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기승 시 힘이 들까? 시원할까?..



경마 입문의 세월이 길던 짧던 간에,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유니폼 휘날리며 바람을 가르는 기수들을 보면서, 멋있다는 생각과 더불어 시원하겠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 보았으리라.
또한 경마의 기수를 포함한 모든 스포츠나 대중의 시선과 인기를 모으는 분야에서는, 무대의 화려함 뒤에는 뼈를 깎는 노력과고통 그리고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 있음을 알고 이해하는 것에 조금은 무신경하지 않았나 싶다.
말을 타면 시원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느냐? 아니면 경주 후 기수의 인터뷰를 보면서 숨을 헐떡이는데 그렇게 힘이 드는 것이냐?라는 질문을 주위에서 심심찮게 듣게된다. 경마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는 사람에게서 나온 소리여서 조금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여, 화려한 무대 뒤에서 펼쳐지는 기수들의 애환이랄까? 고통 등을 나의 경험을 토대로 밝혀서 "아~ 이런 것도 있구나"하는 정도를 굳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보다는 기수들을 이해하면서 그들의 속으로 한 발짝 다가서 주길 바라는 바램으로 글을 써본다. 다만, 실전에서 느끼는 감각이나 고통만큼은 글로 완벽히 표현할 수 없는 아쉬움은 떨쳐버릴 수가 없다.

기수가 마상에서 밸런스를 유지하고 말을 유도하고 제어하면서 원하는 목적을 위해 취하는 경주 자세는, 지극히 제한된 신체부분만으로 자세와 밸런스를 유지하며 말을 유도, 제어, 추진 등을 하는 자세이다. 다시 말해 마상에서 기수는 무릎 아래 부분과 발로 지지를 하는 등자에 의지 하는 것이 전부이고, 그것 만으로써 살아서 움직이고 독자적으로 행동을 할 수 있는 개성이 풍부한 말을 다뤄 가는 스포츠 예술인 것이다.
온순한 말, 괄괄한 말, 난폭한 말, 급한 말, 예민한 말, 둔한 말, 아주 가끔은 또라이(?) 같은 말, 건강한 말, 비실거리는 말, 볼수록 정이 가는 말, 가끔은 실컷 패주고 싶은 말, 기타 등등..

인간이 말의 뇌를 지배해서 사용 목적에 맞게 부려 왔고, 그 것이 승마이던 경마이던 혹은 마차를 끌던, 사용 목적에 따라 장구의 발달과 함께 오랜 세월 끊을 수 없는 인연으로 변천되어 왔다. 또한 말의 뇌를 지배하는 수단은 여러 가지가 사용되고 있으나, 여기서는 경마에서의 유도와 제어에 따른 기승자의 심리와 실태을 짚어보고자 한다.

큰 틀에서의 유도란 다각적인 시각이 될 수 있으며, 원하는 운동을 하기위해서 취하는 방법의 총칭이 될 수도 있다. 이는 범위가 너무크기 때문에 자세히 다루기엔 짧은 글로써는 한계가 있어, 추후 기회가 된다면 적당한 시기에 따로 다뤄야 할 듯 싶다. 다만 그 속에 포함된 제어라는 것은 세분화 된 부조 조작 이라 할 수있는데, 이 글에서는 그 부분에 국한하여 얘기를 진행시켜 나가고자 한다.

제어라 하면 쉽게 말해서 기수가 원하는 운동을 위해 적당히 말을 제어 즉 잡아 간다는 의미이고, 좀더 세밀하게 말하면 원하는 스피드를 유지하기 위해 취하는 부조 즉 고삐의 부조의 한 수단이다.
물론 말에 따라서 그 수단의 강약이나 방법이 다 다를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얼마 전에 잠깐 다뤘던 재갈의 부분에서 밝혔 듯이 부조에 대한 순응도가 높으며 예민하게 반응하는 말은 재갈 하나 만으로도 원하는 운동을 이끌어 낼 수 있으나, 선천적인 면이 강하고 순치나 조교의 테크닉, 육성 과정에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말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말들은 재갈만으로 원하는 운동을 이끌어 낼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고삐를 통하여 힘으로 제어 할 수 밖에는 없다. 즉 달리고자 하는 말을 힘으로 잡을(제어) 수 밖엔 없다는 얘기다.
또한 선천적으로 입이 강하고 무거우며 뛰려는 의사가 지나치게 강한 말들은 기수의 기술이고 뭐고 전혀 통하지 않으며 그렇지 않았던 말들도 놀라거나 흥분해 있을 때는 의외의 행동을 보이며, 돌출적인 행동을 나타낼 때 역시 기술이나 정상적인 부조가 통하지 않는다.

그러면 기수 체중의 거의 10배에 가까운 말을 마상에서 무릎 밑에 다리만으로 의지하여 말을 제어 한다는 것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란 것은 굳이 말을 타 보지 않아도 짐작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누구라도 한 번쯤 시험해 봐도 좋을 것이다. 기둥에 고삐를 붙잡아 놓고 기승자세 흉내내어 고삐를 잡아 당겨보시길.. 그 상황에서 고삐 잡은 손이 죽죽 미끄러지도록 있는 힘을 다해서 당겨보면서, 미끄러지면 다시 갈아 잡고를 반복하여 해 보면 아마도 달리는 말의 리듬이나 움직임이 없다 해도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스포츠에서 하체의 중요성을 강조함도 당연하다. 기수도 안정된 기좌( 무릎아래에서 안장에 부착하는 부분 을 말함)가 생명이나 모든 일이 그러하듯 개인차가 어찌 없겠는가?
여기서 내가 그리스로 날아가 테스트 기간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밝히고 싶은데 어느 정도 이해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

테스트 첫날 이역만리 타국에서 코 납작한 동양이니 나타났으니, 수많은 눈 들이 주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긴장은 되고.. 한국에서의 기수 생활을 접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가라 앉은 상황이었다 해도 그 때의 상황은 평생 잊을 수 없다.
세 마리를 무사히(?) 마치고 네 번째 기승하는데, 주로 입구에서 마주의 설명은, 이 말은 아주 열심히 훈련을 하며, 기수 두 명을 낙마 시킨 말이란 설명을 들었지만 언뜻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열심히 훈련한다? 그렇게 온순하던 말이 주로에 들어서자 확 달라진 발걸음, 호흡이 달라진다. "열심히 훈련 한다"는 말을 즉시 눈치(?) 챘다.
속보 시작하자 마자 날라 갈 듯이 재갈을 물고 튀는데 장난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했던 말과는 사뭇 다르다. 안쪽 주로에서 속보 한 바퀴에 보통 구보 한 바퀴를 실시 해야 하는데, 이미 속보 시에 말과 싸움 하느라 많이 지쳐 버렸으니.. 고삐는 죽죽 밀리고 고삐 갈아 잡으려 손을 조금만 움직이면 내 튀고..
그 상황에서 구보 시작 하자마자 200M 도 채 못 가서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빠져 전력질주로 끌리고(기수의 의사에 반해 말이 저 혼자 달리는 현상을 말함) 말았다.
그 상황 속에서 두 바퀴를 돌아 버리면 큰일이다 싶어 잠시 마상에서 쉬며 숨 고르고 힘을 조금은 비축한 뒤에(길어야 심 호흡 몇 번 임) 결승선 통과 하고 나서 죽을 힘을 다해 잡으니 다행이 멈춘다.
손 가락의 피부는 다 찢어졌고, 무릎은 훌렁 다 까지고, 입안에 침은 다 마르고 단내가 풀풀.. "이젠 다 틀렸구나, 돌아가야 하나 보다"하는 자괴감이 들어 아무 정신이 없다.
트레이너 눈치를 살피며 잔등에서 내리니 발이 땅에 닿는 감각이 없이 둥둥 떠있는 것 같고 목은 왜 그렇게 타는지? 수도 꼭지로 가서 아예 머리를 박고 물을.. 그 이후로도 세 마리를 더 기승했으니, 그 날 난 거의 반 죽음 상태였다. 일주일 동안은 근육 진통제를 먹고 버텼으나 거의 엉금 엉금 엄금 수준의 몸상태였고 준비해간 대일 밴드는 이미 바닥이 나 버렸다.

한국에서 포기당한, 경마에 대한 아니 기수로서의 꿈을 이루겠다는 바램으로, 채찍하나 달랑 들고 찾아간 이역만리 타국에서 그렇게 말이 두려울 줄이야.. 지금은 지난 일을 회고 하는 수준이지만 그 때의 심정은 정말이지 참혹 그 자체였다.
그런 현상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간혹은 미쳐 날뛰는 말이 있고, 그 때는 몇 바퀴씩 돌아 버리는사례가 있다. 그 기수는 거의 그로기 상태에 빠짐은 두말하면 잔소리 이고, 이렇게 심한 상황은 아니어도 한겨울엔 조금이라도 입이 무거운 말과 싸움하고 나면, 고삐 잡은 손가락이 펴지지 않고 그대로 굳어 있으며 손이 저리며 아플 정도로 얼어 붙는다.

조교 시에도 그렇지만 레이스 속에서는 자칫 제어를 하지 못해 다른 말과 다리가 엉키는 수도 있고, 혹은 넘어질 수도 있으니 어떤 때는 머리가 곤두섬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가장 위험한 경우는 앞에 가는 말의 뒷 다리 사이로 내 말의 앞다리가 들어가 달릴 때 이다. 둘 중 하나가 갑자기 방향을 틀면 다리가 걸리게 되고 그러면 후행 하는 말은 앞다리가 걸리기에
거의 넘어지게 되어있어 얼마나 제어가 중요한지 짐작하리라 믿는다.

또한 심하게 끄는 말의 경우 혼전 상황이라 옆으로도 빠질 수 없는 상황에서 앞에 가는 말을 찍어 버릴 수 있을 정도니, 급한 김에 고삐를 잡아 당기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 보면 말이 고개를 번쩍 쳐들게 되고, 그럴 때 마다 팬들은 고의로 당겼다고 욕을 할 수도 있지만, 기수의 입장으로 보면 아찔한 순간이었을 수도 있음이다.

더욱이 비가 오거나 주로 불량으로 시야가 확보되지 않을 때는 정말이지 죽을 맛이 아닐 수 없다.
보이지는 않지, 주로 불량으로 말은 착지가 불량하지, 안장에는 모래가 튀어 기좌는 불안하지, 고삐에 물과 모래가 튀어 미끄러지지 기타 등등..
차라리 비가 많이 내릴 때는 그래도 안경이 씻겨 내리지만 팥죽 같이 질퍽할 때는 속수 무책이다. 안경을 아무리 많이 덮어쓰고 해도 몇 발짝 가면 마찬가지이기에 거의 대부분 그냥 흙을 맞는 경우가 허다 하다. 그러니 한겨울에 그 모래 맞아 보면 옷 속으로 맞은 팔이 벌겋게 변할 정도니 얼굴이야 말할 필요 없으리라.

손가락의 피부가 벗겨지고 무릎이 훌렁 까지며 눈에 모래가 들어오는 악조건 속에서, 무릎 아래 만으로 밸런스를 유지한 채 마필을 유도하고 제어하며 몰아내야 하고, 채찍질을 해야 하는 경주자세는 50 Kg 내외의 체중을 갖고 있는 경마 기수에겐 결코 쉽지 않은 일이 아닐까 싶다.
더욱이 체중 조절을 하고 걸어갈 힘도 없지만, 마상에서는 버텨 내는 것을 보면서 안쓰러움을 넘어 숭고함 까지 느껴지니 말이 도대체 무엇인지..??
혹한의 추위에서 손.발이 시려 눈물 흘리는 어린 후배들을 바라보면서,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함도 어쩌면 스스로 이겨내야 할 일이기에 외면 하는 것인지도..

물론 기수가 조교 또는 레이스 중에 전부가 힘이 들고 어렵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앞서 말했 듯이 말에 따라 다르고 레이스 상황에 따라 다르다.
미국의 유명한 기수도 "최상의 경주자세로 400미터 이상을 몰아내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 하다"라고 말했는데, 미루어 짐작하더라도 경주자세의 극한적인 어려움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혹자는 내가 기수 출신이어서 기수들의 좋은 점만 부각 한다고 말할 분도 있으리라.
그러나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란 말이 있듯이, 기수들의 애환이나 즐거움 그리고 고통을 이해 하지 않으면서 어찌 경마를 이해하려 드는지 되묻고 싶다. "보는 사람을 만족 시킬 플레이어는 없다"라는 얘기가 있다.
그나마 우리 경마팬들도, 예전과는 달리 단순한 결과 만이 아닌 객관적이고 냉정한 판단을 통해 기수를 바라보는 분들이 점점 증가함을 느끼기에 위안을 받게된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듯이, 이런 주제에 대해 현역기수 스스로가 직접화법으로 얘기하기는 쉽지않은 부분이다. 현재 진행중인 자신들의 일이기에 자칫 변명으로 비쳐질 수 있고, 팬들도 어쩌면 반신 반의 할 테니까..

이 글은 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내용이긴 하다.
그러나 엄동설한의 혹한기에도, 장마비가 주로를 핥아버리는 여름철에도, 비가오나 눈이오나 동틀녘 여명을 맞이하며 고생하는 후배들의 고충과 노력이, 무지에 의해 오해받고 그들에게 상처로 다가가는 현실에 가슴한켠이 항상 시렸었기에..
어쩌면 대변의 역할도 묻어 있음이니, 너무 나무라지 마시길 부탁 드리고 싶다.

[ 백 원 기 ]


2004.05.19 PM10:03:00 입력
2005/12/19 16:00 2005/12/1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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