벤트 오브 더 이어’ 등의 불참은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이다.



프리크닉스 스테이크스

메릴랜드주 핌리코 경마장에서 개최되는 프리크닉스 스테이크스도 3세마 경주이고 총 상금은 1백만달러이다. 추가 등록료는 10만달러이고 우승상금은 1착 65%, 2착 20%, 3착 10%, 4착 5%의 비율로 분배된다. 경주거리는 1과 16분의3마일(1.911m)이고, 부담중량은 켄터키 더비와 마찬가지로 수말 및 거세마는 1백26파운드,암말은 1백21파운드다.

최대 출주두수는 14두이며 출주대상 두수가 14두를 초과할 때에는 경주의 판단하에 결정되는 수득상금 순으로 출주마가 확정된다.

총 10두가 출전한 제123회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 경주는 켄터키 더비 우승마인 ‘리얼 콰이어트’의 승리로 끝났다. 이로써 78년 ‘어펌드’이래 20년 만에 12번째의 트리플 크라운 우승마를 기대할 수 있다.

올해 만약 ‘리얼 콰이어트’가 벨몬트 스테이크스까지 우승해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다면 트리플 크라운 경주의 공식 스폰서인 비자카드사로부터 5백만달러의 보너스까지 받게 된다.

우승마조교사 보브 배퍼드는 작년 실버 참으로 켄터키 더비와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를 우승한 이후 올해 다시 두 경주에서 우승함으로써 두 경주 2년 연속 우승이라는 최초의 기록을 세우게 됐다.

올해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는 사실 조금 맥빠진 경주였다. ‘헬러리 헌터’, ‘인디언 찰리’, ‘코로나도 퀘스트’, ‘페이버리트 트릭’ 등 우수마들이 대거 불참한 가운데 실시되었기 때문이다. 최고 인기마는 켄터키 더비에 이어 또다시 2착을 기록한 ‘빅토리 갤럽’이었다. 이어 ‘리얼 콰이어트’와 ‘케이프 타운’이 뒤를 이었는데 결과적으로 큰 이변이 없는 경주였다고 할 수 있다.

정태인/기획과
2006/01/03 02:52 2006/01/03 02:52

전통을 중시하는 경마 선진국/아일랜드



아일랜드에는 “최고의 경주마들이 펼치는 클래식경주만큼 아일랜드 국민을 흥분시키는 것은 없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민적 스포츠로 자리잡고 있다.
아일랜드는 특히 생산되는 경주마의 수준과 경주마 조교기술 및 기승기술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유럽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경마선진국이다. 경마와 관련하여 아일랜드의 주목할 만한 특징 중 하나는 경마시행의 제반제도가 영국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다.아일랜드산 경주마는 영국의 혈통서(General Stud Book)에 등록되고, 영국과 마찬가지로 5대 클래식 경주(1000기니, 2000기니, 더비, 옥스, 세인트레저)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모래주로의 평지 단거리 경주보다는 잔디주로의 중장거리경주 및 장애물경주를 중시하는 점 등이 그것들이다.

경마관련 단체로는 영국의 자키클럽(The Jockey Club)과 역할이 유사한 터프클럽(The Turf Club), 영국에서 영국경마협회(British Horseracing Board)와 마권세부과위원회(Horseracing Levy Board)가 수행하는 역할을 하는 아일랜드경마협회(Irish Horseracing Authority)가 있다.

아일랜드에서 가장 중요한 경마단체는 터프클럽(The Turf Club)이다. 1790년에 최초로 설립된 터프클럽은 당초 평지경주의 통할기관(Regulatory Body)이었으나, 최근 아일랜드장애물경주협회와 통합돼 현재는 평지경주와 장애물경주 모두를 관장하고 있다.


터프클럽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공정한 경마시행(Racing Integrity)이며, 이를 제외한 터프클럽의 주요한 역할과 임무를 보면 아래와 같다.
- 아일랜드 내의 마주, 조교사, 기수 등 경마관계자 및 경주마의 면허 및 등록 업무
- 출마등록 등 경마시행 관련 행정업무 수행
- 아일랜드의 모든 공식적인 경마자료 정리, 제공
- 경마일 모든 경마장에 2명의 보조재결위원(Acting Steward)을 파견하여 공정한 경마시행 보조
※ 아일랜드에서 경마장당 경마일 재결위원은 총 5명임
- 아일랜드 최대의 커러(Curragh)경마장 운영

커러경마장은 아일랜드 최대의 평지전용 경마장으로서 아일랜드의 5대 클래식 경주를 모두개최하며, 본회와 교류경주를 시행하고 있는 경마장이기도 하다.

터프클럽에서 관장하지 않는 기타의 경마시행 업무는 아일랜드경마협회(Irish Horse-racingAuthority)에서 담당한다. IHA는 1994년 경마법에 의해 설립된 경마단체로 ‘Racing Board of Ireland’의 후신이다. IHA의 역할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 전국 27개 경마장의 장내 토털리제이터 운영
- 장내 북메이커에게 부과금을 물리는 등 장내 북메이커 통제
- 경마상금 확보 등 경마관련 재정문제 통할
- 경마장간 경마일수 및 경주수 배분
- 아일랜드 서러브레드 경주마의 해외 마케팅
- 아일랜드에서 두번째로 규모가 큰 레퍼즈타운(Leopardstown) 경마장 등의 운영


터프클럽이 영국의 자키클럽과 마찬가지로 마권발매에는 전혀 관여를 하지 않기 때문에 경마장 운영과 관련된 재원조달 업무는 IHA의 몫이다. IHA는 장내 북메이커에게 부과금을 부과하고, 장내 토털리제이터를 직접 운영하며, 이에 더하여 정부지원금을 보조받아 경마상금 등 경마관련 재원을 마련한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아일랜드 내 마권매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장외 북메이커에 대해서는 IHA가 전혀 관여를 하지 못하고, 이들은 정부에 직접 세금을 납부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아일랜드에서는 경마의 과거 전통에 충실하여 장애물 경주를 평지경주만큼 중요시하는데, 1998년 기준으로 볼 때 경주수는 1,116경주 대 703경주로 오히려 장애물경주가 더 많다. 다만 상금은 49% 대 51%로 평지경주에 할당된 몫이 더 많다.총 상금규모(1998년 기준)는 원화 기준으로 232억원 가량으로, 평지경주의 경주당 평균상금은 1,700만원 정도이고 장애물경주의 경주당 평균상금은 1,000만원 정도이다. 아일랜드에서는 상업적 스폰서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어 총 상금재원의 23%를 스폰서가 지원하고 있으며, 마주들이 스테이크스머니 형태로 부담하는 상금비율이 35% 정도에 달한다. 연 관람객 규모는 120만명 정도이고, 마권매출액은 장외 북메이커 7,300억원, 장내 북메이커 1,260억원,장내 토털리제이터 335억원 정도로 이들을 다 합할 경우 9,000억원 정도 된다.

아일랜드가 경마 선진국이라는 사실은 경주마 생산 및 아일랜드산 경주마의 우수한 경주성적에서도 발견된다. 아일랜드에서는 매년 씨수말 380여두, 씨암말 1만3,000여 두가 7,500두 이상의 서러브레드 경주마를 생산하여 세계 35개국 이상에 수출하고 있다. 생산두수를 따질때 세계 5∼7위 수준으로 국토면적이나 인구수를 감안하면 상당히 큰 규모임을 알 수 있다.
평지경주에서 아일랜드산 경주마의 우수성은 매년 발표되는 평지경주 국제 프리핸디캡(International Class-ification)에서 알 수 있다. 올해 발표된 국제프리핸디캡 자료에 의하면 4세 이상 경주마 순위에서 아일랜드 산 5세 수말 ‘데이라미(Daylami)’가 135파운드로 1위에 올랐다. 3세마 순위에서도 아일랜드산 ‘몽주(Montjeu)’가 135파운드로 1위에, ‘센다워(Sendawar)’가 127파운드로 공동 2위에 올라 있다.

평지경주에서 아일랜드산 경주마의 활약도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장애물경주에서 아일랜드산 경주마는 단연 세계제일이다. 세계최고의 장애물 경주 시행국인 영국에서 그레이드급 이상 장애물경주의 80%를 아일랜드 경주마가 우승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준다.
이상에서 살펴본 아일랜드의 경마를 간단히 요약해 보자면 ▲경마가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나 국민들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경마가 중요한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고 있고 ▲경주마의 생산·육성이 발달되어 있는, 전통을 중시하는 경마선진국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태인 / 대외협력팀 대리
2006/01/03 02:40 2006/01/03 02:40

RankHorseYearSexSireDamOwner
1Man o' War1917cFair PlayMahubahSamuel D. Riddle
2Secretariat1970cBold RulerSomethingroyalMeadow Stable
3Citation1945cBull LeaHydroplane IICalumet Farm
4Kelso1957gYour HostMaid of FlightBohemia Stable
5Count Fleet1940cReigh CountQuicklyMrs. John D. Hertz
6Dr. Fager1964cRough n TumbleAspidistraTartan Stable
7Native Dancer1950cPolynesianGeishaAlfred G. Vanderbilt
8Forego1970gForliLady GolcondaLazy F Ranch
9Seattle Slew1974cBold ReasoningMy CharmerTayhill Stable
10Spectacular Bid1976cBold BidderSpectacularHawksworth Farm
11Tom Fool1949cMenowGagaGreentree Stable
12Affirmed1975cExclusive NativeWon't Tell YouLouis Wolfson
13War Admiral1934cMan o' WarBrushupGlen Riddle Farm
14Buckpasser1963cTom FoolBusandaOgden Phipps
15Colin1905cCommandoPastorellaJames R. Keene
16Damascus1964cSword DancerKeralaMrs. Thomas Bancroft
17Round Table1954cPrincequilloKnight's DaughterA.B. Hancock Jr. and Travis M. Kerr
18Cigar1990cPalace MusicSolar SlewAllen E. Paulson
19Bold Ruler1954cNasrullahMiss DiscoWheatley Stable
20Swaps1952cKhaledIron RewardRex C. Ellsworth
21Equipoise1928cPennant IISwingingC.V. Whitney
22Phar Lap (NZ)1926gNight RaidEntreatyDavid J. Davis and H.R. Telford
23John Henry1975gOle Bob BowersOnce DoubleDotsam Stable
24Nashua1952cNasrullahSegulaBelair Stud and Leslie Combs II syndicate
25Seabiscuit1933cHard TackSwing OnWheatley Stable and Charles S. Howard
26Whirlaway1938cBlenheim IIDustwhirlCalumet Farm
27Alydar1975cRaise a NativeSweet ToothCalumet Farm
28Gallant Fox1927cSir Gallahad IIIMargueriteBelair Stud
29Exterminator1915gMcGeeFair EmpressJ. Cal Milam and Willis Sharpe Kilmer
30Sysonby1902cMeltonOptimeJames R. Keene
31Sunday Silence1986cHaloWishing WellDr. E. Gaillard, A. Hancock and C. Whittingham
32Skip Away1993cSkip TrialIngot WayCarolyn Hine
33Assault1943cBold VentureIgualRobert J. Kleberg Jr.
34Easy Goer1986cAlydarRelaxingOgden Phipps
35Ruffian1972fReviewerShenanigansLocust Hill Farm
36Gallant Man1954cMigoliMajidehRalph Lowe
37Discovery1931cDisplayAriadneAdolphe Pons and Alfred G. Vanderbilt
38Challedon1936cChallenger IILaura GalWilliam L. Brann
39Armed1941gBull LeaArmfulCalumet Farm
40Busher1942fWar AdmiralBaby LeagueCol. E.R. Bradley and L.B. Mayer
41Stymie1941cEquestrianStop WatchKing Ranch and Ethel D. Jacobs
42Alysheba1984cAlydarBel ShebaDorothy and Pamela Scharbauer
43Northern Dancer1961cNearcticNatalmaE.P. Taylor
44Ack Ack1966cBattle JoinedFast TurnForked Lightening Ranch
45Gallorette1942fChallenger IIGalletteWilliam L. Brann
46Majestic Prince1966cRaise a NativeGay HostessFrank M. McMahon
47Coaltown1945cBull LeaEasy LassCalumet Farm
48Personal Ensign1984fPrivate AccountGrecian BannerOgden Phipps
49Sir Barton1916cStar ShootLady SterlingJohn E. Madden and Cmdr. J.K.L. Ross
50Dahlia1970fVaguely NobleCharming AlibiNelson Bunker Hunt
51Susan's Girl1969fQuadrangleQuazeFred W. Hooper Jr
52Twenty Grand1928cSt. GermansBonusGreentree Stable
53Sword Dancer1956cSunglowHighland FlingBrookemeade Stable
54Grey Lag1918cStar ShootMiss MinnieMax Hirsch and Harry F. Sinclair
55Devil Diver1939cSt. GermansDabchickGreentree Stable
56Zev1920cThe FinnMiss KearneyRancocas Stable
57Riva Ridge1969cFirst LandingIberiaMeadow Stable
58Slew o' Gold1980cSeattle SlewAlluvialEquusequity Stable
59Twilight Tear1941fBull LeaLady LarkCalumet Farm
60Native Diver1959gImbrosFleet DiverMr. and Mrs. L.K. Shapiro
61Omaha1932cGallant FoxFlambinoBelair Stud
62Cicada1959fBryan G.SatsumaChristopher T. Chenery
63Silver Charm1994cSilver BuckBonnie's PokerRobert and Beverly Lewis
64Holy Bull1991cGreat AboveSharon BrownWarren A. Croll Jr.
65Alsab1939cGood GoodsWinds ChantMrs. Albert Sabath
66Top Flight1929fDis DoncFlyatitC.V. Whitney
67Arts and Letters1966cRibotAll BeautifulPaul Mellon
68All Along (Fr)1979fTargowiceAgujitaDaniel Wildenstein
69Noor1945cNasrullahQueen of BaghdadCharles S. Howard (estate)
70Shuvee1966fNashuaLeveeMrs. Whitney Stone
71Regret1912fBroomstickJersey LightningHarry Payne Whitney
72Go for Wand1987fDeputy MinisterObeahChristiana Stables
73Johnstown1936cJamestownLa FranceBelair Stable
74Bald Eagle1955cNasrullahSiamaHarry F. Guggenheim
75Hill Prince1947cPrincequilloHildeneChristopher T. Chenery
76Lady's Secret1982fSecretariatGreat Lady M.Mr. and Mrs. Eugene V. Klein
77Two Lea1946fBull LeaTwo BobCalumet Farm
78Eight Thirty1936cPilateDinner TimeGeorge D. Widener
79Gallant Bloom1966fGallant ManMultifloraRobert J. Kleberg Jr.
80Ta Wee1966fIntentionallyAspidistraTartan Stable
81Affectionately1960fSwapsSearchingEthel D. Jacobs
82Miesque1984fNureyevPasadobleFlaxman Holdings
83Carry Back1958cSaggyJoppyMrs. Jack Price
84Bimelech1937cBlack ToneyLa TroienneCol. E.R. Bradley
85Lure1989cDanzigEndearClaiborne Farm and Nicole P. Gorman
86Fort Marcy1964gAmerigoKey BridgeRokeby Stable
87Gamely1964fBold RulerGambettaWilliam Haggin Perry
88Old Rosebud1911gUncleIvory BellsCol. Hamilton, C. Applegate, and Frank D. Weir
89Bewitch1945fBull LeaPotheenCalumet Farm
90Davona Dale1976fBest TurnRoyal EntranceCalumet Farm
91Genuine Risk1977fExclusive NativeVirtuousDiana Firestone
92Sarazen1921gHigh TimeRush BoxCol. Phil T. Chinn and Fair Stable
93Sun Beau1925cSun BriarBeautiful LadyW.S. Kilmer
94Artful1902fHamburgMartha IIHarry Payne Whitney
95Bayakoa (Arg)1984fConsultant's BidArluceaMr. and Mrs. Frank Whitham
96Exceller1973cVaguely NobleToo BaldBelair Stud and Nelson Bunker Hunt
97Foolish Pleasure1972cWhat a PleasureFool-Me-NotJohn L. Greer
98Beldame1901fOctagonBella DonnaAugust Belmont II;lessee, Newton Bennington
99Roamer1911gKnight ErrantRose Tree IIWoodford Clay and Andrew Miller
100Blue Larkspur1926cBlack ServantBlossom TimeCol. E.R. Bradley

2005/12/19 15:01 2005/12/19 15:01

Wednesday, December 22, 1999
Man o'War voted best of 20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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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ociated Press

NEW YORK -- Man o'War and Secretariat, two mighty chestnut colts, ran 1-2 in the race for Horse of the Century.


Man o'War, owned by Samuel D. Riddle and trained by Louis Feustel, won nine of 10 starts as a 2-year-old, then was unbeaten in 11 starts in 1920 before being retired. His loss in 1919 was a second-place in the Sanford at Saratoga to a horse named Upset.


Man o'War was selected as the greatest horse of the century by a six-member panel of experts assembled by The Associated Press. He received four first-place votes to one for Secretariat.

Secretariat won 16 of 21 starts in two years of racing and won the Triple Crown in 1973.


"I'm really thrilled these people in racing who have seen so many good horses would rank Secretariat with Man o'War," said Penny Chenery, who raced Secretariat.


"He had the same electric presence as Man o'War. Going to see Man o'War in the first half of the century was something. Seeing Secretariat in the second half of the century was the same thing."


Citation and Native Dancer tied for third. Citation once won 16 straight races, while Native Dancer's only loss in 22 career starts was a second place in the 1953 Kentucky Derby.


The great gelding Kelso, Horse of the Year five times (1960-64), was fifth.


Rounding out the top 10 were: Tom Fool -- who received the other first-place vote -- Dr. Fager, Count Fleet, Spectacular Bid, and Forego and Seattle Slew, who tied for 10th.




Horses of both sexes were eligible for Horse of the Century, but the top 10 were all males.


As a 3-year-old, Man o'War did not start in the Kentucky Derby, but he won the Preakness and Belmont Stakes. He had only one rival in the Belmont, and he beat him by 20 lengths. His margin of victory in the Lawrence Realization at Belmont Park in 1920 was 100 lengths.


Secretariat won 16 of 21 starts in two years of racing. Trained by Lucien Laurin, he was Horse of the Year in 1972 and again in 1973 when he became the first Triple Crown champion since Citation in 1948.


His Triple Crown was an amazing three-race performance. He became the first horse to break 2 minutes in the 1¼-mile Kentucky Derby (1:59 2-5), won the Preakness with an incredible last-to-first move on the first turn, then won the Belmont by 31 lengths in a world record of 2:24 for 1½-miles on the dirt.


In a separate vote for fillies and mares, Ruffian was picked No. 1, ahead of Twilight Tear. Ruffian was the only filly or mare to get a vote in the horses of both sexes category.


"That is terrific; I'm very pleased," said Stewart Janney III, whose parents owned the filly, trained by Frank Y. Whitely. "She provided us with excitement and unfortunately a moment of great tragedy."


Ruffian, champion 3-year-old filly of 1975, never lost to a filly in her first 10 career starts, but in a match race against Kentucky Derby-winning colt Foolish Pleasure in 1975, she broke down and was euthanized.


Twilight Tear, owned by Calumet Farm and trained by Ben Jones, was champion 3-year-old filly in 1944 when she won 14 of 17 starts and beat m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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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07 18:48 2005/11/07 18:48

2005년 10월 28일 (금) 14:20   일간스포츠
모래…돛이 될까 덫이 될까

[일간스포츠 박명기 기자]

"모래 바꾼다고 설마 경주 판도가 바뀔까?"

이달 17~18일 서울경마공원 외주로에 모래 보충 공사가 대대적으로 있었다.

이에 따라 경주 판도 변화에 대한 경마팬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경주로의 상태는 경주 결과를 추리하는 데 핵심 변수 중 하나. 비가 와서 "경주로가 젖기라도 하면 선행마가 유리하다"는 말도 따지고 보면 "경주로의 상태가 경주마의 레이스 전개에 영향을 미친다"라는 가정 아래 전해오는 경마계의 통설 아닌 통설이다.

경주로의 모래는 이번이 아니어도 수시로 보충되어 왔다. 하지만 조성된 지 13년이 지나 최근 단단해지고 불량해지는 등 경주로 노화에 대한 지적이 잦아져 대대적 보수 작업을 하게 된 것. 특히 이번에 모래 보충이 이루어진 곳은 직선 홈 스트레치 구간으로 외주로 가운데 결승선 직선 주로 내측 펜스부터 12m 지점까지, 결승선 반대편 직선 주로는 내측 펜스부터 8m 지점까지다. 으깨진 모래 가루와 마사토가 혼합되어 단단해진 층을 걷어내고 새 모래를 보충했다. 투입된 모래 양도 15톤 덤프트럭으로 물경 33대 분량.

KRA 주로 환경팀은 이번 모래 보충으로 인해 완충 작용이 강화되고 배수 기능이 개선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다리.정강이.무릎 찰과상을 비롯한 부상 가능성이 낮아지고, 미끄러짐이 적어져 비오는 날 기승이 용이하므로 고참급 기수에게 유리해지는 등 많은 변화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또 경주로가 전에 비해 푹신푹신해지기 때문에 경주마의 기록도 과거 기록보다 다소 늦어지게 된다.

푹신푹신한 주로는 보통 단단한 주로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해 온 선행마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모래 보충이 결승선 부근 직선 주로에서 이루어진 만큼 경주 초반부터 전력 질주해 온 선행마들은 막판에 힘이 부족해 뒤로 밀려나고, 순발력보다는 지구력이 강한 추입마들은 오히려 유리해지는 환경이 된다. 추입마 역시 경주 막판 추입만을 노리다가는 의외로 힘을 받지 못해 그대로 후미에 머무는 일도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음이 있으면 양도 있는 법. 이번 경주로 보수 공사로 인해 막판 역전 승부가 많아지면서 경주가 더 박진감이 넘치고 의외의 결과가 속출할 가능성도 높아질 전망. 더욱이 겨울철은 원래 주로의 변화가 심하고 통계적으로도 고배당이 가장 많이 나오는 계절이어서 모래 변수가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 5년간 모든 승식에서 100배 이상의 배당이 나온 경주를 계절별로 분석한 결과 12월과 2월 사이에 999배당이 터진 경우가 가장 많았다. 월별 '999 배당'은 8월 39회, 12월 34회, 1월 31회, 2월 29회를 각각 기록, 겨울철이 상위권에 대거 포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낮은 기온과 눈보라 등의 영향으로 경주로의 변화가 심해 변수가 대폭 늘어나는 것이 그 이유다.

박명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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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8 13:44 2005/10/28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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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28일 (금) 14:20   일간스포츠
모래…돛이 될까 덫이 될까

[일간스포츠 박명기 기자]

"모래 바꾼다고 설마 경주 판도가 바뀔까?"

이달 17~18일 서울경마공원 외주로에 모래 보충 공사가 대대적으로 있었다.

이에 따라 경주 판도 변화에 대한 경마팬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경주로의 상태는 경주 결과를 추리하는 데 핵심 변수 중 하나. 비가 와서 "경주로가 젖기라도 하면 선행마가 유리하다"는 말도 따지고 보면 "경주로의 상태가 경주마의 레이스 전개에 영향을 미친다"라는 가정 아래 전해오는 경마계의 통설 아닌 통설이다.

경주로의 모래는 이번이 아니어도 수시로 보충되어 왔다. 하지만 조성된 지 13년이 지나 최근 단단해지고 불량해지는 등 경주로 노화에 대한 지적이 잦아져 대대적 보수 작업을 하게 된 것. 특히 이번에 모래 보충이 이루어진 곳은 직선 홈 스트레치 구간으로 외주로 가운데 결승선 직선 주로 내측 펜스부터 12m 지점까지, 결승선 반대편 직선 주로는 내측 펜스부터 8m 지점까지다. 으깨진 모래 가루와 마사토가 혼합되어 단단해진 층을 걷어내고 새 모래를 보충했다. 투입된 모래 양도 15톤 덤프트럭으로 물경 33대 분량.

KRA 주로 환경팀은 이번 모래 보충으로 인해 완충 작용이 강화되고 배수 기능이 개선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다리.정강이.무릎 찰과상을 비롯한 부상 가능성이 낮아지고, 미끄러짐이 적어져 비오는 날 기승이 용이하므로 고참급 기수에게 유리해지는 등 많은 변화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또 경주로가 전에 비해 푹신푹신해지기 때문에 경주마의 기록도 과거 기록보다 다소 늦어지게 된다.

푹신푹신한 주로는 보통 단단한 주로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해 온 선행마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모래 보충이 결승선 부근 직선 주로에서 이루어진 만큼 경주 초반부터 전력 질주해 온 선행마들은 막판에 힘이 부족해 뒤로 밀려나고, 순발력보다는 지구력이 강한 추입마들은 오히려 유리해지는 환경이 된다. 추입마 역시 경주 막판 추입만을 노리다가는 의외로 힘을 받지 못해 그대로 후미에 머무는 일도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음이 있으면 양도 있는 법. 이번 경주로 보수 공사로 인해 막판 역전 승부가 많아지면서 경주가 더 박진감이 넘치고 의외의 결과가 속출할 가능성도 높아질 전망. 더욱이 겨울철은 원래 주로의 변화가 심하고 통계적으로도 고배당이 가장 많이 나오는 계절이어서 모래 변수가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 5년간 모든 승식에서 100배 이상의 배당이 나온 경주를 계절별로 분석한 결과 12월과 2월 사이에 999배당이 터진 경우가 가장 많았다. 월별 '999 배당'은 8월 39회, 12월 34회, 1월 31회, 2월 29회를 각각 기록, 겨울철이 상위권에 대거 포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낮은 기온과 눈보라 등의 영향으로 경주로의 변화가 심해 변수가 대폭 늘어나는 것이 그 이유다.

박명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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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8 13:44 2005/10/28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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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ilence
1986-2002

On August 19, 2002, Sunday Silence died at his home in Hokkaido, Japan, where he stood stud at Shadai Stallion Station. He passed away due to heart failure, after a lengthy, but courageous battle with a leg infection, as well as laminitis. This web page is my tribute to this great champion, who on and off the track, proved his worth time and time again. I hope this page can serve to properly honor this horse, who was one of the reasons I became involved in the sport of thoroughbred racing.

Undoubtedly one of the top American thoroughbreds of the last twenty years, Sunday Silence was, and remains, a favorite of mine. The late 1980's marked the period in which I began my interest/love for the sport of throughbred racing. Though I had been witness to great horses before 1989 (Personal Ensign, Risen Star, and Alysheba among others), Sunday Silence was the first horse who truly captured my young attention. My first witness to his abilities came in April, 1989, when he crushed the field in the Santa Anita Derby by 11 lengths. His fluid form, and nearly black coat stood out to me, despite that I had seen Easy Goer demolish the Gotham Stakes field by the same margin, on the same day.
When May rolled around, only weeks later, it was only the second time I had seen him run. But this was the Kentucky Derby, and Sunday Silence was much the best that day. The black colt zig-zagged through the lane as he came off the far turn, seemingly distracted by the roar of 100,000-plus people at Churchill Downs. Despite this, he ran on, finishing 2 1/2 lengths in front of the much-hyped Easy Goer. This would set the stage for the most fantastic races I have had the pleasure to witness.

The Preakness came two weeks later, and yet people were not convinced by Sunday Silence's Derby win. The bettors kept Easy Goer as favorite once again, leaving the Kentucky Derby winner as second choice. This race unfolded in the early going much as it had two weeks before. The Lukas-trained Houston ran on the lead, as he had in the Derby, with Sunday Silence tracking him not far behind. As the field neared the far turn, though, there suddenly came the massive strides of Easy Goer with Pat Day, obviously wanting to get the jump on the Derby winner. Easy Goer ran by Sunday Silence, and roared onward to the lead in a sensational burst. Pat Valenzuela, aboard Sunday Silence, quickly asked his colt to move. Move he did. The Derby winner quickly gained ground, and by the time the field hit the top of the stretch, Sunday Silence had moved to even terms with Easy Goer. For the next quarter of a mile, the two were inseparable.

Sunday Silence thrust his nose out as the they came upon the wire, and captured the Preakness. Sunday Silence suddenly stood on the verge of winning racing's coveted Triple Crown, but to do so, he would have to win the Belmont Stakes, upon Easy Goer's own "home" track.
The task of beating Easy Goer at Belmont proved insurmountable even for Sunday Silence. Sunday Silence tracked Le Voyageur into the sweeping far turn at Belmont, sticking a nose in front, and raising the hopes of many for a Triple Crown. But the long-striding Easy Goer came with a rush, sweeping by both runners. This time, Sunday Silence was no match, as the son of Alydar roared to an eight length win.
Following the Triple Crown campaign, Sunday Silence and Easy Goer went seperate ways. Easy Goer stayed in New York, while SS went west. Their respective campaigns could not have been more different. Sunday Silence was raced only twice, in lower caliber races, between the Belmont Stakes and Breeders Cup. Easy Goer ran one of the more impressive fall campaigns I can ever remember seeing, winning the Whitney, Travers, Woodward, and Jockey Club Gold Cup. The question of which horse was best had surfaced yet again. The two would meet for the final time in the Breeders Cup Classic, to settle the question.
The Classic would live up to its hype, indeed. Slew City Slew went out and set the pace, with top older horse Blushing John second, and Sunday Silence just in behind those two. Pat Day kept Easy Goer well off the pace, hoping to come with his usual late run. As the field neared the far turn, Slew City Slew began to give way quickly, and Angel Cordero Jr. send Blushing John to the front. Chris McCarron (riding in place of the suspended Pat Valenzuela) sent Sunday Silence after him. Before the horses hit the final quarter mile, Sunday Silence was matching strides with him, and ran on by as they straightened out for the stretch drive. Easy Goer was still lagging behind, but Pat Day put him to a strong drive. With a furlong to go, Sunday Silence had assumed a clear lead, with Blushing John hoping for second. But Easy Goer was flying on the outside, and as they neared the wire, was closing strongly with every stride.

Sunday Silence held on by what track announcer Tom Durkin deemed "a desperate neck". He had won the Clasic in a then stakes-record for the mile-and-a-quarter Classic, 2:00.20. Having won three of four races against Easy Goer, Sunday Silence was named the 1989 Horse of the Year, as well as the Champion 3-year-old Title for the same year.The two horses would not renew their rivalry at four. Sunday Silence raced only twice in 1990, before being purchased by Japanese interests.

After his retirement, Sunday Silence stood at Shadai Stallion Station in Hayakita, Japan. From 1995 onward, he was Japan's leading sire, and proved to be a prolific and popular one. In 2001, alone, he covered 221 mares. In June, 2002, Sunday Silence began to suffer from a bacterial infection in a leg. Through three surgeries the stallion showed his champion's heart. Yet the infection proved to be too much, as laminitis would ultimately set in due to shifting his weight off the injured leg. On August 19, 2002 Sunday Silence passed away, at the age of 16.



Lineage:
Born March 25, 1986
Sire: Halo
Dam: Wishing Well

Race Record:
Lifetime- 14 Starts, 9 Wins, 5 Second, Earnings $4,968,554
Age 2: 3 Starts, 1 Win, 2 Seconds, Earnings $21,700
Age 3: 9 Starts, 7 Wins, 2 Seconds, Earnings $4,578,454
Age 4: 2 Starts, 1 Win, 1 Second, Earnings $368,400

At Two:
Maiden Race: 2nd
Maiden Race: Won (by 10 lengths)
$24,000 Allowance Race: 2nd

At Three:
$32,000 Allowance Race: Won (by 4 1/2 lengths)
San Felipe Handicap (G2): Won (by 1 3/4 lengths)
Santa Anita Derby (G1): Won (by 11 lengths)
Kentucky Derby (G1): Won (by 2 1/2 lengths)
Preakness Stakes (G1): Won (by nose)
Belmont Stakes (G1): 2nd
Swaps Stakes (G2): 2nd
Super Derby (G1): Won (by 6 lengths)
Breeders Cup Classic (G1): Won (by neck)

At Four:
Californian Stakes (G1): Won (by 1 length)
Hollywood Gold Cup (G1): 2nd

2005/09/09 01:31 2005/09/09 01:31

Man o' War came close to perfection

By Larry Schwartz
Special to ESP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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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thoroughbred racing needed a boost, Man o' War unleashed his blazing speed and came to the rescue. Though he competed for only two years, he energized a reeling sport.

There was a thickness to Man o' War that probably came from his voracious appetite.
Let's look at the world of racing that Man o' War entered in 1919: Racing in New York had been eliminated in 1911 and 1912 because of antigambling legislation led by Gov. Charles Hughes. Other states had taken up Hughes' crusade. Many stables had folded and some of the bigger ones had moved to Europe.

While racing was legalized again in 1913, World War I soon dominated the public's attention. Attendance and purses were at record lows when Man o' War made his debut on June 6, 1919.

By the time he retired 16 months later, he was a national hero, joining Babe Ruth as the first shining stars of the Roaring Twenties. The charismatic horse's popularity had brought fans back to the track.

Man o' War went to the post 21 times and won 20 races. He won one race by an incredible 100 lengths and triumphed in another carrying 138 pounds. He whipped a Triple Crown champion by seven lengths in a match race.

He brought international recognition to Kentucky breeders and made the United States the racing center of the world. When he retired, he held five American records at different distances and had earned more money than any thoroughbred.

In a mid-century Associated Press poll, he was overwhelmingly voted the greatest thoroughbred of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Not only did Man o' War perform like a superstar on the track, the chestnut-colored horse (though he was nicknamed "Big Red") looked like one. At 3, he was a strapping 16.2 hands (about 5-foot-6) and weighed about 1,125 pounds with a 72-inch girth. His appetite also was huge, as he ate 12 quarts of oats every day, or about three quarts more than the average racehorse. He ran in big bounds as well, with his stride measuring an incredible 25 to 28 feet.

Bred by August Belmont II, son of the founder of Belmont Park and for whom the Belmont Stakes was named, the future champion was foaled on March 29, 1917 at Nursery Stud near Lexington, Ky. His sire was Fair Play and his dam was Mahubah, the daughter of Rock Sand, the 1903 winner of Britain's version of the Triple Crown (the 2,000 Guineas, the Epsom Derby and the St. Leger). He was 15 generations removed from the Godolphin Arabia, one of three Arab and Barb stallions considered to be the founders of the thoroughbred line.

Originally, Belmont's wife named the horse My Man o' War, after her soldiering husband, who was stationed in France during World War I, but the "My" was later dropped.

Belmont's military involvement prompted him to sell his entire 1917 yearling crop. Sportsman Samuel Riddle, owner of the Glen Riddle Farm, was the beneficiary of this decision. Accepting the judgment of trainer Louis Feustel, Riddle purchased the rangy colt, who seemed too large for a yearling, for $5,000 at the Saratoga yearlings' sales. "As soon as I saw him, he simply bowled me over," Riddle said.

At the beginning, Man o' War's aversion to the bridle and saddle caused problems. "He's nice and he's smart, but don't ever try to force him or you'll come out second best every time," a stable boy said. "Ask him and he'll do what you want. Push him and it's all off."

Under Feustel's training, patience paid off, and the energy of Man o' War was harnessed. His debut, in a five-furlough maiden race against six other 2-year-olds at Belmont, was no contest. The fans reportedly screamed and pounded the rail as jockey Johnny Loftus tightened the reins at the stretch, slowing Man o' War to a virtual canter. But the horse still won by six lengths.

"He made half-a-dozen high-class youngsters look like $200 horses," wrote the turf editor of the New York Morning Telegraph.

Following his smashing debut, Man o' War won three stakes races, at three different New York tracks, in the next 17 days.

His winning streak was at six when Man o' War raced in the Sanford Stakes at Saratoga on Aug. 13. It is Man O' War's most remembered race -- because it is the only one he would lose.

Starting gates were not yet used, and horses were led up a tape barrier. A fill-in starter had difficulty getting the horses ready and they milled around. While Man o' War apparently was backing up, the tape was sprung. Man o' War "was almost left at the post," the Louisville Courier-Journal reported.

After a slow start, Man o' War was third as the field headed for home in the six-furlough race. Blocked by close quarters, he had to go to the outside in the final eighth. Though he gamely made up ground, he missed by a half-length of overtaking the winner, who at 115 pounds carried 15 fewer pounds than the 11-20 favorite. The winner was named, rather appropriately, Upset.

Big Red, who beat Upset in their six other meetings, finished the year with easy victories in the Hopeful and Futurity, giving him nine victories in 10 races.

In 1920, Man o' War won all 11 of his races, with Clarence Kummer aboard nine times. Big Red didn't race in the Kentucky Derby because Riddle believed that a soft-boned 3-year-old should not have to run 1¼ miles in early May. Instead, he set his sights on the Preakness (Man o' War held off an Upset charge to win) and Belmont (a 20-length victory in a two-horse field).

After winning the Travers against two horses at Saratoga, only one colt challenged Man o' War in his next race. Well, it wasn't exactly a challenge as Big Red, the 1-100 favorite, defeated Hoodwink by 100 lengths in the 1 5/8th-mile Lawrence Realization at Belmont Park.

He was 1-100 again in winning the Jockey Cup at Belmont Park, and then he was saddled with the excessively high weight of 138 pounds for the Potomac Handicap. After being a bit fractious at the post, he assumed command and won easily.

Man o' War's last race was against Sir Barton, who in 1919 had become the first to win the Kentucky Derby, Preakness and Belmont. Like most match races, it was hardly competitive. At Kenilworth Park, in Windsor, Ontario, Man o' War won the $75,000 purse and $5,000 Gold Cup by defeating the older Canadian-owned horse by seven lengths.

When Riddle was informed that Man o' War would have to carry even more than 138 pounds as a 4-year-old, he retired his horse to stud. Man o' War held American records for the fastest mile, 1 1/8 miles, 1 3/8 miles, 1½ miles and 1 5/8 miles. His total earnings were $249,465, a record at the time.

Don't feel sorry for Man o' War because he stopped racing so young. He proved to be quite a stud. In 1926, his issue won $408,137, breaking a 60-year-old record. Among his 386 registered foals were 64 stakes winners, including 1937 Triple Crown winner War Admiral, 1929 Kentucky Derby winner Clyde Van Dusen and Battleship, the winner of the 1938 Grand National Steeplechase in England.

In 1921, a Texas oil millionaire, William Waggoner, offered $500,000 for Man o' War. Riddle turned him down, as he did when Waggoner increased his offer again, first to $1 million and then a blank check. "The colt is not for sale," he said.

Although Man o' War spent most of his life in Kentucky, he never raced there. He died there, though, at the age of 30 of a heart attack on Nov. 1, 1947 in Lexington.

2005/09/09 01:16 2005/09/09 01:16

Seabiscuit: An American Leg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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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biscuit became one of thoroughbred racings greatest legends at a time when the sport needed it the most. At age 2 he had raced a record 35 times with only 5 wins to his name. He went on to race 23 more times at the age of 3, capturing 9 of these outings, before he was claimed by Charles and Marcella Howard after winning a claiming race at Saratoga. Then Seabiscuit was in the hands of his new trainer, Tom Smith, an old western cowboy who knew how to communicate with horses like no other.

Smith remembered having seen the colt race a month earlier at Suffolk Downs. He was not surprised that Seabiscuit was tired and sore after all he had done in just 2 years at the track. The horse was 200 pounds underweight with a weary temperament. He raised hell at the starting gate, intimidated the grooms, nervously paced his stall, and refused to eat. Seabiscuit was in serious need of some rest and relaxation, and a chance to form a bond with people. Tom Smith babied his new colt in hopes of Seabiscuit one day living up to his potential as the grandson of the mighty Man O?War. He put leg braces and bandages on Biscuit뭩 legs, and equipped him with blinkers for training and racing to keep his mind on business. He also gave his colt a double sized stall complete with roommates. Seabiscuit's new companions were a stray dog named Pocatell, a spider monkey known as Jo Jo, and his lifelong traveling mate, a calm horse name Pumpkin. Once Seabiscuit뭩 nerves had been calmed and his ailments had been treated, Smith decided it was time to return him to the races.

He chose Johnny Pollard to be Seabiscuit뭩 new jockey. Pollard was an ex-boxer that was blind in one eye, and at five feet, seven inches, towered over most other jocks. His career had been on the decline when he walked into Smith뭩 barn that summer of ?6. He and Seabiscuit took to each other immediately, with Pollard affectionately nicknaming him 밣ops? Between the care he received from both Smith and Pollard, Seabiscuit flourished. The once neurotic, skittish animal became easygoing and sociable. For the remainder of the year the trainer and the jockey worked with Seabiscuit by running him in small allowance races and putting him through intensive schooling. Towards the end of ?6, Seabiscuit won the Scarsdale Handicap in track record time, and then went on to win the west over by claiming victories in two major races in California, just missing two world records in the process.

1937 began Seabiscuit뭩 4 year old season at Santa Anita, where he won his first race of the year. He then went on to run in the prestigious Santa Anita Handicap against 17 other competitors. With one furlong to go in the race there was no one ahead of him. It looked like he was going to win, but neither horse nor jockey noticed the closer Rosemont, whom Seabiscuit had defeated just one month earlier, gaining on them with every stride. And then, it was too late. 멊iscuit lunged at the last second to induce a photo finish, but he had lost by a nose. Even so, the horse had started to become a celebrity. Howard began promoting his colt, and raced him on 18 tracks in 7 states and Mexico that year. He raced on both coasts, winning ten major races and tying five track records while becoming the leading money winner for 1937, and only finishing off the board once. However, he was not named Horse of the Year. That honor went to a 3 year old, the near-black, east coast based Triple Crown winner War Admiral.

Seabiscuit뭩 5 year old season started off with a bang, as just weeks before he was to run in the Santa Anita Derby for the second time, he was jockey less. Pollard had been injured in a spill and was told it would be at least a year before he could ride again. He recommended his good friend George Woolf to take over the riding duties of his beloved Seabiscuit. Woolf was the son of a bronc buster, fearless, diabetic, and one of the greatest riders thoroughbred racing has ever seen. Nicknamed 밫he Iceman? he was known to time his horses?closing stretch drives so precisely that he won on a regular basis. He made it a point to know his mounts well, as long as every one else뭩 with the same attentiveness. The 1938 Santa Anita 멌ap imposted 130 pounds upon the mighty Seabiscuit, with him giving as much as 30 pounds to his competitors. At the break, he was knocked nearly to the ground. Woolf sent him in a drive to make up the distance, and thinking he had his main rival Stagehand beat, let Seabiscuit settle. Sadly, this was not the case, as Stagehand began to close upon the bay colt. He drew even, and Woolf asked 멊iscuit for everything he had. Miraculously, his colt came back, resulting in a head-bobbing duel all the way to the wire. But this was not to be his Santa Anita 멌ap either; Stagehand had gotten in front at the finish. That same afternoon in Florida, War Admiral had gone on to win his 10th consecutive race. The public clamored for a match race between the two colts, and Belmont Park offered $100,000 for battle between the two thoroughbreds in May. Both owners accepted but a flare-up in 멊iscuit뭩 bad leg forced a cancellation, and was instead entered in the Mass 멌ap for June along with the Admiral. Minutes before the race, with the Suffolk Downs grandstand overflowing, Smith discovered his colt had again injured his leg and scratched him from the race. Once Seabiscuit healed he went on to win the Hollywood Gold Cup in California and smash the race뭩 record along the way. Afterwards, Howard brought him back east, eager to see his horse meet up with War Admiral.

By summer of ?8, Pollard began riding again. One morning, he decided to ride a horse for another trainer in a morning workout. The colt rammed Pollard through the track rail and into the side of a barn, almost severing the jockey뭩 leg. After seeing a team of doctors, the jock was told he might never walk again.

In the fall of 1938, it seemed the big match race would finally happen. Alfred Vanderbilt, the president of Pimlico Racecourse, wanted nothing more than the race to be run there. He couldn뭪 offer a large purse, but appeased to Riddle뭩 and Howard뭩 sportsmanship attitude by explaining to them how good it would be for racing. The mile and three-sixteenths Pimlico Special would be held November 1, 1938, with a winner take all purse of $15,000. Each horse would carry 120 pounds, and would break from a walk-up start instead of a gate. They were both favorites in their own way. Seabiscuit had captured the hearts of the fans, while War Admiral captured their betting money. Many predicted that the Admiral would run away with the race right off the starting line, as 멊iscuit was not known for his fast breaks. But that was about to change.

Smith trained his colt to break off in a hurry, first by fashioning a starting bell to accustom him with the noise, and then by running him with top sprinters. Seabiscuit learned to give everything he had into speeding away at the start of the race. By midday on November first, a record 40,000 spectators squeezed themselves into Pimlico뭩 tiny racetrack, pouring over into the infield. At 4 pm, War Admiral and Seabiscuit stepped out onto the track. They stepped up to the line together, and at the sound of the bell, 멊iscuit took off like a bolt of lightning. He opened up to a two length lead until the half mile pole, when the Admiral was in full stride at his shoulder. But Seabiscuit wouldn뭪 let him pass, he refused to give up his lead. He even cocked his ear towards his rival, but then, War Admiral pushed his head in front. The colt, however, was struggling, and Woolf knew the race was theirs. He pushed his little bay for just a little more, and 멊iscuit sailed to a four length lead over the younger near black horse, finishing in near world record time. This year, Seabiscuit claimed Horse of the Year honors.

In January, at the start of his 6 year old season, Howard pointed him yet again towards the elusive Santa Anita Derby. It would be Seabiscuits third try for the one race his owners so badly wanted him to win. But it would be another year before 멊iscuit could even attempt it again. As he made his closing move in a prep race, the colts longtime ailing left front tendon finally ruptured. He managed to hang on for second but all though his career would be over. He was sent to Howard뭩 ranch and for nine months wandered a paddock, became fat, and tried to race deer along the fences. Meanwhile, Pollard had endured several leg operations and was beginning to hobble on crutches. He stayed at Ridgewood Ranch with his dear racehorse Pops. Once the colt was no longer lame, Pollard began riding him to build his own strength and to ready 멊iscuit for a return to racing. By the end of ?9, he was once again a sound horse, and Howard decided to try for a comeback in 1940.

At 7 years of age, Seabiscuit was more than twice the age of some of his rivals. But his team of Howard, Smith, and Pollard believed him to be capable, even though no horse had ever returned to top form after such an injury and long layoff. Pollard was determined to ride him, and win on him, again, even though he now required a steel brace on his leg to ride. They set out to chase the Santa Anita Handicap. 밢ld Pops and I have got four good legs between us,?said Pollard. 밠aybe that뭩 enough.? Seabiscuit and Pollard received a standing ovation as they stepped onto the track for their dream chased handicap. A crowd of 70,000 had gathered to witness the 1940 Santa Anita 멌ap, and this time they would not be disappointed. 멊iscuit broke well and and settled into striking position. He was shouldered into a pocket and Pollard momentarily panicked, thinking that once again the race would be lost. But then space opened up and Seabiscuit shot through. The closer and defending champion Kayak II came up to challenge then, and 멊iscuit looked him in the eye, teased him a bit, and then swept ahead to win the handicap while running the second fastest mile and a quarter in American racing history.

Seabiscuit was finished. In six years of racing, he had competed 89 times, winning 33 of these matches, finishing on the board 61 times, (more so in his later years), set 16 track records, and equaled another. Having won $437,730 in purse money, he was worth his weight in gold to the Howards, who had purchased him for a mere $7,500. it was time to retire. Seabisciut was going home to Ridgewood Ranch. On May 17th, 1947, the great and mighty champion suffered a heart attack at only 14 years of age. He was buried on a secret site on the ranch, with only an oak sapling to mark its location.

Above biography by Raelyn Mezger



2005/09/09 01:16 2005/09/09 01:16

Posted: Tuesday, January 29, 2002

Archer City Slew, Nite Dreamer, Walkslikeaduck to stand in Korea

Graded stakes winners Archer City Slew, Nite Dreamer, and Walkslikeaduck have been purchased privately by Asian interests to stand the 2002 season on the island of Cheju in South Korea.Nite Dreamer, a four-time stakes winner in five seasons of racing, and Walkslikeaduck, who finished second to Horse of the Year Tiznow in the 2001 San Fernando Breeders' Cup Stakes (G2), were purchased by the Korean Racing Association and will stand publicly at its farm. Archer City Slew, once considered a leading prospect for the 2000 Triple Crown series, was purchased by Pegasus Stud Farm and will stand there privately.

Emmanuel and Laura de Seroux's Narvick International brokered the deals and purchase prices were not disclosed. Narvick's Richard Cross confirmed the sale of the three stallions, which were sent from the United States to Korea on December 26.

"They'll all be standing on the island of Cheju, which right now is the major area of breeding in the country," Cross said.

Archer City Slew, a Kentucky-bred five-year-old son of Slew City Slew out of the unraced Miswaki mare I'm Yours Joe, won three of 13 career starts, placed five times, and earned $193,930.

Campaigned by David and Holly Wilson, Archer City Slew won two of seven starts as a two-year-old in Northern California for trainer Vladimir Cerin. He started his three-year-old campaign with a fifth-place effort in the six-furlong San Miguel Stakes (G3) at Santa Anita Park then bounced back to win the seven-furlong San Vicente Stakes (G2).

Archer City Slew stamped himself as a classic contender with a game second-place finish behind War Chant in the one-mile San Rafael Stakes (G2). Archer City Slew finished off the board in his final two starts of 2000?running a dull seventh in the Turfway Spiral Stakes (G2) and fourth in the Lazaro Barrera Memorial Stakes at Hollywood Park.

On the sidelines for more than 15 months after the Barrera, Archer City Slew finished sixth in his final career start, the 2001 Pirate's Bounty Handicap at Del Mar.

Nite Dreamer, a seven-year-old Canadian-bred by El Prado (Ire) out of stakes winner A Dream Above, by Great Above, competed on 14 different racetracks during his lengthy career. He won five of 37 career starts with ten seconds and six thirds for $1,149,788 in earnings.

Second in the 1998 Prince of Wales Stakes in the Canadian classic series, Nite Dreamer won the '99 Prairie Meadows Cornhusker Breeders' Cup Handicap (G3) during his career for trainer Niall O'Callaghan. He also set a track record of 1:43.53 during his victory in the 2000 Sportsman's Park Breeders' Cup Handicap at 1 1/16 miles.

Walkslikeaduck, a five-year-old son of Blushing John out of Nabla, by Theatrical (Ire), was unraced at two and later became one of Southern California's leading three-year-olds on the turf.

Trained by Patrick Gallagher, Walkslikeaduck won four of his first seven starts, including the 2000 Del Mar Derby (G2) and Bay Meadows Breeders' Cup Derby (G3) to earn a start in the Breeders' Cup Mile (G1). He finished 12th in the Mile, 5 1/2 lengths behind winner War Chant, and ended the season with a fifth-place finish in the Hollywood Derby (G1) won by Brahms.

Walkslikeaduck returned to the main track for his lone start at four and finished 1 1/4 lengths behind Tiznow in the San Fernando Breeders' Cup Stakes at Santa Anita. Overall, he won four of ten starts, placed three times, and earned $418,354.?Tom Law

2002/01/29 03:23 2002/01/29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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