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구양봉을 생각한다. 김용의 영웅문 시리즈에 등장하는 절정 고수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최상승 무공인 구음진경(九陰眞經)을 익힌다. 하지만 결국 미쳐버리는데, 그가 알게 된 구음진경에는 잘못된 구절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진실인 줄 알고 뜻을 무리하게 잇다 보니 미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구양봉은 본래 내공이 깊었기에 비록 미쳐버렸다 해도 절정 고수로 남을 수 있었다.
구양봉을 자처하는 이들을 본다. 혹은, 나 자신일 수도 있다. 미쳐도 절정 고수와 그냥 미친놈 사이에는 삼만팔천광년의 거리가 있다. 기본이 없어 대충 이해하고 결국에는 미쳐버리는 것, 이것이 문제다.
강태공의 쏟아진 물은 담을 수 없다 (覆水不返盆). 어릴 적 이 고사를 읽고 난 이후로 쭉 강태공을 싸가지 없는 놈으로 생각해왔다. 다행히 나는 부인이 없고 싸가지도 없고 세월만 낚을 뿐이니, 이제는 일어날 일만 남았다.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것네
ㅡ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강」
소리 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것네
ㅡ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강」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Trackback RSS : http://www.fallight.com/rss/trackback/1598
Trackback ATOM : http://www.fallight.com/atom/trackback/15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