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 교육과 의지, 그리고 시장이 제공하는 기회를 활용할 만한 기업가적 에너지가 없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탓하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똑같이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대학 졸업장을 받은 사람이 어째서 좀도둑질이나 하고 막 산 사람과 같은 보상을 받아야 하느냐고 묻는다.
옳은 주장이다. 어떤 사람이 자라난 환경만으로 그 사람의 성취를 설명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인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주장이 옳기는 하지만 이것은 큰 그림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 인간은 진공 상태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각자 처한 사회 경제적 환경은 개인의 성취에 심각한 제약으로 작용한다. 심지어 환경은 개인이 무엇을 성취하기를 원하는지에까지도 제약을 가할 수 있다. 환경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일들은 시도해 보기도 전에 포기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영국의 노동자 계층 출신 학생들은 대학에 갈 생각도 안 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은 자기한테 안 어울리는 곳’이라는 이유에서이다. 이런 태도가 점점 없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아직도 1980년대 말에 BBC에서 본 다큐멘터리를 잊을 수가 없다. 인터뷰에 나온 광부 아버지와 어머니가 대학에 가서 교사가 된 아들을 ‘계급의 배반자’라고 비난하는 내용이 든 다큐멘터리였다.
모든 것을 사회 경제적 환경에 돌리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할리우드 영화들이 즐겨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믿고 열심히 노력하면 뭐든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 또한 말도 안 되기는 마찬가지이다. 기회의 균등은,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한테는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
그렇다, 이론적으로는 알레한드로 톨레도(Alejandro Toledo) 전 페루 대통령처럼 가난한 마을 출신 구두닦이 소년이 스탠포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따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톨레도 같은 사람이 한 명 있다면 고등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페루 어린이들은 수백만 명에 이른다. 물론 톨레도 전 대통령이 증명했듯이 노력만 하면 스탠포드도 갈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나머지 수백만 명의 페루 아이들은 하나같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게으름뱅이라고 일축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톨레도 대통령의 사례가 예외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타당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결국 부모 소득이라는 결과의 균등이 어느 정도 선까지 보장되지 않으면 가난한 사람들은 기회의 균등을 충분히 활용할 수가 없다.
ㅡ 장하준, 「기회의 균등이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pp.284~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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