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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4 (2)

2011/06/04 22:54 / My Life/Diary
  사람들 사이에서는 무표정하게 있을 수가 없다. 울적한 기분을 알아 달라고 떼쓰는 것 같아서. 비굴하고 저열해.

  기계적으로 일에 몰두하다 슬픔이 엄습하면 옥상으로 한 계단씩 오른다. 옥상 출입문 앞에서 문을 열 때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멀거니 난간에 기대어 빌딩 밖을 쳐다보는 모습이 보여지는 건, 뭐랄까, 치욕이다.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고 하면서 실은 관심을 바라는 속마음을 들켜버리는 일. 이런 까닭으로 여러 번 헛걸음을 한 이후로는 어지간해선 오르지 않는다. 며칠 전부터 흡연구역이 옥상 하나로 제한되고 나서는 더 이상 가지 않는다. 이젠 갈 곳이 없어.

  한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던 것도, 익명성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각자가 서로 보여지고 있음에도, 보고 있음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피차일반의 비극.

  모르는 척하다가, 결국 모른다고 생각한다. 의심 없이, 모른다고, 착각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하고, 계속 써나가기로 했다. 회사 이야기만 쓰지 않으면, 이곳과 나 그리고 현실이 교차하는 부분만을 제외한다면, 아무 상관 없겠지. 지금처럼, 앞으로도, 두 공간을 교차하고 있는, 보여지는 쪽과 보는 쪽은 계속 서로를 모르는 척 할테니까.

  모르는 척 하는 건, 모른다는 거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말없이 있을 수가 없다. 둘이 남겨져 있을 때는, 너무나 곤혹스럽다. 정말이지… 혼자 택시를 타야할 때나, 술자리에서 덩그러니 둘만 남게 될 때, 거짓말과 허튼 소리를 남발한다. 다음날이면 어김없는 후회. 그저 침묵으로 공존할 수 있는 관계만이 진실해.

  기억 속 할아버지는 말이 없다. 풍을 맞으신 탓에, 나는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주무시다가 말없이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그리도 서럽게 통곡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주 어릴 적에는 할머니의 어머니인, 증조할머니도 살아계셨는데, 그분도 말이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다 넘어져 돌아가셨다는데, 장례식에 대한 기억은 없다. 할머니댁의 그 날카롭던 계단턱과 벽을 손으로 짚으며 비스듬히 한계단씩 내려오던 모습을 기억한다.

  이분들은 말이 없었다.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2011/06/04 22:54 2011/06/04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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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22시에 잠들어서, 오늘 04시에 깼다. 밥통을 박박 긁어 꽉 채운 그릇을 오징어채 하나로 다 비우고 푸쉬업을 백 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지갑을 열어 보니 봐야할 영화 몇 개를 적어 놓았길래『퍼머넌트 노바라』를 봤다.


  밥을 너무 먹었나, 보다 졸고 보다 졸고, 뻔한 일본식 영화에 진부한 대사,라고 생각하며 보다, 결말에 한방 먹고, 졸면서 못 본 부분 다시 보고는.

  잤다.

  깨보니 14시.

  “나 혹시 미쳤어?”,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가 들리고.

  또 배가 고파.
2011/06/04 14:55 2011/06/0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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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2

2011/06/02 05:41 / My Life/Diary
  예전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의 극지 탐험가들이 부딪히는 최대의 도전은 ‘아침에 제때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빙판 위에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다. 아침에 제때 일어나는 것이라고.

  슬리핑백에 누워 있는 개운치 못한 즐거움과 일어나는 데 대한 두려움은 전형적인 알프레드 히치콕표 공포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쾅”하는 소리 자체에 긴장하는 게 아니라 “쾅”하는 소리가 날까봐 긴장하는 것이다. 일어나는 것도 물론 고통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안 좋은 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두려워하며 누워 있는 것이다. 잘 만든 공포영화에서도 그렇듯이 가장 큰 위험은 뭔가를 미루는 데 있다.

  나는 일어나야만 한다. 단순히 5분을 미루고 5시간을 미루고의 문제가 아니다. 슬리핑백에서 나오는 것은 원정에서 가장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 이후로는 대체로 쉽다. 대개 내가 두려워한 일들도 (그것이 종상이든 물집이든 피로든) 일단 시작하고 나면 두려워했던 만큼 나쁘지 않다. 사실은 그 반대일 때가 많아서 도전을 만나면 그런 것들은 무의미해진다. 게다가 일어나지 않고 계속 자면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가 어디에 있든, 전날 밤에 무엇을 했든 여전히 가장 중요한 일은 제때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나는 다르게 사는 사람도 많이 알고 있으며,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실은 오히려 그 반대이다. 일찍 일어나기 위해 일찍 자려다가는 가정생활과 조화를 이루기 어렵고 직장에서 야망을 실현하기도 쉽지 않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던 버릇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으로 바꿨다. 그럴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나는 ‘극한의 상황’에서 규율을 익혔다. 날씨가 추워지면 스키 잠금 고리의 수리를 미루고 싶어지고, 항해 도중 밤에 갑자기 바람이 일면 갑판으로 올라가 키를 잡기보다는 그대로 누워 있고 싶어진다. 배가 고프면 내일 먹을 식량을 조금 떼어먹기가 얼마나 쉬운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집에서라면 그대로 누워 자버리거나 기분 나쁜 전화를 미룬다고 세상이 뒤집히지 않지만, 광풍이 휘몰아치는 바깥세상에서는 자신을 속이려고 할 때마다 즉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확실히 나는 집에서보다 광활한 바깥세상의 경험을 통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게다가 일단 거치적거리는 일을 먼저 해치웠을 때 그날 하루가 더 상쾌해지는 것을 깨달았다. 세계 최초로 남극점에 도착했던 로알드 아문센은 “슬리핑백에서 나오고 싶지 않은 이유가 가장 그럴듯한 날이, 하루를 시작하고 나면 가장 일이 잘 풀리는 날”이라고 했다.

  지난 겨울에 나는 아내와 코펜하겐에 있었다. 월요일 아침, 우리는 노르웨이로 돌아오는 기차를 타기 위해 시청 광장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날씨는 매섭게 추웠고, 그 시간이면 늘 그렇듯이 기차역 바로 뒤에는 노숙인 몇 명이 웅크린 채 서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덴마크 판 <빅이슈>지를 팔러 다가왔다. 노숙인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판매가격의 50퍼센트가 그것을 파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잡지였다. 우리는 시간이 많았던 터라 거기에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온몸이 꽁꽁 얼어 있었고 자신을 잡아주지 못한 사회를 원망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유머가 넘쳤다. 그와 비교하자면 나는 세상에 속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와 완전히 다른 사람을 살고 있음에도 나는 ‘사람은 전부 다 비슷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떠올렸다.

  나는 결국 그 사람이 파는 잡지를 샀다. 첫 페이지에 꿈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꿈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럼에도 꿈을 말로 표현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설문 대상자인 노숙인 중독자들은 대부분 꿈이 없다고 답했다. 나 역시 가끔 내 꿈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기가 힘들 때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잔인하게도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아니, 그렇지 않아요. 당신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그러니 다시 생각해보세요.”

ㅡ 엘링 카게,『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pp.67~69, pp.243~244

  생각조차 싫다.

  꿈도, 술도, 나도, 사람도, 아침도, 싫고.

  보들레르는, 잠에 빠져드는 것만큼 무서운 일이 없다고 했는데.

  나는 좀 누워야 겠다.
2011/06/02 05:41 2011/06/02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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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그때 달링톤성을 떠날 때는, 정말 영원히 떠나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저 단순하게 당신을 화나게 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그런데 돌아보니 결혼까지 하게 되었더군요. 긴 시간동안 불행했어요. 하지만 캐서린이 태어나고,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을 사랑했다는 걸 알게 됐죠. 세상에 그 누구도 남편만큼 날 원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하지만 아직도… 인생에 있어서의 실수를 가끔 후회하기도 했어요. ㅡ 사람은 누구나 가끔 후회를 하잖소. ㅡ 맞아요.

ㅡ 잘 지내시오. ㅡ 당신도요. ㅡ 그러도록 하죠. 당신 남편과 행복하기를 바라겠소. 다시 못 볼지도 모르겠소. 그래서 자꾸 감상적인 말을 하게 되나보오. ㅡ 만나서 반가웠어요. 정말 반가웠어요. ㅡ 만나서 정말 기뻤어요. 잘 가요. 조심해요. …잘 가요.
2011/05/29 00:58 2011/05/29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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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8

2011/05/28 20:46 / My Life/Diary
  “Hope has two beautiful daughters: their names are anger and courage. Anger that things are the way they are. Courage to make them the way they ought to be.” ㅡ St. Augustine

  내 방 열린 창으로 들어온 날벌레 한마리가 날아 오른다. 하염없이 벽에 부딪는다. 자신이 어디로 들어왔는지도 모른 채. 부딪다 기절했다 정신차렸다 부딪다 보면 열려 있는 곳 어디론가 나갈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이곳에선 아마 거실이 되겠지. 그리고 다시 벽에 부딪는다. 하염없이.

  여차저차 이곳에서 일한 지도 막 1년을 넘겼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될 대로 되란 식으로, 급한 불이나 끄고 보자면서 들어와 생각보다 오래 지내고 있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결론은 하우스의 대사 한마디면 될 것 같다. “miserable stays miserable”.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분노는 하지만 용기를 못 내고, 생각대로 살기 버거워 사는대로 생각을 하는 꼴. 세월이 두렵다. 용기가 필요해.
2011/05/28 20:46 2011/05/28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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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1

2011/05/25 23:18 / My Life/Diary

20 대 1
ㅡ 장 도미니크 보비,『잠수복과 나비』











  ㆍ그래, 그거야. 나는 이제서야 그 말(馬)의 이름을 생각해 냈다. 미트라 그랑샹(Mithra-Grandchamp)이었다.

  뱅상은 지금쯤 아베빌 근처를 지나고 있을 것이다. 파리에서 자동차를 타고 오면, 바로 이 부근에 도착할 무렵부터 여정이 길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차도 적고 얼마든지 속력을 낼 수 있는 고속도로가 끝나고 2차선 국도로 접어들면, 자동차와 트럭의 행렬이 끝도 없이 꼬리를 문다.

  ㆍ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러니까 지금부터 10년 전, 뱅상과 나는 다른 몇몇 동지들과 함께 지금은 없어진 한 조간 신문을 발행하는 엄청난 행운을 누리고 있었다. 소유주는 언론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실업가로서, 생긴 지 5,6년 된 이 신문을 탐내는 정치계-금융계의 음흉스런 모의가 한창 진행중이던 시기에, 대담하게도 파리를 통틀어 가장 젊은 팀에게 자신이 탄생시킨 신문을 맡기는 일대 모험을 감행했다. 우리도 모르게 그는 이 싸움에 우리와 더불어 자기의 마지막 카드를 던졌으며, 우리는 이 모험에 기꺼이 우리 자신을 1백 퍼센트, 아니 1천 퍼센트 투자했다.

  뱅상은 이제 사거리로 접어들었을 것이다. 사거리에서는 루앙과 크로투아 방향을 왼쪽 옆으로 끼고 베르크 방향으로 들어선 다음, 크고 작은 시가지들은 지나야 한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 바람개비 같은 사거리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매는 수가 많다. 뱅상은 벌써 여러 차례 나를 보러 왔으니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그는 뛰어난 방향 감각에다가 지나칠 정도로 변함없는 우정까지 겸비했다.

  ㆍ그러므로 우리는 노상 일에 쫓겼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주말은 물론 때로는 밤샘도 불사해 가며 다섯 명이서 열두 명이 할 일을 유쾌한 기분으로 해치우곤 했다. 뱅상은 1주일 동안 거창한 아이디어만도 열 개 정도는 제안했다. 이 중 세 개는 뛰어나고 다섯 개 정도는 쓸 만했으며, 나머지 두 개는 황당한 것들이었다.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당장 실행에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 뱅상의 급한 성미를 누그러뜨리도록 유도하면서, 그가 내놓은 아이디어 중에서 취사 선택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병실에 누워 있으면서도 뱅상이 운전석에 앉아 발을 동동 구르며 토목 공사를 있는 대로 저주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2년 후에는 베르크까지 고속도로가 연결될 테지만, 현재로선 캠핑 트레일러 틈바구니에 끼여 감속으로 우회해야 하는 공사장에 불과하다.

  ㆍ사실상 우리는 거의 헤어진 적이 없었다. 신문과 더불어 함께 먹고, 마시고, 자고, 연애했으며, 신문을 위해 함께 꿈을 꾸었다. 그날 오후에 누가 경마 이야기를 꺼냈더라? 화창한 겨울 일요일이었다. 기온은 차도 하늘은 푸르고 습기라곤 없는 청명한 날씨였다. 뱅센 숲에서는 경마가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둘 다 경마광은 아니었지만, 마침 경마 칼럼 담당자가 경마장 식당에서 우리에게 식사를 한턱 낸다고 하면서, 경마라는 신비스런 세계에 입문시켜 주겠노라고 장담했다. 그 사람의 말을 들어 보면 경마란 확실한 투자이며, 떼어 놓은 당상이었다. 미트라 그랑샹이 20 대 1의 배당률로 출발하므로, 웬만큼 쩨쩨한 가장들의 재테크 방법보다 훨씬 짭짤한 재미를 볼 수 있으리라고 점쳤다.

  뱅상은 이제 베르크로 들어서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이곳에 무얼 하러 왔는지 한동안 자문할 것이다.

  ㆍ우리는 경마장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식당에서 흥겹게 점심을 먹었다. 깡패와 포주 및 불법체류자 외에도, 경마장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불량배들이 일요일이라 성장을 하고 식당에들 앉아 있었다. 배불리 먹고 흡족한 상태에서 우리는 길다란 시가를 입에 물고 열심히 빨아댔다. 범죄가 무성하게 피어오르는 이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네번째 경주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바닷가에 도착한 뱅상은 방향을 꺾어 넓은 광장을 가로지른다. 여름 휴가를 즐기는 만원 인파 속에서, 베르크의 텅 비고 얼어붙은 겨울 풍경을 찾아볼 수는 없다.

  ㆍ뱅센 숲에서 우리는 너무 오래 기다린 나머지, 결국 경주가 시작한 뒤에도 마권을 사지 못했다. 내가 미처 우리 편집국 직원들이 내게 맡긴 돈을 지갑에서 꺼내기도 전에 창구가 닫혀 버렸기 때문이었다. 함구무언하라는 지시에도 불구하고 미트라 그랑샹이라는 이름이 편집국 전체에 퍼졌으며,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다크호스 미트라 그랑샹은 소문을 거치는 사이에 어느새 누구나 판돈을 걸고 싶어하는 전설적인 경주마로 둔갑해 버렸다. 그러니 이제 남은 거라고는 직접 경주를 관람하면서 이기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커브에서 미트라 그랑샹은 선두로 나서기 시작하더니, 커브를 벗어나면서부터는 다섯 걸음쯤을 앞섰다. 우리는 그 말이 추적자를 40미터 가량이나 제치고, 마치 꿈 속에서처럼 결승선에 유유히 들어서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전투기 같은 돌격이었다. 편집국 TV 수상기 앞에서는 모두들 기뻐 날뛸 것이 뻔했다.

  뱅상의 자동차가 병원 주차장으로 미끄러져 들어온다. 햇빛 때문에 눈이 부시다. 방문객들이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누르고, 나와 세상을 갈라 놓는 마지막 몇 발자국을 옮겨 놓기 위해서 특별히 용기를 내야 하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다. 유리로 된 자동문, 7번 승강기, 그리고 마침내 119호 병실에 이르는 짧은 복도. 반쯤 여린 문틈으로는, 마치 운명의 신이 삶의 낭떠러지에 던져 버린듯 드러누워 있는 환자들만 보인다. 이런 광경을 접하면 숨이 막힌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 병실에 도착해서 울컥 목이 메이고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려지지 않으려면, 다른 중환자들의 병동을 거쳐 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마침에 내 병실에 도착한 사람들의 표정은, 산소 호흡기 없이 깊은 물 속에 잠긴 잠수부의 표정과 흡사하다. 병실 문 앞까지 왔다가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 그대로 발길을 돌려 파리로 돌아가 버린 사람들도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뱅상은 노크를 한 후, 말없이 병실로 들어선다.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 이제는 하도 익숙해진 나머지, 나는 뱅상의 얼굴 위로 얼핏 스쳐가는 두려움의 기색을 거의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남들이 두려운 기색을 보인다 하더라도 나 자신이 처음보다 훨씬 초연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마비로 위축된 표저이지만, 나는 그대로 환대의 미소를 지으려고 노력한다. 찡그림에 가까운 나의 미소에 대한 답례로 뱅상은 내 이마에 입을 맞춘다. 그는 늘 변함이 없다. 붉은 머리털, 찌푸린 얼굴, 뒤뚱거리는 뚱뚱한 몸집의 뱅상은 마치 웨일스 지방 노동조합원이 갱내 가스 폭발 사고로 부상당한 동료를 문병 온듯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반쯤 긴장이 풀어진 뱅상은 건장-연약 체급의 권투 선수처럼 다가온다. 미트라 그랑샹의 치명적인 승리에 대하여, 그는 “머저리들, 머저리들 같으니. 신문사에서는 우리를 잡아먹으려 들겠지”라고만 말했다. 그가 늘 즐겨 쓰는 말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미트라 그랑샹의 일화를 잊고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남으로써 나는 이중으로 고통스럽다. 돌이킬 수 없이 지나간 과거에 대한 향수와, 특히 놓쳐 버린 기회에 대한 떨쳐 버리기 어려운 미련이라는 두 가지 감정 때문이다. 미트라 그랑샹은 사랑할 줄 몰라서 떠나보내야 했던 여인들일 수도 있고, 잡을 줄 몰라서 흘려보낸 기회일 수도 있으며, 멀리 날아가 버린 행복의 순간들일 수도 있다. 요즈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 인생 전체가 이처럼 작은 실패의 연속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답을 뻔히 예상했으면서도 상을 탈 수 없는 경주.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우리는 판돈을 모두 환불함으로써 이 사건을 매듭지었다.


※ Mithra Grandchamp - Tony M. (FR) x Duchesse Royale II (FR), Tigre Royal (FR)
마차 경주(Harness Race) 경주마
2011/05/25 23:18 2011/05/25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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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3

2011/05/23 00:27 / My Life/Diary
  “절망한 나머지 쾌락 속에 몸을 던진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진정한 절망은 오직 고통이나 무기력으로 인도할 뿐이다.” ㅡ 카뮈,『작가수첩3』

  일주일만 세상이 멈춰버리고, 나는 잠만 잤으면 좋겠다. 아무리 오래 자도 허리가 아프지 않고, 목덜미가 결리지 않고, 머리가 지끈거리지 않았으면. 잠자는 일 외에 무얼해야 할지, 너무 할 게 많아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행복할 때조차 불안하다.
 
  운명이라는 폭력, 유전이라는 운명, 부모라는 저주.

  아쿠타가와의 자전적 소설인「점귀부」첫머리는 이렇다. “나의 어머니는 광인(狂人)이었다. 나는 한번도 내 어머니에게서 어머니다운 다정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 … 이 소설의 후반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나의 친아버지는 그 다음날 아침에 별다른 고통 없이 죽었다. 죽기 직전에는 머리도 이상해졌던지 (중략) …라고 헛소리를 했다.”

  자격이 없는 자는, 사랑하지 말 것, 아이를 낳지 말 것, 말소리를 줄이고, 절대 화내지 말 것이며, 불행하게 홀로 늙어 죽어버릴 것.

  10년 넘게 간직하면서 종종 꺼내 읽어 보던 편지들을, 3년 전에 모두 찢어서 버린 일이 있다. 유일했던 안락의 증거를 폐기하면서, 스스로를 징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완전히 저열한 인간이 되었다.
 
  모든 걸 물려 받았고, 모든 걸 거부했지만, 모든 게 발현되었다.
 
  운명이라는 폭력, 유전이라는 운명, 부모라는 저주.

  “아무도 일찍 잠들지 못했다 아버지는 꽃 모종하고 싶었지만 꽃밭이 없었다 엄마, 어디에 아버지를 옮겨 심어야 할까요 살아 온 날들 물결 심하게 이는 오늘, 오늘” ㅡ 이성복,「꽃 피는 아버지」부분
2011/05/23 00:27 2011/05/23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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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1 (2)

2011/05/21 10:06 / My Life/Diary
  붕붕이가 방문을 긁는 소리에 깬 잠. 내 옆에서 파리 한 마리가 누운 채로 죽어 있다. ㅡ 이건 애잔한 애널로지입니까?

  혼자 살아남은 파리도 마지막은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었는지.

  휴지로 주워 버렸다.

  “한 사내가 앓아 누우면, 거의 모든 친구들은 그가 죽는 것을 보려는 은밀한 욕망을 품게 된다. 어떤 이들은 환자가 자기들보다 더 건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려 하고, 다른 이들은 임종의 고통을 연구하려는 사심 없는 희망에서 그러하다.” ㅡ 보들레르,「5.암시」,『폭죽불꽃』

  이불을 개지 않았다.
2011/05/21 10:06 2011/05/2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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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1

2011/05/21 01:51 / My Life/Diary
  “술을 마시고 싶지만, 그러나, 마셔 봐야, 더욱 즐겁지 않습니다. 취해서 잠에 들 뿐입니다. 저희가 살아 있는 동안, 늘 이럴지도 모르겠습니다.” ㅡ 다자이 오사무,『청춘의 착란』, p.269

  술을 마셨지만. 즐겁지 않아. 침묵 속에 있는 것이 두려워. 좌변기에 앉아 고개를 수그리고 바라본 바닥. 타일들은 침묵하고, 귓속으로 침묵이 몰려들고. 나는 두려워. 비는 왜 그쳤는지. 젖은 언덕길을 오르면서 신발 밑창이 찢기는 소리를 듣고. 사람들 사이에서 스스로를 혐오하기 시작하고, 증오해야 될 것들에 연민을 느끼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이해할수록, 침묵이 목구멍을 메우고, 시간도 아무 소리 없이, 의미는 사라져.

  왜 다들!

  아!
2011/05/21 01:51 2011/05/21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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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6

2011/05/16 00:11 / My Life/Diary

아, 밴드는 대열을 맞춰 행진했고
브라스 밴드는 내가 알 수 없는 선율로 진행했지
창문은 열린 채, 비가 들이쳐
밤색, 노란색, 파란색, 황금색 그리고 회색

술 취한 이들은 이리저리 튀고
시내의 낡은 건물들은
비어버린 지 오래
창문은 깨졌고, 꿈도
내 집이었던 곳을 떠나니 너무 행복해

하늘, 파란 하늘과
이 썩어버린 시간
그렇게 나쁘진 않아 보여
아, 난 죽지 않았어
만족해야지
살아남았으니
그걸로 충분해 지금은

하늘, 파란 하늘과
이 썩어버린 시간
그렇게 나쁘진 않아 보여
아, 내가 죽지 않았다면
만족해야지
살아남았으니
그걸로 충분해 지금은

이사 했고, 살아남았고, 불안해. 그걸로 충분해 지금은. 스스로를 조금 더 이해했고… 이해한다는 건, 원인과 결과를 안다는 것.

2011/05/16 00:11 2011/05/16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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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2011/04/04 22:19 / My Life/Diary
  한 달 정도 전에, 고든 리빙스턴의 책 세 권,『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1,2』,『서두르다 잃어버린 머뭇거리다 놓쳐버린』을 읽었다. 담담하달까, 지루한 마음으로 읽었는데... 내용들이 얇게 앙금진 것처럼 머릿속에 남는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에카르트 폰 히르슈하우젠의 『행복은 혼자 오지 않는다』를 읽었다. 470여 쪽의 책인데, 지루한 줄 모르고 읽고는, 조금은 행복해졌달까. 이 인간은 이름부터 웃기니까...

  같은 날,『내 인생 나를 위해서만』을 사들었는데, 단지 라인하르트 K. 슈프렝어의 책이었기 때문. 아주 예전에 읽었던 그의 책들을 요약해서 재탕한 내용이었지만 읽으면서 흠칫흠칫 감탄했는데, 그 감탄하는 모습에 나 스스로 또 놀랬다. ㅡ 분명히 다 아는 내용인데 완전히 잊고 있었다니! 기억상실증 환자가 갑자기 기억을 다시 찾는 느낌? 그래서 책장에 꽂혀 있던 그의 책 세 권,『자기 책임의 원칙』,『자기 결정의 원칙』,『동기 유발의 원칙』을 다시 읽었다. 책 가득 그어진 줄들. 처음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읽었고, 두 번째는 헌책방에서 구입해 와 연필로 줄을 치면서, 세 번째는 빨간색 펜으로... 어린 날의 내가 담겨 있던 책들이구나.

  그 당시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고 싶어져서, 앤드류 매튜스의 『마음가는대로 해라 1,2』, 호리바 마사오의 『일 잘하는 사람 일 못하는 사람 1,2』를 출퇴근 길에 짬짬이 읽었다.

  중간에 다자이 오사무를 주제로 한 두 편의 영화,『인간실격』과『비욘의 아내』를 봤다. 두 작품 다 괜찮았고 특히『비욘의 아내』는 참, 뭐랄까, 아름답다랄까, 아니면 애달프다랄까... 다자이를 그려내는 작가와 감독의 애정이 느껴진 영화.

  S가 결혼한다고 저녁을 먹자고 해서 오랜만에 옛친구 둘을 만났다. 즐거웠고, 배불렀다.

  M이 추천해줘서 보기 시작한 미국 시트콤,『모던 패밀리』는 정말 정말 재미있어서 하루에 두 편씩 아껴서 봤는데, 벌써 다 봐버렸다. 유쾌함이 그리웠는지, 요즘은『마이 네임 이즈 얼』을 두 편씩 보고 있다.

  지난 주에는 서점에 들러서 책을 둘러보다가 70이 다 된 할머니 미나미 가즈코가 쓴 『늙지 마라 나의 일상』을 무작정 사들고 와서 읽었다.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도 같이 사서 읽었다. 두 권 다 마음에 들었다. 어쩐지 조금 늙은 것도 같다. 위안이 되었다는 뜻.

  어제는 붕붕이가 하루종일 토해서 내가 싫어졌고, 붕붕이에게는 화를 내고, 엄마를 속으로 욕했고, 동생에게 쓰레기통을 비우라고 시켰다. 단지 붕붕이가 토했기 때문. ㅡ 다분히 비이성적인 이런 행동의 이유는...

  오늘은 출근길에 찰스 S. 제이콥스의 『리와이어』를, 퇴근길에는 윤석철의 『삶의 정도』를 조금 읽었다. 참, 짐 로저스의 『상품에 투자하라』도 반 정도 읽었다. 다시 경영서를 읽기 시작했다.

  이게 한 달 동안 있었던 모든 일이다.

  회사 이야기는 일부러 쓰지 않는다.

  중간에 생일이 있었고, 와이셔츠를 두 벌이나 잃어버렸고, 몇몇에게는 실망을 하고, 다시 그들을 이해하고, 잠깐 잠깐, 죽어버릴까라는 생각을 하는 등의 조촐한 일들로 일상을 채우는, 다른 이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다. 이제는 바람이 불어도 차갑지 않고 조만간 벚꽃은 미친듯이 필테다. 그리고 다시 한 달 정도 뒤엔 전지구적 방사능 비가 내리고... 이제 지구는 빙하기로 접어드는데... 쓰지 못하는 말은 여전히 쓰지 못한다.

  고독이라면 고독이고, 도피라면 도피를 하고 있다.

  아무 희망도 갖지 않고 산다.

  행복하다는 뜻.
2011/04/04 22:19 2011/04/04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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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31 (2)

2011/03/31 23:59 / My Life/Diary
“이봐, 전쟁이 더 치열해져서 주먹밥 하나 놓고 다퉈가며 살아야 한다면, 난 사는 걸 그만둘래. 주먹밥 쟁탈전 참전 권리는 포기할 생각이니까. 안됐지만, 당신도 그땐 아이와 함께 죽을 각오를 하라고. 그게 지금의 나한테 남은 최소한의 프라이드니까.”

ㅡ 다자이 오사무, 『나의 소소한 일상』, p.101

부끄러움을 가진 사람도, 책임을 지려는 사람도 없었구나. 너희들 전부, 애들 모두에게 “미안해”라고 말해야 해.

우스워.

이기적이란 건, 하염없이 약하다는 것.

누가 누구를 욕해? ㅡ 모두 똑같아.
2011/03/31 23:59 2011/03/3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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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31

2011/03/31 12:32 / My Life/Diary
뼈아픈 후회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 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高熱)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 주는 바람뿐

쓸 말은 많은데,
못 쓰겠네….
2011/03/31 12:32 2011/03/31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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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2

2011/03/22 23:38 / My Life/Diary
모르는 체하는 걸 모르는 체하다
정말 모르게 되버릴까,
두려워.

집안에 병신 같은 화목함이 흐른다.
병신 같다는 단어 속에는 애잔함이라던지, 평화로움, 안락함, 좆같음…

봄꽃이 핀다. 작년 그 줄기에서 예년의 모습으로 피어나는 꽃에게 “너 올해도 ‘다시’ 피었구나”라고 말했다간, 꽃에게 혼이 난다. 매번 새롭게, 새로운 꽃잎으로, 새로운 꽃술로, 새로운 향기로, 여러 번 떨궈진 자리에서, 새롭게 살아나는, 사랑이라는구나.

아침 출근길, 바람에 쓸리는 종이조각을 깽깽이질로 따라가며 쪼아대는 비둘기 한 마리를 보았네.
2011/03/22 23:38 2011/03/22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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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0

2011/03/20 23:42 / My Life/Diary
어디도 기댈 곳이 없다는 걸,
한동안 잊고 있었네.

절망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절실한 마음으로 희망을 품고 있었다. 의식하지 못했던 아주 큰 실수. “추락”이란 건, 단단하고 안정된 바닥이 있을 때라야 쓸 수 있는 말이야. 바닥을 만나지 못하는 자는 결코 추락할 수 없다. 나는 필사적으로 바닥을 찾고 있었어. 거기서 뭉개져 버림으로써 모든 것이 한꺼번에 정리되기를 꿈꿔 왔어. ㅡ 어디도 바닥은 없었는데.

발 디딜 곳을 잃어버린 채 공중에 붕 떠 있던 20대 초반. 아무 희망이 없던 그때 생각들을 다시 정리한다. 열렬히 읽고, 열렬히 일하고, 열렬히 혼자였던, 이 시간들을 왜 잊고 있었을까.

나를 좀먹던 작은 희망들.
2011/03/20 23:42 2011/03/20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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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9

2011/02/19 16:20 / My Life/Diary
9회말 2아웃 2-3 풀 카운트에서 연신 파울만 쳐대는 타자. 구장에는 관중이 한 명도 없고, 경기는 큰 점수차로 뒤져 있고, 루는 모두 비어 있다. 타자는 다만 아웃을 당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방망이를 돌리고 있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므로.
2011/02/19 16:20 2011/02/1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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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0

2011/02/10 01:56 / My Life/Diary
“이제 내겐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갑니다.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몸부림치며 살아왔던, 이른바 ‘인간’ 세상에서 단 하나 진리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단지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간다.

나는 올해 스물일곱이 됩니다.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어 사람들은 40대 이상으로 봅니다.

ㅡ 다자이 오사무,『인간실격』

불현듯 떠오른 인간실격의 마지막 구절. 싯달타도 깨달았을 때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다... 인과에 따라 세상은 돌아가고, 인간은 그걸 인식하고 감응하거나, 인식하고 감응하지 않거나, 인식도 감응도 모두 놓아버릴 수 있다. 인식도 않고, 감응도 않고, 모든 걸 공하다고 보거나, 있는 그대로 여여하다고 보거나, 어쨌든 세상은 돌아간다.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죽거나 살거나... 어쨌든 세상은 돌아간다. 싯달타는 체념했던 게 아닐까. 기껏해야 인간은 자신의 인식과 감정만을 조작할 수 있을 뿐. 사실 세상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살생하지 말아라... 착하게 살아라... 집착하지 말아라... 너 자신에게 나쁜 기억을 안기지 말아라...


나는 올해 스물일곱이 됩니다.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어 사람들은 40대 이상으로 봅니다.

계속 이 마지막 문구가 머릿속을 맴도는데.

“기다림. 아아, 인간의 삶에는 기뻐하고, 화내다가, 슬퍼하고, 증오하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지만, 그래도 그것은 인생의 1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감정들이며, 나머지 99퍼센트는 그저 기다리며 사는 것 아닐까요. 행복의 발소리가 복도에 들려오길, 이제나 저제나 두 손 모아 기다리다가, 텅 빔. 아아, 인생이란, 너무 비참해. 누구나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하며 사는 이 현실. 그리고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끊임없이 무언가를 기다린다. 너무나 비참해. 태어나길 잘했다고, 아아, 이 목숨을, 인간을, 이 세상을, 진정한 기쁨의 웃음을 웃게 해주세요.

앞길을 가로막는 도덕을 뿌리칠 순 없습니까?

ㅡ 다자이 오사무,『사양』

요즘 로맹 가리를 읽고 있다.

다자이를 한 번 더 읽어야 겠다.

나는 올해 스물일곱이 됩니다.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어 사람들은 40대 이상으로 봅니다.

나는 스물일곱을 훌쩍 넘겨버렸어. 흔적도 없이 스쳐 지나왔다. 아아, 앞으로 스쳐 지나갈 세월을 생각하니...
2011/02/10 01:56 2011/02/10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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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7

2011/02/07 02:39 / My Life/Diary
휴일 마지막 날이면 잠이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후까지 자기 때문에. 언제나 월요일은 고되다. 밤을 새우고 출근하는 일도 종종 있다. 에스프레소 몇 잔이면 36시간 정도는 자지 않아도 괜찮기 때문에.

최승자를 들춘다.

“우리 청춘의 유적지에선 아직도 비가 내린다더라.
그래서 멀리 누운 우리의 발가락에도
때로 빗물이 튀긴다고 하더라.
그리고 우리가 살아 있다는 헛소문이 간간이 들린다고도 하더라.”
ㅡ「望祭」

당신은 당신이 하는 장난이
내게는 얼마나 무서운 진실인가를 모르는 체한다.
당신이 모르는 체하는 것을 모르는 체하면서,
내가 자꾸 빠져 들어가는 게 나의 사랑이라는 것을 당신은 모르고, 모르는 체하고,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딧물이 벼룩을 낳고 벼룩이 바퀴벌레를 낳고 바퀴벌레가 거미를 낳고…
우리의 사랑도 속수무책 거미줄만 깊어 가고,
또 다른 해가 차가운 구덩이에 처박힌다.
ㅡ「연습」

그리고 이성복을,

바퀴벌레들이 동요하고 있어 꿈이 떠내려가고 있어
가라앉는 山, 길이 벌떡 일어섰어 구름은 땅 밑에서
빨리 흐르고 어릴 때 돌로 쳐죽인 뱀이 나를
감고 있어 깨벌레가 뜯어 먹는 뺨, 썩은 나무를
감는 덩굴손, 죽음은 꼬리를 흔들며 반기고 있어
닭아, 이틀만 나를 다시 품에 안아 줘
아들아, 이틀만 나를 데리고 놀아 줘
가슴아, 이틀만 뛰지 말아 줘
밥상 위, 튀긴 물고기가 퍼덕인다 밥상 위, 미나리와
쑥갓이 꽃핀다 전에 훔쳐 먹은 노란 사과 하나
몸 속을 굴러다닌다 불을 끄고 숨을 멈춰도 달아날 데가 없다
ㅡ「루우트 기호 속에서」

아아 기형도는,

한때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
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
이미 대지의 맛에 익숙해진 나뭇잎들은
내 초라한 위기의 발목 근처로 어지럽게 떨어진다
오오, 그리운 생각들이란 얼마나 죽음의 편에 서 있는가
ㅡ「10월」

다시 최승자가,

그리하여 우리들은 잠들었네
너는 흔들리는 코스모스의 잠
나는 흩어지는 연기의 잠

한 세기가 끝날 무렵에도
너는 코스모스의 잠
나는 연기의 잠
ㅡ「그리하여 우리들은 잠들었네」

그러나 나는 잠들지 못하고. 왜냐하면, 오후까지 잤기 때문에. 그리고 너는 끝까지 나를 모를 것이다. 애초에 나를 보려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러다가도, 한센병자와 권정생을 떠올리면 나는 지나치게 행복한 것이 아닌가, 행복한 놈이 제 복에 겨워 사치스런 절망을 무슨 비싼 술 마시는 양 입에 머금고 호로록 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술도 싫고 담배도 싫고 타이레놀도 싫고 제정신도 싫다. 방법이 없어 방법이...

“어째서 사람들은, 자신을 ‘멸망’이라고 단언하지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ㅡ 다자이 오사무

네네... 저도 이렇게 징징대면서도 실상은 멀쩡히 살아있는 걸 보면...

유치하고 혐오스럽네요.
2011/02/07 02:39 2011/02/07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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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5 (2)

2011/02/05 15:35 / My Life/Diary
사람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교량이라는 것이다. 사람에게 사랑받을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의 과정이요 몰락이라는 것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을 모르는 사람들을. 그런 자들이야말로 저기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신에 대한 사랑에서 자신의 신을 꾸짖고 나무라는 자를. 그런 자는 그 신의 노여움을 사 파멸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상처를 입고도 그 영혼이 심오하며, 하찮은 사건으로도 파멸할 수 있는 자를. 그런 자는 이렇게 하여 기꺼이 저 교량을 건너고 있는 것이니.

ㅡ F. 니체(정동호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니체 전집13), pp.20~22

가고자 하던 길에서 낙오가 되었다. 낙오자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길을 택하라고 말한다.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순간 더 이상 낙오자가 아니며 앞으로 펼쳐질 자기 생의 개척자가 된다고.

지랄, 나는 낙오자다.
니체는 미쳤거나, 존나 미쳤다.

내 속으로는 아무도 틈입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아무도 틈입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부처는 세계가 불타고 있다고 말했지만, 부처가 틀렸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2011/02/05 15:35 2011/02/0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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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5

2011/02/05 13:41 / My Life/Diary
붕붕이가 강낭콩처럼 누워 있다. 나도 그 옆에 강낭콩처럼 누워서. 따뜻하니까. 네 놈이 있어서 다행이야.
2011/02/05 13:41 2011/02/05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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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4

2011/02/04 03:15 / My Life/Diary
일기를 뒤져보니 2004년 즈음 만났다. 내가, 정말, 잘못했다. 그들 나이가 된 지금에야 깨닫는다. 그 인연들을 계속 끌고 왔어야 했는데. 그때는 몰랐지만 그들에게 정신적으로 절대적인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까닭 없이 슬퍼질 때면 종종 생각난다. 혹시라도 보게 된다면, 이런 말로 용서를 구할 수 있을지ㅡ 내가 도망친 거라고, 그 이후로 그 누구와도 새롭게 친해질 수 없었다고.

예전에는 나는 스스로를 못됐다고 생각했다. 못됐지만, 사회에 속하기 위해 착한 척을 하고 산다고. 그러다 땅콩이가 죽고 나서는 원래 나는 착했다고 생각했다. 착했지만, 그런 내 자아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못됐다고 생각했을 뿐이라고. 그리고 요즘에 와서 나는 그저 나약하다고 생각한다.

죽음과 순결은 비슷하다. 막상 닥친 다음에는 별 것 아닌 일이 되버린다. 그렇다고 막 죽어버리지 않듯이… ㅡ “나는 네가 순결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불행했으면. 그럼 나랑 자자.”

20대를 쓸데없이 심각하게 살았다. 다시 돌아간다면, 더욱 심각하게 살겠지만.

타인의 과거를 알아갈수록, 더 친밀해지고, 덜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미안하지만 나는 여전히 운명과 영원을 믿는다. 살아있다.

2011/02/04 03:15 2011/02/04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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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31

2011/01/31 23:58 / My Life/Diary
취했어.

아무 것도 써서는 안 됨.

힝...

2011/01/31 23:58 2011/01/31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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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30

2011/01/30 16:51 / My Life/Diary
동해를 다녀왔어. 그냥 동해도 아니고, 강원도 고성군까지. 몇 발자국만 더 가면 할머니가 살고 있지. 할아버지 산소도 있고 말이야. 그러니까, 10년도 더 됐지, 동해를 본 지. 매년 토악질을 해대며 넘었던 그 높던 미시령도 새롭게 낮은 길이 뚫렸더라. 미시령 옛길은 출입금지였지만, 내 기억은 그 꼬불꼬불했던 가파른 길을 올라가고 있었어. 어지러워 멀미가 나. 생각하지 말자. 왜 아버지는 몰락했는지. 왜 나는 그걸 무시했는지.

회를 먹고, 술을 마시고, 재미있게 놀았다. 과거 없는 사람처럼.

돌아와 한 숨 자고 일어나니 이상한 기분이 들어. 이미 포기한 것들을 머릿속에서 붙들고, 너무 오랫동안 현실을 살지 못하고 있네. 생각하지 말자. 배가 고파.
2011/01/30 16:51 2011/01/30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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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7

2011/01/27 00:42 / My Life/Diary
의미.
운명.
우리의 바보 같은 연극.
2011/01/27 00:42 2011/01/27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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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2

2011/01/22 20:23 / My Life/Diary

처음이고 싶었다. ... 그러나 이제는 결코, 처음은 될 수 없구나. 이럴 때면, 너무 오랜 시간을 놓아버린 것 같은, 처음이 되기에 난 너무 오래되었다,는 느낌이 들어. 모든 영화와 소설은 결말이 중요하지. 주인공들은 항상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 그래도 난, 첫 장면에서, 첫 단락에서 잠깐 나타났다 영원히 사라진다 해도, 처음이고 싶었는데. 딱 한 번, 단 한 사람, 오직 하나의 과거가 되고 싶었는데. 이젠 그럴 수 없네. 나 역시 아무런 추억이 없네.

리필 음료수가 된 것 같아.

2011/01/22 20:23 2011/01/2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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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이젠 이 여자가 싫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가는 것도 싫다. 사랑하기도 싫다. 몇 번의 대화속에 넌 진지하지 않았어. 대화 중에 본 네 모습은 껍데기 뿐이었고, 난 내심 널 모욕했어. 그러자 너와 나 자신이 불쌍해지더군. 그래서 우리가 싫어. 함께가 더 외로워. 누가 우릴 사랑할 수 있겠어? 우린 너무 밀착되어 있어. 예전처럼 됐으면 좋겠어. 눈치 보는 일도 그만하고… 서로 상처 주지도 말고… 안녕, 나의 천사! 나 오늘 늦을 거야.

ㅡ 알렉스니? 니 애비다. ㅡ 안녕하셨어요. ㅡ 잘 있다. ㅡ 몇 시죠? ㅡ 6시 39분이다. ㅡ 전화하셔서 놀랬어요. 일종의 환각상태 같아요… 현재의 기억처럼요. 그래서 어지러운가봐요. ㅡ 숙모 얘기 들었니? ㅡ 아니오. ㅡ 죽지 않았다더라. ㅡ 돌아가실 이유가 없잖아요. ㅡ 병원 주사로 연명하고 있어. 끔찍한 일이야. 정말 환멸스러워! ㅡ 새로울 것도 없잖아요. ㅡ 널 믿는다. 내가 노망부리거든, 탕! 식물인간이 되긴 싫다. 우리 약속을 잊지 마라. 내 머리에 총알을 갈겨. 약속해라! 농담 아니다, 알렉스! 맹세해! ㅡ 벌써 했잖아요. 내가 먼저 죽지 않는다면요… ㅡ 닥쳐, 몹쓸 자식! 망할 놈!

ㅡ 난 비열한 기회주의자 희생양이야. 내 더러운 엉덩이와 물집. 안 맞는 신발… 사람들은 신발로 우리를 평가해. 그는 발바닥이 아플 땐 얼음을 신발에 넣었댔어. 나도 그렇게 해봤지. 처음엔 낫는 듯 했는데 나중에 더 아팠어. 내 발이 자라듯… 내 영혼도 자란다. 난 모든 면에서 고상해졌어.

ㅡ 다시 태어날 순 없을까? 난 낙오자가 될 거야. 기회가 있었지. 난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었어. 비행사, 여행가, 음악가… 다시 태어날 순 없을까? 우린 처음 만났어. 내겐 처음만이 중요해. ㅡ 그럼 오래 가지 않겠네. ㅡ 내게 애가 있다면 말을 배운 순간부터 무시할 거야. 몇 년간 섹스를 갈망해왔어. 그런데 실제로 해보니까 전혀 반대였어. 난 꿈을 이루려 애쓰지 않고 꿈만 꿔왔어. 차 마시겠어? ㅡ 좋아. ㅡ 컵이 하나뿐이야. ㅡ 상표가 떨어졌어. 뭔지 모르겠는걸.

ㅡ 사랑에… 자주 빠지곤 해? ㅡ 그래, 쉽게 빠져. ㅡ 그럴 줄 알았어. ㅡ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오래 가. 난 떠났을 때 더 가까운 느낌이 들어. 사랑은 오래된 언덕과 같아서 닳아지기 마련이야. 욕망은 극복하기 힘들고, 요즘은 돈도 많이 들어. 정열은 많은데 사소한 일로 낭비되지. 그건 사라지지 않아. 나도 그렇고.

ㅡ 그는 늦게 돌아왔어. 난 자고 있었지. 그는 어두운 내 침대 곁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어. 열쇠 소리에 깼지만, 난 자는 척했어. 그의 눈길이 느껴졌지. 아주 집요한… 처음이 아니었어. 그리곤… 내 침대에 들어와… 내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날 사랑했어. 그는 그런 식을 좋아했어. 때론 이런 말도 했지. “우리 죽은 척 해볼까?” 그를 만난 건…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였어. 너무나 편안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내가 모르는 일까지도. 그에겐 모든 게 문제야. 나의 과거, 미래, 현재, 죽음까지도… 난… 그냥 나야.

ㅡ 당신과의 시간이 꿈같이 느껴져. 평범하지 않은 꿈. 깊이 잠들어야 꿀 수 있는 꿈. ㅡ … ㅡ 당신 옆에 앉아 있는 게, 영원처럼 느껴져. ㅡ … ㅡ 당신을 본 순간 운명처럼 당신을 사랑하게 됐어. 딱 한번만 얘기할께. 사랑해 미레이유, 당신을 사랑해! 그걸 모른다면… 너무 늦는 거야. 못들은 척 해. 침묵할 때야. 20년간 떠들었으니 침묵해야지. 당신 몸이 늙는 것을 생각하면… 처진 가슴에 주름살도 늘겠지, 미레이유, 당신 배에도 엉덩이에도… 다 내 잘못이야. 두고 봐, 미레이유. 후회없는 사랑, 망설임 없는 사랑이 될 거야. 오라면 오고 웃으라면 웃을께. 원하는 만큼 함께 잠을 자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팀을 이뤄 함께 일하고 우리의 운명이 무엇이든 뛰어들거야. 키스도 우리의 입을 봉하지 못해. 내게 날개를 줘. 몸이 1톤은 되는 것 같아. 트럭도 아닌데 말이야. 난 결코 다시 생을 살진 않겠어, 결코!

알렉스, 도와줘… 여기서 나가게 해줘…

2011/01/19 00:31 2011/01/19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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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6

2011/01/16 23:02 / My Life/Diary
옷을 개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어. 『무인 곽원갑』. 한 세 번은 본 것 같은데, 언제나 소일할 때만 채널 돌리다 본 거라 다 합해야 10분 봤나? 거의 끝나가더라고. 독물을 먹고 까만 피를 입에서 쏟아내는 곽원갑. 장중하게 한마디 내뱉네. “운명을 피할 수는 없어. 용감하게 그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을 뿐.”

숭산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지, “용감하게 도축장으로 들어서는 소들도 있다.” 나도 그런 소가 되려 했던 적이 있었지만...

“살처분 기다리는 돼지들”이란 사진 기사 제목이 생각나데. 난 사진은 보지 않았지. 그런 사진과 글을 올리는 건, 폭력이야. 양쪽 모두에게.

너무 오래 혼자였어. 그런데도 어른이 되지 못했지.

어둠 속에서 징징대고 있으면 누군가 다가와 손을 내밀 줄 알았던 거지. 기다리다 지쳐서 불을 켜고 보니까, 사방에 쭈그려 앉은 이들이 입에 수건을 물고 눈물을 쏟고 있더라고. 모두가 다른 사람은 신경쓸 겨를조차 없었던 거야. 다들 누군가 내밀어 줄 손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언젠가는 모두가 한 번쯤 깨닫게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무도 내게 오지 않는다는 의미임을!”

아무도 자신을 사랑해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 더 이상 사랑을 구걸하지 않게 될까.

두 줄의 평행선이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건, 둘 다 자신의 길을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야. 연애도 유행이야. 누구나 그 유행에 휩쓸리곤 하지. 날이 추울수록 더욱.

“너를 불행하게 만들어서라도 내 곁에 두고 싶어. 나 자신보다 너를 갖고 싶어. 이게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랑이야.” 사랑, 그 지독한 소유욕. 『퐁네프의 연인들』,『나쁜남자』

너무 착하면 사랑따윈 못 해. 인류를 구원해야지.

잠시 망각하고 있었던 내 20대. 아직 끝나지 않았더라구. 친구 몇몇이 얘기해주었고, 나는 기억하지 못했지. 다시 얘기해주었고, 맞아, 그게 나였지. 지난 몇 년이 10년을 잠식했지만. 연필로 꼭꼭 진하게 눌러써서, 지워도 남아버린 그 자국들을, 녹색 파스텔로, 프로타쥬.

그래도 미래는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사실은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까지처럼 우린, 아무 일도 없는 듯 가면을 쓰고 바닥만 쳐다보며 걸어가겠지. 결국 정말 아무 일도 없는 셈이 되는 거야.)

뭐, 어쨌든.
2011/01/16 23:02 2011/01/1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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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4

2011/01/04 12:17 / My Life/Diary
항상 똑같은 결말을 보면서도 말이지. 우주로 튀어나가 보겠다고 제자리에서 뜀뛰는 동네 바보 兄이 됐나 봐. 이도 저도 되질 않는다. 관성을 따르는 게 너무나 편하니까. 그게 순리야. 중력에 묶여 사는 것, 관성을 유지하는 것. 병신 같다는 말도 이제 지루해. 윤리의 족쇄, 순결에 대한 육체적 강박. (“육체적”으로 한정하다니 이 얼마나 비루하니?) 비가 퍼붓거나 눈이 내리부은 다음 날 하늘을 보면, 무한대의 우주가 눈앞에, 나와 맞닿아 있는데. 아프락사스에게로 날아가기가(이 말도 병신 같고 지루해), 어렵고 어려워.
2011/01/04 12:17 2011/01/04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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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3 (2)

2011/01/03 23:12 / My Life/Diary
ㅡ 넌 나를 웃게해. 하지만 난 너를 울게 했지. ㅡ 우는 것도 행복이란 걸 모르나요? ㅡ 나는 울어본 적이 없어. 열 살 때, 성모마리아상 앞에서 펑펑 울어본 이후로는. ㅡ 왜요? ㅡ 아무 말도 없었거든.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고. ㅡ 석상에 대고 울 게 아니라 진짜 어머니에게 가서 울었어야죠. ㅡ 그분은 더더욱 말이 없었거든. 게다가 모든 걸 더 나쁘게 만들었지. ㅡ 그래서 당신이 행복을 모르는 거예요. ㅡ 그럴지도 모르지. 항상 널 울게 만드는 건 그 때문일거야. 넌 울어라도 주니까. ㅡ 언젠가 울어줄 수 없는 날이 올 거예요…. ㅡ 온 세상 사람들이 너를 “나쁜년”이라고 욕해도, 내게 너는 영원히 “착한년”이야…. 오늘은 추워, 너무.
2011/01/03 23:12 2011/01/03 23:12

2011.01.03

2011/01/03 01:51 / My Life/Diary
수도자의 금욕적인 삶의 방식이 하나의 가치를 가지듯, 자기파멸의 삶도 하나의 가치를 갖는다. 이해할 수도 없고 견딜 수도 없는 현재와, 막연한 불안으로 먹칠된 미래 앞에서, 어떻게든 평범한 삶을 살아내려고 발버둥치는 일이, 과연 어떤 정당성을 갖고 있을지. 인생 전체를 한 번에 던져버릴 용기가 없다면, 자기쾌락 속에서 스스로를 서서히 파멸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가난한 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술을 붓고 먹은 걸 토하고, 담배 물고 피를 토하는 일밖엔 없다. 지금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안락은 붕붕이가 자신의 작은 턱을 내 발등에 얹는 그 순간 뿐이다. 결국 날 사랑하지 않을 사람들이, 왜 날 사랑하려 했을까.
2011/01/03 01:51 2011/01/03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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