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영 뉴욕포커스] ‘로빈 후드 효과’와 부유세 논란/미국 롱아일랜드대 교수
필자가 대학원에서 경제학 강의를 들었을 때 읽었던 논문 중에 영국 소설 속의 전설적 영웅, 로빈 후드의 역할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한 것이 있었다(Economic Analysis of Robin Hood).
로빈 후드가 당시 노팅엄의 셜우드 숲에 살던 약자와 서민들을 돕기 위해 권력자와 부자들을 향해 일삼던 약탈행위가 역설적으로 약자와 서민들에게 득이 아닌 해를 끼쳤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로빈 후드에게 재산을 강탈당한 권력자들은 그것을 만회하려고 보다 많은 세금을 서민들에게 부과하게 되었으며 그 대가는 고스란히 로빈 후드가 도우려는 이들에게 안겨졌다.
로빈 후드는 부자들, 특히 당시의 상인들(경제인)을 상대로도 약탈행위를 일삼았다. 상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세 가지로 나타났다.
우선 약탈의 위험이 있는 곳에서의 장사를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것이었다. 식량과 생필품의 공급이 중단되자 당연히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셜우드 숲을 피해 먼 길을 우회해서 장사를 하게 되었으며, 이는 상인들의 교통, 운반비를 증가시켜 결국은 최종 소비자에게 가격상승을 안겨 주었다. 또 로빈 후드와 대항하기 위해 보다 많은 무기와 호위병들을 준비해야 했던 부분도 상품의 가격상승을 부추겼다. 이 모두가 최종 소비자들인 시민들에게 높은 경제적 부담만 안겨 주었다.
다른 면도 있다. 로빈 후드 자신의 의협심을 충족시키는 것 역시 공짜는 아니었다. 부하들의 의식주와 훈련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로빈 후드가 서민들을 도우려 약탈한 재물들 중 일부는 서민들에게 돌아갈 수 없었다. 한 마디로 노팅엄 서민들과 주변 농가 서민들의 경제적 생활환경은 로빈 후드의 등장 전보다 더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로빈 후드 효과(Robin Hood Effect)’라 한다.
이달 초 미국 뉴저지 주지사 제임스 맥그리브는 주 의회에서 ‘백만장자 세(Millionaires’ Tax)’라는 새로운 세법을 제안했다가 큰 곤욕을 치르고 있다. 뉴저지 주민들 중 연간 소득 50만달러 이상이 되는 자들에게 보다 높은 소득세를 부과하여 저소득층 주민들의 재산세 환불에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로빈 후드식의 접근과 흡사하다.
법 제안이 있자마자 이로 인해 예상되는 부작용들을 거론하며 학계와 재계를 중심으로 큰 논란이 일고 있다. 벌써부터 뉴저지주에 본사를 둔 몇몇 대기업들은 다른 주로 이사를 계획하고 있으며 신규투자를 중단한 기업도 있다고 한다. 주정부 공무원들과 국회의원들은 이에 따른 세수감소도 걱정하고 있다. 결론이 어떻게 날지 주목된다.
70여년 전 미국에서도 연방정부 차원에서 ‘부유세’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공황 전후에 심화됐던 빈부격차를 줄이고 재원을 확보하고자 부유세를 시도했다. 그러나 부자들은 더욱 소득을 숨기기 시작했고 카리브해의 면세국들에 재산을 은닉해 사실상의 탈세가 만연하었다. 결국 시행 몇 해도 못가 실패한 정책이 되었던 것이다.
기업이나 개인이 부를 늘리려면 물론 이익을 많이 창출해야 되겠지만 세금을 절약하는 것 역시 이에 못지 않은 비결이며, 미국의 많은 성공한 이들은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매년 수백만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는 뉴욕 월가의 최고경영자(CEO)들과 임원들이 세율이 높은 뉴욕을 피해 코네티컷주에 사는 이유만 봐도 그렇다.
이들을 두고 어느 누구도 비겁자라 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조세 거부자가 아니라 적법한 절세를 하는 것이며 각종 자선단체에 대한 기부에는 누구보다 앞장선다. 자신의 전재산의 90%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한 빌 게이츠에게 만일 미국 정부가 그 몫을 세금으로 내라 했으면 어떠했겠는가.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밀튼 프리드먼은 공익을 명분으로 한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증가할수록 개인의 자유는 제한되고 시장기능은 위축되어 경제의 활력은 떨어지고 성장은 저조해질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소수의 정책 결정자들에 의해 자의적으로 결정된 우선 순위에 따른 자원배분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경제는 침체의 길로 접어들고 개인의 자유는 위축된다는 것이다. 이는 어찌보면 ‘로빈 후드 효과’의 학문적 설명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현재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공약으로 내건 ‘부유세 신설’을 놓고 뜨거운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의 자본주의 역사에 있어서 한 정당이 그런 모델을 내세워 원내에 진출하게 된 것이나 서유럽 복지국가형 운동이 정식으로 정치적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라는 역사적 의미는 크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해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 네델란드, 아일랜드 등 오래 전 부유세를 시도했던 국가들에서는 득보다 실이 많다고 봐서 부유세를 폐지했다.
현재 부유세를 시행 중인 프랑스, 스웨덴, 노르웨이 등에서도 폐지나 완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폐지를 권고하고 있다. 각국이 앞다퉈 세율을 낮추고 기업과 개인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면서 국제자본을 유치하려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학문적으로나 실증적으로 입증된 경제이론이나 세계적 추세를 거스르는 것만이 ‘개혁’은 아닐 것이다.
출처 : 파이낸셜뉴스 (2004.06.09)
필자가 대학원에서 경제학 강의를 들었을 때 읽었던 논문 중에 영국 소설 속의 전설적 영웅, 로빈 후드의 역할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한 것이 있었다(Economic Analysis of Robin Hood).
로빈 후드가 당시 노팅엄의 셜우드 숲에 살던 약자와 서민들을 돕기 위해 권력자와 부자들을 향해 일삼던 약탈행위가 역설적으로 약자와 서민들에게 득이 아닌 해를 끼쳤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로빈 후드에게 재산을 강탈당한 권력자들은 그것을 만회하려고 보다 많은 세금을 서민들에게 부과하게 되었으며 그 대가는 고스란히 로빈 후드가 도우려는 이들에게 안겨졌다.
로빈 후드는 부자들, 특히 당시의 상인들(경제인)을 상대로도 약탈행위를 일삼았다. 상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세 가지로 나타났다.
우선 약탈의 위험이 있는 곳에서의 장사를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것이었다. 식량과 생필품의 공급이 중단되자 당연히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셜우드 숲을 피해 먼 길을 우회해서 장사를 하게 되었으며, 이는 상인들의 교통, 운반비를 증가시켜 결국은 최종 소비자에게 가격상승을 안겨 주었다. 또 로빈 후드와 대항하기 위해 보다 많은 무기와 호위병들을 준비해야 했던 부분도 상품의 가격상승을 부추겼다. 이 모두가 최종 소비자들인 시민들에게 높은 경제적 부담만 안겨 주었다.
다른 면도 있다. 로빈 후드 자신의 의협심을 충족시키는 것 역시 공짜는 아니었다. 부하들의 의식주와 훈련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로빈 후드가 서민들을 도우려 약탈한 재물들 중 일부는 서민들에게 돌아갈 수 없었다. 한 마디로 노팅엄 서민들과 주변 농가 서민들의 경제적 생활환경은 로빈 후드의 등장 전보다 더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로빈 후드 효과(Robin Hood Effect)’라 한다.
이달 초 미국 뉴저지 주지사 제임스 맥그리브는 주 의회에서 ‘백만장자 세(Millionaires’ Tax)’라는 새로운 세법을 제안했다가 큰 곤욕을 치르고 있다. 뉴저지 주민들 중 연간 소득 50만달러 이상이 되는 자들에게 보다 높은 소득세를 부과하여 저소득층 주민들의 재산세 환불에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로빈 후드식의 접근과 흡사하다.
법 제안이 있자마자 이로 인해 예상되는 부작용들을 거론하며 학계와 재계를 중심으로 큰 논란이 일고 있다. 벌써부터 뉴저지주에 본사를 둔 몇몇 대기업들은 다른 주로 이사를 계획하고 있으며 신규투자를 중단한 기업도 있다고 한다. 주정부 공무원들과 국회의원들은 이에 따른 세수감소도 걱정하고 있다. 결론이 어떻게 날지 주목된다.
70여년 전 미국에서도 연방정부 차원에서 ‘부유세’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공황 전후에 심화됐던 빈부격차를 줄이고 재원을 확보하고자 부유세를 시도했다. 그러나 부자들은 더욱 소득을 숨기기 시작했고 카리브해의 면세국들에 재산을 은닉해 사실상의 탈세가 만연하었다. 결국 시행 몇 해도 못가 실패한 정책이 되었던 것이다.
기업이나 개인이 부를 늘리려면 물론 이익을 많이 창출해야 되겠지만 세금을 절약하는 것 역시 이에 못지 않은 비결이며, 미국의 많은 성공한 이들은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매년 수백만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는 뉴욕 월가의 최고경영자(CEO)들과 임원들이 세율이 높은 뉴욕을 피해 코네티컷주에 사는 이유만 봐도 그렇다.
이들을 두고 어느 누구도 비겁자라 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조세 거부자가 아니라 적법한 절세를 하는 것이며 각종 자선단체에 대한 기부에는 누구보다 앞장선다. 자신의 전재산의 90%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한 빌 게이츠에게 만일 미국 정부가 그 몫을 세금으로 내라 했으면 어떠했겠는가.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밀튼 프리드먼은 공익을 명분으로 한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증가할수록 개인의 자유는 제한되고 시장기능은 위축되어 경제의 활력은 떨어지고 성장은 저조해질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소수의 정책 결정자들에 의해 자의적으로 결정된 우선 순위에 따른 자원배분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경제는 침체의 길로 접어들고 개인의 자유는 위축된다는 것이다. 이는 어찌보면 ‘로빈 후드 효과’의 학문적 설명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현재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공약으로 내건 ‘부유세 신설’을 놓고 뜨거운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의 자본주의 역사에 있어서 한 정당이 그런 모델을 내세워 원내에 진출하게 된 것이나 서유럽 복지국가형 운동이 정식으로 정치적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라는 역사적 의미는 크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해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 네델란드, 아일랜드 등 오래 전 부유세를 시도했던 국가들에서는 득보다 실이 많다고 봐서 부유세를 폐지했다.
현재 부유세를 시행 중인 프랑스, 스웨덴, 노르웨이 등에서도 폐지나 완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폐지를 권고하고 있다. 각국이 앞다퉈 세율을 낮추고 기업과 개인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면서 국제자본을 유치하려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학문적으로나 실증적으로 입증된 경제이론이나 세계적 추세를 거스르는 것만이 ‘개혁’은 아닐 것이다.
출처 : 파이낸셜뉴스 (2004.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