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20

2010/07/20 02:02 / My Life/Diary

이보게 형도. 나도 벌써 자네 나이가 되었네. 우리 이제 갑이니까 반말해도 상관없겠지? 뭐, 좆같으면 다시 살아나던가… 그래, 그래. 말이 없군. 사실 자네가 말을 하면 큰일나지. 내가 미친 게 되니까.

오늘 일터 옥상에 올라 밤하늘을 보았네. 정말 깊더군. 구름은 움직이면서 아무 자국도 남기지 않았네. 이해가 되질 않았지. 밤하늘이 이렇게 깊고 구름 뒤에는 아무 흔적이 없다니. 나도 모르게 슬퍼졌네. 그러자 자네의 시구들이 두서없이 여럿 떠올랐지.

형도, 자네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랬지. 그건 아마 자네가 말했듯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기 때문일걸세. 사람이란 모름지기 포기할 줄 알고, 잊을 줄 알고, 지울 줄을 알아야 하네. 이도 저도 안 되면 찢어낼 용기라도 있어야 하지. “인생은 낙장(落張)이 많은 책과 같다. 제대로 한 권이라고 쳐주기가 힘들다. 그러나 어쨌거나 한 권이 되기는 한다.” 이건 아쿠타가와의 말일세.

그래… 사실 나도 찢어낼 용기가 없기는 매한가지네. 과거를 붙드는 사람은 현재도 포기할 수 없는 거지.

분위기가 무거운데 내가 오늘 겪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지. 음… 오늘 아침 샴푸로 샤워를 했다네. 바디워셔인줄 알고 착각했지. 어쩐지 거품이 잘 안 나더구만. 재미없나? 그럼 다른 이야기를 해주지. 아침에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서 있었네. 내 앞에 몇 명 없기에 뒤쪽에 서 있었네. 기다리면서 잠시 눈을 감고 있었는데 어느 사이엔가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꽉 채웠더군. 난 한쪽 발을 디밀어보고는 그대로 밀려났지. 결국 9층을 걸어서 올라갔다네. 아니, 아직 안 끝났네. 이번엔 점심시간이야. 무료해서 담배를 피려고 옥상까지 여섯 층을 걸어 올라갔네. 왜 걸어 올라갔냐고? 단지 무료했기 때문이야. 땀까지 조금 흘려가며 올라갔지. 드디어 경치 좋은 옥상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꺼내 입에 무는데, 아ㅡ 라이타가 없더군.

자네의 허탈한 비웃음소리가 들리네. 내가 미친 모양이군. 맞네. 우리는 보들레르가 노래한 개들인지도 모르지. “내가 노래하는 것은 비참한 개들이다. 대도시의 구불구불한 협곡에서 외로이 헤매는 놈들이나, 버림받은 사나이에게 영적인 눈을 깜박이며 「나를 당신과 함께 데려가요. 우리 둘의 불행을 합쳐 어쩌면 하나의 행복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요!」라고 말하는 놈들이다.”, 샤를 보들레르,「착한 개들」

매일 아침 의자에 앉아 빵조각이나 밥알을 씹을 때면, 어느 누구와든 결혼이 하고 싶어진다네. 결혼이란 정말 하인리히 뵐이 쓴 것처럼, 일생을 같이 아침 먹을 사람을 찾는 이에게 누군가 나타나는 건지도 모르겠네. 어쩐지 조금은 이기적이란 생각도 하고 있다네. 알겠나? 나는 내일 아침이 두렵다네.

잘 만들어진 뽀르노를 한 편 봐야 잠이 올 것 같네. 자네는 심야영화관에서 홀로「뽕2」를 보다 죽고 말았지. 누군가는 킥킥거리며 웃더군. 하지만 나는 알고 있네… 자네의 그 깊은…

이보게 형도. 나는 살아야 하나 죽어야 하나?

2010/07/20 02:02 2010/07/20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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