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하느님께 올리는 편지 권정생 하느님,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 만날 저는 입으로 수없이 부르면서 막상 붓을 들고 편지를 쓰려니 무척 어렵습니다. 분명히 하느님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십니까? 커다란 부자 나라의 아버지도 되고, 조그맣고 가난한 그런 나라의 아버지도 되신단 말씀입니까? 분명히 알고 싶습니다. 생각이 다르고, 풍속이 다르고, 색깔이 다르고, 모양도 다른 그런 나라 모든 사람의 아버지가 되느냐 말씀입니다. 너무 무지무지하게 커다란 집 옆에 납작하고 누추한 조그만 집, 거기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진짜 아버지라고 하느님 자신도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이 땅 위의 사람 아버지도 애비 노릇하기가 참 힘이 든다고 합니다. 그러니 하느님 아버지도 보통 힘드는 게 아닐 것입니다. 짚신이 잘 팔리면 나막신 장수 아들이 애처롭고, 나막신이 잘 팔리면 짚신 장수 아들이 애처로운 어느 어머니처럼, 하느님 아버지도 만날 전전긍긍 불안하게 지내시겠지요. 정말 지난 일년동안 너무도 괴로운 일이 많았습니다. 새삼스러운 건 아니지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보통으로 여기게 된 그것부터가 참으로 무섭습니다. 저는 올해 새로 집을 짓고 이사를 했습니다. 빌배산이라는 얕으막한 산 밑에 공지(空地)가 있어 두 칸짜리 집을 지었습니다. 흙으로 지었기 때문에 무척 따뜻합니다. 언덕배기이고 그리고 풀밭 가운데이기 때문에, 집 둘레에 여름내 가으내 꽃들이 피었습니다. 개울가로는 달개내꽃 여뀌꽃이 피었고, 산이 있는 바위기슭엔 부채꽃과 패랭이꽃이 피었었지요. 그리고 집 앞 풀밭에는 토끼풀꽃, 쑥부쟁이꽃, 가을엔 냇가고 산기슭이고 가리지 않고 온통 들국화가 꽃밭처럼 피어났습니다. 하느님 아버지, 참으로 들꽃은 착하고 아름답습니다. 제가 이곳 빌배산 밑에 혼자 살면서 자신이 너무도 부끄럽고 불쌍한 목숨이구나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선 가장 귀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착한 것은 들에 피어나는 작은 꽃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도, 이 보잘것없는 빌배산 언덕배기를 항시 지켜보고 계실 겁니다. 거기 조그맣게 피어나는 꽃들을 보시며 하느님도 그 조그만 꽃처럼 착한 하느님이 되실 겁니다. 옛날,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시면서, 그 세우시는 과정에서, 참 많은 사람을 죽게 하신 하느님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서운 하느님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리고가 박살이 나고, 아이성 사람들이 전멸이 되고, 헷과 아모리와 가나안과 브리즈가 전멸되고, 막케다가 부서지고 라기스를 해치우고…. 그것은 너무도 엄청나고 무자비한 죽임이었습니다. 이러고 보면 하느님은 참 하느님도 아니고, 사랑의 하느님도 아니고, 폭군 하느님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 일찍부터 살고 있던 원주민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지배자로 군림했던 스페인과 영국은 참 위대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도움으로 승리하게 되었다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전쟁터마다 찾아다니시며 이기는 편에 앞장서 주셨습니다. 하느님, 이렇게 하느님은 힘센 쪽의 하느님이시고 이기는 쪽의 하느님이시니 힘없고 불품없는 이들은 너무도 가엾지 않습니까?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면서 “하느님, 하느님 나를 버리시옵니까?”하고 애절하게 부르짖던 것을 하느님도 들으셨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 모든 약한 이들은 폭력에 의해 죽어가면서 하느님께 슬프게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왜 힘없는 사람, 죄없는 사람, 착한 사람을 이렇게 죽도록 버려두느냐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신, 죽이는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모든 일은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하지요. 오히려 더 크게 잘난 척, 막되게 폭력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이래도 좋은 것입니까? 이것이 진정 하느님이 원하시는 세상입니까? 전쟁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집을 잃은 사람, 가족을 잃는 사람, 불구가 되는 사람, 가지 가지 슬픈 일은 한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심장이 얼마나 강하시기에 아무렇지 않게 보고만 계시는지요? 저희 집이 있는 건너 마을에 아주머니 한 분이 있습니다. 쉰 살이 넘었으니 곧 할머니가 되겠지요. 남편은 일찍 죽어 없지만 자식이 여섯 남매가 되는데, 모두 밖으로 나가버리고 아주머니 혼자 살고 있습니다. 뒷산 비탈을 쪼아 고추도 심고 참깨도 심으며 고되게 일합니다. 자식들에겐 조금도 도움을 받지 못하니까요. 도움은 커녕 자식들은 번갈아 아주머니에게 더 많이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자식들에게서 오는 편지는 매번 걱정거리뿐입니다. 지금 맏아들은 사우디에 나가 있습니다. 둘째도 아들이지만 리비아라는 곳에 노무자로 가 있습니다. 세째는 딸인데 일찍부터 서울 식모살이로 있다가 흑인 병사와 결혼을 해서 지금 하와이에 살고 있습니다. 네째도 딸인데 어떤 남자와 사귀어 아들까지 낳았지만 그 남자에게 버림받고 애기도 어느 아동복지 사업하는 곳에 맡겨 버렸습니다. 네째는 어머니에게 많은 돈을 빚지게 해 놓고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소식이 뜸합니다. 다섯째는 아들인데 역시 도시의 공장에 가 있습니다. 막내도 딸인데 아직까지는 착하게 살고 있다고 가끔 편지가 옵니다. 네째까지 결혼을 해서 자식들을 낳고 살지만 하나도 정식 결혼식을 올린 아들 딸이 없습니다. 아주머니는 아무렇게나 버려져 살고 있는 자식들이 가엾고 한없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아주머니는 이 모든 불행이 지난 번 한반도에 있었던 6ㆍ25 전쟁 때문이라고 합니다. 남편이 이 전쟁으로 몸을 다쳐 상이병으로 제대했고, 그래서 일찍 죽었다고 항상 말하며 한숨짓습니다. 하느님 아버지, 이 땅엔 아주머니와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많다고 뭐 더 관심 있게 보아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여쭈어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젠 제발 전쟁하는 사람들의 편은 무조건 들어주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무시무시한 미사일이니 핵폭탄이니 뭐 헤아릴 수 없는 전쟁무기가 자꾸만 쌓여가고 있지 않습니까? 요즘은 평화 유지군이란 이상한 군대도 생겼습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군대가 필요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쟁 무기가 필요하다고 한답니다. 참 뻔뻔스러워졌습니다. 누가 그랬습니다. 하느님을 사람들이 마음대로 이렇게도 만들고 저렇게도 만들고, 이리로 끌고 가고 저리로 끌고 가고, 자기들 멋대로 부려먹는다고 하더군요. 정말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줄다리기를 하듯이 하느님을 놓고 잡아당기면 아무래도 힘센 쪽으로 끌려가기 마련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요즘은 하느님 아버지가 아주 신용이 없어졌답니다. 돈장이 하느님, 권력장이 하느님, 폭력 하느님, 어떻게 보면 하느님도 신이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쓸쓸하답니다. 하느님마저 이 세상의 힘센 사람들에게 빼앗긴 가난한 사람들이 정처없이 방황하고 있으니까요. 하느님 아버지, 제발 정신 좀 차려주십시오. 지금은 깨어날 때인데, 하느님께서 도리어 정신없이 나쁜 곳에 이용만 당하시고 계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곳 빌배산에 피어나는 들꽃처럼 착한 사람이 아직도 많지 않습니까? 하느님 그러니까 저희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이 세상 끝까지, 그늘진 겨레의 한숨 소리를 들어주십시오. 아프리카의 비아프라에서의 그 참혹했던 지난 날을, 월남 전쟁으로 희생당한 사람들, 캄보디아의 난민들, 엘살바도르에서, 팔레스틴에서, 불쌍한 사람들은 한없이 한없이 울고 있습니다. 하느님, 우리 한반도의 휴전선도 하느님이 상관해 주십시오. 우리 6천만 겨레들이 이토록 한 마음으로 빌고 있습니다. 제발 제발 무시무시한 군대들을 거둬 가 주시고, 무기를 거둬 가 주시고, 그리고 나쁜 사람들의 힘을 거둬 가 주십시요. 진짜 하느님이라도 분명히 보여주십시오.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 힘없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서러운 사람들의 아버지라는 것을 드러내 보여 주십시요. 하느님 이 해가 저물어 갑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까마득한 옛날에 보내주신 외아들이신 예수님의 간곡한 기도가 꼭 이루어지게 해 주십시오. 결코 하느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버리지 않으셨고, 우리 가난한 겨레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이 빌배산 밑 외딴 집에 홀로 살고 있는 저도 즐겁게 아름다운 얘기를 쓸 수 있게 해주십시오. 여태까지 써온 슬픈 이야기가 아닌 즐거운 얘기를 쓸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느님, 힘내 주실 것을 꼭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오늘 밤부터 별을 쳐다보며 기다리겠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기를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ㅡ『권정생 이야기2』, 한걸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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