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큰돈이 걸린 일이야. 자네 눈빛도 동하는군. 젊음은 돈을 필요로 하니까. 게다가… 여자에게 돈을 쓰면 늙는 것도 덜 느끼는 법이지.

ㅡ 리즈, 내 귀여운 리즈, 난 떠나! 먼저 바다로 갈 거야. 그럼 우린 알게 되겠지. 하나의 변화가 전부를 바꾼다는 걸. 끊어진 하나의 관계는 모든 관계를 끊어버릴 수 있다는 걸. 살인과 비슷해. 그리고 난 살인자야. 난 범죄현장에 총을 떨구고 온 거야. 하지만 넌 그 총에서 내 지문을 지워야만 해. 네 젊음은 이 혼란스런 불가사의함을 떠안고 가겠지. 그건 괜찮아. 난 떠나. 리즈,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지 마. 최대한 빠른 속도로 나를 잊어. 많은 남자들과 섹스를 해. 네 첫 그림이 기억나. 네가 그린 최고의 그림 중에 하나였어. “소녀가 다리를 벌리면 그녀의 비밀은 나비처럼 날아가 버린다”는 제목이었지. 하지만 피임없는 섹스는 하지마. 리즈, 다신 널 보거나 만질 수 없겠지. 인생이 내 지문을 너에게서 씻어내지 않는 한…. 날 잊어. 멋지게 살아. 사랑해, 리즈, 정말 사랑해. 영원히 그리고 결코, 안녕.

ㅡ 일은 꼭 성공해야 돼. 마크가 빚을 갚아서, 그의 두려움이 사라지도록. 그러면 그의 사랑이 다시 살아날 거야. 그 후에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수수께끼를 풀어나갈 수 있겠지. 그는 날 정말 사랑해. 너는 몰라. ㅡ 아뇨, 알아요. ㅡ 그가 내 어떤 점을 사랑하는지 알 수만 있다면… 인생이 무척 쉬울텐데.

ㅡ 안나. ㅡ 응. ㅡ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사랑을 믿나요. 순간적으로 엄습해서, 영원히 지속되는. ㅡ ….

ㅡ 우린 끔찍했어. ㅡ 얘기해 봐요. ㅡ 그는 의대생이었어. 그가 연구실에서 주사기를 가져왔지. 한번은 서로의 피를 뽑아서 마셨어. ㅡ 그만요! ㅡ 어느 여름, 단식투쟁을 한 적이 있어. 그가 처음으로 포기했고, 그에게 화가 났었지. 우린 스무 살이 되기 전에 같이 죽기로 했는데… 그 전에 깨져버렸어. ㅡ 리즈도 비슷했어요. 날 놀래켰죠. 어느날 밤… 오토바이를 타고 볼로뉴 숲을 최고 속도로 달리는데… 그녀 혼자 뛰어내렸어요. 다치진 않았지만, 죽을 수도 있었죠… 나중에 그녀가 얘기하길, 문득 내 사랑이 의심스러워져서 “만약 그가 다음 신호등에서 날 돌아보지 않는다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고, 난 뛰어내릴거야”라고 생각했데요.

ㅡ 잠깐! 끊지마요. 그래, 이제 당신을 볼 수 있어요. 이 말은 꼭 해야겠어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당신 곁을 지나간다면 난 오랫동안 세상 모든 것의 곁을 지나가게 될 거란 것. 아니, 인생을 말하는 게 아니예요. 만약 그렇다해도 난 상관치 않아. 하지만 그건 인생이 아니야, 안나. 사랑해요. 알게 될 거예요.

ㅡ 아니, 당신은 이해 못해. 그가 얼마나 다정한지. 그가 저런 건 두려움 때문이야. 그가 이성을 잃는 걸 단 한 번 본적이 있어. 서랍에서 우연찮게 연애편지를 찾아냈을 때, 3년전 편지였는데, “안나, 나의 천사”로 시작하는 편지였어. 그는 내 머리채를 잡아 끌고 계속 소리를 질렀지. “말해!, 말해!” 나는 계속 울었고. “그 편지를 줘봐요!” 결국 그는 날 놔줬고 난 편지를 읽었어. 그 편지는 스위스의 샤토데에서 그 자신이 내게 쓴 거였어. 오른손에 깁스를 하고 있어서 왼손으로 썼던 거야. 자기 필체도 못 알아본 거지. ㅡ 잘 들어요 안나, 난 그 일을 할 거예요. 그가 나에게 돈을 주겠죠. 그리고 당신은 나와 함께 떠나요. ㅡ 싫어. 마크는 내 인생의 전부야. ㅡ “내 인생의 전부”라니, 역겹네요. 서른 살이고, 광장공포증인… 당신은 “당신 인생의 전부”가 내게 뭐라고 말했는지 알아요? “내 돈 일부를 주고 안나를 떠날거야” ㅡ 지어내지 말아. ㅡ 아뇨. 들어봐요. 그가 말했어요. “안나는 날 우울하게 만들어, 그녀의 젊음은 너무 빨리 시들어가. 그녀를 볼 때면, 그녀가 이상해보여. 쓸모없어. 마치 차가운 보온병처럼 말이야.” 그가 했던 말이예요. 그가 말하길, “나는 살인자고. 그녀는 내가 범죄현장에 떨구고 온 권총이야. 내 유일한 희망은 내 지문이 씻겨나가는 것 뿐이지.” ㅡ 그만해. ㅡ 당신은 이별할 때를 알아야 해요. ㅡ 우린 항상 서로를 사랑했어. ㅡ 합선되버린 사랑이지요. ㅡ 그래, 그건 더 굳게되지. ㅡ 그건 암울한 거예요. 금고처럼 봉인되죠. 너무 늦었어요. 열쇠가 금고 안에 있을 땐 문을 열 수 없죠.

ㅡ 바다로 간 줄 알았는데. ㅡ 눈은 왜 그래? ㅡ 눈병이야. 널 믿어선 안 됐어. 넌 늘 말하곤 했지, 단 하나의 문장이 인생을 바꿔버릴 수 있는, 그런 소설들을 더 좋아한다고. 하지만 모든 일엔 댓가가 따르는 법이야. 넌 문장들을 칼처럼 던져댔어. 이젠 댓가를 치러야 해. 넌 자신의 인생을 또 다시 농락했어. 니가 읽고 또 읽은 수많은 책들이 널 끔찍할 정도로 일찍 어른으로 만들어 버렸어. 넌 정말 빨리 늙어버릴거야. 알렉스, 어느날 TV가 터지듯 너도 안쪽에서 터져버릴 거야. 리즈는 널 사랑해. 난 리즈를 사랑하고. 널 사랑했지. 하지만 오늘, 너를 보고 나 자신에게 물을 수 있는 단 한가지는, 혹시 네가 살아있을 때보다 더 혐오스런 시체가 되진 않을까 하는 거야.

ㅡ 스위스에 가면 뭐 할 거야? ㅡ 숲속을 거닐 거예요… 도로에 키스하고… 계단 하나하나에 고마워 해야지… 만약 살아 남는다면요… 그러지 못한다면 몹시 화가 날 거예요. 전 제 인생을 아무렇게나 살아왔어요. 대충한 스케치처럼… 엉망으로… 바다 한가운데서 계속 부서지는 파도처럼 해안이나 암초에도 닿지 못하는… 사는 법을 배우기엔 너무 늦었어요… 아직 내 앞에 가야할 많은 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을 되돌려 놓을…. 여자들은 항상 내게 말했죠. 복잡하게 살지 말라고… 최선을 다했지만… 단순하게 사는 건 어려웠어요…

ㅡ 리즈, 내 귀여운 리즈, 눈물을 삼켜. 다시 우는 널 보고 싶지 않아. 그게 이유지. 다 끝났어.

2011/01/01 19:44 2011/01/01 19:44
TAGS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Trackback RSS : http://www.fallight.com/rss/trackback/2112

Trackback ATOM : http://www.fallight.com/atom/trackback/2112


« Previous : 1 : ... 161 : 162 : 163 : 164 : 165 : 166 : 167 : 168 : 169 : ... 1287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