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경마장 이야기 金東里
- 즐기는 일에는 제약이

내가 경마장엘 나오기 시작한 것은 약 이 십 년 전부터의 일이다. 그 무렵 기수로 있던 사람들은 뒤에 대개 조교사가 되었고 아주 사라져 버린 사람도 있은 것 같다. 그 아주 사라져버린 사람 가운데 내가 기억하는 이름으로 조선구(趙先九)기수가 있다. 내가 어떻게 마침 이 조기수의 이름을 기억하느냐 하면 그것은 간단하다. 그 당시 내가 그 이름만으로 저들이 형제거나 형제하고도 아주 쌍둥이 형제가 아닌가 생각했던 두 사람이 있었는데 그것이 누구냐 하면 지금의 조후구(趙後九)조교사와 위의 조선구기수 이 둘이었다.

실지에 있어 그 두 사람은 전혀 남남끼리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로부터 그들에 대해서 들은 일도 없고, 내가 물어 본 일도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같은 이름도 얼마든지 있는 만큼, 우연히 선(선)자와 후(후)자로 갈렸을 뿐 같은 조씨에 같은 구자가 붙을 수도 있다고 논리적으로는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간 그 조선구기수가 뛸 무렵부터 내가 경마장엘 다녔다고 하면 그 연대를 아는 사람은 알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들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나는 본디 운동경기를 좋아해서 소위 빅게임이란 것이 있을 때는 여간 바쁜 일이 아니면 제쳐놓고 경기장으로 나가는 편이었다. 전국체전이란 것이 열릴 때는 그 기간동안 대개 서울운동장엘 나가 있곤 했다.(그 당시는 개최지가 서울로 고정돼 있었다)

그러자니까 내가 처음 경마장을 찾게 된 동기는 일종의 운동경기를 구경하러 갔던 편에 가깝다. 물론 단순한 운동경기가 아니고 거기 투기성이 곁들여져 있다는 것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두 가지가 다 나의 취미에는 적합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냥 구경만 하기보다 그 승부에다 돈을 걸면 내 자신도 승부에 참여하는 것이 되어 더욱 자극적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취미를 붙인 것이 결과적으로 나의 용돈 잡비 술값 따위를 몽땅 다 털어 넣어도 모자랄 지경이 되었다. 나는 하는 수없이 몇 해 동안 경마장 출입을 끊고 지냈다. 그러다가 정년퇴직이란 것을 하면서부터 또다시 경마장 취미를 되살린 것이다. 몸 움직이는 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옛날같이 용돈 형편 되는대로 넣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산을 세워서 그 예산 범위 안에서만 투기 취미는 허용키로 스스로 제약을 두었던 것이다.

사람 사는 일엔 격차가 심해서 성인(聖人)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살고 수도자(修道者)는 도(道)를 깨치기 위해서 살고 군자는 뭇 사람(衆人)의 본(귀감)이 되기 위해서 산다고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성인이나 도인이 될 수는 없고 군자되기도 지극히 어렵다. 특히 현대인은 인간성을 존중한다하여 자기 태어난 성품대로 취미도 살리고 기질도 살펴서 삶을 누리고자하는 경향이 짙다.

특히 나같이 칠십이 넘은 나이에 주야로 서재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도 없으니 등산 낚시 골프 아침 산보 따위 그 어느 거든지 택해서 운동을 해야한다고 모두들 충고를 하고 야단이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새삼 시작하게되지는 않는다. 이런 따위보다는 경마장 놀이가 훨씬 쉽다. 미리 옷을 챙긴다 하지 않고 시간 나는 대로 아무 때나 십 오 분 가량이면 현장까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 오기만 하면 두 시간 내지 다섯 시간 가량은 워킹을 하기 마련인 것이다. 말을 보러간다, 마권을 사러 다닌다, 뒤는 구경을 한다하고 계속 몸을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말 구경에다, 승부놀이에다, 운동까지 적당히 곁들일 수 있으니, 이런 면으로서는 여간 적합한 나들이가 아니다.

문제는 어느 정도 승부에 집착하지 않고, 투기성을 조절할 수 있느냐 하는데 있다. 누구나 말로는 취미 삼아, 놀이 삼아, 조금씩 마권을 사서 맞으면 다행이고 안 맞으면 담담히 버리면 된다고 하지만 그렇게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처음엔 누구나 그런 태도로 임하지만 그쪽 걸음이 거듭될수록 그렇게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보통 아닐까.

그러나 그렇다고 마음을 놓아버려서는 안 된다. 끝까지 자신과 투쟁하는 일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모든 즐기는 일에는 제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기 구경도 삶을 즐기는 일이요, 승부놀이도 즐기는 일이다. 즐기는 일에 제약이 따르지 않으면 그의 삶은 실패로 돌아간다. 어찌 경마뿐이겠는가.


출처 : http://blog.korearace.com/장룡

2006/10/26 16:52 2006/10/2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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