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13 (2)

2011/09/13 03:02 / My Life/Diary


  사고가 난 후 아내 샌디가 응급실로 달려왔을 때, 난 아내의 얼굴을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지금 너무 많이 다쳤어. 아무래도 다시는 좋아지지 않을 것 같소.”
  이후 나는 아주 오래도록 아주 슬피 아주 많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 깊은 절망과 무력감 속에서도 나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필요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이런 상태로 딱 2년간만 살아보겠다고 말했다. 더 살지 안 살지는 그때 가서 결정하겠노라고. 그렇게 말해놓고 나니 왠지 내가 내 인생을 주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은 나의 손가락 틈사이로 빠져나가고 있었던 인생이었지만.
  그렇게 2년이 흘렀고 나는 침대로 가서 깊이 숨을 들이쉬고 사색에 잠긴 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누구와의 대화일까? 하나님? 나의 수호신? 내 신념? 어쨌건 그 대화는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그래요. 약속한 대로 여기까지 살았습니다. 만약 당신이 언젠가 걸을 수 있다는 희망만 준다면 어떻게든 살아보겠습니다.”
  그때 나는 이런 대답을 들었던 것 같다.
  “아니야. 희망은 없어. 살거나 죽거나 오직 그뿐이네. 알아서 선택해!”
  나는 다시 말했다. “그러면 제가 다시는 아프지 않을 거라는 희망만이라도 주십시오.”(그때 내 체력은 거의 바닥이었다. 조금만 더 튼튼해져서 온갖 병원균의 침입을 이겨낼 수 있기만을 바랐다.) 그런데도 나는 같은 대답을 들었다. “그렇게 계속 살거나 그게 안 되면 죽어야지. 아마 앞으로도 변치 않을 걸세.”
  내 모든 요구에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그 순간에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저 혼란스러웠고 어떻게든 맞서고 싶었다. 내 안의 작은 목소리가 말했다.
  “이런 젠장, 난 이제 어떻게 살지?”
  약속된 2년은 끝났다. 나는 협상을 해보려고 했다. 비상구를 찾고 싶었다. 희망이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 아니, 조금이라도 나아질 가능성만 있다고 해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런 약속도 없었다. 일말의 희망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선택해야만 했다.
  나는 삶을 택했다.
  내가 대단한 영웅이라서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사실 처음에는 용기만 있다면 목숨을 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삶을 택했다. 아이들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와 돌이켜보면 인간은 원래 그런 상황에서 삶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삶을 택하게 되어 있다.
  이것이 나의 위대한 통찰이다. 그 시절 내가 배운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희망 없음’이라는 선물이다. 나는 언젠가 내가 꿈꾸던 인생을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에 삶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기약없는 희망을 버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삶을 택했다.

  …그러나 나중에야, 그리고 운이 좋다면, 우리는 과거와 같은 삶을 다시 찾을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것을 느낀 순간, 희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그 이후의 날들이 우리 인생의 진실임을 알게 된다.

  …희망은 언제나 미래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희망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희망은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 내 인생을 바꾸어주리라는 기대 속에 나를 가두어버리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희망 없음이 꼭 절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희망 없음은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하며 다음과 같은 삶의 가장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알려준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 어디 있는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ㅡ pp.137~142

  어머니와 아들은 상담실에서 나갔고 문이 닫혔다. 나는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이 잘생긴 젊은이가 앞으로 겪어야 할 수많은 고통을 생각하며 울었다. 그리고 그가 느낄 혼란과 고독의 날들을 생각하며 울었다. 나는 그가 느끼게 될 갈망, 절대로 충족되지 않을 그 욕망들을 떠올리며 울었다. 나는 그 청년을 위해 울었고 나를 위해 울었으며 마침내 우리 모두를 위해 울었다.
  이런 느낌을 솔직히 말하지 않았으니 내가 거짓말을 한 셈일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그 청년과 그의 어머니와 함께 집안을 돌아다닐 때는 그런 감정을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한 말은 모두 진실이었다. 내 인생은 이대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소중하다. 나는 내 인생의 거의 모든 면을 사랑한다. 나는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감사와 경외감과 사랑을 느끼며 살아간다. 내 인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축복이다.
  그렇지만 역시 나는 많이 아프다. 때로 헤어날 길 없는 절망감을 느낀다.

ㅡ 대니얼 고틀립,『마음에게 말걸기』, pp.217~218
2011/09/13 03:02 2011/09/1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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