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24

2010/11/24 23:56 / My Life/Diary
겨울 노래
마종기

눈이 오다 그치다 하는 나이,
그 겨울 저녁에 노래부른다.
텅 빈 객석에서 눈을 돌리면
오래 전부터 헐벗은 나무가 보이고
그 나무 아직 웃고 있는 것도 보인다.
내 노래는 어디서고 끝이 나겠지,
끝나는 곳에는 언제나 평화가 있었으니까.
짧은 하루가 문닫을 준비를 한다.
아직도 떨고 있는 눈물의 몸이여,
잠들어라. 혼자 떠나는 추운 영혼,
멀리 숨어 살아야 길고 진한 꿈을 가진다.
그 꿈의 끝 막이 빈 벌판을 헤매는 밤이면
우리가 세상의 어느 애인을 찾아내지 못하랴,
어렵고 두려운 가난인들 참아내지 못하랴.

나는 오늘 아침에 기적을 보았노라. 그분은 강남역에서 타시었도다. 그분께서 “엉엉”이라 하시메 만원 지하철 속 사람들이 두 쪽으로 갈라지었고, 또다시 “엉엉”이라 하시메 처녀들이 날뛰었도다. 그분께서 사람들 앞을 지나시메 시궁창 썩은 내가 코를 찔러 찡그리지 않는 자 없었나니. 감히 입 밖으로 한마디 불평의 말 내는 자 없었도다. 그분께서 손에 드신 종이컵 안에는 천원이며 만원짜리가 차곡히 접혀 있었으나 결코 돈을 구걸함이 아니요 다만 “엉엉”이라시메… 그분께서 지나는 자리마다 기적이 일어났다는 오늘의 말씀입니다. 아멘.

퇴근길 손잡이를 잡고 선 내 앞에, 검은 옷의 임산부가 앉아 있었다. 역 이름을 확인하려 잠깐 든 얼굴이 부들부들. 화장이 뜬 모양이다. 다시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에 집중하는 그녀. 나는 숙여진 고개따라 밑으로 쳐지는 파마 풀린 머리카락과 하얀 속살의 가르마를 보았다. 그 가르마가 끝나는 곳에 매달린 감색 리본. 너무 헤져 건드리면 부스러질 것만 같았다.

나는 그걸 갖고 싶었어.

지하철에서 내려서는, 걷고 싶길래, 버스 대신 20분 정도 걸어 집에 왔다, 요플레가 없어 다시 나갔다. 바나나 한 송이와 요플레 두 팩을 사서 계산대에 갔더니, 아저씨가, “바나나랑 요플레랑 갈아서 드시나봐요?”, 나는, “그렇진 않구요. 하하.”, 아저씨가, “그렇진 않구나. 하하.”

끝.

2010/11/24 23:56 2010/11/24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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