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못난이 따라하기

입력시각 :08/25 17:20

김병주 <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

뇌물, 공짜 해외여행, 섹스 등 스캔들로 얼룩진 기업비리가 얼마전에 들통났다.

국내 어느 대기업의 치부가 또 드러난 게로구나 지레 짐작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문제의 기업은 국내기업이 아니라 유럽 대형 자동차회사의 하나인 폭스바겐이기 때문이다.

폭스바겐은 독일이 자랑하는 경영자와 노동자가 공동으로 경영의사를 결정하는 제도를 자랑해온 회사이다.

경영진이 노조측 간부들을 회사 돈으로 해외 휴가여행을 보내고 콜걸 접대까지 주선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하나의 의혹은 회사 간부가 인도, 앙골라, 체코 소재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뇌물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 모든 비리의 핵심에 인사담당 간부가 깊이 연루돼 있다는 혐의로 해직됐다.

기업이 누구의 것인가? 전통적으로는 기업에 투자한 사람들, 즉 주주가 주인이라는 게 정답이다.

그러나 회사의 장기적 성과에는 관심이 없고 단기 주가변동 차익을 챙기려고 일시적으로 주식을 보유하는 사람들이 과연 주인인가? 이들이 주주의 대다수를 구성하게 된 근래에는 그게 정답이라고 고집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러한 주주보다는 기업의 장기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경영자와 노동자 등 이해당사자들이 실질적 주인이라는 주장이 성립한다. 후자의 견해를 출발점으로 하면 경영과 노동,즉 이해당사자의 두 축이 서로 협의해 기업경영을 결정하는 노사 공동의결(Mitbestimmung)제도에 이르게 된다. 이론상 그럴싸하게 보이는 이 제도에도 결정적 맹점이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노사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서로 감싸며 범할 수 있는 비리를 감시하는 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가치와 주주의 이익을 지키기 어렵게 된다.

감사위원회도 유야무야 되기 십상이다.

노사가 서로 짜고 보수를 올리게 되면 노동비용이 높아져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약화된다.

생산기지를 해외이전 시켜야 살 길이 열리지만 노조가 발목을 잡는다.

흥미를 더하는 것은 폭스바겐 감사위원회에 노사 양측 인사와 함께 지방정부 최고위 정치인들이 참여하고 있어 정치권 비리 연루의 냄새가 풍기게 됐다는 것이다.

사뭇 후진국적이다.

폭스바겐은 독일기업 문제의 대표사례일 뿐이다.

이래서 독일 경제가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두자리 숫자의 실업률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집권여당인 사민당(SPD)의 인기가 바닥이다.

오는 9월18일 독일 총선거가 있다.

지금 예상으로는 여성당수 앙겔라 메르켈이 이끄는 기민당(CDU)이 승리할 것으로 점쳐진다.

메르켈은 이미 슈뢰더 총리가 발동을 건 '아젠다 2010'의 개혁적 측면(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등)을 이어받고,재정건전성 확보 등에 박차를 가해 시장경제 쪽으로 방향타를 잡아나갈 것이라 공언했다.

한마디로 지난날 못난 짓을 버리겠다는 것이다.

국내의 정책입안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나? 남이 쓰다 버리는 못난 관행을 신주단지처럼 모셔 들이겠다는 것이다.

교수들이 마음껏 '학문의 수월성'을 지향하는 연구·교육을 할 수 없던 독일 대학들이 변신을 도모하고 있는 반면, 여전히 평준화 교육을 강요 받고 있는 것이 한국 대학들의 모습이다.

독일은 상점 영업시간 연장을 추진하는데,한국은 편의점 영업시간을 단축하고 있다.

여야 모두 인기영합주의에 물들어 대다수 국민의 편의를 외면하고 있다.

일본식 장기불황이 아니라 독일식 경제 침체가 한국의 문제라는 지적을 깊이 음미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 경제의 불황은 어디서 오는가? 정부가 '개혁'의 이름으로 깊숙이 시장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잘못된 사례를 '사회정의''분배우선' 등의 명분으로 답습하려고 하는 정부 때문에 빚어지는 시장의 불확실이 증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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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30 07:16 2005/08/30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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