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입력시간 : 2004.08.05 19:08
[내 생각은…] 한국경제 위기론 과장되지 않았나
한 외국인이 물었다. 요즘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있느냐고. 곰곰이 생각하다 우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부터 읽는 게 좋겠다고 충고했다. 뒤엉킨 욕망과 좌절의 심층심리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한국인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각주까지 붙였다. 조금만 훈련한다면 외국인인 당신이 우리를 훨씬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추기기도 했다.
한달 동안 외유를 다녀왔다. 비행기를 14번 갈아타는 강행군이었지만 중남미 다섯 나라를 돌아보며, 우리의 입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국내의 짜증스러운 뉴스를 접하지 않아 즐거웠다. 한국 신문은 날짜만 다르지 내용은 대동소이하므로 한달 정도 걸러도 대세를 파악하는 데 전혀 지장없다는 점을 깨달은 것도 이번 여행이 남긴 소득이었다.
멕시코에 체류하는 동안 한국 지사와 상사의 30, 40대 직원들과 어울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한결같이 한국 신문의 보도 태도에 우려를 표명했다. 신문의 논조는 한국 경제가 점점 침몰하고 있다는 것인데, 왜 그렇게 위기를 과장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설사 위기가 있더라도 중지를 모아 극복해야지, 그것을 과장하고 동네방네 소문내면 상처만 악화하고, 결국 기업과 국가경제에 부담만 더 줄 뿐이라는 논지였다. 한 사람은 이런 보도가 회사채나 외평채의 가산금리만 높이고 바이어들의 발을 끊게 만드는 '자살골'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귀국길에 기내에서 얻은 파이낸셜 타임스(6월 26일자)의 한국 경제 기사도 비슷한 논조였다. 한국 신문들이 현 단계의 경제위기를 일본의 장기불황 이전과 같다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는데, 정작 신용평가 회사인 S&P의 아시아 담당이사는 전혀 근거없다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한국의 외채 신용등급을 A-로 계속 유지하겠다고 표명했다. 바클레이 캐피털의 한 연구원도 장기불황과의 비교는 "웃긴다"고 일갈했다고 이 기사는 전한다. 우리는 중환자실로 보내달라고 고함치고 있는데, 의사는 주사나 한대 맞고 쉬라는 격이었다. 한편의 코미디가 아니고 무엇이랴.
경제신문들은 한술 더 떠 '한국 경제의 중남미화'를 들먹인다. 신정부 출범 당시부터 간간이 올라오는 메뉴다. 단언컨대 이런 기사는 구체적 사실에 기초한 분석이라기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인상비평에 가까운 글들이다.
'룰라를 본받자'는 구호도 한국 언론의 단골 메뉴다. 자연스레 '메넴을 본받자' '살리나스를 본받자'는 구호를 외친 우리 신문들의 과거가 생각난다. 현재 국제금융권과 국제언론은 룰라를 극찬한다. 전임자 카르도주 대통령이 물려준 외채 원리금을 기한에 맞춰 상환하는 악역을 잘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좌파 출신이 재정지출을 줄이고 외채이자를 갚는 데 최선을 다하니 어찌 예쁘지 않겠는가. 하지만 성장의 잠재력을 배양하고,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데는 현재까지 성과가 별로 없다. '기아 제로'라는 빈민 구제 프로그램도 우유값보다 홍보비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한다는 브라질 학자의 냉소어린 비판을 들었다. 경제가 그나마 돌아가는 까닭은 중국이 대두와 철광석을 대량 구매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부터 중남미 경제를 관찰하면서 습득한 공식이 하나 있다. 대체로 집권 초기에 국제금융권과 국제언론의 찬사를 받은 정권이나 정치인들의 말로가 한결같이 비참했고 자국 경제에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는 사실이다.
멕시코의 살리나스(88~94년) 대통령은 94년의 '테킬라 위기'를 남겼고, 아직도 외국에서 방랑하고 있다. 대통령을 두번 연임한 아르헨티나의 메넴(89~99년) 대통령도 잘못된 개혁과 개방 정책으로 나라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2001년의 아르헨티나 위기는 메넴 시절에 배태된 것이었다. 뛰어난 학자였던 카르도주 대통령도 두번이나 대통령직을 연임했지만, 98년의 삼바 위기를 피해갈 수 없었다.
이성형 세종연구소 초빙연구위원
[내 생각은…] 한국경제 위기론 과장되지 않았나
한 외국인이 물었다. 요즘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있느냐고. 곰곰이 생각하다 우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부터 읽는 게 좋겠다고 충고했다. 뒤엉킨 욕망과 좌절의 심층심리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한국인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각주까지 붙였다. 조금만 훈련한다면 외국인인 당신이 우리를 훨씬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추기기도 했다.
한달 동안 외유를 다녀왔다. 비행기를 14번 갈아타는 강행군이었지만 중남미 다섯 나라를 돌아보며, 우리의 입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국내의 짜증스러운 뉴스를 접하지 않아 즐거웠다. 한국 신문은 날짜만 다르지 내용은 대동소이하므로 한달 정도 걸러도 대세를 파악하는 데 전혀 지장없다는 점을 깨달은 것도 이번 여행이 남긴 소득이었다.
멕시코에 체류하는 동안 한국 지사와 상사의 30, 40대 직원들과 어울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한결같이 한국 신문의 보도 태도에 우려를 표명했다. 신문의 논조는 한국 경제가 점점 침몰하고 있다는 것인데, 왜 그렇게 위기를 과장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설사 위기가 있더라도 중지를 모아 극복해야지, 그것을 과장하고 동네방네 소문내면 상처만 악화하고, 결국 기업과 국가경제에 부담만 더 줄 뿐이라는 논지였다. 한 사람은 이런 보도가 회사채나 외평채의 가산금리만 높이고 바이어들의 발을 끊게 만드는 '자살골'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귀국길에 기내에서 얻은 파이낸셜 타임스(6월 26일자)의 한국 경제 기사도 비슷한 논조였다. 한국 신문들이 현 단계의 경제위기를 일본의 장기불황 이전과 같다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는데, 정작 신용평가 회사인 S&P의 아시아 담당이사는 전혀 근거없다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한국의 외채 신용등급을 A-로 계속 유지하겠다고 표명했다. 바클레이 캐피털의 한 연구원도 장기불황과의 비교는 "웃긴다"고 일갈했다고 이 기사는 전한다. 우리는 중환자실로 보내달라고 고함치고 있는데, 의사는 주사나 한대 맞고 쉬라는 격이었다. 한편의 코미디가 아니고 무엇이랴.
경제신문들은 한술 더 떠 '한국 경제의 중남미화'를 들먹인다. 신정부 출범 당시부터 간간이 올라오는 메뉴다. 단언컨대 이런 기사는 구체적 사실에 기초한 분석이라기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인상비평에 가까운 글들이다.
'룰라를 본받자'는 구호도 한국 언론의 단골 메뉴다. 자연스레 '메넴을 본받자' '살리나스를 본받자'는 구호를 외친 우리 신문들의 과거가 생각난다. 현재 국제금융권과 국제언론은 룰라를 극찬한다. 전임자 카르도주 대통령이 물려준 외채 원리금을 기한에 맞춰 상환하는 악역을 잘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좌파 출신이 재정지출을 줄이고 외채이자를 갚는 데 최선을 다하니 어찌 예쁘지 않겠는가. 하지만 성장의 잠재력을 배양하고,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데는 현재까지 성과가 별로 없다. '기아 제로'라는 빈민 구제 프로그램도 우유값보다 홍보비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한다는 브라질 학자의 냉소어린 비판을 들었다. 경제가 그나마 돌아가는 까닭은 중국이 대두와 철광석을 대량 구매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부터 중남미 경제를 관찰하면서 습득한 공식이 하나 있다. 대체로 집권 초기에 국제금융권과 국제언론의 찬사를 받은 정권이나 정치인들의 말로가 한결같이 비참했고 자국 경제에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는 사실이다.
멕시코의 살리나스(88~94년) 대통령은 94년의 '테킬라 위기'를 남겼고, 아직도 외국에서 방랑하고 있다. 대통령을 두번 연임한 아르헨티나의 메넴(89~99년) 대통령도 잘못된 개혁과 개방 정책으로 나라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2001년의 아르헨티나 위기는 메넴 시절에 배태된 것이었다. 뛰어난 학자였던 카르도주 대통령도 두번이나 대통령직을 연임했지만, 98년의 삼바 위기를 피해갈 수 없었다.
이성형 세종연구소 초빙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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