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29

2009/05/29 19:12 / My Life/Diary
그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기형도,「입 속의 검은 잎」부분

피곤할 일은 전혀 없는데 눈은 감기고 몸살이 극성이다. 머리가 울리는 통에 누워 있을 수가 없어 쑤시는 어깻죽지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샤워를 하고 나와 무심코 TV를 켜니 장례식이 막 시작하려는 참. 그러고 보니 오늘이 그날이다. 밖은 아직 어둑한데 TV 속은 밝아 오고... 해는 남쪽부터 뜬다는 사실이 새롭다.

哭하는 이들을 보면서 라면 하나를 끓여 먹는데, 표딱지에 새빨간 인주 하나 찍은 인연 때문인지 맛이 안 난다. 쓸데없이 끽연 뿐. 피를 토하던 날도 담뱃잎은 달콤했다. 이제 화면 속은 마치 한 달 전의 데쟈뷰처럼ㅡ 그러나 버스에서 세단으로, 삶에서 죽음으로.

네가 죽으면, 모두가 갑자기 널 사랑하게 되지. (If you're dying, suddenly everybody loves you)
ㅡ House M.D. (Ep.2-2)

행사가 한창인 가운데 흐르는 긴급속보 자막 “경영권 편법 승계 ‘무죄’”. 이 얼마나 절묘한 안배인가? 반칙과 특권이 통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던 목소리가 哭에 묻힌다. 단상에 올라선 삼류시인들의 그 어떤 울부짖음보다 시적이다.

(그가 “가장 가까이 두고 읽었던 책 가운데 하나”에서 뽑자면,)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결과가 평등한 것보다는 기회의 평등이 중요하다”는 말은 그럴 듯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다분히 허구적인 주장이라는 것이다. 불평등한 결과가 대단히 많은 사회는 어느 정도 기회도 불평등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ㅡ 폴 크루그먼,『미래를 말하다』, p.314

운구차가 도착한 화장장. 불은 타오르고 화면은 어두워진다. 해는 남에서 떠서 북으로 지는가. 눈이 감긴다... 그래 아마 내 두통은 머릿속에서 울리던 조종(弔鐘) 때문이었나 싶은거라.
2009/05/29 19:12 2009/05/29 19:12
TAGS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Trackback RSS : http://www.fallight.com/rss/trackback/1743

Trackback ATOM : http://www.fallight.com/atom/trackback/1743


« Previous : 1 : ... 351 : 352 : 353 : 354 : 355 : 356 : 357 : 358 : 359 : ... 768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